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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복음 묵상

[복음]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71005

작성자아구스리|작성시간17.10.05|조회수194 목록 댓글 1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2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vangelio de Hoy


En aquel tiempo, el Señor designó a otros setenta y dos, y los envió de dos en dos delante de sí, a todas las ciudades y sitios a donde él había de ir. Y les dijo: «La mies es mucha, y los obreros pocos. Rogad, pues, al dueño de la mies que envíe obreros a su mies. Id; mirad que os envío como corderos en medio de lobos. No llevéis bolsa, ni alforja, ni sandalias. Y no saludéis a nadie en el camino.


»En la casa en que entréis, decid primero: ‘Paz a esta casa’. Y si hubiere allí un hijo de paz, vuestra paz reposará sobre él; si no, se volverá a vosotros. Permaneced en la misma casa, comiendo y bebiendo lo que tengan, porque el obrero merece su salario. No vayáis de casa en casa. En la ciudad en que entréis y os reciban, comed lo que os pongan; curad los enfermos que haya en ella, y decidles: ‘El Reino de Dios está cerca de vosotros’. 


»En la ciudad en que entréis y no os reciban, salid a sus plazas y decid: ‘Hasta el polvo de vuestra ciudad que se nos ha pegado a los pies, os lo sacudimos. Pero sabed, con todo, que el Reino de Dios está cerca’. Os digo que en aquel día habrá menos rigor para Sodoma que para aquella ciudad».


«Rogad (...) al dueño de la mies que envíe obreros a su mies»

Rev. D. Ignasi NAVARRI i Benet 

(La Seu d'Urgell, Lleida, España)

Hoy Jesús nos habla de la misión apostólica. Aunque «designó a otros setenta y dos, y los envió» (Lc 10,1),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es una tarea «que no podrá ser delegada a unos pocos “especialistas”» (San Juan Pablo II): todos estamos llamados a esta tarea y todos nos hemos de sentir responsables de ella. Cada uno desde su lugar y condición. El día del Bautismo se nos dijo: «Eres Sacerdote, Profeta y Rey para la vida eterna». Hoy, más que nunca, nuestro mundo necesita del testimonio de los seguidores de Cristo.


«La mies es mucha, y los obreros pocos» (Lc 10,2): es interesante este sentido positivo de la misión, pues el texto no dice «hay mucho que sembrar y pocos obreros». Quizá hoy debiéramos hablar en estos términos, dado el gran desconocimiento de Jesucristo y de su Iglesia en nuestra sociedad. Una mirada esperanzada de la misión engendra optimismo e ilusión. No nos dejemos abatir por el pesimismo y por la desesperanza.


De entrada, la misión que nos espera es, a la vez, apasionante y difícil. El anuncio de la Verdad y de la Vida, nuestra misión, no puede ni ha de pretender forzar la adhesión, sino suscitar una libre adhesión. Las ideas se proponen, no se imponen, nos recuerda el Papa.


«No llevéis bolsa, ni alforja, ni sandalias...» (Lc 10,4): la única fuerza del misionero ha de ser Cristo. Y, para que Él llene toda su vida, es necesario que el evangelizador se vacíe totalmente de aquello que no es Cristo. La pobreza evangélica es el gran requisito y, a la vez, el testimonio más creíble que el apóstol puede dar, aparte de que sólo este desprendimiento nos puede hacer libres.


El misionero anuncia la paz. Es portador de paz porque lleva a Cristo, el “Príncipe de la Paz”. Por esto, «en la casa en que entréis, decid primero: ‘Paz a esta casa’. Y si hubiere allí un hijo de paz, vuestra paz reposará sobre él; si no, se volverá a vosotros» (Lc 10,5-6). Nuestro mundo, nuestras familias, nuestro yo personal, tienen necesidad de Paz. Nuestra misión es urgente y apasionante.


Los fieles laicos en el Pueblo de Dios

REDACCIÓN evangeli.net (elaborado a partir de textos de Benedicto XVI) 

(Città del Vaticano, Vaticano)

Hoy aparece un conjunto de seguidores de Cristo más amplio que el grupo específico de los doce Apóstoles. Ahí, en este conjunto de "enviados", están tanto los Doce —que serán "fieles ordenados", sacerdotes, a partir de la Última Cena— como también un gran grupo de "fieles no ordenados", es decir, fieles corrientes de la Iglesia, fieles laicos. No son dos "clases" o "categorías", sino dos modos de pertenecer —por medio del Bautismo— al único "Pueblo de Dios" encabezado por Cristo. 


