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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복음 묵상

[복음]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170131

작성자아구스리|작성시간17.01.31|조회수545 목록 댓글 0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vangelio de Hoy


En aquel tiempo, Jesús pasó de nuevo en la barca a la otra orilla y se aglomeró junto a Él mucha gente; Él estaba a la orilla del mar. Llega uno de los jefes de la sinagoga, llamado Jairo, y al verle, cae a sus pies, y le suplica con insistencia diciendo: «Mi hija está a punto de morir; ven, impón tus manos sobre ella, para que se salve y viva». Y se fue con él. Le seguía un gran gentío que le oprimía. 


Entonces, una mujer que padecía flujo de sangre desde hacía doce años, y que había sufrido mucho con muchos médicos y había gastado todos sus bienes sin provecho alguno, antes bien, yendo a peor, habiendo oído lo que se decía de Jesús, se acercó por detrás entre la gente y tocó su manto. Pues decía: «Si logro tocar aunque sólo sea sus vestidos, me salvaré». Inmediatamente se le secó la fuente de sangre y sintió en su cuerpo que quedaba sana del mal. Al instante, Jesús, dándose cuenta de la fuerza que había salido de Él, se volvió entre la gente y decía: «¿Quién me ha tocado los vestidos?». Sus discípulos le contestaron: «Estás viendo que la gente te oprime y preguntas: ‘¿Quién me ha tocado?’». Pero Él miraba a su alrededor para descubrir a la que lo había hecho. Entonces, la mujer, viendo lo que le había sucedido, se acercó atemorizada y temblorosa, se postró ante Él y le contó toda la verdad. Él le dijo: «Hija, tu fe te ha salvado; vete en paz y queda curada de tu enfermedad». 


Mientras estaba hablando llegan de la casa del jefe de la sinagoga unos diciendo: «Tu hija ha muerto; ¿a qué molestar ya al Maestro?». Jesús que oyó lo que habían dicho, dice al jefe de la sinagoga: «No temas; solamente ten fe». Y no permitió que nadie le acompañara, a no ser Pedro, Santiago y Juan, el hermano de Santiago. Llegan a la casa del jefe de la sinagoga y observa el alboroto, unos que lloraban y otros que daban grandes alaridos. Entra y les dice: «¿Por qué alborotáis y lloráis? La niña no ha muerto; está dormida». Y se burlaban de Él. Pero Él después de echar fuera a todos, toma consigo al padre de la niña, a la madre y a los suyos, y entra donde estaba la niña. Y tomando la mano de la niña, le dice: «Talitá kum», que quiere decir: «Muchacha, a ti te digo, levántate». La muchacha se levantó al instante y se puso a andar, pues tenía doce años. Quedaron fuera de sí, llenos de estupor. Y les insistió mucho en que nadie lo supiera; y les dijo que le dieran a ella de comer.


«Hija, tu fe te ha salvado; vete en paz y queda curada de tu enfermedad»

Rev. D. Francesc PERARNAU i Cañellas 

(Girona, España)

Hoy el Evangelio nos presenta dos milagros de Jesús que nos hablan de la fe de dos personas bien distintas. Tanto Jairo —uno de los jefes de la sinagoga— como aquella mujer enferma muestran una gran fe: Jairo está seguro de que Jesús puede curar a su hija, mientras que aquella buena mujer confía en que un mínimo de contacto con la ropa de Jesús será suficiente para liberarla de una enfermedad muy grave. Y Jesús, porque son personas de fe, les concede el favor que habían ido a buscar.


La primera fue ella, aquella que pensaba que no era digna de que Jesús le dedicara tiempo, la que no se atrevía a molestar al Maestro ni a aquellos judíos tan influyentes. Sin hacer ruido, se acerca y, tocando la borla del manto de Jesús, “arranca” su curación y ella enseguida lo nota en su cuerpo. Pero Jesús, que sabe lo que ha pasado, no la quiere dejar marchar sin dirigirle unas palabras: «Hija, tu fe te ha salvado; vete en paz y queda curada de tu enfermedad» (Mc 5,34).


A Jairo, Jesús le pide una fe todavía más grande. Como ya Dios había hecho con Abraham en el Antiguo Testamento, pedirá una fe contra toda esperanza, la fe de las cosas imposibles. Le comunicaron a Jairo la terrible noticia de que su hijita acababa de morir. Nos podemos imaginar el gran dolor que le invadiría en aquel momento, y quizá la tentación de la desesperación. Y Jesús, que lo había oído, le dice: «No temas, solamente ten fe» (Mc 5,36). Y como aquellos patriarcas antiguos, creyendo contra toda esperanza, vio cómo Jesús devolvía la vida a su amada hija.


