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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송봉현 수필 [매 열두 대와 주홍 글씨]

작성자蘭亭주영숙|작성시간24.04.07|조회수28 목록 댓글 0
중앙대문학 15호 투고 작품

수필

매 열두 대와 주홍 글씨




                                             송봉현
 



여섯 살이던 해 가을, 어머니가 만든 핫바지 입고 마을 서당에 다녔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글 배우기 첫걸음이었다. 첫걸음은 새로운 것을 향한 시작이므로 까마득한 옛날 서당 생활은 아련한 추억이다.


같은 방에서 배운 서당 동창 중엔 스무 살 부근 어른도 있었다. 내 동갑은 봉평 길석과 셋. 열두 살 위 심술꾸러기 재삼 아재는 꼬맹이 셋을 늘 괴롭혔다. 신분 격차 관행이 남아있을 때였다. 아재는 봉평(양반) 길석(하인)을 부른다. 봉평 더러 폼잡아 앉게 하고 앞에 길석을 마주앉게 한다. “길석아 물 떠 오너라 에헴.” 시키는 대로 봉평이 명하면 다부진 길석은 봉평을 덮쳐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아재는 박장대소다.


나의 아픈 곳도 찌르며 깔깔깔 웃어댔다. 마을에 온 점치는 아줌마가 어머니께 아들 수명이 짧아 보이니 마을에서 아주 빈곤한 다른 성씨 집의 수양아들로 연을 맺으라.”며 권했다. 두 살 위 형과 세 살 아래 아우가 현대 보건시스템이 전무한 시골에서 죽은 뒤다.
4대독자 아내인 어머니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빈곤한 신 씨 댁을 골라 수양아들이 되게 했다. 세 살 때부터 3년 간 선물을 든 둘째 누님 따라가 섣달그믐과 대보름 전날이면 수양 댁에서 하룻밤씩 잤다. 명절이라 흩어졌던 수양 형들도 돌아와 한 방에서 9명이 잤다. 수양아버지는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댔다. 아재는 내 앞에서 콜록콜록수양아버지 기침 흉내를 반복하며 어린 가슴에 모멸감의 상처를 냈다. 지금 소환 해보니 별스런 아저씨였다.


2회를 3년간 반복하는 사이 수양 엄마 누이 형들과 정이 들었다. 그런데 수양 집 큰 형님이 6.25 전쟁터에서 전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나의 짧은 수명을 막음질 한 죽음 이었을까? 슬퍼서 혼자 울었다. 세월이 흐른 뒤 아픈 가슴 파장을 느끼며 동작동 서울 현충원 관리소를 찾아 수양형님 이름을 조회한 일이 있다.
한문공부는 <사자소학>을 하루에 열여섯 자씩 배워 외운 뒤 해질 무렵 돌아오곤 했다. 허리를 굽혔다 세웠다하며 소리 내어 글 읽어 외우기는 돌아보면 낭만이었다. 스무 명 내외가 한 방에서 제각기 자신이 배우는 책을 반복해 소리 내어 읽으며 외우기였다. 그 요란스러움에도 학습이 이루어졌으니 오늘의 교육환경에 비춰보면 기이다.


초등학교 의무교육도 못 시키는 절대 빈곤 시절에 서당은 천자문이나 명심보감 대학 논어들을 가르쳐 지식층으로 오르게 하는 사교육 행태로 자리 잡고 있을 때다.


하루는 동갑내기와 어울려 놀기에 빠져 열여섯 자를 다 외우는 데 실패했다. 대 뿌리 매를 든 매촌 훈장님은 바지 올리고 뒤로 돌아서라명하셨다. 때리고 또 때리고너무 아파 왜 이리 많이 때리시냐.”며 울먹였다. 훈장님은 엄중한 음성으로 이륙 십이(2x6=12) 열두 대가 맞지 않느냐며마저 때리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면서 한 글자 틀린 데 매 두 대씩, 그날 여섯 자 틀렸음을 알았다. 훈장님 돌아가신 먼 훗날에야 그 매는 의도된 사랑의 매였음을 깨달아 깊이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때 종아리에 붉게 든 멍은 뇌와 가슴에 경각심으로 맺혀 고비마다 나를 흔들어 일으켰다.


