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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하루...again.

작성자동명항바라기|작성시간26.09.05|조회수67 목록 댓글 0

누님 께,

 

영원의 세계, 천국에서 이제는 많이 평안해지셨는지요.

고통 없이. 근심 없이.

 

'조르주 베르나노스'라는 20세기 초. 중반을 살다 간 프랑스 문호의 책 읽기를 최근 마쳤습니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문학과 지성사, 2026)라는 제목의.

총 254쪽의 작은 책자입니다. 그렇지만 읽기에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역사서(특히 프랑스 혁명사 부분)를 함께 뒤적이며 읽었겠지요.

 

제목이 일러주는 바와 같이 콩피에뉴(파리에서 약 80km 북북동 쪽에 위치한 소도시)의 봉쇄수도원(가르멜 수도회)의 수녀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기록된 작은 책자입니다. 분량은 적지만 읽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옮긴 이(정영란)가 베르나노스 연구를 전공한 전문가입니다. 그 때문인지 촘촘히 기록된 각주의 내용과 말미의 '옮긴이의 말'이 본문의 내용 못지않게 분량이 많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가 만연했던 시절, 단두대에서 차례로 순교한 16명 '거룩한 맨발 강생 가르멜 수녀회' 수녀들의 이야기입니다. 1797년 7월 17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지난 4월, 유럽 성지순례지 중 하나였던 스페인 아빌라(Avilla)의 성 데레사 생가와 성당을 둘러봤던지라 제목만 보고 반가움에 덜커덕 구입했더랬죠.

눈아래 내려다 보이는 스페인의 아빌라(Avilla).

가르멜 수도회를 설립한 맨발의 성녀 데레사. 다녀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개월 여가 지났군요.


 

단두대 위에서 적색순교(피로써 믿음을 지키는)하는 이들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과 장면이 영화의 장면들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15명 다른 수녀들의 순교 서원 이행도 그러하지만, 그 서원을 저버리고 수녀원을 탈출(?)하여 도망침으로써 굴욕의 시련을 겪은(이주연 기자, 가톨릭 신문) 주인공, '그리스도 임종 고난의 블랑슈 수녀'가 최후의 1인으로 마지막에 죽음을 받아 안는 장면은 드라마틱합니다.

"수레의 창살 너머로 공포에 질린 블랑슈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거대한 침묵. 블랑슈의 얼굴은 용기로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블랑슈가 노래를 시작한다.(...)
환한 모습으로 무릎 꿇은 블랑슈 주위로 군중들이 출렁인다."(p.222)

 

블랑슈가 부르는 '노래'는 그녀보다 앞서서 순교한 수녀들이 부른 노래와 같습니다. 라틴어 성령 송가이자 기도문인 '오소서, 창조주시여(Veni Creator)'입니다. 가톨릭 성가(145, 146) '임하소서 성령이여'가 바로 그것이죠.

실제 영화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로 먼저 쓰인 것을 작가 병사 후 평생의 친구이자 뛰어난 평론가인 알베르 베갱이 그 육필 원고 간행을 주선했다죠. 작품을 연극 대본으로 제시하고 제목을 정한 것도 알베르 베갱이라고 하는군요. 이 베갱의 판본에서는 Veni Creator의 라틴어 가사 일부를 작품 대미에 인상적으로 박아 놓았다고 합니다.(p.221)

"Deo Patri sit gloria(성부 대전 영광이여)
Et Filio qui a mortuis(부활하신 성자께와)
Surrexit aca Praclito(위로자신 성령에게)
In saeculorum saecula(무궁 영광이 있어지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인물이 있습니다.

먼저 선종(작품 속에서는 병사, 실제 역사에서는 7월 17일 당일 함께 순교)한 전임 수도원 원장이 수녀원 생활이 불안하기만 한 블랑슈 수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던 '강생의 마리아' 수녀. 수녀원 전속 사제는 단두대 처형의 광풍이 불던 당일, 마리아 수녀에게 성심을 다해 호소합니다.

"바로 그 피, 네, 그 피를 천주께서 수녀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고 수녀님이 흘려야 합니다.(...)
수녀님이 똑바로 바라보아야 할 다른 눈길, 그 단 하나의 눈길만 생각하십시오."(p.220)

 

전속 사제가 권하는 바는 바로 '백색 순교'입니다.

마리아 수녀가 제안해 발의한 순교 서원을 본인 자신이 이행하지 못하게 된 기막힌 정황이 단순히 불명예가 아니며, 그러니 가르멜의 역사 기록자가 될 것임을, 이 모든 일의 증언자가 됨으로써 '십자가상 예수의 눈길과 일치한 죽음'을 맞을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강생의 마리아 수녀의 증언이 없었다면, 이들 16인 수녀의 시복(1906년) 및 시성(2024년 12월 18일, 교황 프란치스코)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순교에 버금가는 마음의 고통'을 마리아 수녀는 살아 있는 내내 감내해야 했다는 겁니다.(p.221 각주)

 


 

지루한 가을장마 중에 모처럼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려온 오늘, 단촐한 아침 식사 후 마눌과 함께 인근 야트막한 산(주봉산)에 올랐습니다. 마눌이 가깝게 지내는 이웃으로부터 얻은 실생활 정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산의 산책길이었습니다. 과연 오르기에 부담 없는, 유유자적하며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키며 근력을 다질 수 있는 정도의 오르막길이더군요. 마치 먼저 살던 곳, 개포의 대모산이나 구룡산과 흡사합니다.

주봉산은 청대산과 설악의 달마봉과 울산바위를 잇는 중간 능선에 위치합니다. 낮고 완만하나 허리, 무릎 관절, 발가락 등이 온전치 않은 마눌에게는 그래도 도전적입니다.


 

미음완보하는 중에도 내내 가르멜의 수녀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나도 자신의 약함과 마침내 화해할 수 있을는지.

'단 하나의 눈길'과 나도 마주칠 수 있겠는지.

나름 입에 붙었다고 생각하던 성가(145번)를 맘 속으로 불러보려 했으나 어쩐 일인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가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멜로디는 입술 밖으로 흘러나올 줄 알았더니만.

 

'하산하자니 아직 멀었구나'

정상에 다다르기도 전에 밀려오는 하찮은 좌절감이라니요.

…….

평범한 하루가 또 저물었습니다.

지상의 소식, 더 자주 올리겠습니다.

행여 게으름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화요가족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10월, 프라이스 신부님을 뵈러 용인으로 성묘를 다녀오기로 했겠죠.

누님 몫, 성실히 이행하겠습니다.

하산길 중간에 만난 배밭입니다. 마눌이 인심 좋은 시골 노인으로부터 덤을 듬뿍 받았습니다.

점심차 들른 식당에서 바라본 주봉산. 그 밑을 지나는 한무더기의 푸릇푸릇한 어린 생명들이 활기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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