La relación entre estos dos modos de incorporarse a la Iglesia debe entenderse a partir de la relación de confianza entre "pastor" y "rebaño", significando lo mismo que la expresión "Pueblo de Dios": un pueblo dedicado a Dios que está en camino, en peregrinación, a lo largo de la historia. 


—Ser laico es la forma normal de ser cristiano y de vivir el Evangelio abordando las cuestiones cotidianas de este mundo. Abarcar y transformar el mundo en el cristianismo: ¡he aquí el auténtico apostolado de los seglares!



♣ 살아있는 복음이 되어 걸어가는 복음선포자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를 뽑아 당신이 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파견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사명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특히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삶에 있어 복음적 생활양식을 따르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중요한 말씀이기도 하지요. 

특히 성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에 영감을 받아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며 모든 이에게 회개와 평화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는 그 사명을 실행함에 있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10,4)는 말씀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처럼 가난한 순례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순례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그대로 실행하고자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명이 열두 사도라는 작은 제자공동체에 한정되지 않고,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맡겨진 자비와 치유, 해방과 평화를 선포하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실행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10,4-5) 

그렇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뒤로 미루거나 다른 일을 한 다음에 시간나면 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매순간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지금’ 복음을 선포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안전을 보장해줄 여장을 꾸리고, 일일이 인사치레를 다 하고, 악의로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급한 사명 수행을 위해 현세의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에게 주어진 그 사명만을 바라고 그것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소유하지 않고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영광과 안락, 개인의 이익과 세상의 가치들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코 하느님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까닭이지요. 

아울러 우리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는 평화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길 기원하는 축복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비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 안에,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축복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그럴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과 씨름하느라 헛되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전해지는 생명과 해방의 선물을 거절함으로써 하느님과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심판한 셈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가난한 순례자로서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자비와 생명, 자유와 평화를 선포하는 ‘걸어가는 복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행동 지침이지만,
넓은 뜻으로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주신 신앙생활 지침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10,2).”
선교활동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활동이면서
동시에 구원사업을 함께 할 일꾼들을 모집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청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청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청하여라.’ 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면,
이 말씀에는 선교활동은 ‘기도의 힘’으로 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은 원래 기도의 힘으로 하는 생활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이 말씀은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의 처지를 나타냅니다.
신앙인들은 이리 떼 가운데에 있는 어린 양들 같은 존재입니다.
여기서 ‘이리 떼’는 신앙인들을 박해하거나 유혹하는 세속의 상황을 가리킵니다.
세속은 신앙인들을 박해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면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이리 떼’가 신앙인들의 적은 아닙니다.
회개시켜서 구원해야 할 이웃이고, 형제입니다.
박해를 참고 견디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유혹들을 물리치면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리 떼’ 같은 세속 사람들에게 ‘온 삶으로’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4).”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빈손으로 가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에는 ‘기도의 힘’과 ‘복음의 힘’으로만 하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재물의 힘’으로 선교활동을 하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신앙생활은 재물을 추구하는 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 재물에 대해서 초연해야 합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헛된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선교활동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인사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세속의 인연에 얽매여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이 지침은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주변 사람들의 경사나 장례 등을 잘 챙기는 일이 중요하긴 한데,
세속 일에 집착하는 모습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신앙인으로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 10,5-6).”
선교활동은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전해 주는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누리는 생활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전해 주어도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받으려고 해서 못 받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탓이지만,
만일에 우리 쪽에서 처음부터 전해 주지 않아서,
그래서 몰라서 못 받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루카 10,7-8).”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무 대책도 없이 제자들에게 ‘빈손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신다.” 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라고 물으신 일이
있는데, 그때 사도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루카 22,35).
제자들은 빈손으로 떠났지만, 그들을 맞아들여서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의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라는 지시와 옮겨 다니지 말라는 지시는,
더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도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29-31).”
이 말씀은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행을 포기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0-12).”
 
송영진 모세 신부


여러분은 평화롭습니까?
 

