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vangelio de Hoy
En aquel tiempo, mucha gente acompañaba a Jesús; él se volvió y les dijo: «Si alguno se viene conmigo y no pospone a su padre y a su madre, y a su mujer y a sus hijos, y a sus hermanos y a sus hermanas, e incluso a sí mismo, no puede ser discípulo mío. Quien no lleve su cruz detrás de mí no puede ser discípulo mío.
»Así, ¿quién de vosotros, si quiere construir una torre, no se sienta primero a calcular los gastos, a ver si tiene para terminarla? No sea que, si echa los cimientos y no puede acabarla, se pongan a burlarse de él los que miran, diciendo: "Este hombre empezó a construir y no ha sido capaz de acabar. ¿O qué rey, si va a dar la batalla a otro rey, no se sienta primero a deliberar si con diez mil hombres podrá salir al paso del que le ataca con veinte mil? Y si no, cuando el otro está todavía lejos, envía legados para pedir condiciones de paz. Lo mismo vosotros: el que no renuncia a todos sus bienes no puede ser discípulo mío.»
«Cualquiera de vosotros que no renuncie a todos sus bienes, no puede ser discípulo mío»
Rev. D. Joaquim MESEGUER García
(Sant Quirze del Vallès, Barcelona, España)
Hoy, Jesús nos indica el lugar que debe ocupar el prójimo en nuestra jerarquía del amor y nos habla del seguimiento a su persona que debe caracterizar la vida cristiana, un itinerario que pasa por diversas etapas en el que acompañamos a Jesucristo con nuestra cruz: «El que no lleve su cruz y venga en pos de mí, no puede ser discípulo mío» (Lc 14,27).
¿Entra Jesús en conflicto con la Ley de Dios, que nos ordena honrar a nuestros padres y amar al prójimo, cuando dice: «Si alguno viene donde mí y no odia a su padre, a su madre, a su mujer, a sus hijos, a sus hermanos, a sus hermanas y hasta su propia vida, no puede ser discípulo mío» (Lc 14,26)? Naturalmente que no. Jesucristo dijo que Él no vino a derogar la Ley sino a llevarla a su plenitud; por eso Él da la interpretación justa. Al exigir un amor incondicional, propio de Dios, declara que Él es Dios, que debemos amarle sobre todas las cosas y que todo debemos ordenarlo en su amor. En el amor a Dios, que nos lleva a entregarnos confiadamente a Jesucristo, amaremos al prójimo con un amor sincero y justo. Dice san Agustín: «He aquí que te arrastra el afán por la verdad de Dios y de percibir su voluntad en las santas Escrituras».
La vida cristiana es un viaje continuo con Jesús. Hoy día, muchos se apuntan, teóricamente, a ser cristianos, pero de hecho no viajan con Jesús: se quedan en el punto de partida y no empiezan el camino, o abandonan pronto, o hacen otro viaje con otros compañeros. El equipaje para andar en esta vida con Jesús es la cruz, cada cual con la suya; pero, junto con la cuota de dolor que nos toca a los seguidores de Cristo, se incluye también el consuelo con el que Dios conforta a sus testigos en cualquier clase de prueba. Dios es nuestra esperanza y en Él está la fuente de vida.
♣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한 떠남과 버림 ♣
루카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자세와 단호함을 되풀이해서 강조합니다(9,23-27; 9,57-62). 아마도 루카가 바라본 초기 공동체가 예수님을 따르려는 결단이 미흡했거나, 박해 상황에서 단호한 신앙의 결단이 요청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입니다. 그 여정은 적대자들에 의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이 그리는 세상의 왕국을 세우러 가시는 것으로 착각하며 부귀영화를 꿈꾸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몇 가지 요건을 제시하십니다.
