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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복음 묵상

[복음]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161028-29

작성자아구스리|작성시간16.10.31|조회수208 목록 댓글 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열린 공동체의 사랑의 일꾼 ♣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해져 그들이 당신을 처치하려고 모의까지 하는 시점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신 다음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사도로 뽑으십니다(6,12). 죽음으로 치닫는 길목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려는 열정을 더욱 불태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을까요? 무엇보다도 그 공동체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수난의 사랑을 위해 부르신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것은 이기적인 목표나 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재능이나 지식, 부와 권력, 인품과 성격 등에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작용하는 열린 이 공동체의 구성원은 모두가 동등한 부르심에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주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은 개방성과 동등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수님의 학교에서 사랑을 체득했습니다. 그들의 일상은 기도와 말씀의 경청, 치유와 용서 체험, 함께 생명을 나누는 식사와 대화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수난의 사랑을 살아낼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형성된 이 공동체는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하여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거룩한 성전, 하느님의 거처입니다(에페 2,20). 따라서 이 공동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사랑의 배움터요 은총의 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집이 되어 모든 이를 그리로 인도해야 할 사랑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위해 뽑힌 이들은 인간적인 부족함과 다양성에도 사랑 실천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 되었습니다. 성 시몬과 성 유다도 사랑의 길을 항구히 걸었던 열두 사도의 일원이었습니다. 사도 시몬은 로마의 지배에 맞서 민족 해방을 위해 싸운 열혈당원이었는데(루카 6,15), 페르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톱으로 몸이 잘리는 형벌을 받아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타대오’(마르 3,18)라고도 불리는 유다 사도는 서기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페르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다 순교했다고 전합니다(시몬과 유다의 수난기). 그들은 사랑으로 불러주신 예수님을 따라 목숨을 바쳐 사랑의 절정을 보여줌으로써 부르심에 충실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사도들을 본받아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고 온힘과 온 마음을 다해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사랑을 위해 차별과 배척과 단절의 문을 열고,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놓는 열정이 타올랐으면 합니다.

그 길은 내가 죽어야 남을 살릴 수 있기에 쉽지 않은 길이지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사랑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묵묵히 그분의 뜻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랑 실천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 모두를 받아들이고, 공동의 선을 실현해가는 진정한 ‘사랑의 일꾼’이 되어야겠지요.

오늘 이 사회가 병들고, 그래서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내 마음 속에,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모시고, 성령 안에서 일치하여, 담대하게 주님의 길을 가는 오늘의 사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민인 우리가 다른 이들을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주님의 성전으로 인도하는 쓸모 있는 도구이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참 행복을 위한 삶의 기준점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윗자리에 앉지 마라”(14,8)고 하시며, 그렇게 할 때 “영광스럽게 될 것”(14,1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4,11)라고 가르치십니다.

기를 쓰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하는 세상의 흐름과 정반대로 가는 길로 가야 참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는 그래야 할 것이라고 하며 ‘관념적 동의’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실제 행동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낮추어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는데, ‘낮춘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우선 자신을 낮추려면 기준점이나 출발점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세상의 가치나 사람에 그 기준을 두고 낮춘다면 참 행복으로 나아갈 수 없겠지요.

낮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앞에서의 올바른 자기 주제파악을 통해 드러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나의 주인이요 내 삶의 중심이자 기준점으로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 낮추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살든지 죽든지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을 이득으로 여기게 됩니다.’(필리 1,20-21)

또한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압니다. 따라서 어떤 처지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따돌림을 당하며, 박해를 당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주님을 믿기에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낮출 줄 아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 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기준점을 사람이나 세상에 둘 때 자기비하와 열등감, 또는 교만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압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권고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천하고 무식하며 멸시받을 자로 취급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칭찬과 높임을 받을 때도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권고 19)

행복으로 안내하는 낮춤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사랑을 품고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여백과 힘을 줍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분과 더불어 낮추고 작아질 줄 아는 사람은 진정 가난한 사람입니다. 관계 안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조건 없이 다른 이들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존중할 줄 압니다.

오늘도 세상을 거슬러 하느님을 내 삶의 기준점으로 삼고, 자신을 사랑하며, 저 낮은 곳에서 다른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참 행복을 맛볼 수 있길 바랍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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