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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어쓰기

【 이사야 50 장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 (B.C. 690년)

작성자오자환|작성시간09.03.01|조회수104 목록 댓글 0

【 이사야 50 장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 (B.C. 690년)


1.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어머니의 이혼 증서가 여기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 어머니를 쫓아내기라도 했느냐? 내가 어느 채권자에게 너희를 팔았더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 때문에 팔린 것이다. 너희의 잘못 때문에 너희 어머니가 쫓겨난 것이다.


【 용 어 설 명 】너희 어머니

남 유다 왕국을 가리킴. 성경은 가끔 나라를 어머니로, 성읍이나 백성들을 자녀들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음.


2. 내가 왔을 때 왜 아무도 없었느냐? 내가 불렀을 때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느냐? 내 손이 너희를 구해 내지 못할 만큼 너무 짧으냐? 내가 너희를 구할 힘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음으로 바다를 말려 버리고 강을 광야로 바꾸어 버린다. 물고기들이 물이 없어서 악취가 나고 목말라 죽게 된다.

3. 내가 하늘을 어둠으로 옷 입히고 굵은 베옷으로 덮어 버린다.”


【 말씀내용해설 】1~3절.

유다의 죄악에 대한 언급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끊어 버린 것도 유다였으며, 포로로 잡혀 간 것도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음. 또한 그들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외면하였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건지실 수 있음에도 잠시 그들을 고난 속에 놓아 두셨던 것임.


4.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 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5.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배반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려 가버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사람들에게 내 등을 내주었고 내 수염을 뽑는 사람들에게 내 뺨을 내주었다. 조롱하고 침을 뱉는데도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조금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내 얼굴을 부싯돌처럼 만들었다. 따라서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안다.

8. 나를 의롭다고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를 고소하겠는가? 우리 함께 법정에 가 보자! 누가 나를 상대로 고소했느냐? 내게 가까이 와 보라.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두고 죄가 있다 하느냐? 그들은 모두 옷처럼 낡아져서 좀에게 먹힐 것이다.

10. 너희 가운데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종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누구냐? 비록 빛도 없이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자기 하나님께 기대라.

11. 보라. 너희가 모두 불을 붙여 횃불을 들고 불빛을 비추면서 다녀 보라. 그 횃불에 너희가 탈 것이다. 이것은 내가 손수 너희에게 한 것이고 너희는 괴로워서 누워 뒹굴게 될 것이다.


【 말씀내용해설 】4~11절.

여호와의 종에 대한 세 번째 노래임(42:1~7, 49;1~7).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씀하실 것이며(4절),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모욕을 당할 것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음(6절, 마태26:67, 27:30).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실 것이 묘사되어 있음(7~8절).


(자료 : 아가페출판사 셀프성경 「한글판 개역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http://www.bskorea.or.kr),http://kcm.co.kr/bible/old/old0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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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이사야 50장4~9절


[묵상내용] 

본문에서 ‘학자(가르치는 혀)’로 번역된 단어 ‘리무딤’은 본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제자’ 혹은 ‘학생’이란 단어가 더 적합합니다. 한자의 ‘學者’도 사실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자’란 ‘가르치는 자’ 이전에 먼저 ‘가르침을 받는 자’인 것입니다.


누구의 가르침일까요?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말할 수 있게 하시고, 들을 수 있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인 것입니다. 아침마다 들을 수 있도록 깨우쳐주시는 하나님의 열성과 귀를 열어주시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종은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말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말로 위로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 ‘말하는 사람’ 이전에 ‘듣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당했을 때 굳건히 이겨나갈 수 있는 힘도,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말할 때가 더 많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메마른 저수지처럼 ‘말씀의 고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하기보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에 더 집중하고, 아침마다 귀를 열어주시고 깨우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면, 지치지 않고 신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벽예배나 아침 말씀 묵상, 가정예배를 매일매일 드리는 것같이 좋은 것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것이 일상화되면, ‘말씀에 힘이 있다’는 진리를 삶에서 실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할 때, 말씀과 일상의 삶이 대화를 하고 서로 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 따로 우리의 삶 따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삶이 더 이상 나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내게 됩니다(7절). 


하나님, 무엇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존재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판단은 늘 부족하고 우리의 생각은 늘 자기중심적이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로 늘 ‘배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자료출처 : CBS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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