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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아르스 노바(Ars Nova, 1300-1400)

작성자최은화|작성시간07.11.09|조회수2,183 목록 댓글 0
음악사에 있어서 14세기는 아르스 노바(Ars Nova,신예술)의 시대라고 일컬어 진다. 음악사적인 면에서 아르스 노바는 중세의 종식을 의미하는 한편, 르네상스 경향의 징후가 나타나는 시기였다. 아르스 노바란 말은 프랑스 시인, 음악이론가이자 작곡자였던 필립 드 비트리( Phillippe de Vitry, 1291년경-1361년)가 쓴 <Ars Nova>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나온 말로서 오늘날의 학자들은 아르스 노바를 1300년부터 1370년까지의 프랑스 음악을 명명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비트리는 이 시기의 음악을 구 예술 (아르스 안티콰, Ars Antiqua), 즉 중세 다성음악이 정점에 도달했던 파리의 노트르담 악파의 음악과 구별하여 아르스 노바로 불렀다. 이 시기는 음악의 역할이 신을 위한 예배의 목적에서 음악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고, 보다 아름답게 들리기 위해 반음계적 기법이 나타났다. 작곡가의 존재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작곡가의 이름이 없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마쇼, 란디니, 던스터블과 같은 음악가들의 이름이 음악사에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

I. 프랑스의 아르스 노바

프랑스에 있어서의 신예술은 이탈리아의 경우에서 보다 더욱 구예술을 기반으로 발전적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음악형태와 기법이 발전되었고 리듬의 복잡성은 이탈리아보다 더욱 뚜렷했다.

음악형식

아이소 리듬(동형리듬,Isorhythm) 모테트 : 아이소리듬이란 하나의 리듬형과 선율형을 반복해서 전체 모테트의 테노르 성부를 작곡하는 기법으로, 리듬형을 탈레아(talea), 선율형을 콜로르(color)라 부른다. 반복되는 리듬형인 탈레아와 반복되는 선율형인 콜로르는 반드시 탈레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10개의 음가를 가진 탈레아와 15개의 음가를 가진 콜로르가 있을 경우 탈레아는 세번 반복하고 콜로르는 두번 반복해야만 두 패턴은 동시에 처음부터 시작되어 테노르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기법의 사용은 중세 다성음악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중요한 성부인 테노르파트를 강조함으로써 곡 전체에 형식감을 성취하는 효과를 주었다.

정형시 형식(formes fixes) : 프랑스 아르스 노바의 기수인 마쇼는 시인으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세속 노래 분야에서 그 업적이 두드러지고 있다. 마쇼는 트루베르(Trouvere) 시절 부터 간간히 사용되어오던 시형식들을 일정한 형태로 고정시켰는데 이러한 시형식을 정형시 형식(formes fixes)이라고 한다. 그는 이 형식으로 여러 성부를 위한 세속노래를 작곡했다. 정형시 형식에는 발라드, 론도, 비를레의 3종류가 가장 유명하며 이 형식들은 1500년경 까지 지속적으로 쓰여졌다.

발라드 (Ballade) : 발라드는 같은 음악을 가진 여러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부분(A)이 다른 가사와 다른 종지부로 반복되는 AAB 형식에 따른 것이었다. 발라드는 최상성부에 선율 및 리듬상의 중요성을 두는 3성부 형식의 음악이었다.

론도 (Rondeaux) : 다성적인 트루베르 형식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같은 가사의 같은 음악이 반복되는 후렴(A)을 가지고 있다. 론도는 2성부, 3성부 또는 4성부의 형태로 작곡 되었는데 하나의 독창 성부와 악기를 위한 보다 느린 리듬의 2 저성부를 가진 3성부로 작곡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다.

비를레 (Virelai) : 14세기에 샹송 발라데(chanson balladee)라고 불렸던 비를레는 론도와 마찬가지로 단성 트루베르 형식에서 발생된 것이며 시의 각 연에 AbbaA식 구성을 적용시킨 것이었다. 샹송 비를레는 대부분 단성적이지만 다성 작품도 이런 형식으로 많이 작곡되었다.

마쇼(Guillaume de Machaut ; 1300-1377)는 14세기 유럽의 최대 작곡가이자 그 자신이 뛰어난 시인이었다. 마쇼는 프랑스 아르스 노바와 르네상스 시대의 전환점에서 중세교회 음악을 집대성하는 한편 세속적인 다성음악을 확립한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않으나 1300년경 프랑스 북부의 종교도시였던 랭스(Rheims)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20세 초반인 1323년경부터 룩셈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던 보헤미아왕, 요한왕의 궁정에 들어가 비서관으로서 1346년 요한왕이 죽을 때까지 봉직하였다. 1337년에는 랭스 대성당의 사교좌 성당의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시인,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다. 요한왕이 죽자 요한왕의 딸 본, 샤르르왕, 프랑스왕 샤르르 5세들의 후원을 받았다. 1365년 이후는 랭스를 떠나지 않고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하였고 명사로서 주위의 존경을 받으면서 랭스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이탈리아의 란디니에 필적할 만큼 14세기의 어느 작곡가 보다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작품들은 당시의 프랑스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종교음악 보다는 세속음악을 더 많이 작곡했다. 마쇼는 다양한 연결과 발라드풍의 음악을 좋아하여 비를레형식을 많이 썼다. 그의 대표작인 ?노트르담 미사? (Notre Dame Mass)는 한 작곡가에 의해 미사의 5개 악장이 모두 씌어진 최초의 완전한 다성 통상 미사곡이었다. 그가 쓴 작품은 그 당시의 모든 음악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모테트 23곡, 기악음악인 오케(Hoquetus) 42곡, 그리고 그의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론도, 비를레 33곡, 가곡(Lai) 19곡등 130여 곡에 달하는 세속노래이다.

