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의 역사>
A.볼링의 기원 및 세계적 흐름
볼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계절이나 기후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수 있는 전천후 실내 스포츠이다. 이러한 볼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인류의 최초 시대상황이나 선사시대 때의 문화 유적지 발굴시 발견된 돌로 만들어진 여러 유품으로 추측할수 있는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면 영국의 고고학자 프란토스 페트리에 의해 발굴된 약BC 7200년전 것으로 추측되는 이집트 고분에서 발견한 목제의 볼과 핀(런던 박물관전시)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수 있다. 그후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 5세기에 걸쳐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근세 역사상으로 보면 13-14세기 중세때 "케그링"이라 불리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심을 테스트하는 종교의식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수 있다. ("케케르"라 불리우는 막대기를 악마로 간주하여 일정한 거리에서 둥근 물체를 굴려 넘어뜨렸는데 신앙심이 두터울수록 잘 넘어뜨리는 것으로 간주) 이것이 차츰 흥미 위주의 놀이 스포츠로 발전하여 유럽등지에 유행처럼 넓게 퍼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영향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다름아닌 종교개혁의 주창자 마틴루터(1483-1546)목사이다. 그는 당시 열렬한 케글러(볼러)였는데 그때까지 제각기 달랐던 핀의수를 9개로 정하고 다이아몬드 모양의 핀을 세우도록 하는 등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어 마틴루터는 사실상 현대 볼링의 창시자 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링은 청교도 및 주로 해안가에 사는 어민들 사이에 인기있는 놀이였는데 17세기 청교도는 대거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후 동부해안도시에서 중부 공업도시로 뜨는 미국 전역으로 볼링이 성행하고 현대적으로 발전되면서 9개의 핀에서 오늘날의 10개의 핀으로 바뀌게 되고 룰도 갖추어져 텐핀즈 게임으로 불리우게 되었고 1895년 세계 최초 국가적 규모의 볼링조직으로 미국 볼링협회 즉 ABC(America Bowling Congress)가 창설되었고 WTBA(World Tenpin Bowling Association) 세계텐핀볼링협회 FIQ(Federation International des Quilles) 세계볼링연맹 등에 의해 볼링발전이 주도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B.한국 볼링의 역사
볼링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해방후의 일이며 일부 부유층에서만 즐겼을뿐 대중화 되지는 못했다. 그후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영내 편의시설로 보급된후 1966년 서울 워커힐 호텔에 관광객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볼링장이 개장되었다. 1968년에는 세운상가에 최초의 일반 업소가 문을 연후 그후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었고, 1974년 오일쇼크의 여파로 전국의 많은 업소가 폐장되는 일이 속출하였다. 1978년 제8회 아시안 게임이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고 볼링은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되어 최초의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였고 처녀 출전한 선수들은 자랑스럽게도 금1, 은1, 동2를 따냄으로서 오늘날 한국 볼링 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1979년에는 부산의 몇몇 뜻있는 이들이 모여 대한체육회 가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다음해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인 대한볼링협회(Korea Bowling Congress)로 인가받아 비로소 전국체전의 정식종목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종목으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으로 급성장하기에 이르렀고 1990년 초에는 전국의 TV중계방송을 통한 홍보로 가족스포츠 및 우리 국민의 가장 선호도 높은 스포츠, 대중의 스포츠로 각광받게 되었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난황을 거듭하던 한국프로 볼링협회의 태동은 1995년 8월 문화체육부의 정식 승인을 받아 KPBA(Korea Professional Bowling Association) 한국프로볼링협회로 출범하게 되었고, 1997년 4월 창립총회를 거쳐 출범한 한국 지공사 연합회의 발족은 우리나라 볼링계를 더더욱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1998년 3월에는 서울 잠실의 KBC 전용경기장의 오픈으로 볼링계의 숙원사업을 이루었다. 2000년 5월 현재 전국에 약980여개 볼링장에서 약 600만명 이상의 동호인이 고정적으로 볼링을 즐기는 것으로 추산되고 이러한 발전으로 아시아 및 세계무대에서의 크고작은 입상으로 한국 볼링의 위상을 드높였고, 고정적인 국제 오픈대회와 세계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한편 지난해 제14회 세계볼링선수권대회 여자부 3인조,5인조의 금메달 영광은 새천년 새시대를 열어가는 우리나라 볼링발전의 새로운 신호탄이라 하겠다.