성장하면서 매촌 훈장님이 한문 내 이름(‘녹봉() 솥귀 현()’) 을 지으셨음을 알았고 이름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매촌 훈장님을 그리운 마음으로 추모한다. 고등학교 때 기하 숙제를 스쳐 선생님께 손바닥 펴고 맞은 매도 교훈으로 새기며 산다. 교육학 원론도 읽지 않은 처지에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매질을 살리자는 뜻은 아니다.
필자는 뜻을 세워 공부하면서 느슨해지거나 일터에서 어려운 벽에 부딪히면 매촌 훈장님이 때린 열두 대의 매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챙겨 나아갔다. 훈장님 매 열두 대는 <성실을 세우는 좌표>가 되었고 산만해진 삶을 추스르는 보약이었다. 이따금 푸른 하늘 쳐다보면 흰 수염 굽은 허리 평화로운 얼굴 훈장님이 고마움으로 떠오르곤 한다. 살아오는 동안 매 열두 대는 늘 가슴에 숨 쉬고 있다.


지금 제자들에게 매는커녕 잘 못을 꾸짖는 것도 폭행으로 몰아치는 얄궂은 세상이다. 스승들의 자살이 이어진 것은 공교육체계가 무너진 실상 아닌가. 드디어 선생님들이 거리로 나서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교육 치맛바람 거센 서울 하늘. <교육흥국론>에서 <교육망국론>까지 출렁이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내 자식만은하고 다짐하는 엄마들의 교육 열풍은 결코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 결과는 나라를 일으켰고 사교육비 과다로 부작용도 크다.


하루가 다르게 출현하는 현대 첨단제품들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창의적인 두뇌와 손놀림에서 창출된다. 이공계 두뇌자원은 경제적 자연자원으로 빈곤을 대체하며 세계가 깜짝 놀라는 선진국 대열로 솟구쳤다.


우리 민족은 세계 최우수 두뇌로 평가받기도 한다.
천시받아온 기술이 단군 이후 긴 세월 입어 온 빈곤의 옷환한 비단옷으로 갈아 입었다. <교육흥국론>이 맞아떨어진 것이 흐뭇하다.


한편으로 자녀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겠다는 현상이 지속되어 오늘날 고급실업자 양산이 초래되었고 악성 종양도 넓게 퍼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초등교육성적을 바탕으로 우수한 인재만 대학까지 진학케 하고 대부분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독일 등 복수형 교육체계(, 전국 50개교 이상 마이스터 고 설립 근거 제안)를 천착하였다. 심사위원인 세 분의 교수 앞에 설명했고 논문은 통과되었다.


그런데 대학원장을 역임한 한영환 교수가 심사 3일쯤 지나 따로 불렀다. 소파에 마주 앉아 첫 장부터 끝장까지 <주홍색 글씨>로 고친 필자의 논문을 펴 보였다. 속으로 논문통과가 뒤집히나전율의 땀이 났다.


교수님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졸업 때마다 논문다운 논문이 별로 없네. 송 과장 논문이 독창성이 있어 집에 가서 다 읽었네. 내용은 고친 게 없고 인용문 띄어쓰기 맞춤법 등을 고쳤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 20여 군데 보내는데 검색할 분들을 고려했네. 수정본으로 인쇄하게.”
네 감사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 흐르던 땀은 환희로 바뀌었다. 한 원장님이 주홍글씨로 수정한 논문은 내 책꽂이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시나 산문 쓸 때 늘 유념한다.










송봉현
현 국제PEN한국본부 감사. 중앙대문인회 회원, 홍조근정훈장 수훈(1998 대통령), 제 8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2015 한국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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