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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복음 묵상

[복음]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151010

작성자아구스리|작성시간15.10.10|조회수169 목록 댓글 0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n aquel tiempo, mientras Jesús hablaba, sucedió que una mujer de entre la gente alzó la voz, y dijo: «¡Dichoso el seno que te llevó y los pechos que te criaron!». Pero Él dijo: «Dichosos más bien los que oyen la Palabra de Dios y la guardan».


«¡Dichoso el seno que te llevó y los pechos que te criaron!»

Rev. D. Jaume AYMAR i Ragolta 

(Badalona, Barcelona, España)

Hoy escuchamos la mejor de las alabanzas que Jesús podía hacer a su propia Madre: «Dichosos (...) los que oyen la Palabra de Dios y la guardan» (Lc 11,28). Con esta respuesta, Jesucristo no rechaza el apasionado elogio que aquella mujer sencilla dedicaba a su Madre, sino que lo acepta y va más allá, explicando que María Santísima es bienaventurada —¡sobre todo!— por el hecho de haber sido buena y fiel en el cumplimiento de la Palabra de Dios.


A veces me preguntan si los cristianos creemos en la predestinación, como creen otras religiones. ¡No!: los cristianos creemos que Dios nos tiene reservado un destino de felicidad. Dios quiere que seamos felices, afortunados, bienaventurados. Fijémonos cómo esta palabra se va repitiendo en las enseñanzas de Jesús: «Bienaventurados, bienaventurados, bienaventurados...». «Bienaventurados los pobres, los compasivos, los que tienen hambre y sed de justicia, los que creerán sin haber visto» (cf. Mt 5,3-12; Jn 20,29). Dios quiere nuestra felicidad, una felicidad que comienza ya en este mundo, aunque los caminos para llegar no sean ni la riqueza, ni el poder, ni el éxito fácil, ni la fama, sino el amor pobre y humilde de quien todo lo espera. ¡La alegría de creer! Aquella de la cual hablaba el converso Jacques Maritain.


Se trata de una felicidad que es todavía mayor que la alegría de vivir, porque creemos en una vida sin fin, eterna. María, la Madre de Jesús, no es solamente afortunada por haberlo traído al mundo, por haberlo amamantado y criado —como intuía aquella espontánea mujer del pueblo— sino, sobre todo, por haber sido oyente de la Palabra y por haberla puesto en práctica: por haber amado y por haberse dejado amar por su Hijo Jesús. Como escribía el poeta: «Poder decir “madre” y oírse decir “hijo mío” / es la suerte que nos envidiaba Dios». Que María, Madre del Amor Hermoso, ruegue por nosotros.


<참 행복>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7-28)"

 

어떤 여자가 한 말은,

"당신 같은 아들을 둔 당신의 어머니는 복되신 분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당신의 어머니가 복되신 분이라는 것을 부정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그렇긴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도 복되신 분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은 '참 가족'에 관한 가르침과 뜻이 비슷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3-35)."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실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참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복된 사람입니다.

 

성모님은 복된 사람들 가운데 첫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엘리사벳이 바로 그것을 증언했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2-45)"

 

'복되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신앙인들의 행복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복된 상태는 곧 행복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행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참 행복' 선언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카 6,20-23)."

 

이 말씀은, 가난과 굶주림과 슬픔과 박해가 행복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중에 얻게 될 '하느님 나라의 삶'이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은 '지금' 그 행복을 미리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행복'을 '기쁨'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바로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루카 10,21.공동번역)"

 

이 기쁨은 소외 계층 사람들에 대한 편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이 구원을 받게 된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는 것이

예수님의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선교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고

교회가 점점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당연히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박해를 받았을 때에도 기뻐했습니다.

"...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사도 5,39-41)."

 

사도들은 박해를 받아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 박해를 통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어서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참 행복' 선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은 박해를 참고 견디는 힘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도 같은 기쁨을 말하면서 신자들에게 함께 기뻐하자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필리 2,16-18)."

 

지금 말하고 있는 행복과 기쁨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과 기쁨인데,

나중에, 즉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작되어서, 지금 누리는 행복과 기쁨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 세상에서는 슬픔과 고통만 겪다가

죽어서나 행복하게 되는 생활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생활이고, 지금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지금 행복하고 기쁘니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행복과 기쁨이 완성되고 완전해지는 나라입니다.)

 

만일에 안 믿는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행복하고 기쁜가?" 라고 묻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이다.",

또는 "하느님(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이다."

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데,

그 행복과 기쁨을 '말로' 설명하는 일도,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떻든, 우리는 지금 기쁘고 행복하니까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련을 참고 견디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면서, 또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그 나라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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