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을 찾아서
하순명
지난 4월23일 중앙대문학기행 오후 일정으로 공주 풀꽃문학관을 탐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태주 선생님은 못 뵙고 지하 1층 지상 2층 복합문화공간으로 작년 7월에 개관한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저서는 물론 일상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진, 소박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따뜻한 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생존 문인 중에서 이런 규모, 이런 분위기의 문학관을 가진 시인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찬탄했다.
9년 전 내가 한국공무원문인협회를 인솔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작은 일본식 가옥의 조촐하고 소박한 시인의 집이었다. 선생님께서 시를 얘기하시다가 곁에 있는 풍금으로 다가가 동요를 연주하셨는데, 그 순간 낡은 풍금 건반에서 나오는 아날로그 감성이 마치 시인의 서정적인 문학세계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도 그 풍금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풀꽃 시인 국민시인 칭호로 이미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에겐 사실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마는 그날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발표한 짤막한 자료(저서, 특강, 개인적인 면담)를 바탕으로 시인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나테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이다. 그런데 공주사범학교를 졸업 후 초등 교사 교장으로 정년하고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공주에서 거주하며 살아온 그에게 공주는 고향보다 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열여섯 나이에 벌써 이 땅의 시인이 되겠노라 마음 먹은 소년은 드디어 26세에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등단 시 ‘대숲 아래서’는 군대 제대 후 복직한 학교에서 만난 여교사에게 자신의 마음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절망하여 쓰러졌을 때 쓴 작품인데 특히 박목월 시인의 순수서정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언젠가 개인적인 자리에서“ 나는 한 여자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시인이 되었다.”고 분위기를 띄우셨다.
71년에 등단하여 지금까지 약 300여권의 시집과 산문집 저서를 발간했는데, 특히 ‘꽃을 보듯 너를 본다’(시선집. 2015년)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로, 11년간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학교에서 제대로 문학을 배우지도 않고, 문단의 스승이나 선배의 어떤 도움 없이 오로지 홀로 공부해서 시인이 된 나태주 시인! 그래서인지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노을과 뒷산의 푸른 그늘과 풀꽃 같은 소박한 자연이 그의 전부였던 시인에게, 대표 시 ‘풀꽃’도 천진한 어린이들과 풀꽃 공부를 하면서 들려준 말이 시가 되었다고 한다. .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시는 시인이 아닌 사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시란 어린이에겐 노래가 되고 청년에겐 철학이 되고 노인에겐 인생이 된다.
- 참으로 좋은 시는 개성적인 특수성과 넓은 보편성을 갖추어야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풀꽃’ ‘행복’ ‘멀리서 빈다’ 작품이 그런대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두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한 덕분인 것 같다.
- ‘나태주 시는 현실참여가 없다.’고 말하는데 반드시 주먹 쥐고 돌 던지는 것만이 현실이 아니다. 골목에 핀 민들레를 보고 감탄하는 것. 이것도 현실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위로받고 싶어한다.
글을 어렵게 쓰면 평론가들이 모이고 알기 쉽게 쓰면 독자들이 모인다(까뮈). 나는 글을 쉽게 쓰기 위해 얼마나 어렵게 쓰는지 모른다(헤밍웨이) 고 했던가.
나태주시인의 시는 난해하고 실험적 형식의 현대시 흐름과는 달리 일상어에 가까운 맑고 간결한 표현으로 자연, 사랑, 삶 등을 서정적으로 따뜻하고 다정하게 독자들의 가슴에 위안을 준다. 이것은 시가 어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절로 느낌이 닿는 공감 중심의 시로서 수많은 독자층을 갖는 이유다. 죽음 곁에까지 간 투병 이후에는 생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언어가 더 단순해졌지만 더 절실해지고 깊어졌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나태주 시 AI에게 묻습니다’ (시 40편을 인공지능과 함께 읽고 감상하고 되묻는 책. 김예원 지음)를 펴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시인으로서 자세를 “AI시대 불안과 갈등속에서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시, 사람을 살리는 시를 써야 한다. 그러러면 더 짧고 단순하고 임팩트 있는 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시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감상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성은 오히려 북잡한 시대에 독자에게 다가가는 힘이 되었다. 요즘처럼 시를 잘 안 읽는 시대에 직관적이고 투명한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읽히는 장르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대중과 시를 다시 연결한 중요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문학사적 위치는 ‘서정시의 대중적 복원자’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문학관을 나서는데 뜨락에 핀 작은 꽃들이 풀꽃 시가 새겨진 시비 곁에서 맑게 웃음지었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