Dos grandes lecciones de fe para nosotros. Desde las páginas del Evangelio, Jairo y la mujer que sufría hemorragias, juntamente con tantos otros, nos hablan de la necesidad de tener una fe inconmovible. Podemos hacer nuestra aquella bonita exclamación evangélica: «Creo, Señor, ayuda mi incredulidad» (Mc 9,24).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월 31일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 5장 21절-43절,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인데,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는,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생살여탈권을 가지신 분”

이라는 것을 말하는 이야기이고,

하혈하는 여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는,

“예수님은 그분의 옷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는 놀라운 권능을 가지신 분”

이라는 것을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마르 5,27-29).”

여자가 사람들 모르게 행동한 것은

자기의 병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는 여자의 생각은,

예수님은 무슨 병이든 다 고칠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음을 나타내고,

다른 의사들과 같은 방식의 치료가 아니라

‘기적’으로 병을 고치는 분이라고 믿었음을 나타냅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옷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중요한 말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이

어떤 성물을 사용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그런 기대감으로 성물을 사용하는 것은

미신과 다르지 않은 일이 되어버립니다.)


사도행전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오로를 통하여 비범한 기적들을 일으키셨다.

그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그들에게서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다(사도 19,11-12).”

바오로 사도가 사용한 수건이나 앞치마를 대기만 해도

병이 낫고, 마귀들이 쫓겨났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그 수건과 앞치마에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또는 바오로 사도가 일으킨 기적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미신입니다.

그 기적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입니다.

수건이나 앞치마가 아니라, 또 바오로 사도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30-34)”


예수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라고 물으신 것과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신 것은,

여자가 스스로 나와서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에게서 기적의 힘이 빠져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 기적은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권능으로 일으키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랬는지 모르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여자를 알고 계셨고, 그 여자를 위해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여기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 입장에서 그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믿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도 아니고,

예수님과 상관없이 여자의 믿음이 여자를 구원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여자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여자는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었다.”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의 주체를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마태오복음 17장 20절에 있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느님은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는 분이라는 것을

제발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믿어라.” 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5-36)”


사람들이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시긴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은 일으키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절망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믿기만 하여라.” 라는 말씀에는

“내가 너의 딸을 살려주겠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권한과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권한이란 어떤 일을 하거나 안 할 권한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도 예수님의 권한이고, 살리지 않는 것도 예수님의 권한입니다.

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도 예수님의 권한이고,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키는 것도 예수님의 권한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

그래서 예수님의 권한과 권능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자비’에 대한 믿음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엾게 여기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요구’가 아니라 ‘간청’입니다.

자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제대로 간청하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그분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끝까지 견디어 내며 나아가 봅시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베리의 친구 중에 

기요메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가 다음과 같은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기요메는 우편 행낭을 전달하기 위하여 한 겨울에 

남미의 안데스 산맥 위를 횡단하던 중, 하강 기류에 휩쓸려 

깊은 산중에 비상 착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해발 4,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며 끊임없이 걸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겨울에 안데스 산맥으로 그를 구조하러 올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요메는 피로와 굶주림, 뼈를 에는 추위와 동상 등과 싸우면서 

며칠간 계속 걸어갔지만, 탈진 상태가 되어 끝내 쓰러지고 맙니다. 

 

그는 완전히 지쳐 버렸고 이제 잠의 유혹 속으로 빠져 들기 직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잠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휴식을 선사할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눈 덮인 비탈에 쓰러져 있던 기요메는 바로 50미터 앞에 큰 바위가 하나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합니다. 

만일 자신이 여기에서 죽는다면 그 시체는 겨울철의 잦은 눈사태에 휩쓸려 

계곡 깊숙이 빠져 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시신이 언제 발견될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 자신은 실종자로 처리되어 법률상의 사망 처리는 4년 후로 연기 될 것임을 상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50미터만 더 걸어가서 앞에 있는 그 큰 바위 위에서 죽는다면 

자신의 시체는 봄이 되면 곧 발견되어,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명의로 된 보험금을 즉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칩니다.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일어선 그는 그 바위마저도 지나 이틀 밤과 사흘 낮을 계속 걸어간 끝에 

결국 구조되기에 이릅니다.】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기요메라는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때문이었고, 

그 사랑과 책임감이 그를 살리는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때문에 고통을 견디어 내고 

영광스럽게 되신 분이 계신데요. 

오늘 독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어 누리기를 바라시며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희생과 사랑이 우리에게는 생명을 가져다주었고, 

그분 자신에게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게 되는 영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가족과 공동체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견디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생활을 하다보면 부부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부부관계를 끝장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 속을 썩이는 자녀를 보며 ‘니 멋대로 살아라..’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하다보면 갈등을 겪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재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다 그만두고 마음 편하게 지내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포기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견디어 내고 이겨낸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공동체 안에는 사랑과 기쁨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나’는 주님이 주시는 상과 위로를 받아 누릴 수 있겠죠.

 

 

오늘 하루, 그분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끝까지 성실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 봅시다. 

 

 


인천교구 밤송이(김기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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