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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조선 중기 임경업 장군)

작성자연덕희|작성시간14.11.27|조회수52 목록 댓글 0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林慶業>(1594~1646)

 

     

    임경업은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본관은 평택이고 자는 영백(英白), 호는 고송(孤松)이다. 그는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고, 대외적으로 친명배청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이다. 그의 친명배청 사상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고 국고를 맺지 않으려 한 조선 조정과 같은 입장이었다. 조정에서도 김자점 같은 친청주의자 때문에 보호받기 어려웠고, 명나라 또한 세가 기울어 임경업의 입장을 보호할 만한 형편이 못 되었다.

     

    1637년 가도에 주둔한 명나라 군사를 치기 위해 청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수군장에 발탁된 임경업은 명나라 장수와 내통하는 등 온갖 수단과 속임수를 동원하여 서로 희생자 없는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명나라 장수 홍승주가 청나라에 투항하여 그동안의 실상을 낱낱이 실토하니, 청나라는 즉시 임경업을 체포하여 자기네 나라로 압송해 줄 것을 조정에 요구했다. 결국 청나라로 압송이 불가피 하게 된 임경업은 분연히 일어서서 이렇게 외첬다.

     

    “남아 대정부가 헛되이 살 수 없는데 어찌 까닭 없이 저들의 뜰에서 죽겠는가?

    명나라로 도망쳐 힘을 다해 원수를 갚겠다.”

     

    그리고는 압송 도중 금교역에서 도망쳤다. 그는 회암사의 승려로 변장하여 명나라 상인 부금의 도움으로 드디어 명나라에 도착해 4만 군사를 지휘하는 평로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북경을 함락한 청나라는 남경까지 수중에 넣음으로써 명나라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는 뜻밖에도 임경업을 재능과 지략을 아껴 그를 사면시켜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조선의 김자점을 비롯한 간신들이 그를 다시 붙잡아 왔다. 그리고 임경업을 심기원의 옥사와 연관시켜 역모의 죄를 뒤집어 씌웠다. 마침내 임경업은 1646년 6월 ‘조선을 배반하고 명나라에 들어가 국법을 어진 죄목’으로 모진 매를 맞고 숨을 거두었다.

     

    의리와 명분에 투철했던 그는 우국충정으로 병자년의 치욕을 갚고자 했으나 무능한 조정의 알력으로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하게 만 것이다.

     

    그가 죽던 날 분노한 백성들은 어버이를 잃은 냥 비통한 눈물을 흘렸고 그의 시신은 고향인 충주 달천 선영에 안치되었다. 그 후 숙종 때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직이 회복되었고, 정조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가 하면, 직접 관직과 이름을 적은 비명을 지어 내렸다. 또 영조가 하사한 ‘충렬사(忠烈祠)’ 라는 편액이 오늘날 까지 전해오고 있으며, 기념관에는 늘 차고 다니던 추련(秋蓮)이라는 명검이 전시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어 그의 애틋한 뜻을 전하고 있다.

     

    세월을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앓으니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것이 여기 있도다.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석자 추련검을 십 년 동안 갈고 닦았노라.

     

    이시 조선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개국한 나라다. 그러나 오히려 명분 때문에 수차례 외침을 당하는가 하면 결국 명분 때문에 망한 나라가. 소리(小利)를 탐하면 대리(大利)를 잃는다고 했다.

     

    소리를 탐하는 무리들의 명분 싸움이 가져온 대표적인 결과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삼전도의 굴욕은 한일 합방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치욕이었다.

    석자 추련검에 새긴 시는 곧 임경업의 묘비명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월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고, 인간은 누구나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남아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니, 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아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임경업 장군처럼

    의로운 뜻을 세우고 각자의 추련검을 십 년 동안 갈고 닦을 일이다.

     

    출처 :    [인생열전]  묘비명으로 본 삶의 의미 : 박영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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