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사공원, 시간을 품은 문학의 숲
정혜령
지난 초여름, 중앙대문인회 회원들과 함께 망우역사공원을 찾았다. 평소 책과 시를 통해서만 만나던 문인들의 숨결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서울 중랑구에 자리한 망우역사공원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역사와 문학, 그리고 인간의 삶이 함께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다. 숲길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인물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했다.
망우역사공원은 독립운동가와 예술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근현대사의 보고(寶庫)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설레게 한 것은 문학인들의 묘역이었다. 교과서와 문학 작품 속에서만 만나던 이름들이 숲길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순례길 같았다.
박인환 시인의 묘역 앞에 섰을 때 회원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세월이 가면」의 시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짧은 생애였지만 누구보다 강렬한 언어를 남긴 시인은 고요한 숲속에서 긴 시간을 건너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칠 때마다 그의 시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묘소에 평상시 즐기셨다는 회원중에 누군가 가져오신 조니워커 양주를 한 잔 따라 드리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김영랑 시인을 기리는 공간에서는 더욱 깊은 감회가 밀려왔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서정을 꽃피운 시인의 작품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맑고 향기롭다. 회원들은 저마다 기억하는 시구를 떠올리며 한동안 묵묵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문학이란 결국 시간을 이기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길을 걸으며 우리는 한용운, 방정환, 계용묵 등 여러 문인과 문화예술인의 삶도 함께 돌아보았다. 문학은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시대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중앙대문인회 회원들과 나눈 대화 역시 자연스럽게 문학의 역할과 시인의 사명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망우역사공원의 숲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오래된 비석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 편의 서정시와 같았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기억과 계승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공원을 내려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인은 세상을 떠나도 문장은 남는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읽는 사람이 있는 한 삶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중앙대문인회 회원들과 함께한 망우역사공원 답사는 문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숲길에 남겨진 수많은 이름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좋은 문장은 시간을 넘어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래 살아남는다고. (2026.6.20. 사무차장 정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