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숙 지음
[사설시조조 한국소설]
만연체의 서술과 사설시조조 한국소설
―이문구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중심으로―
1. 한국적 소설기법에서 숨 쉬는 문체의 향연
2. 사슬 형상과 산문서술의 문장
3. 찔레가시에 편승한 풍자성
4. 쓴맛에서 터득하는 낙관(樂觀)
5. 아홉수 타령과 한국의 전통
6. 물빛마냥 살면서 수묵화 그리기
7. 까마귀는 죄다 어디로들 갔을까
8. 리듬 의식과 산문정신의 문체
1. 한국적 소설기법에서 숨 쉬는 문체의 향연
우리 문학에 나타난 쓰기 또는 짓기의 양상을 서양 문학사조의 도입으로서만 이해하고 판단함은 속 좁은 시각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문구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단지 리얼리즘의 요구에 봉사하는 형식적 장치의 일종으로 보아 넘김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예컨대, 한 편의 소설을 놓고 ‘이것이 리얼리즘 문학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경솔하거나 위험한 연구태도라고 할 수 있는데, 나무 한그루만으로 숲 전체를 재단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문구의 작품에 재현된 과거나 현재의 이런저런 단면들은 그의 문체에 의해 환기되고 연상되는 농촌 경험의 구체적인 맥락과 결합한다. 따라서 그가 구사한 이른바 ‘현실효과’의 원천은 그 토착적 문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문체에서 한국 전통문학의 계승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이 근본적으로 현실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적으로 재구성해 낸다는 점과 관련시켜 볼 때 사실주의를 좁은 문예사조적인 범주에 가둔다는 것이 또한 문제다. 그렇지만 그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거기에 맞추어 소설작품을 평가하는 시각 또는 방법은 소설의 예술적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겠지만, 단순히 기법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문화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사실주의는 사실상 거의 모든 문학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개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사실주의 작가는 소설이 일반 독자의 그것과 다름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매우 세속적인 유형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모범 답안과 ‘그러한 주인공들은 대개 이상에 가득 차 있지만 재능이 없고, 어리석지만 사랑스러운 인물들이기 마련이다.’라는 관점만으로 이문구 소설을 분석한다면 이문구 소설은 단지 ‘리얼리즘 문학’으로만 파악될 수도 있다.
문예사조적인 개념만으로 한정시켜 말할 때 ‘낭만주의에 저항하여 일어난 사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실주의는 특별히 프랑스의 발자크나 스탕달, 영국의 조지 엘리엇 등의 소설과 관련하여 19세기 전반에 걸쳐 일어난 문학운동으로서, 보편적으로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려는 태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재현, 즉 모방이란, 작가가 자기의 밖에 있는 사물이나 대상을 그리는 방법으로서 결국 그것을 자신의 의식적 구도 속으로 끌어들이는 주관적 선택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원칙과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주의 문학에는 지극히 비사실적이거나 이상화되어 있거나 우의(寓意)적인 경험 속에서조차도 어떤 형태로든 현실에 대한 해석이 담겨지게 된다. ‘사실주의’ 앞에 <서사적>, <비판적>, <환상적>, <낭만적>, <변증법적> 등이 붙여지는 것도 사실주의가 지니는 포괄적인 양상을 나타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문구의 ‘문체들’을 <시가(사설시조)적 사실주의>로 파악하려는 의도가 합당할 수 있다.
흔히 사설시조를 일컬어 산문적 시형이라든가 장시조라고 함은 그 형태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며, 운문에 대한 대칭, 혹은 평시조에 비해 길어진 형태라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사설시조 자체의 형태 구조가 그렇다는 말은 아닌 것과 같이 이문구 소설의 특징이 사설시조형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소설이다. 일단 여기에 나타날 사설시조 형식의 대목(토속적 가락이 내포된)들은, 구어체 글쓰기로 자연스레 표현한 문채일 것이라고 가정하겠다. 그의 독특한 문체가 과연 어떤 기법을 추구한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우선, 한국인의 호흡법이 저절로 생성한 사설시조형식의 대목들을 감상해보고, 나아가 사설시조의 주요 표현기법과 미의식 등을 이 소설에 반영하여 열거와 반복, 해학과 풍자성을 찾아봄과 아울러, 그의 소설에 내재한 사설시조 형식의 대목들을 찾아 단락 단락에 과연 인간살이가 사실적인 이야기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가를 분석해보기로 정한다.
