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8일 (수) 다비드 리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케뎀
#2번째 TIME
결혼해서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제일 불행한 경우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말이 통해야 한다. 가만히 보면,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 간다. 그런데 거기서 아브라함과 얘기를 나눈다. 구속되고 헌신된 자들은 말이 통한다. 그 권위 아래 들어갈 때 말이 통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권위 아래 들어가지 않는 한 절대로 예수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대해서 아무리 세미나를 많이 다녀도 예수님의 권위를 모르고 헌신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들리지 않는다. 들려도 신경질 난다. 본인이 이해 못할 말을 하기 때문이다.
(계22:20~21)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주님은 이 땅으로 다시 오신다. 그 진리를 사수하게 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주님이 재림의 뿌리를 두신 곳이다. 재림에 대한 모든 말씀을 교회에 두셨다. 교회는 주님이 피로 산 곳이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이다. 교회는 주님께 속해있기 때문에 교회는 그 마샬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만이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는 이 말씀을 사수하고 지켜내야 하며, 기도해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한다.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주님이 빛으로 오시면 상당히 거북하다고 했다. 주님의 오심을 영접치 않는 자가 오히려 주의 백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주님의 오심을 기도하지 못한다. 주님이 의로 나타나시면 그 빛의 순결함과 거룩함은 우리가 견디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보혈을 가지지 않는 자는 절대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도할 수 없다. 또한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상당히 힘들어 진다.
(합2: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사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다는 것이다. 주님이 오시면 이 일이 벌어진다. 이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온 세상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다. 우리는 이 날을 사모하며 기다린다. 그런데 정작 주의 백성들은 이것을 영접치 아니한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은 지식이 다르면 아주 힘들다. 지식이 다르면 괴롭다. 다른 영역의 지식을 이야기하면 힘들다. 주님이 나타나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주님이 나타나셔서 주님의 지식을 얘기한다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영접치 아니하게 된다.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자신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을 경우에는 그 세상은 힘든 세상이 된다. 여호와는 영원을 총괄하시는 분이시다. 그 때는 마샬의 언어가 필요하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지 그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태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근본은 케뎀에 있다는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케뎀이라는 것은 창세 전이다. 태초 이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다 태초 전에 시작되었는데, 이것 전에 있던 자가 나타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분이 이것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해야 완성되는지를 아실 것이다. 주님은 시작과 완성을 다 주관하신다. 이 분이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주님은 케뎀에서의 일들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주된 관심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실제로 나타나서 주님의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영접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천년왕국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우리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
주님은 굉장히 부자이시다. 그래서 전 지구상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부를 주님은 가지고 계신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다. 부라는 것은 나라를 세울 때 필요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궁은 반드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부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부유하게 한다. 그래서 왕은 항상 부유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많은 재정을 움직인다. 계시록은 이 땅에 주님이 임하시는 시작을 알린다. 그 때 천사들이 말하길 모든 부가 어린 양에게 있다고 외친다. 그 부를 가지고 내려오셔서 나라를 세우신다. 이 분이 왕궁을 세우신다. 이것을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한다.
새 예루살렘은 주로 보석으로 짓는다. 새 예루살렘 성의 장, 광, 고가 1만2천 스타디움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 크기가 중동의 크기와 같다. 이 세상의 어떤 왕도 어떤 부를 가진 자도 이만한 크기의 건축을 할 꿈도 못 꾼다. 사단은 자신이 가진 부를 뽐내기 위해서 굉장한 것들을 세운다. 그런데 그것은 주님이 가지고 있는 부를 이뤄낼 것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주님이 나타나셔서 새 예루살렘 성을 가지고 내려온다고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다 영접하지 않는다. 지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부를 본 적도 없으며, 가능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이것은 어린 양의 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성경은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사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 중 하나가 방언이다. 방언으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샬 시스템이라는 주님의 언어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게 때문에 도저히 주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영으로 자꾸 말하는 것이다. 방언 많이 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비밀을 자꾸 말해내야 한다. 주님의 근본이 케뎀에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할 때 우리는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주님이 임하셔서 말씀하실 때 영접하게 된다.
이것도 헌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헌신하지 않은 자는 내 언어 시스템으로 이해해야만 만족한다. 그러나 헌신한 자는 권위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헌신을 하지 않으면 계시록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무서운 내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읽어도 이 계시록이 얼마나 주님이 완성하시는데 중요한 책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지 않는다.
