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기쁜 소식>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권한’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멸망시킬 수 있는 권한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권한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라는 말은 ‘온 세상’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통치권의 밖에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라는 말씀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내 편’으로 만들어라.”가 아니라,
“잃은 양들을 찾아서 회개시키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신앙인으로 변화시켜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본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이고,
그래서 잃은 자녀를 되찾는 일입니다.
자기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소식 자체가 ‘기쁜 소식’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또는 부모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지금 부모가 애타게 너를 찾고 있다.” 라고 알려주는 일과 같습니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대단히 큰 기쁨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됩니다.
복음서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 준 ‘기쁜 소식’은
‘메시아 강림’ 소식이었습니다(루카 1,17).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마르 1,15).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뒤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선포한 ‘기쁜 소식’은
“예수님이 곧 메시아이고, 사람들은 그분을 죽였지만 부활하셨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라는 소식이었습니다(사도 2,22-36).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이것을 모두 합해서 생각하면,
‘기쁜 소식’이란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하느님을 위한 일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위한 일이고,
우리가 모두 함께 구원을 받는 일이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과 ‘기쁨’입니다.
루카복음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과정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엘리사벳은 즈카르야에게,
즈카르야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줍니다(루카 1장).
(그래서 마리아는 루카복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준’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기쁜 소식’을 맨 처음 들은 사람은 즈카르야였는데,
그는 그 소식을 믿지 못해서 말을 못하게 되어버렸고(루카 1,20),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는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지 못했습니다.
즈카르야의 경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모습을 보면,
‘기쁨’에 가득 찬 모습입니다(루카 1,46-47).
그 모습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곧 ‘기쁨’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선교활동은 나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믿는 사람’이니까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전하려면 자기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믿음’만 있고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죽는 것이 무서워서 억지로 살고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없습니다.
(혹시 전해 준다고 해도,
‘기쁨’ 없이 전해 주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찰 수 있는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충실한 신앙생활 외에 선교활동을 잘하는 비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만 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만 받기를 희망하면서,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뒤만 따라갈 때, 그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게 됩니다.
만일에 세속의 헛된 것들에 한눈을 팔면서,
속마음으로 다른 것들을 바라고 있다면,
믿음도 흔들리겠지만, 가장 먼저 신앙생활의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힘도 사라집니다.
이 말을, “세상을 복음화시키려면 신앙인들이 먼저 복음화되어 있어야 한다.”,
또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면 신앙인들이 먼저 밝은 빛이 되어야 한다.”
라고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송영진 모세 신부
한 명의 선교사가 파견되면
가끔씩 해외선교를 꿈꾸는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 마다 “너무나 좋은 생각이다. 꼭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자.”며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얼마 전 이 세상의 가장 오지로 파견된 한 형제가 기억납니다.
이제야 막 사제로 서품된 형제입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풋풋한 젊은이입니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선교지에서 겪게 될 갖은 고초가 손에 잡힐 듯이 떠오릅니다.
물설고 낯 설은 이국땅, 풍토병, 지독한 더위, 입에 댈 수조차 없는 음식, 외로움,
무엇보다도 끝까지 괴롭히는 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선교사를 지망합니다.
저희 입장에서도 사실 아깝습니다.
오랜 기간의 수도자 양성 끝에 이제야 ‘써먹을 사람’ 한 사람 생겼는데,
한 번도 써먹지 못하고 고스란히 넘기자니 허탈합니다.
그러나 ‘한명의 해외 선교사가 파견되면 열 명의 성소자가 들어온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아깝지만 기꺼이 파견합니다.
오늘 모든 교회는 전교주일을 맞아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시 해외선교사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노고는 오늘 우리 교회의 소중한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한 형제가 해외로, 그것도 가장 낙후된 오지로 파견된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한 형제의 마음 안에 선교사로서의 꿈이 생겨난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오직 복음 때문에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쌩고생’들을 하고 계십니다.
복음의 힘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정된 기반을 기꺼이 포기하게 하며,
불확실한 미지의 생활로 투신하게 하며,
결국 목숨까지 바치게 하는 복음의 매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예수님의 권고를 따라 보다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 안에 선교사로서의 열망이
활활 불타오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땅에 오셔서 청춘은 물론 평생을 헌신하신 선교사들을 바라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 고국에 한 번씩 들르시지만 워낙 오래전에 떠나왔기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쪽에서도 이방인입니다.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이쪽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이방인입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영원한 이방인,
영원한 타향살이를 계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그들의 노고를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다 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의 복음을 향한 열정을 다 파악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수백 배, 수천 배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