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祈川)섬과 복여울(福灘)이야기
비내섬 소개에 이어 두번째로
비내섬과 복여울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려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저희 이름은 ‘비내’와 ‘복여울’이예요.
충주시 앙성면과 소태면 사이에 있지요.
사람들은 나무를 많이 벤(伐) 곳이라고 하여 ‘비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원래 제 이름이 아니지요.
신라 천년이 기울어 가던 시절
비운의 왕자 궁예가 있었어요.
그는 권력다툼 속에 겨우 목숨을 건저 지내면서
신라부흥과 삼한일통, 고조선 옛날 땅 수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서라벌을 떠나 죽주(안성)의 ‘기훤’에게 갔지요.
하지만 그는 뜻을 함께 도모할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지요.
북두칠성이 손길을 내민 어느 날
부하들과 함께 죽주를 떠나 말을 달리고 달렸어요.
북원경을 주름잡던 ‘양길’을 만나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큰 강이 막아서 건너지 못하고
강을 보며 달리고 달렸어요.
얼마나 달렸을까....
칠성은 어디로 가고 달님이 나타나 환히 밝혀 주는 버드
나무 숲에서
발길을 멈추었어요.
일행은 풀숲과 자갈밭을 둥지로 삼아 잠을 청했지요.
얼마나 피곤했던지 산새들 노래에 눈을 뜨니
해님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지요.
그런데 빨래하는 처자가 이들을 보았지요.
행색은 남루하였으나
예사롭지 않은 그들의 눈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떨리는 입술로 “어어~ 어디로 가시는 분들인지는 모르오나 배를 거르신 것 같으신데~~
저희 집에 가셔서 거친 밥이라도 한술하고 가시지요?”하고 청했지요.
일행은 허리 숙여 인사하고 그 처자를 따라갔지요.
따듯한 잡곡밥과 숭늉으로 빈 배를 가득 채우고
처자의 아버님께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했지요.
갈대와 억새, 쑥부쟁이가 노래하는 마을 앞의 큰 섬과 얕고 긴 여울을 건너
소태를 통해 북원으로 가게 되었지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왕이 되었지요.
이런 소식은 중원경에도 전해졌지요.
대왕이 된 궁예가 하루 밤 자고 건너갔던 이곳은 신성한 곳이 되었지요.
궁예가 미륵불의 화신이라는 소문도 돌았지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섬에 제단을 만들고 궁예를 닮은 미륵님을 모셨지요.
중원경은 물론 인근의 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중원어리랑’을 부르며 그 여울을 건너면서 대왕을 그리며 복을 빌었지요.
그 후부터 이 섬은 소원을 비는 섬이라는 뜻으로 ‘비내섬’이 되었고
복을 비는 여울이라고 하여 ‘복여울’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