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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의 교단일기]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

작성자훈남|작성시간13.02.25|조회수115 목록 댓글 0

나는 원래 괴산중학교 3학년때 충북고를 진학하려고 하였다.그러나 우리 부모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청주 시내로 내가 진학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담임선생님은 청주 시내로 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냥 괴산고로 가겠다고 하였다.그리고 그 당시 괴산중학교 분위기는 대부분의 아아들이 괴산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분위기였다.괴산고등학교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도 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그런 분위기였다.동기생중 지금 도청,시청,군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많은데 다 괴산고 출신들이다.하여튼 나는 괴산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어 괴산고에서 열심히 공부해보리라 다짐하였다.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부모님께서 등록금내는 날짜를 까먹은 것이었다.아니,부모님께서는 날짜가 지나고 내도 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결국 미등록처리되어 괴산고 추가시험에 응시해서 다시 합격했다.문제는 추가로 들어온 애들은 1학년 6반에 무조건 배정이 된다는 것이었다.왜냐하면 교실이 다섯칸 밖에 없어서 6반 아이들은 열두명씩 각반에 찢어져서 공부를 해야했다.내 교실도 아닌 남의 교실에서.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이스라엘 반’이라고 불렀다.조회는 흩어진 반에서 했고 종례는 구석진 과학실 앞 이런데서 했다.처지가 이렇게 처량하니,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교실도 없이 교정 한켠에 모여 종례를 받는 우리 이스라엘 반 아이들.우리반 중 많은 아이들이 청주 인문계를 떨어져 괴산고로 온 아이들이라 공부도 많이 못했다.멀리 괴산까지 와서도 천대받는 우리 친구들! 대부분 청주 그 먼데서 통학하는 아이들이었다.중학교때도 치었을텐데 또 고등학교에 와서도 천대를 받는구나!학창시절 나는 운도 없었지만,마음 한켠에는 나중에 성공하리라 마음먹었다.운동장에서 조회같은 것을 할 때 막 장난치며 노는 아이들을 보며 쟤네들보다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그렇다고 내가 엄청 의젓하거나 그런 학생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우반에 들어갔다.그때까지만 해도 우반과 열반으로 편성되어 있었다.여섯개반중에 1반이 우반이고 나머지는 뺑뺑이였다. 2학년 1반 우등생반!자 이제 공부할 일만 남았어! 열심히 공부했다.지금 생각하니 담임샘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왜냐하면 문교부(지금은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의해 우리 우등생반은 3월말에 해체되었다.여섯개반을 모두 뺑뺑이 돌리라는 문교부 지침이 떨어졌다.나는 2학년 3반에 배정되었다.좋은 분위기에서 열심히 공부 한번 해보려고 했더니 역시 운이 없는 놈이구나.그렇게 2학년 3학년을 마치고 괴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초임교사 시절 우리반 부실장 권용남(여학생임)이 우리 반 특종이라면서 담임샘의 프로필을 뒤 게시판에 붙여놨다.근데 거기에는 고등학교가 충북고 졸업으로 되어 있었다.집으로 걸려온 전화에 마누라가 충북고등학교로 대답을 했던 모양이다.우리반 특종을 쓴 부실장 용남이는 정말 성실한 아이였다.부실장으로서 학급일을 정말 열심히 하였다.당시 실장은 좀 얼빵했는데 부실장은 야무졌다.어느 날 나는 용남이에게 이런 글을 써 주었다.“너는 내가 본 아이중에서 반드시 나중에 꼭 성공할 학생이야!”중학교 3학년때 용남이는 내가 써준 저 글귀를 소재로 글짓기를 하여 전교에서 대상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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