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바람의 색깔이 확연히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 사이에.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결에 덮고 자던 얇은 여름 이불을 마눌은 어느 사이 가을 이불로 바꾸었겠지요.
늦은 오후 포구의 가을 햇빛. 황금빛이 찬란하다못해 황홀합니다. 자연은, 신, 당신은 참으로 신묘하십니다.
철지난 해변도, 구름낀 산아래 호수도 호젓함이 역력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시(詩)를 논할 때는 시를 쓰듯이 해야 한다'(김수영)고 했다지요.
'시를 산문으로 논하면 산문이지 시가 아니다'라고도하더군요.(이성복, <극지의 시>, p.28, 2015)
오늘, 시는 노래로 논하고 불러도 전혀 손색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맛일 수도 있음을 감각으로 확인합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편지> 中)
오전, 피트니스 센터에서 온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용을 쓰고 있는 중에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노래입니다. DJ 이문세 '형님'(빠른 59년 생. 고로, 58 개띠의 학령일 테니 형님이 맞습니다)이 취한 듯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크으. 이 노래를 김민기의 목소리로 들으니 이렇게 다르군요. 고은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습니다."(정확한 멘트는 아님. 내용은 그러함)
'오잉? 고은 작시, 김민기 작곡이라고라고라?'
저녁 식탁.
마눌이 뚝딱 만들어 준 멋지고 맛난 마파두부를 화이트 와인 안주 삼으며 즐기는 중에.
<가을편지> 처음 두 소절을 읊어댄 후.
"이 노랫말을 누가 썼는 줄 아시는감?"
"어? 누구더라... 무슨 '*은' 아닌가?"
"응, 고은. 몇 년 전 미투의 당사자... 그럼, 작곡자는 누구게?"
"어? 누구 가수 아니었나?"
"응, 김민기...."
"아, 맞아 맞아!!"
몇 숟갈 뜨던 마눌이 후다닥 클리어 파일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오래전, 그녀가 클래식 기타 배울 당시의 악보집이었죠. 그 악보 속에 <가을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마눌의 머릿속에는 이들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 남아 있었군요.
마눌의 파일 속 <가을편지> 악보. 그리고 <가을편지> 전문.
갑자기 <가을편지>에 대한 서치 본능이 솟구쳤습니다. '나무위키'와 '제미나이'를 동원해 보았겠죠. 살펴본 내용은 이러합니다.
1968년 겨울 어느 날, 동숭동 주막집에서 시인 고은(1933년 생), 음악평론가이자 당시의 유명 라디오 DJ 최경식(1930년 생), 최경식의 여동생 최양숙(1937년 생, 서울대 성악과 졸)과 그녀의 대학 친구 김광희(서울대 작곡과 졸)가 모여 앉았습니다. 최경식이 고은에게 부탁하기를, 누이동생 최양숙을 위해 노랫말 하나 만들어 달랬답니다. 그래서 나온 시(노랫말)가 그 유명한 <세노야>. 이 노랫말에 동석했던 김광희가 곡을 붙였다는군요. 최양숙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의 1호 대중가수이자 샹송 가수로 <황혼의 엘레지>로 이미 유명세를 탔었더랍니다. <세노야>는 익히 아시는 대로 이후 양희은이 불러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xEuesGd9ehg?si=283vGE40-rLtNl6U
원곡자 최양숙 버전의 <세노야>. 내게는 무엇보다 그녀의 음색과 감성이 매력적입니다.
20대 초반, 서강대 재학시절에 등장한 양희은. 명동 세시봉 시절, 고 이종환은 청바지 차림의 수수한(?) 양희은을 ‘괴물’이라며 데리고 나타났다죠.
언젠가 다시 고은을 만난 최경식, 노랫말 하나를 더 부탁했더니만 즉석에서 지은 것이 바로 <가을편지>. 이를 김광희가 이번에는 서울대 후배인 김민기에게 곡을 의뢰했고, 이렇게 하여 세상에 나온 <가을 편지>를 최양숙이 처음 부르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를 김민기가 자신의 목소리로 부른 때는 한참 후인 1993년.
https://youtu.be/42znUdWkuQQ?si=w8W1qBXUxFnPQ7LG
결론만 놓고 보자면,
<세노야>, <가을편지>는 모두 고은의 시가 노래로 불려져 '오천 만'의 애창곡(또는, 널리 알려진)이 되었고, 처음 불렀던 가수의 버전보다는 리메이크 버전(<가을편지>는 작곡자 본인의 버전)이 더 잘 알려지게 된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최양숙의 노래 전집을 감상한 소감으로는 그녀의 음색, 창법과 가창력(어련하겠습니까), 감성 등은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마치 7080 시대의 포크나 발라드를 듣는 듯합니다. 따아악~~, 제 취향입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YZRvsZM-ykKxvwoPEtc7MP7489P_rexP&si=_DqBYYtu_K88v_pw
최양숙 - 꽃피우는 아이 (1971)
<꽃피우는 아이>도 김민기가 만든 곡. 시대상이 엿보입니다./앨범 속의 최양숙. 지적인 외모로도 화제를 몰고 다녔던 듯합니다.
덧.
. 대학에서 정통 성악을 배운 최양숙은 60년 대에 샹송을 본격 소개한 품격 있는 대중 가수로도 평가받는 듯합니다. 비록 당시 성악계(특히 그녀의 서울대 스승이었다는 현제명 선생)에서 그녀를 냉랭하게 대하긴 했다지만. 그녀가 이 땅에서 거의 처음으로 불렀다 싶은 샹송으로 <고엽(Autumn Leaves)>이 있는데 음원을 찾기가 쉽지 않군요.
샹송 가수로서의 최양숙의 이미지.
. 서치 중에 대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최근 런던 공연에서 이 <고엽>을 자신이 직접 편곡하여 연주한 것이 눈에 띕니다.
https://youtu.be/2RHLDvkFRJo?si=ZM42FaKNx9FziWno
. 시인 고은의 근황이 궁금하여 역시 찾아보았으나 별무소식입니다. '미투'에 대한 역사와 사회의 평가가 중하고도 냉혹합니다. 일제 부역에도 영화롭게 생을 지새다 떠나간 이들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