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7일 (화) 다비드 리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신부의 패러다임
#1번째 TIME
결혼이라는 것은 존재를 주는 것이다. 존재를 주는 위대한 창조 중에 하나가 결혼이다. 반드시 결혼은 모든 인간의 삶에서 가장 존귀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 시대 가운데 전체적으로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는 젊은 청년들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 드린다. 그래서 이것을 Bridal Paradigm이라고 한다. 사실 하나님이 그 분의 존재를 인간에게 주시려고 결혼이라는 것을 상정하신 것이다. 결혼을 우리가 일단 알아야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부터 이 계획은 치밀하게 진행된다.
사단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 중 하나는 인스턴트 사랑이다. 존재를 주는 것은 쉽게 하면 망한다. 그런데 존재를 그냥 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형상과 모양이 파괴 되어지면 존재를 그냥 막 주게 된다. 기다리지를 못한다. 존재가 연합될 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단은 인스턴트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진정한 사랑이 식어지면서 존재를 주는 그런 사랑을 못하게 된다. 우리는 먼저 영의 사랑이 시작되고, 혼의 사랑, 육의 사랑의 순서대로 가야 한다. 이런 사랑은 주님과의 사랑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분의 사랑이 우리의 영 가운데 와 계신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은 아가서를 깊이 푸신다.
(아1: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아가서 1장 1절부터 6절까지는 주님과 깊은 영의 사랑에 빠진 여인의 삶을 표현한다. 그래서 내 영 깊은 곳에 키스해 달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라는 것은 원어로 살펴보면 “내 혼의 사랑이여!”라는 뜻이다. 영의 사랑 다음에 중요한 것은 혼의 사랑이다. 영의 사랑이 시작되면 이유를 모르는데 좋아지게 된다. 예수님께 끌리는 것이 예수님을 알아서 끌리는 것이 아니다. 그 분에게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알지 못할 때 향기가 계속 끌리게 만든다. 바로 이것이 영의 사랑이다.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영의 사랑이 싹 트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기도를 하면 내가 아무 것도 안 해도 그 사람이 나를 왠지 좋아하게 된다. 제가 가끔 집회를 다니다 보면 왠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알아보면 그 자는 강사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도 한 번도 안한 사람이 와서 이메일을 알려 달라고 하면 왠지 영어가 잘 써지지 않는다. 영의 사랑이 시작되면 왠지 향기가 난다. 그러나 사람은 거기서 멈춰져서는 안 된다. 그 영의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혼의 사랑이 시작되어야 한다. 혼의 사랑이라는 것은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과 혼의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주님이 우리와 영의 사랑을 시작하신다. 그런 다음에 주는 것이 혼의 사랑이다. 아가서에서 본격적인 사랑은 혼의 사랑이다. 우리가 주님과 다른 생각을 하면 견딜 수 없도록 하신다.
사랑이라는 것은 생각이 같아야 한다. 생각이 같이 공유되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이 사랑의 종착역이 존재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종착역이 쾌락을 얻는 것이라면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 사랑의 종착역이 존재를 얻는 것이라면 결국은 삶을 합치는 것이다. 존재의 기반이 삶이다. 그래서 삶을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삶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풀어져야 한다. 삶이 합쳐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로 육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주님과 연애하는 단계이다. 주님과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주님과 연애하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의 사랑이다. 그래서 아가서 1장 7절에서 “내 혼의 사랑”이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아하바 나프쉬”
(고전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지금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시기이다.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영의 사랑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영을 영접해야 한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그리고 나서 혼이 주님과 생각이 같아진다. 여기에 하나님의 열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말씀 사역이라고 한다.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말씀이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가 없으면 사랑을 할 수 없다. 말이 있어야 생각을 나눈다. 지금 이 시대 가운데 주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계속 주님과 생각이 같아지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과 의지가 같아지라고 하신다. 주님이 의지를 발휘하는 영역에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의지가 다르면 삶을 같이 살아낼 수 없다. 그리고 의지를 발휘하는 영역이 다르면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존재가 합쳐지지 않는다. 우리는 의지의 영역이 같아야 한다.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영역에서 의지를 발휘하고 계시는지 아는가? 오늘 날 우리가 가장 의지를 발휘하는 영역이 어딘가? 