먼저, 자기 부모, 처자,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14,26). 어법상 자신의 가족이나 자기 목숨을 자신의 십자가보다 더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늘 주님을 첫 자리에 두고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가족, 특히 아내와 자식은 소유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소유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보다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어려운 것이 자기 목숨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삶의 중심을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두는 ‘존재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아와 자신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룰 수 없으니 각성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14,27). 누구든 행복을 바란다면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고통을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십자가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다가온 고통에 짓눌려 거기에 주저앉아버리는 것, 그 고난을 자기 힘으로만 어떻게 해보려는 것 또한 소유의 일종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끝으로, 제자가 되려면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14,33).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 하늘 나라는 저 먼 창공 위가 아니라 우리 삶의 현실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구원과 해방, 인간다운 삶의 상태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려면 ‘무소유’의 상태가 되어야만 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부르시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떠남’과 ‘버림’임을 알려줍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받으려면 ‘나’로부터 떠나야 하고, 소유로부터 떠나야 하며, 하느님을 가리는 혈연, 학연, 지연 등 인연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이신 주님께 내 삶의 맡겨드리며,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내 삶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행복한 제자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려는 사람은 부모, 처자,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부모, 처자, 형제자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우리가 당연히 사랑하는 대상들입니다. 유대인들의 화법에 미워한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집착한다는 뜻이고, 미워한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처자, 형제자매라는 혈연과 자기 자신에게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여 준 삶의 방식이었고, 초기 신앙인들도 그런 정신으로 살면서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초기 순교자들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신앙의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가족이나 당신 자신에게 집착하였으면, 십자가는 없었을 것입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가족이나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였으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신앙을 증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신앙인은 신앙을 위해 큰 희생도 각오한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망대를 짓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계획성 있게 행동한다는 말과, 전쟁터에 나가는 임금은 치밀한 준비를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일시적 기분이나 충동으로 처신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중하게 계획하고, 어려움을 무릅쓰며 하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인간이면 당연히 애착하는 인연에만 얽매이지 않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인연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말하지만, 초기 신앙인들이 하던 실천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 하던 실천을 기록하여 남긴 문서입니다. 인간은 자기 가족을 당연히 사랑합니다. 그러나 가족에게만 집착하면, 그는 큰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모에게만 집착하는 아동은 학교에 가도 적응하지 못합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직업인으로 적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족에게만 집착하는 사람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합니다. 창세기는 결혼에 대해 말하면서 “사람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배우자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된다.”(창세 2,24)고 선언합니다.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 그리고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모두 불행합니다. 태아가 성숙하고도 모태를 떠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모태를 떠나 자기가 살 세상을 만나고, 거기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면서 그 생명은 자라고 성숙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자기중심적 삶을 버리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며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루카 10,29-37)를 우리는 압니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본 사제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현재 사제로서 또 레위로서 하고 있는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자신이 이미 가진 인연들을 잠시 잊고,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 곧 강도 맞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가 이미 가진 인연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연에 몰두합니다. 과거의 인연에만 집착하면, 인간으로서 성숙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자기 앞의 생명을 위해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모두 불행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예수님이 병든 이를 고쳐 주고, 죄인으로 낙인 찍힌 이에게 용서를 선포한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벳자타 못가의 병든 이를 고쳐 놓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요한 5,17)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과거의 인연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인연에 충실한 것은 십자가를 지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나 한 사람의 성공과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기의 삶 안에 하느님이 살아 계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기적 행복을 넘어서, 하느님이라는 바다가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하는 일입니다. 그 하느님은 우리의 생존을 베푸신 분입니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노력할 때, 하느님은 우리 안에 바다와 같이 출렁이십니다.
가족과의 인연은 좋은 것이고, 은혜로운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기 위해 베풀어진 인연들이고 또한 버팀목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명이 바다와 같이 내 안에 출렁이면, 휩쓸려 버릴 수도 있는 버팀목들입니다. 부모님도 떠나가시고, 선배들도 떠나고, 친구들도 떠나갑니다. 어느 날 나도 떠나면서 내 생존을 위해 버티어 주던 모든 것이 나와 헤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바다와 같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의 일이 당신 안에 파도가 되어 출렁이며 일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으며, 바다이신 하느님이 당신 안에 파도를 일으키며 일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믿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우리를 버티어 주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새로운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예화는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인연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생명과의 인연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내어 주어서 하느님의 큰 생명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비롭게 행동하고, 용서하면서 하느님의 큰 생명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장차 우리가 버리고 떠날 것에 집착하며 삽니다. 가족과의 인연에 갇히고, 재물에 발목을 잡혀 제자리걸음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우물만 알지, 하느님이라는 바다를 만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미 주어진 인연을 넘어서 하느님이라는 바다를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작은 파도가 되어 출렁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리는 작은 파도들이 우리 주변에 출렁이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서공석 신부(요한 세례자)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 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