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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복음 묵상

[복음]나는 세상의 빛이다. 160314

작성자아구스리|작성시간16.03.14|조회수281 목록 댓글 0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2-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2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n aquel tiempo, Jesús les habló otra vez a los fariseos diciendo: «Yo soy la luz del mundo; el que me siga no caminará en la oscuridad, sino que tendrá la luz de la vida». Los fariseos le dijeron: «Tú das testimonio de ti mismo: tu testimonio no vale». Jesús les respondió: «Aunque yo dé testimonio de mí mismo, mi testimonio vale, porque sé de dónde he venido y a dónde voy; pero vosotros no sabéis de dónde vengo ni a dónde voy. Vosotros juzgáis según la carne; yo no juzgo a nadie; y si juzgo, mi juicio es verdadero, porque no estoy yo solo, sino yo y el que me ha enviado. Y en vuestra Ley está escrito que el testimonio de dos personas es válido. Yo soy el que doy testimonio de mí mismo y también el que me ha enviado, el Padre, da testimonio de mí». 


Entonces le decían: «¿Dónde está tu Padre?». Respondió Jesús: «No me conocéis ni a mí ni a mi Padre; si me conocierais a mí, conoceríais también a mi Padre». Estas palabras las pronunció en el Tesoro, mientras enseñaba en el Templo. Y nadie le prendió, porque aún no había llegado su hora.


«Yo soy la luz del mundo»

Rev. D. Jordi PASCUAL i Bancells 

(Salt, Girona, España)

Hoy, Jesús nos da una definición de Él mismo, que llena de sentido la vida de quienes, a pesar de nuestras deficiencias, le queremos seguir: «Yo soy la luz del mundo» (Jn 8,12). La persona de Jesús, sus enseñanzas, sus ejemplos de vida son luz que ilumina toda nuestra existencia, tanto en las horas buenas, como en las de sufrimiento o contradicción. 


¿Qué quiere decir esto? Pues que en cualquier circunstancia en que nos encontremos, ya sea de trabajo, de relación con los otros, en nuestra relación ante Dios, ante las alegrías o las penas... podemos pensar: —¿Qué hizo Jesús en una situación semejante?; siempre podemos buscar en el Evangelio y responder: —¡Pues esto mismo haré yo! Precisamente, Juan Pablo II ha incorporado en el Santo Rosario —el “compendio del Evangelio”, como él mismo recuerda— los misterios de la vida pública de Jesús, y los ha denominado “misterios de la luz”. Así, dice el Papa: «Él es quien, declarado Hijo predilecto del Padre en el Bautismo del Jordán, anuncia la llegada del Reino, dando testimonio de él con sus obras y proclamando sus exigencias».


Jesús es luz; quien le siga «no caminará en la oscuridad, sino que tendrá la luz de la vida» (Jn 8,12). Como discípulos suyos, el Señor nos invita también a ser luz para el mundo; a llevar la luz de la esperanza en medio de las violencias, desconfianzas y miedos de nuestros hermanos; a llevar la luz de la fe en medio de las oscuridades, dudas e interrogantes; a llevar la luz del amor en medio de tanta mentira, rencor y apasionamiento como vemos a nuestro alrededor.


El Papa señala como telón de fondo de todos los misterios de luz, las palabras de María en las bodas de Caná: «Haced lo que Él os diga» (Jn 2,5): éste es el camino para que Jesús sea luz del mundo y para que nosotros iluminemos con esta misma luz.



♣ 행복을 위한 삶의 기준과 방향 ♣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어 바리사이들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행복으로 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바리사이들은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지 않다(8,13)며 반발하며 믿지 않습니다. 이에 그분은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8,14-15) 하고 답변하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의 처신의 기준은 하느님의 기준이었지만 바리사이들의 기준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추구하는 사람의 기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의 기준으로 처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살을 취하신 강생의 신비와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취하신 유일한 기준은 사랑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할 뿐 아니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세상 부귀영화를 위협할 것이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일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탄생, 갈릴래아에서의 복음선포,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여정은 결국 인간을 향한 사랑의 순례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며 병자를 고쳐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시며 해방을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의 삶의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사랑에서 와서 사랑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진정 나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나의 삶의 기준이 하느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라면 성 프란치스코처럼 무엇을 하든 눈에도 예수, 귀에도 예수, 입에도 예수, 생각할 때도 말할 때도 예수님을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많은 순간 세상적 가치 기준을 따라가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상을 섬기며 사는 것이겠지요. 