*자료제공:드림퍼펙트
A.볼링의 기원 및 세계적 흐름
볼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계절이나 기후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수 있는 전천후 실내 스포츠이다. 이러한 볼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인류의 최초 시대상황이나 선사시대 때의 문화 유적지 발굴시 발견된 돌로 만들어진 여러 유품으로 추측할수 있는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면 영국의 고고학자 프란토스 페트리에 의해 발굴된 약BC 7200년전 것으로 추측되는 이집트 고분에서 발견한 목제의 볼과 핀(런던 박물관전시)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수 있다. 그후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 5세기에 걸쳐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근세 역사상으로 보면 13-14세기 중세때 "케그링"이라 불리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심을 테스트하는 종교의식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수 있다. ("케케르"라 불리우는 막대기를 악마로 간주하여 일정한 거리에서 둥근 물체를 굴려 넘어뜨렸는데 신앙심이 두터울수록 잘 넘어뜨리는 것으로 간주) 이것이 차츰 흥미 위주의 놀이 스포츠로 발전하여 유럽등지에 유행처럼 넓게 퍼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영향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다름아닌 종교개혁의 주창자 마틴루터(1483-1546)목사이다. 그는 당시 열렬한 케글러(볼러)였는데 그때까지 제각기 달랐던 핀의수를 9개로 정하고 다이아몬드 모양의 핀을 세우도록 하는 등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어 마틴루터는 사실상 현대 볼링의 창시자 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링은 청교도 및 주로 해안가에 사는 어민들 사이에 인기있는 놀이였는데 17세기 청교도는 대거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후 동부해안도시에서 중부 공업도시로 뜨는 미국 전역으로 볼링이 성행하고 현대적으로 발전되면서 9개의 핀에서 오늘날의 10개의 핀으로 바뀌게 되고 룰도 갖추어져 텐핀즈 게임으로 불리우게 되었고 1895년 세계 최초 국가적 규모의 볼링조직으로 미국 볼링협회 즉 ABC(America Bowling Congress)가 창설되었고 WTBA(World Tenpin Bowling Association) 세계텐핀볼링협회 FIQ(Federation International des Quilles) 세계볼링연맹 등에 의해 볼링발전이 주도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B.한국 볼링의 역사
볼링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해방후의 일이며 일부 부유층에서만 즐겼을뿐 대중화 되지는 못했다. 그후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영내 편의시설로 보급된후 1966년 서울 워커힐 호텔에 관광객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볼링장이 개장되었다. 1968년에는 세운상가에 최초의 일반 업소가 문을 연후 그후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었고, 1974년 오일쇼크의 여파로 전국의 많은 업소가 폐장되는 일이 속출하였다. 1978년 제8회 아시안 게임이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고 볼링은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되어 최초의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였고 처녀 출전한 선수들은 자랑스럽게도 금1, 은1, 동2를 따냄으로서 오늘날 한국 볼링 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1979년에는 부산의 몇몇 뜻있는 이들이 모여 대한체육회 가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다음해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인 대한볼링협회(Korea Bowling Congress)로 인가받아 비로소 전국체전의 정식종목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종목으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으로 급성장하기에 이르렀고 1990년 초에는 전국의 TV중계방송을 통한 홍보로 가족스포츠 및 우리 국민의 가장 선호도 높은 스포츠, 대중의 스포츠로 각광받게 되었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난황을 거듭하던 한국프로 볼링협회의 태동은 1995년 8월 문화체육부의 정식 승인을 받아 KPBA(Korea Professional Bowling Association) 한국프로볼링협회로 출범하게 되었고, 1997년 4월 창립총회를 거쳐 출범한 한국 지공사 연합회의 발족은 우리나라 볼링계를 더더욱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1998년 3월에는 서울 잠실의 KBC 전용경기장의 오픈으로 볼링계의 숙원사업을 이루었다. 2000년 5월 현재 전국에 약980여개 볼링장에서 약 600만명 이상의 동호인이 고정적으로 볼링을 즐기는 것으로 추산되고 이러한 발전으로 아시아 및 세계무대에서의 크고작은 입상으로 한국 볼링의 위상을 드높였고, 고정적인 국제 오픈대회와 세계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한편 지난해 제14회 세계볼링선수권대회 여자부 3인조,5인조의 금메달 영광은 새천년 새시대를 열어가는 우리나라 볼링발전의 새로운 신호탄이라 하겠다.
*자료제공:드림퍼펙트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