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1일
■ 옛날 어느 마을에 청상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가 기대할 곳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뿐이었다. 그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아들을 잘 길렀다. 아들도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 드디어 그 아들은 과거에 응시해서 장원으로 급제를 하게 되었다. 뒤에 그는 바다와 가까운 마을에 원님으로 부임을 했다. 그 지역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탁은 자연히 바다의 진미로 풍성했다. 원님은 생선 반찬을 들 때마다 목이 메었다. 한양에 계시는 그의 어머니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생선 가운데서도 조기를 특히 좋아하셨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 원님은 이방을 불렀다, 그리고는 이렇게 명을 내렸다.
“여봐라, 이방! 우리 어머님은 조기, 그 가운데서도 대가리 부분을 무척 좋아하신다. 그러니 장에 가서 조기 대가리를 있는 대로 다 사 모으도록 해라!”
며칠 후 한양에 있는 어머니는 아들이 보낸 수백 개의 조기 대가리를 선물로 받았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면서 웃음 반 한숨 반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이 그래도 내 식성을 잊지 않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아들은 어려운 살림에 어쩌다 사먹는 조기를 살은 발라서 모조리 아들에게 먹이고 당신은 대가리가 더 좋다고 하며 대가리만 꼭꼭 씹어 삼키던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기뻐한 것은 조기 선물이 아니라, 어머니를 잊지 않는 아들의 효성어린 마음일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이 아들의 마음은 비록 속 깊게 읽지 못했더라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질적인 것보다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더 힘든 것이다.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서 )
◎ 매년 5월 이면 생전의 부모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보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 나는 것을 보면 아버지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잘 해드린 것 보다는 못해 드린 것이 더 많았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생각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해도 자식은 부모의 깊은 속을 헤아릴 수는 없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유난히 춥게 지내던 시절 항상 늦게 귀가 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따뜻한 아랫목에 밥사발을 묻어두시던 모습. 생선 대가리만을 드시던 모습. 어려웠던 시절 흰 쌀밥은 가족들 몫으로 하고 자신은 보리밥만 드시던 모습. 일찍 자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모습. 추우나 더우나 매일 한결같이 일정한 시간에 새벽기도를 다니시던 모습.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시신기증을 이루어 내셨던 일.
아마 대부분의 우리 어머니들의 생각과 모습은 이러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털어놓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미쳐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생전. 이십여 년 이상을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나름대로 불편하지 않게 해드리려고 애는 썼으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하며 지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정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교회 나가시기 시작하신지 꼭 20년이 되던 해. 효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생전의 어머님을 모시고 처음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야 어머니께서 병원응급실로 향하던 구급차안에서 운명하시며 하시던 마지막 말씀(당시는 어머니께서 입술만 움직이셨으므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음). 그 마지막 말씀이 교회는 빠지지 말고 나가라는 말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가신 길을 답습하면서야 어렴풋이 왜 어머니께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기도에만 매달리셨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호의호식도. 자식들이 없는 살림을 쪼개어 무언가를 해드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가 싶습니다. 표현 하시지 않으나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님의 얼굴에 보여 지는 환한 웃음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