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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복음 묵상

[복음]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180824

작성자아구스리|작성시간18.08.26|조회수346 목록 댓글 0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Texto del Evangelio (Jn 1,45-51): En aquel tiempo, Felipe se encontró con Natanael y le dijo: «Ése del que escribió Moisés en la Ley, y también los profetas, lo hemos encontrado: Jesús el hijo de José, el de Nazaret». Le respondió Natanael: «¿De Nazaret puede haber cosa buena?». Le dice Felipe: «Ven y lo verás». Vio Jesús que se acercaba Natanael y dijo de él: «Ahí tenéis a un israelita de verdad, en quien no hay engaño». Le dice Natanael: «¿De qué me conoces?». Le respondió Jesús: «Antes de que Felipe te llamara, cuando estabas debajo de la higuera, te vi». Le respondió Natanael: «Rabbí, tú eres el Hijo de Dios, tú eres el Rey de Israel». Jesús le contestó: «¿Por haberte dicho que te vi debajo de la higuera, crees? Has de ver cosas mayores». Y le añadió: «En verdad, en verdad os digo: veréis el cielo abierto y a los ángeles de Dios subir y bajar sobre el Hijo del hombre».


«Ven y lo verás»


Mons. Christoph BOCKAMP Vicario Regional del Opus Dei en Alemania 

(Bonn, Alemania)


Hoy celebramos la fiesta del apóstol san Bartolomé. El evangelista san Juan relata su primer encuentro con el Señor con tanta viveza que nos resulta fácil meternos en la escena. Son diálogos de corazones jóvenes, directos, francos... ¡divinos!


Jesús encuentra a Felipe casualmente y le dice «sígueme» (Jn 1,43). Poco después, Felipe, entusiasmado por el encuentro con Jesucristo, busca a su amigo Natanael para comunicarle que —por fin— han encontrado a quien Moisés y los profetas esperaban: «Jesús el hijo de José, el de Nazaret» (Jn 1,45). La contestación que recibe no es entusiasta, sino escéptica : «¿De Nazaret puede haber cosa buena?» (Jn 1,46). En casi todo el mundo ocurre algo parecido. Es corriente que en cada ciudad, en cada pueblo se piense que de la ciudad, del pueblo vecino no puede salir nada que valga la pena... allí son casi todos ineptos... Y viceversa.


Pero Felipe no se desanima. Y, como son amigos, no da más explicaciones, sino dice: «Ven y lo verás» (Jn 1,46). Va, y su primer encuentro con Jesús es el momento de su vocación. Lo que aparentemente es una casualidad, en los planes de Dios estaba largamente preparado. Para Jesús, Natanael no es un desconocido: «Antes de que Felipe te llamara, cuando estabas debajo de la higuera, te vi» (Jn 1,48). ¿De qué higuera? Quizá era un lugar preferido de Natanael a donde solía dirigirse cuando quería descansar, pensar, estar sólo... Aunque siempre bajo la amorosa mirada de Dios. Como todos los hombres, en todo momento. Pero para darse cuenta de este amor infinito de Dios a cada uno, para ser consciente de que está a mi puerta y llama necesito una voz externa, un amigo, un “Felipe” que me diga: «Ven y verás». Alguien que me lleve al camino que san Josemaría describe así: buscar a Cristo; encontrar a Cristo; amar a Cristo.



<나타나엘을 부르시다.>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나타나엘(바르톨로메오)의 이야기는

한 영혼의 영적 성장 단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은 원래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갈망하면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이 말씀들은 나타나엘을 칭찬하시는 말씀이고,

또 그의 신앙생활을 인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거짓이 없다.”는 말씀은, 그가 위선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복음서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자주 나오는데,

이처럼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율법학자도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대체로 위선자들이었지만,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라는 말씀은,

나타나엘이 평소에 성경을 공부하면서,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과 율법을 공부하던

관습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그런 나타나엘에게 메시아께서 오셨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집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요한 1,45-46).”

여기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필립보는 자신이 직접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언하는데,

이 증언은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그분이 ‘나자렛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서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성실한 신앙인이었지만,

지역에 대한 편견은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이나 상식에서 비롯된 고정관념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고정관념, 편견 등을 극복하는 일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첫 단계가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나타나엘이 편견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긴 설득 과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나타나엘은 일단 한 번 예수님을 만나보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는

예수님의 권능에 압도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이 말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의 나타나엘의 믿음은

기적이나 표징을 보고서 믿는 ‘초보적인 단계’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것을 지적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0).”

이 말씀은, 나타나엘의 믿음은 아직은 부족한 믿음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이나 표징이나 권능을 보고서 믿는 것도 믿음이긴 하지만,

그 믿음은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믿고, 그래서 예수님과 완전히 결합되어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 ‘완전한 믿음’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나타나엘의 믿음이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완전한 믿음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일’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것보다 더 놀라운 예수님의 권능을 뜻하는데,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올바르게 알게 해 주고

믿게 해 주는 어떤 일, 또는 그런 일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완전한 믿음을 뜻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라는 것을 보게 되고 믿게 될 것이라는 뜻인데,

그것을 믿고,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믿음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여기서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천사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섬기면서 찬미한다는 뜻입니다.

“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은,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깨닫게 되고, 확신하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을 모두 뜻하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숙한 신앙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에페 4,13-15).”

우리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으니, 그 목적지를 향해서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서 ‘신앙생활의 완성’에 도달해야 합니다.

가다가 중간 단계에서 멈추면, 처음부터 가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궁극적인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 동안의 신앙생활은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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