2. 사슬 형상과 산문서술의 문장
어릴적 친구들이었다는 「행운유수」의 응점이, 「녹수청산」의 대복이, 「관산추정」의 복산이에 대한 그리움도 함빡 실어냈다고 하는 관촌수필은 제목 그대로 수필 같은 사실주의 소설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유작소설에 다름 아닌, ‘(2000)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관촌수필의 후편 같다. 소설의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설정이 그러한데, 관촌수필에 미처 등장시키지 못했던 나머지의 인물(관촌사람)들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다가 마저 묘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구성은 이문구의 다른 소설에 비해 그 순서가 사뭇 다르다. 소제목을 순서대로 배치해보면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로서,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장씨 동네의 볼품없는 일곱 나무로 상징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씨 동네 일곱 나무의 사람들이 끄트머리 소제목 「더더대를 찾아서」 중의 ‘까마귀는 죄다 어디로 갔을까?’에 가서야 비로소 볼품있는 존재로 환생한다. ‘더더대’는 비록 반벙어리이지만, 그래도 ‘나무’에 속한 게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은 첫 제목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맨 나중 제목 「더더대를 찾아서」에서의 자유기고가 이립(李笠)이 방송국에서 방문증을 잃어버린 일로 ‘까마귀고기를 잡수셨나?’라는 빈축까지 사고서야 ‘까그매’의 추억을 떠올리는 시점으로부터 시작하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원형구도의 ‘사실주의 소설’에 해당하며, 사설시조 쓰기의 한 방법, 사슬(엮음)식 구도와 동일하다. 이 소설집을 사설시조조로 보게 되는 그러한 특성은 총 여덟 편의 소설 전체에 있는데, 크게 잡아 도입부와 결말을 살펴보자면 반드시 사설시조 형식으로 점철된,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장평리 찔레나무: (초)①그래라. 누가 말려.②너는 상행선③나는 하행선,④좋다 이거여. (종)⑨그래라.⑩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⑪나는 하행선,⑫가는 데까지 가보자 이거여.」‧「장석리 화살나무: (초)①잡히면 죽었다.②들켜도 죽었다.③수는④그 수뿐이었다. (종)⑨이렇게⑩살을라구 그랬던지⑪나는 츰서부텀 그런 사람덜을⑫알아봤어.」․「장천리 소태나무: (초)①술이②사람을③만든다는④말이 있다. (종)⑨먼논…⑩이런 아엠에푸 시대에⑪그게⑫워디여.」‧「장이리 개암나무: (초)①두 나절이②다 되도록③자리를④옮겨도 (종)⑨(전은)아이가⑩못 알아들어서⑪묻는 소리에⑫더욱 못 알아들을 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장동리 싸리나무: (초)①해가 있는 날은 으레②점심나절이 기울어질 만해서부터③바람결과 함께 물이④설레게 마련이었다. (종)⑨(그랬던겨.)늘 물에⑩뜨는 물 같은 것만⑪봤던겨.⑫못나게. 지지리도 못나게.」‧「장척리 으름나무: (초)①소나기는 삼형제라고 이르는 말 그대로②이 가물 이 더위에 겨우 소나기 서너 축으로 벌써 장마가 다 갔다고 하니③무엇보다도 속이 달쳐서④못 견딜 지경이었다. (종)⑨여전히⑩느릅나무 그늘에⑪앉아서 부채질을⑫하고 있었다.」 ‧「장곡리 고욤나무: (초)①시내에서②시간시간에 다니는③장곡리 방면의④시내버스는 (종);⑨그리고⑩고욤나무 밑동을⑪베기⑫시작하였다.」}․♋․{「더더대를 찾아서: (초)①까마귀는②죄다③어디로들④갔을까. (종)⑨이립은⑩혼잣말로 자꾸⑪묻고만 있었다.⑫더더대는 어디에 있을까? 까마귀는 죄다 어디로들 갔을까?」}
정리하자면 “이 소설집은 일곱 나무의 동네를 「더더대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말더듬이가 어깨에 둘러매고 가는 형국이며, 여덟 편의 소설이 사슬에 이어져 원형 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박영주의 지적(사설시조에서 걸음이 늘어나는 마디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법이 바로 ‘엮음’이다. 이는 마치 쇠사슬같이 고리와 고리가 엇갈리게 맞물려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대로 사설시조의 속성에도 해당할 수 있는 ‘엮음’(篇)과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한판 어깨춤을 추게 하는 가락을 동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요인은 이문구 소설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분석되는 판소리 가락에 있다.
문학박사 주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