이것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혼의 사랑을 잘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뜻 없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은 그 분의 뜻을 이루고자 계속 중보하는 것이다. 그 분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고 의지를 발휘하려는 만큼 우리의 의지도 같은가? 그 분이 24시간 기도 운동을 일으키는 일에 우리도 같은 의지가 있는가? 그럴 때 혼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경륜을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경륜이라는 것은 시기, 때에 드러나는 주님의 의지이다. 사랑의 힘은 이 시기를 아는 것이다. 이것을 반드시 알아내고야 만다. 영적으로 어미가 되고 아비가 되면 시기를 안다. 사랑이 없이 누군가를 양육하려고 하고, 내가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 사람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 무조건 끌고 가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양식을 구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전방에 배치시킨다. 사랑은 시기를 기가 막히게 안다. 사랑이 없으면 그저 어린아이의 호감을 사고자 매일 사탕을 준다. 그러나 어미들은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탕을 주지 않는다. 어미들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 때를 알고 혼내야 할 때를 알며, 단단한 음식을 먹여야 할 때를 안다. 이것이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주님과 의지를 같이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 한다. 주님이 지금 이 때에 무엇을 하는가를 말이다. 의지를 같이 한다는 것은 때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무엇을 하는 때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랑이 없이 일을 같이 하려고 하면 때를 분별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제일 골치 아프다. 때를 분별해서 그 때에 주님이 어떤 의지를 발휘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시대에 주님의 강력한 의지가 어디에 발휘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 의지와 같이 맞물려 져야 한다.
(사49:12~13)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어떤 한 날을 바라보고 있는데, 먼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말씀들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는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일에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이다. 이 시대 가운데서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경륜 속에서 의지를 발휘하시는 일 중 하나가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것이다. 이것을 방해하면 다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알아야 한다.
(사43:5~7)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지금 이스라엘의 동쪽은 이란이며, 더 나아가면 중국까지 볼 수 있다. 또한 서쪽은 유럽, 미국이다. 아시아 쪽에서 온 유대인들은 우리와 정서가 굉장히 비슷해서 집 값도 잘 깎아 준다. 그런데 서쪽에서 온 유대인들은 돈이 생명이라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절대 집 값을 안 깎아 준다. 그런데 북쪽에게는 내놓으라고 명령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님이 계속 이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오늘 날 가장 강력하게 일하신다. 주님이 계속 명령하신다. 이것이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의 주된 의지 중 하나이다. 주님이 이 사역을 하시는데, 만약에 우리가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은 참 곤란하실 것이다. 저는 지금 사역의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45:25)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이것이 로마서 11장에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구절과 같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주께 돌아오며, 이 말씀이 성취되는 때이다. 주님께서 이 일을 가장 열심히 하신다. 지난 2000년 동안에는 우리에게 집중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에게 집중해야 한다. 여기에 같은 의지를 발휘하길 축복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감정의 영역이다. 마지막 때는 불법의 세력들이 감정을 극심하게 파괴한다. 우리는 감정을 잘 지켜야 한다. 감정이 정상이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 감정이 정상적이지 않으면 사랑을 하지 못한다. 감정이 잘 작동될 곳에 작동해야 한다. 감정이 파괴 되어지면 기뻐할 만한 일에 기뻐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울증이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이 같아진다. 감정이 같아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들의 감정은 옛 자아가 원하는 것과 같아지면 안 된다. 옛 자아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좋아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싫어하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 사랑을 할 수 없다. 기뻐하는 것이 같아야만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기뻐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오늘부터는 결심하시기 바란다. 내 육신이 좋아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도록 결심하라.
