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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산 옹달샘 일곱 노인의 즐거운 하루하루

작성자박봉환|작성시간15.07.12|조회수26 목록 댓글 0

대지산 옹달샘 일곱 노인의 즐거운 하루하루

가마솥에 집어넣고 부글부글 끓여 금방 사람들의 목구멍으로 들어갈 미꾸라지 놈들을 데려와 공기 좋고 물 맑은 산기슭에 옹달샘 파고 살려주었건만, 오늘따라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금붕어를 반이라도 닮으면 좋으련만, 이 정도면 배은망덕도 유분수란 말이 절로 나온다.

“예끼, 이 나쁜놈 미꾸리야! 네놈처럼 죽기 직전에 기적으로 살아난 것을 인간사회에서는 구사일생이라 한단다.” 추어탕 집에서 미꾸라지를 사 와 산기슭 약수터 곁에 옹달샘을 만들고 풀어준 박(朴) 노인이 투덜거린다.

“그놈들 다 잘 있지요?”

방금 도착한 독고(獨孤) 노인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본다.

“그럼요, 박 노인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데.”

조금 먼저 올라와 땀을 식히고 있던 최(崔) 노인이 대꾸한다.

“그놈들 통통하게 살도 찌고 새끼도 많이 낳아 물 반, 고기 반 되면 가마솥 걸고 천막 치고 용인시 경로잔치 한번 푸짐하게 할 수 있을 텐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김(金) 노인이 농담을 던진다.

“아아, 경로잔치! 그것 참 좋지요. 얼른 용인 시장(市長)에게 알려 잔치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해야겠네요.” 또 다른 최(崔) 노인이 김 노인의 농(弄)에 맞장구를 친다. 때마침 옹달샘 진흙 속에 숨어 있는 미꾸라지를 찾느라 물속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너더댓 명의 등산객이 물고기 몇 마리를 두고 하는 노인들의 농담에 지긋한 미소를 짓는다.

이때였다. 옹달샘 주변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살피던 조(趙) 노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앗! 이것 좀 봐요. 엊그제 파종한 샐비어, 봉선화, 코스모스, 해바라기 씨가 벌써 파릇파릇하게 새싹을 틔웠어요.” 모두의 시선이 옹달샘 미꾸라지로부터 조 노인에게로 옮겨갔다. 조 노인 옆에 서 있던 성(成) 노인이 오른팔을 길게 뻗어 조금 위를 가리킨다. “저쪽에 새로 옮겨 심은 진달래와 개나리 그리고 자연 산 야생화들도 잘 자라고 있어요. 경로잔치 때에는 이곳이 훌륭한 꽃밭이 되겠는데요.”

박, 독고, 최, 김, 또 다른 최, 조, 성. 이 70대 중반 일곱 노인의 머릿속에는 이곳 대지산 정상 근처 옹달샘 꽃밭에서의 경로잔치가 상상만으로도 흐뭇한가 보다. 지금 이 무명(無名)의 약수터에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일곱 노인은 오랜 기간 이 산을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우정을 쌓은 칠십 대 중반의 등산객들이다.

이들은 야생화 꽃 단지 조성해놓고 정성껏 가꾸는가 하면, 넘쳐흐르는 약수(藥水)로 옹달샘을 만들어 가득 채우고서 일곱 마리의 미꾸라지와 일곱 마리의 금붕어를 방사(放飼)해놓고 거의 매일 반나절 정도는 이곳에 와서 함께 지내며 건강도 다지고 여가를 즐긴다. 이 노인들은 ‘대지산 쓰리세븐’, ‘대지산 칠칠칠이’ 또는 ‘옹달샘 삼칠이’라 불린다. 이는 일곱 노인, 일곱 미꾸리, 일곱 금붕어를 빗댄 것이다.

이들이 매일같이 찾는 대지산(大地山)은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과 광주시 오포읍에 걸쳐 있다. 이 산은 해발고도 300여 미터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막길이 급경사로 되어 있어 등산객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내려야 한다. 그렇지만 삼림과 숲이 울창하고,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으며 다양한 운동시설과 쉼터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특히 대지산의 남측 죽전동 방향 양지바른 9부 능선쯤에는 커다란 바위와 수십 년생 물푸레나무 뿌리가 뒤엉켜 있고, 그 틈새로 사계절 내내 시원한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약수터가 있다. 이곳에서 많은 등산객이 갈증을 해결하면서 쉬어간다. 하루 등산객 2~3백 명을 능가하는 이 대지산은 초중고 학생들의 사생실습장(社生實習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한 초등학교의 교사가 아이들을 인솔하여 이곳 약수터까지 올라왔었다. 한 초등학생이 소리쳤다. “야아! 금붕어다! 산꼭대기에 금붕어가 살고 있어!” 신기한 듯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저쪽에는 야생화 꽃동산도 있어.” 학생들을 인솔한 담당교사가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증손자, 증손녀 나이의 아이들을 팔순(八旬) 노인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왕성한 등산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지켰다는 정정한 이 할아버지도 경사가 가파르고 삼백 고지(高地)에 이르는 이 산을 오르내리며 이곳에서 쉬어간다. 그는 이 산을 무난하게 오르내릴 힘이 있다면 비록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일지라도 앞으로 이십 년은 족히 더 살 수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일곱 노인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물고기 양식장과 야생화 꽃동산이 일 년 내내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팔순 노인의 너털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용인시가 다가오는 여름 장마와 한발(旱魃)에 대비한 보수보강 및 긴 의자 한 개와 평상을 이곳에 추가하여 설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상낙원이 따로 있던가? 부담 없는 친구들과 물 맑고 공기 좋은 숲 속에 정답게 모여앉아 산새와 야생화 그리고 옹달샘의 물고기와 정감(情感)을 나누며, 마냥 시시덕거리면서 한껏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곳이 옹달샘 일곱 노인에게 있어서는 더없는 지상낙원이다.

어느 작가는 “나이 들수록 사랑하는 사람보다 좋은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고, 만나기 전부터 벌써 가슴이 뛰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더 그리울 때가 있다”고 통찰했다. 일곱 노인이 서로에게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들의 대지산 속에서의 우정이 사시장춘(四時長春) 솟구쳐 오르는 옹달샘 약수처럼 변치 않기를 기원한다.

210년 06월 3일

(한국문학방송 간 박봉환 문집 태풍 불던 날 나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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