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단상.
1.
아침.
성당 나들이(교중미사) 준비에 부선을 떠는 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하나.
귀에 익으나 제목과 가수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샤잠(Shazam)'으로 확인해 본다.
'아, 싸이구나!'
<기댈 곳>이란 노래다.
새삼 집중하며 노랫말을 곱씹어 가며 듣자니 사뭇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솔직히 난 세상보다 한참 부족해요
솔직히 난 세상만큼 차갑진 못해요
(...)
버틸 거야 견딜 거야 괜찮을 거야
하지만 버틴다고 계속 버텨지지는 않네요
그래요 나 기댈 곳이 필요해요
그대여 나의 기댈 곳이 돼줘요"
순간 가슴이 울컥하며 어제 우연히 TV에서 본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K-장녀연대기, 장녀들>(KBS).
예전에 방영된 프로그램을 명절 전이라고 다시 내보낸 듯하다. 우리네 오누이들이, 특히 장녀들이,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이야기들이다. 마눌과 함께 지켜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또 삼키었었다. 나의 누이들과, 친지들과, 주변의 아낙들이 함께 떠올라서.
세상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여전히 살아가기 힘들지만
그래도 기댈 곳만큼은 많았으면 좋겠다.
아니, 많을 것이다.
2.
교중미사.
오늘따라 유난히 참례한 교우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좁디 좁은 성당에 플라스틱 보조 의자까지 줄지어 내놓았다.
'명절 연휴라고 여행객 교우들이 많이들 오셨나?'
두 초딩 꼬마 아이의 세례식을 겸한 미사다.
오호~~. 아무렴.
시골 성당에서 아이들을 보기란 금싸라기 같은데
그런 실정에서 귀한 새싹 천주쟁이가 태어나는 거다.
모르긴 모르겠으되 하객(?)들도 여럿 모였을 것이다.
꼬맹이들에게 이 작은 공동체가 든든한 <기댈 곳>이 될 수있기를.
3.
제대 뒷면에 못보던 배너 하나가 걸려있다.
주임 신부 왈, 연말 성탄 시기에 걸었어야 할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이제서야 뒤늦게 걸었더란다.
희년(Jubilee year, Anno Jubiaeo).
매 25년마다 기념하고 그 뜻을 새기는 특별한 해.
2025년 올해가 그 희년이라고.
원래는 50년(대희년)마다 기념하였으나 그 기간이 너무 길어 반으로 뚝 잘라 25년 주기의 희년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주임 신부의 설명이 있었다.
히브리어 '요벨'에서 유래.
레위기(25, 8~22))의 기록, 즉 안식년을 일곱 번(49년) 헤아린 후 그 다음 해인 50년 째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해방을 선포해야 한다는 구절을 그 근거로 한다.
레위기가 바빌론 유폐 기간(기원전 5-6세기) 중에 씌어진 것을 감안한다면 노예살이 하던 중 유대인의 해방에 대한 염원을 기렸다고 볼 수 있겠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서 5,5)
프란치스코 교황이 금번 희년에 선정한 '칙어'다.
라틴어 원어로는 Spes Non Confundit.
영어 성서에는 'Hope does not disappoint'로 기록되어 있다. 암만,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인즉.
이기범(요셉) 신부는 작금의 시국에 비추어 이 칙어가 매우 마음에 드는 눈치다.
4.
멕시코 주재시 가깝게 지냈던 벗으로부터 연락.
명절 연휴를 맞아 부부가 드라이브 삼아 속초에 내려왔단다. 같은 천주쟁이에 그룹 관계사 주재원 출신의 OB.
벌써 20여 년 지기가 된다.
우연인지 이이도 딸만 둘이다.
차녀를 작년에 먼저 출가시켰다.
간만에 두 쌍이 어우러져 회포를 풀 수 있겠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하시라도 불역역호한 법이다.
덧.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기댈 곳>의 또다른 버전 Top4.
개인적으론 김필이 단연 압권이다.
https://youtube.com/shorts/JMAg84RGMc8?si=RW68DEurkDkE9lJz
https://youtu.be/iAEM8KGTl_E?si=USRTHsRMRGz_DB9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