오늘 날 주님께서 무슨 일에 가장 기뻐하시는지 그것을 알고 있는가? 이것이 주님과 우리의 친밀감이다. 주님은 이 시대 가운데 왜 우리에게 자꾸 이스라엘이 이야기하시는가? 이것은 본질이고 중심이다. 명확한 것이다.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주님에게 있어서 명확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날이라는 단어만 찾아서 성경을 읽어보라. 40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 이 영역에서 주님과 생각과 감정이 같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 같기를 원한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데 우리에게 주님과 같은 기쁨이 있는가? 마지막 때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는 말씀처럼 명확한 것은 성경에 없다. 그런데 이것에 동의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고 싶다면 어불성설이다. 이스라엘 회복에 주님과 똑같이 기뻐해 보라. 그러면 주님께서 다른 것도 말씀하신다.
저는 주님이 이스라엘 선교사로 부르셨다. 이스라엘 선교를 할 만 하니까 다시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주님이 본질적으로 두신 명확한 것에 대해서 같이 동의를 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기도선교사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엡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혼이라는 것은 굉장한 비밀이다. 하나님이 크다고 말씀하시면 굉장히 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남자가 그리스도라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다. 여자는 교회이다. 이 비밀이 무지 크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남자가 부모를 떠난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부모를 떠났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 지구상에 오셨다. 그리고 여자와 연합을 한다. 그러고 나면 한 몸이 된다. 연합을 하는 단계를 혼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연합이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다바크’라고 한다. 다바크는 ‘들러 붙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생각, 의지, 감정이 같아지는 것이다. 생각이 연합하면 놀라운 파워가 일어난다.
어제 우리가 교회의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교회의 기도는 두 사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주님과 생각, 의지, 감정이 같아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사단은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하도록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엉뚱한 데 신경을 쓰고 고민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혼하고 싶은 그 갈망이 있고, 고민이 있으면 주님은 벌써 오셨을 것이다. 애초에 지구는 결혼에 대한 열망으로 뒤덮이게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혼에 대한 열망을 주님께서는 온 지구에 풀어 놓으셨다. 그런데 사단은 그것을 뒤틀어서 동성애, 동거 등을 하게 한다. 결혼을 위한 기도를 할 때 가장 먼저 나와야 할 기도가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 열망이 마지막 때 전 지구를 뒤덮게 되어 있다. 이 사랑의 영광의 불길이 모든 사람을 다 데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력이 주어진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은 연합의 시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주님을 자꾸 육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주님을 육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사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육체적인 사랑을 가장 실제적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아가서에서 마지막인 8장에 거론된다. 아직 육체적인 사랑은 오지 않았다. 인스턴트 사랑은 자꾸 혼의 사랑을 이루지 않은 채로 주님과 육신적인 만남으로 친밀감을 가지려고 한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방문해 주시면 내가 주님과 바로 친밀해 질 것 같은가? 혼의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육신적인 결합이 있으면 생각을 나누지 않는다. 생각이 나누려면 고통이 수반된다. 왜냐하면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님이 지금 육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잘못 추구하면 자꾸 주님을 육적으로 만나는 것에 중독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없으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별로 상관치 않는다. 그냥 육적으로 내게 터치해 달라고만 구한다. 어느 정도의 육적인 것은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콩닥콩닥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진리가 내려오면 내 가슴이 뛴다.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의 육적인 것이 나타난다. 그래서 주님의 진리가 내게 내려오면 어느 정도 뜨거움도 경험하는 것이다.
이 몸이라는 것은 마지막 때 굉장히 중요하다. 이 몸은 사랑의 클라이막스이다. 그래서 결혼을 해야지 한 몸이 된다. 혼전 순결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결혼 전에 육적인 사랑을 나누면 절대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이 아니다. 사단이 오늘 날 가장 꾀하는 것은, 이 사랑을 사람들로 하여금 거꾸로 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게 된다.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것이 다 내 것이 된다. 그 분과 결혼하면 다 얻게 된다. 그래서 만물이 우리 것이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결혼하면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된다. 주님은 그 분에게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신다. 이렇게 되면 사단이 갈 곳은 무저갱 밖에 없다. 사단이 가장 철저하게 막으려고 하는 것이 결혼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결혼만큼은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혼만큼은 막으려고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그 분의 존재를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더 몸의 사랑을 하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더 한 몸이 되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당장 나타나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혼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지지 않는 한 주님은 오실 수 없다.
