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참빛학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들으며... 자유, 규칙, 경계선 이런 단어들이 떠오는 상담이었다.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알아듣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리고 규칙을 어느시점에서 가르쳐야 하는지 잘 모르는것 같다.
경계선은 어디서 타이밍을 맞춰야 되는지 잘 모른는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어린 유아시절에는 아이들에 부족함을 매꾸고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대신해주어 일반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을 맞추고는 부모들 자신이 위안을 삼는다.
그러다 점점 자라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할수 있는 일들이 전혀 없기에 규칙을 따르기도 배우기도 힘들어진다.
철저하게 어린유아시절 아이가 부족해 하는 부분을 그 하찮아 보이는 하나를 익히기 까지 기다리고 다독이고 아이의 기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는 많이 보여주고 스스로 습득하는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과연 그러고들 계신것인지...
의문스럽다.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이 두렵고 수치스러워서 아이들의 입장을 배제한체 어른들 위주의 행보...
그 시행착오가 아이를 키우는 내내 연속성을 띠게 되므로 아이들은 점점 더 배움을 받아들일수 없어진다.
나는 상협이를 키우면서 작은 하나를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신발 오른쪽 왼쪽 신는것만 3년이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루에 수십번도 더 가르쳤다. 아주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단 한번도 3년을 가르치면서 야단친적도 때린적도 없다. 그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가르침이 지루하고 힘듦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기초를 가르침에 충실한 지금의 댓가이다. 누구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흉도 두렵지 않았다. 나의 당당함 나의 사랑은 그렇게 실천되었다. 기초.그 안에 상협이의 자유와 규칙과 명확한 경계선을 가르쳤다. 하나의 베일을 벗기자 상협이는 스스로 자유롭게 보아왔던 그림들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잣대로
예나 지금이나 나는 상협이를 아주 작은 기초만 가르친다. 그리고 세상에 던진다. 그러면 상협이는 세상에서 얻은 상처와 사랑을 모두 싸앉고 집으로 돌아와 삭히고 다듬고 정교하게 만들어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남을 의식하지 말아야 내 아이의 자유를 허용해 줄수 있다.
자유를 허용함은 부모에게는 모험이 따른다. 다치기도하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그 모험이 아니면 아이들을 발전시킬수 없다.
그러기에 상협이는 한없이 자유로운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