II. 이탈리아의 아르스 노바 (트레첸토 음악)

14세기 프랑스의 음악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아르스 노바라는 용어를 쓰는데 비해 음악학자들은 동시대의 이탈리아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트레첸토(trecento)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이태리어로 “1300”이라는 밀레 트레첸토(mille trecento)를 줄인 것으로서 1300년대 즉 14세기를 지칭하는 것이다. 프랑스 음악의 변천 과정과는 달리 14세기 트레첸토 다성음악이 어떻게 그 이전의 단성음악으로 발전했는지, 100년동안 화려한 꽃을 피우던 이태리 음악 전통이 왜 15세기에 완전히 끊겼는지 명확한 해답이 없다.

14세기의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같이 중앙집권적인 왕정에 기반한 왕국이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이룩된 도시국가 형태였다. 당시 북부에는 볼로냐, 파도바, 모데나, 밀라노는 강력한 도시국가로 부상했으며 중부의 피렌체는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도시였다. 피렌체는 ?신곡?의 저자 단테에 이어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와 시인 페트라르카를 탄생시킨 문학의 세계적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단조로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기법을 창시한 지오토를 탄생시킨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이었다.

이와 같은 문화적 배경 하에 14세기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이 처음으로 서양음악사에 등장하는 시기다. 이 당시 대부분의 음악은 다성 세속노래였으며 종교음악은 매우 작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4세기 프랑스 작곡가들이 복잡한 리듬의 변화를 강조한 반면에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리듬보다는 선율의 흐름에 중점을 두었다. 즉 음악적 구성이 보다 단순하고 화려한 성악 양식을 도입했다.

이탈리아의 트레첸토 음악은 초기에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유지하며 발전하였으나 란디니(Francesco Landini, 1325-1397) 시대에 오면서 점점 더 프랑스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한편 프랑스 음악은 15세기에 가까와지면서 복잡한 리듬의 사용을 절제하고 선율을 강조하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혼합된 양식은 중세의 끝을 장식하는 작곡가인 요하네스 치코니아(Johanes Ciconia, 1370-1412)의 음악에 잘 나타난다. 두 나라의 음악양식이 혼합 통일되면서 자연히 민족주의적인 특성은 사라지고 15세기에는 지금까지 서양음악사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던 영국에서 던스터블(Dunstable)과 같은 음악가의 출현으로 대륙이 영향을 받아 유럽 중심부의 음악 어법은 통일된 양상을 띄게 되었고 이러한 음악 어법은 르네상스 음악양식의 기반이 되었다.

음악형식

마드리갈 (Madrigal) :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된 다성형식으로 14세기 중엽에 크게 유행하였다. 마드리갈은 두개 혹은 세개의 2박자의 각 연을 3박자의 3행절과 리토르넬로(ritornello)라고 불리는 반복구로 구성된다.

카치아 (Caccia) : 카치아는 “사냥”이라는 뜻으로 1345년경-1370년경까지 번성한 엄격한 모방에 기초를 둔 카논(canon)의 원리를 최초로 사용한 음악형식이다. 2개의 상성부는 똑같은 선율로 엄격한 모방을 하였고 3성부인 최저성부는 기악에 의해 느리게 움직이는 자유스런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발라타 (Ballata) : 프랑스의 발라드(ballade)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원래 춤을 위한 노래였는데 마드리갈이나 카치아보다 약간 늦게 발전 했다. 발라타의 구조는 프랑스의 비를레와 똑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트레첸토의 다성 세속노래 중 발라타 만이 정형시 형식을 갖고 있다. 대부분이 2성 혹은 3성으로 작곡되었으며 가사의 내용은 고귀한 사랑이 주된 것이었다.

란디니 : 프랑스 아르스 노바의 최고 작곡가가 마쇼라고 한다면, 이탈리아 트레첸토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렌체에서 죽은 란디니라고 할 수 있다. 란디니는 1325년 태어나 유년시절 천연두를 앓고 장님이 되었지만, 어두움에 대한 공포를 이기기위해 각종 악기를 연주하였고, 노래와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오르간을 제작, 조율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악기의 일종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1361년 피렌체의 삼위일체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1365년 부터는 로렌조(Lorenzo)성당의 참사원으로 있으면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하였다. 현재 피렌체 대성당의 오르간도 란디니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란디니는 당대의 지성인으로서 음악가로서 많은 존경을 받다가 죽었다. 현존하는 란디니의 작품은 모두 세속곡으로서 140여곡의 2성부 및 3성부 발라타와 12곡의 마드리갈, 그리고 하나의 카치아를 작곡했다. 란디니의 음악은 단순하면서도 표현력이 넘치는 선율이 특징이며 당시 음악에는 란디니 종지가 성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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