24시간 기도사역 속에서 우리는 신부의 패러다임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와의 콩닥콩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 내 생각을 포기해야 하고, 거기에 주님의 생각을 채워야 한다. 우리의 감정을 내려 놓고, 의지도 내려놓아야 한다. 거기에 주님의 감정과 의지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주님과 연합하는 시대이다. 주님과의 연합이 일어나면 군대가 형성된다.
다바크가 되면 그 다음에 한 몸이 된다. 몸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는 ‘바싸르’라고 한다. 하나라는 것은 ‘에하드’라고 한다. ‘바싸르 에하드’ 바싸르가 하나가 된다는 소리다. 에하드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은 존재가 에하드 되어야 결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에하드 된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이다. 바싸르는 살이라는 말이다. 육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 중에 신비이다. 그런데 주님도 바싸르를 가지고 계신다. 부활체는 살과 뼈가 있다. 주님의 부활체와 우리의 부활체가 완전히 하나될 것을 말씀하신다. 에하드가 일어나면 생명이 충돌하지 않는다. 에하드라는 것은 놀라운 단계이다. 사실 우리의 몸은 에하드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은 다르지만 에하드 성이 있으면 하나가 되어 굴러가는 것이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에하드 안에서 있으면 그것이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에하드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생명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에하드를 모르면 전혀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리더쉽은 에하드의 리더쉽이다. 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다 딴짓하고 있는가? 하나의 생명도 똑 같은 짓을 하는 생명이 없다. 그런데 주님은 에하드 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에하드 안에 들어가게 되면 충돌하지 않고 놀라운 것이 된다. 주님이 왕이시라는 것은 에하드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통치 안에 들어오면 그 분의 뜻대로 다 움직인다. 에하드가 되면 굳이 때리지 않아도 저절로 가게 된다. 에하드 성에 있으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기가 막히게 옴직인다. 주님이 원하는 통치는 채찍으로 하는 통치가 아니다. 주님 안에 있게 되면 그냥 주님의 뜻이 내려 온다. 주님이 원하는 나라는 이런 나라이다. 주님은 이런 에하드를 추구하신다. 그런데 바로 이 에하드로 통치하시기 위해서는 통치의 머리인 그리스도가 먼저 교회와 에하드가 되시는 것이다.
(고전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우리 배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배는 음식을 위해서 있었다. 그리고 음식은 배를 위해서 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것을 폐하셨다. 내 배는 음식을 위해 있지 않다. 몸은 음란을 위해서 있지 않다. 이 말은 우리의 몸은 쾌락을 위해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몸이 존재하는가? 오직 주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또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다. 이것은 놀라운 선포이다. 주님은 결국 이것을 이루신다. 바싸르 에하드를 이루신다. 우리들의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고전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우리를 부활시키겠다고 하신다. 부활의 바싸르가 되어야 주님과 바싸르 에하드가 된다. 육의 사랑의 단계는 부활이 와야 한다.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기 원하는가? 이 시대는 이것에 대한 고통이 가증되는 시기이다. 모든 사랑은 결혼을 향해서 간다. 결혼을 향해서 가지 않으면 다 더러운 사랑이다. 모든 이성의 사랑은 결혼을 향해서 가야 한다. (동성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과 결혼하려면 부활해야 한다. 주님은 주님과 혼의 사랑을 나누는 자들을 부활 시킨다. 아가서는 부활에 이르는 사랑의 책이다. 아가서는 부활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부활의 때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때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 중에서 굉장히 어려운 말씀이다. 성경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그리고 부활이라는 것은 그것의 완성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이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 한번의 결혼이 필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갈망이 이루어지는 때가 부활의 때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다 주는 때인 것이다. 이것은 교리가 아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제가 한 모든 이야기를 사랑으로 바라보기를 축복한다. 그리고 주님과의 결혼을 갈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우리의 생각은 주님과 결혼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놀라운 지성이다. 우리의 의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하는 의지이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시는 일에 울어야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대하여 기뻐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 의지, 감정이 있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과 같은 생각, 의지, 감정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가서를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주님은 부활시키셔서 전 존재로 사랑하실 것이다. 그 날이 가까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