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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정 말기 두메산골 어느 농민의 처절한 삶

작성자박봉환|작성시간17.04.15|조회수13 목록 댓글 0

왜정 말기 두메산골 어느 농민의 처절한 삶

(전략)해방 전 1943년 겨울도 그랬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어느 날, 마을 어귀의 한 모퉁이에서 순이는 두 손으로 눈물을 연방 닦아내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평소의 밝고 명랑한 모습이 아니었다. 텃논 저쪽 논두렁에서 순이 아범이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양손을 눈 속에 처박고 엎드려서 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윗몸이 발가벗겨진 채 눈보라 속의 허허벌판에서 얼차려를 받는 남자들 앞에는 주재소에서 나온 순사 한 명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묵직한 곤봉은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내려칠 기세였다.

면사무소 직원인 듯한 한 젊은이가 서류뭉치를 뒤적거리며 구장(里長)과 무엇인가를 귓속말로 속삭이다가 심사가 뒤틀린 듯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호통을 쳤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대 일본제국을 위한 공출(供出)을 지연시키고 있습니까?” ‘공출!’ 매서운 한겨울을 굶주리며 근근이 버티어가는 시골 농민들에게는 겨울바람보다도 더 잔인한 단어였다(중략)

서울로 올라온 순이 아범은 지나가는 엿장수를 따라다니며 술값은 내게 있으니 함께 마시면서 놀자고 꼬여 댔다. 그러나 얼마 후 엿장수마저도 장사를 핑계로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군고구마 장수도,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면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는 깔이나 꼴을 베면서 하루하루 지내던 시절의 농촌생활을 떠올려보았다. 외양간에 던져준 꼴을 우물거리며 씹어 먹는 누렁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잔칫집에서 떡판을 칠 때 목을 축이라며 막걸리 한 사발과 시커먼 갓김치 한쪽을 손에 들려주시던 안방마님의 인정 어린 모습이 그의 뇌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는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서울은 더없이 외로운 곳이었다. 그는 서울의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막연한 외로움에 찌든 채 원인 미상의 병고를 치르다 죽고 말았다. 순이가 그를 서울에 모셔온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불쌍한 양반!” 순이의 눈시울이 붉어져 가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이하 생략) <한국 문학방송 간 “태풍 불던 날 나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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