주님의 근본은 케뎀에 있는데, 케뎀 방식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선지자들은 주님께 부르심 받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케뎀에서 택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하신 것이다. 이 말은 나도 근본을 케뎀으로 집어 넣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권위자가 케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삶도 영원으로 가야 한다. 케뎀에서는 영원에 관한 일들을 한다. 부활이라는 것은 우리의 근본을 케뎀으로 가게 하고, 영원으로 가게 한다. 부활생명이 있어야지 마샬 언어 시스템을 배우게 된다. 주님의 언어는 근본이 케뎀에 있는 언어이고, 기본적으로 영원에 관련된 것을 설명하는 언어이다. 부활생명이 아니면 이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활해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믿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주님의 프로젝트는 영원에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 이전에 계속해서 부활을 말씀하신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케뎀을 알 수 없고, 영원을 알 수도 없으며, 주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고전15:14~16)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이 땅에서의 부활은 중요하다. 주님은 모든 선지자들에게 케뎀을 가르치신다. 유대인들은 이 케뎀을 카누 경기에 비교한다. 카누 경기는 노를 저으면 뒤로 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카누 경기의 삶이다. 케뎀을 바라보는 삶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뒤에 있고 과거가 앞에 있다. 우리는 절대 앞에 있는 일을 알아 맞힐 수 없다. 미래가 아닌 케뎀을 바라보면 앞에 있는 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케뎀을 바라보는 라이프 스타일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면 증거가 하나도 없다. 주님이 선지자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케뎀 방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얘기해 놓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근본이 케뎀에 있으신 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 말이 통하게 된다.
케뎀이라는 말이 히브리어에서는 태고, 상고라는 말도 되지만, 동방이라는 뜻도 된다. 마지막 때는 동방에서 주님의 군대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예언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동방에 있는 자들이다. 중보의 군대라는 것은 케뎀을 보는 군대이다. 케뎀 방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명심하라. 하나님이 미리 말씀한 것들을 그대로 이루는 군대인 것이다. 우리가 케뎀 방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배우는 정말 중요한 도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관련된 것은 주님이 다 미리 이야기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이스라엘은 케뎀 방식으로 기도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기도를 하라. 이스라엘에 대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400여 개의 예언들이 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아맞힐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님이 미래를 다 알려 놓으셨기 때문이다.
(히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더 좋은 부활이 있다.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활이 무엇인가? 사단이 순교자의 상이 엄청 큰 것을 알면서도 죽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두려움의 영을 주기 위해서이다. 두려움의 영이 임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70년의 삶을 선택한다. 영원한 삶에 대한 관념을 못 가지게 하기 위해 죽음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사단은 항상 사망으로 위협한다. 부활은 너무너무 중요하다.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을 반드시 유지하고 인내하고 지켜야만 하나님 말씀이 다 이해 된다. 그렇게 되면 영원에 관심이 있어 지고, 영원 속에서의 삶을 지금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영원에 접속된 자들이다. 우리는 반드시 부활을 믿어야 한다. 종교는 부활 시스템을 제일 싫어한다. 종교는 부활을 못 가르치게 한다. 부활을 안 가르치면 세상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과 말이 안 통한다.
(행4: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계속 부활을 전한다.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이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부활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한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저는 선교사가 되고 나서 이 말씀을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증인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어떤 증인일까? 예수님이 부활한 것에 대한 증인인 것이다. 내가 땅 끝까지 전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부활했고, 우리도 그것을 따른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활을 전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행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사도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전했다. 그래서 어떤 자는 조롱하며, 어떤 자는 다시 듣겠다고 했다. 부활을 전해야만, 믿어야만 예수님과 말이 통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영원으로 확장되어야만 마샬 시스템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언어는 수명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마샬 시스템은 영원이라는 것을 전재로 하고 있다. 이 땅에서 주님의 일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부활을 전하고 믿어라. 그래야만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영원한 계획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케뎀을 볼 수 있다. 돌아서라. 우리의 미래를 향해 달려가려고 하지 말고 돌아서라. 케뎀으로 돌아서라. 주님은 이미 태초 전에 다 말씀해 놓으셨다. 그 분의 언어로 돌아서라. 이것이 바로 회개이다.
회개라는 것은 슈브라는 뜻이다. 돌아선다는 뜻이다. 저는 이번 철야 파수학교를 통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좀 더 명확히 전하기 원한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단지 미래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내가 부활의 생명과 능력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님의 다시오심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지금 돌아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