나아가 쉴새 없이 움직이며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삶에서 나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나의 필요성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할 때가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왜 사느냐 하는 삶의 방향이 사랑에 있지 않다면 결코 그 삶은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삶의 기준을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으로 삼고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십자가의 길’인 셈입니다. 사순절의 막바지에 있는 우리 모두 사랑이신 주님께 의탁하면서 그래도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 사랑을 향하여 걸어가는 행복한 발걸음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존재 자체로 구원

  
인간이란 존재,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때로 참으로 대단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정말 대단한 일, 
정말 경이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강도 높은 격무에 하루 온종일 시달리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해봅시다. 
집에 돌아오니 갓 돌을 넘긴 아들이 아빠를 향해 방긋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순식간에 하루의 피로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루 내내 받았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비록 7-8Kg도 안 나가는 작은 아기지만 모습 자체로 아버지에게는 
기쁨의 원천이요 삶의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고 큰 충격에 빠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너무나 슬퍼 식음까지 전폐합니다. 
삶의 큰 의미를 상실하다보니 우울증까지 겹쳤습니다. 
거의 죽음을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절친한 한 친구가 다가갑니다. 
그저 말없이 함께 있어줍니다. 
함께 울어주고 함께 고통의 순간을 견뎌냅니다. 
상심한 사람에게 그 친구는 존재 자체로 빛이요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 신학적, 철학적, 논리적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이 아닐까요? 
  
부족한 인간 존재로부터 받는 위로도 이렇게 큰데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될 위로는 얼마나 더 크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어제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 기억나십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을 둘러 싼 모든 사람들이 다들 돌 하나씩 들고 서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당신의 온 몸으로 막습니다. 
당신의 뜨거운 사랑으로 그 여인을 사람들의 돌팔매질로부터 보호합니다.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극진한 배려와 각별한 보호를 통해 여인은 구원받습니다. 
새 삶을 얻었습니다. 
짙은 어둠만이 그 여인의 삶을 싸고 있었는데, 너무나 은혜롭게도 
예수님께서는 환한 빛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당신의 신원을 밝히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사순시기는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 당신 존재 자체로 구원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께 
깊은 감사의 정을 표하는 시기입니다. 
그분께서 내게 빛이요 구원이 되셨으니, 우리도 그 누군가에게 
빛이요 구원으로 다가서는 시기가 사순시기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기도의 힘
        -빛의 사람-

오늘 제1독서는 아마 매일 미사 독서중 가장 긴 독서에 속할 것입니다. 
참 흥미진진한, 손에 땀을 쥐게하는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보면 그대로 세상의 축소판 같습니다. 
 
악인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지만 결국은 기도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단연 수산나입니다. 

진정 수산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기도의 힘은 믿음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우리를 빛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진정 주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자가 기도합니다. 
수산나에 대한 구체적 묘사입니다.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어 수산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에 관한 아름다운 묘사들입니다.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거룩한 영을 일깨우셨다.’

하느님의 도우심에 의해 다니엘이 등장하여 수산나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로 이끌어 줍니다. 
말그대로 구사일생, 천우신조입니다. 
수산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다니엘의 개입으로 진위가 밝혀지고 수산나의 무죄함이 밝혀졌을 때 
온 회중의 반응도 특기할만 합니다.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절망하면 하느님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끝까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대죄입니다. 
수산나의 위대한 점은 어떤 역경속에서도 ‘기도의 끈’, ‘희망의 끈’인 하느님을 
꼭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과 잘 연결되는 화답송 후렴입니다. 
그대로 수산나의 고백이자 역경의 어둠 중에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더불어 생각나는, 역시 고백성사시 보속의 처방전으로 자주 써드리는 시편 131,3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

분도규칙의 ‘제4장 착한 일의 도구들은 무엇인가?’에 나오는 두 구절도 생각납니다.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41).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절대로 실망하지 마라(74).
 
하느님은 빛입니다. 
기도할 때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내면의 어둠은 빛으로 바뀝니다. 
무지의 눈이 활짝 열려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직시합니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캄캄한 어둠의 밤이 온통 밝아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드러나고 진선미의 세상을 관상할 수 있듯이 
기도하는 이들의 내면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 독서의 다니엘이 하느님의 빛을 상징한다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빛을 상징합니다. 
오늘 수산나를 살려낸 다니엘과 어제 복음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살려 낸 
예수님의 경우가 흡사합니다. 
 
수산나를 살려낸 다니엘처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구원하시는 빛의 예수님이십니다. 
어둠 속의 빛처럼 오늘 복음의 사면초가의 어둠 중에 빛을 발하는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오늘 복음의 요약입니다. 
세상의 빛인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의 기도는 그대로 상달될 것이며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어떤 곤경의 어둠중에도 내면은 주님의 환한 빛속에서 평화와 기쁨의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일상의 어둠중에도 
생명의 빛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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