우리는 매일 주님의 성전에 나아가 묵은 자신을, 집착의 자신을, 
갈등의 자신을 끊어버리고자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고통, 부활을 통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사제의 권고 말씀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함으로써 
이 같은 주님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할 것을 또한 약속드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락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처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며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씀하셨듯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들인 우리들을 뽑아 세상에 보내시며 
'하느님의 평화'를 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교회가, 아니 우리 신앙인들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를 부르짖는 교회와 절간이 날로 많아져 가고, 
신자들과 성직자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만, 
우리가 바라고 부르짖는 평화보다는 불화와 불신이 팽배한 오늘의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오늘의 현실은 이렇게 암울하기만 한 것일까요! 
정치적 신념없이 오직 권력을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혼탁한 정치인들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의 축적에만 정열을 쏟는 그릇된 기업가들 때문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제 종교가 그릇된 사랑과 평화와 자비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과연 무엇이 오늘의 현실을 이렇듯 암울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까! 
그에 대한 책임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평화롭습니까! 
평화를 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평화를 알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이가 어떻게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평화를 살아가고 있어야 합니다. 
알지 못한, 체험하지 못한 평화를 부르짖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그들이 전하는 평화는 헛된 것입니다. 

평화를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오늘의 현실을 만든 당사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찾고자 하는 평화는 과연 어떠한 것입니까! 

하느님의 평화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평화입니까! 
성서의 세상과 실제 세상사는 다르다고 하면서 재물과 명예, 지위와 권세를 찾고 쫓는, 
이로 인해 울고 웃는 우리 자신이지는 않습니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발도 들고 다니지 말 것이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시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우선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시오"라는 오늘의 복음 말씀은 
평화의 사도로서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가르침이며, 

"당신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를 / 당신들한테 털어놓습니다"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평화를 구한다고 하면서 세상이 가져다주는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평화가 잠깐 동안의 안식과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며 잠시뿐이나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영원한 안식과 위안, 평화를 가져 줄 수 있습니다. 
 
평화를 구하고자, 평화 속에 머물고자하는 여러분! 
평화를 빌어주기에 앞서 평화를 체험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됩시다.

 평화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나 자신 안에 평화가 함께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항상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그가 바로 평화의 사도입니다 
 
부산교구 경훈모 신부


한 달에 한 명씩 냉담자들을 데려옵시다.


몇 달 전에 사무장님께 부탁해서 스무 살에서 서른다섯 살까지의 냉담자 명단을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몇 명 정도가 냉담하고 있었을까요? 
1500명이 냉담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몇 달 전에 200명 정도에게 전화를 하다가 멈추었는데요. 
이 번 찬양미사를 준비하며 다시 전화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죠.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저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 본당의 일꾼이 그렇게 적은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아침마다 문자를 보내고 있는 청년이 100명입니다. 
많죠? 

그 중에 활동하고 있는 청년은 50~60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의 숫자가 ‘예수님이 파견한 제자들의 숫자’와 비슷한데요. 
우리에게도 지금이 주님의 파견명령을 받아,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하기에 
적절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파견 받은 한 사람이 한 달에 한 명씩 잃은 양을 찾아 데려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내년 말이면 잃은 양들을 모두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마리 양을 되찾아도 기뻐하시는 하느님이신데, 
1500명의 양을 되찾는다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막연하고 아는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순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네... 난 해 본적이 없어... 
나도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라고 외면하시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의지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선교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청년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시작하고 있습니다. 

냉담하는 청년들을 초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냉담자들에게 전화하고, 
묵상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보냅니다. 
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제 책상 위에는 세 가지 명단, 곧 냉담자들, 활동 안 하는 청년들, 
그리고 활동으로 옮겨간 청년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그 명단을 하나하나 보며 그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제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냉담자들을 방문하고, 인천 지하철 같은 곳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라도 타주고 싶습니다. 
 
그 모든 자리가 우리 신앙인들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현장에 나가서 부딪히고 깨지다보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보다 분명히 깨닫고 준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베이스 캠프로 돌아와 기도와 미사와 말씀과 친교 안에서 
배우고 깨닫고 힘을 얻어 다시 현장에 나가고.. 
다시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가 현장에 나가고... 

그러다보면 선교에 대한 내공이 쌓여가고, 
한 명 두 명 성당을 찾는 청년들이 생겨나리라 생각합니다. 

함께 시작해 봅시다.
 ‘매월 첫째 주 미사에 청년 한 명을 초대하기’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자매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신부님은 톤즈가 지명이라는 걸 아셨어요?”
 “예”
“우리 엄마는 톤즈가 이태석 신부님 세례명인 줄 아셨데요~”


인천교구 밤송이(김기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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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rcoiris | 작성시간 17.10.0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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