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7일 (월) 게리 윈즈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왕이신 신랑과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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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예수님의 계시 : 왕이신 신랑과 재판관 (계1장)
3강으로 뛰어 넘어 가겠다. 신랑이며 왕이자 심판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장이다.
* 계시록의 메시지 : 예수님의 장엄함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장엄함에 대한 책이다. 사람으로써 그 분의 권능과 영광에 대한 것과 이 땅에 모든 통치권을 취하실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그 분을 요한계시록 1장 2장 3장에서 계시하시는 것은 아주 명백한 목표가 있다. 그 분께서는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교회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저희가 준비되는 과정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더 알도록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압박감의 시간을 우리가 대비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계시들이 주어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요한과 함께 했던 그 대화가 생각난다. 예수님께서 사악한 자들의 손에 의해 핍박 받고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오늘 밤 나와 함께 설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홀로 걸으셔야 하는 길이 있으셨다. 바로 그 날 밤에는 어떠한 제자도 그 분과 함께 견뎌나갈 수 있는 제자가 없었다. 베드로가 처음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가 주님과 함께 견디겠다고 했다. 다른 제자들보다 자기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충성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너를 아주 사랑한다. 그런데 앞으로 너에게 닥칠 압박에 대해서 네가 잘 모른다. 그 유혹의 시간을 견뎌 나갈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하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를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셨을 때 베드로는 잠이 들어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그 압박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베드로는 그것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 성경이 나타내는 내용을 우리가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는 그 분과 함께 그 압박의 시간을 견뎌나갈 백성들을 가지고 있으실 것이다. 그 분의 신부로써 준비된 교회가 그 때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겪어야 될 준비과정은 베드로가 겪어야 했던 과정과 다르지 않다. 깨어 기도하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종말론에 대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보자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연인으로써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주님께 더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그렇지만 왕이자 심판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계시. 그리고 지금 지구상에 있는 모든 주권과 정부적인 권세가 예수님께 일관된다는 과정 가운데 이 세상이 보지 못했던 여러 갈등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이것을 위해서 준비하라”이다. 이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그 지식 가운데 나가는 것이다.
1~3장에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30가지의 다른 것을 계시해 준다. 그 시간 가운데 우리가 필요한 내용인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정보를 주신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것은 그 분의 백성이 그것으로 인해서 강화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왕이시자 심판자이신 신랑으로 오시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적인 것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준비되어야 할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 분이 바로 이런 것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그 분이 그 분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주신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이리로 와서 이것을 묵상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그것을 할 때 주님의 영이 우리를 강건케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자라날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자라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의 시간이 닥쳤을 때 우리가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우리에게 원천들이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어떤 강의를 듣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 묵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투자할 만한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게 하라. 여러분이 일상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예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 속에 가득 차게 하라. 여러분들이 일상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매 순간 예수님의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과 그 분의 영을 같이 하라. 그리고 성령님께 예수님을 계시해 달라고 구하십시요. 그것에 대한 약속은 어려운 시간이 닥쳤을 때 그 분이 여러분의 원천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 지금 교회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 이유 때문에 여러분을 선두주자로 부르신 것이다. 그 준비하는 과정들은 여러분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고 시간을 보내라.
이 계시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그런 계시들을 드러내게 하셨다. 다시 말하면 이런 계시가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일에 준비되기 위함이다. 세 가지 차원이 있다. 그 분은 신랑이며, 왕이시며, 심판주이시다.
7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7-8)
여기서 핵심은 “그의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이다. 예수님께서 아주 영광스런 신랑으로 오신다. 그렇지만 저는 이 곳에 나타난 것을 좋아한다. 그 아내가 스스로 준비하였다. 그리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도록 허락이 되었다. 여기에 아주 놀라운 복합적인 요소들이 있다. 의로 깨끗한 옷을 입게 허락하신다는 부분. 그러므로 이 과정 가운데 동의하면서 스스로 준비하십시요.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스스로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다. 그 반면에 이것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모두 다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에게 성령을 허락할 텐데, 그것을 동의하면 이루어라.” 라고 하신다. 그것은 과거에 제가 들었던 예와 비슷한데 예수님의 능력을 여러분에게 임하도록 허락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그것을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재능이 있는 음악가가 어떤 연주를 위해서 연습하는 것을 비유할 수 있다. 재능이라는 것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재능 자체로는 충분치 않다. 연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은혜와 훈련이 함께 주어졌을 때 성숙된 신자로써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주었노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너희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내가 아주 기다린다. 이제 이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라. 나의 나 된 모습대로 너희가 나에게 나아올 때 나의 능력을 너희에게 풀어놓겠다. 그렇지만 너희는 나에게 나아와야만 한다. 너희가 기도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나의 성품과 의에 대해서 묵상하라. 너희가 그러한 일들을 할 때 나의 능력을 너에게 부어줄 것이다.” 제가 믿기로 이 말씀들이 한국의 신자들에게 아주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제가 시애틀에 있는 아주 절친한 친구 중에 한국 사람이 있다. 아주 저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설명해 주기를 한국에 있을 때 압박 가운데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일제 치하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다 알고 있지만 일본 천왕을 숭배하도록 억압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 신자들의 경우 특별히 천왕에게 절하지 않으면 모든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 때를 위한 준비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바로 그 덫에 많은 신자들이 걸려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꼭 겟세마네에 베드로처럼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다른 기회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베드로는 그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으로 인한 절망감 가운데 울며 고뇌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 아주 깊은 회개를 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다시금 그런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 때는 베드로가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 되신 주님께 그의 생명을 드리는데 이르렀다.
제가 믿기로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그 자리로 초청하신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이 여러분 가운데 많은 자들이 순교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준비되어 있다. 바로 에스더인 선두주자이다. 여러분이 이제 다가올 어려움을 위해서 이 기회를 잡고 준비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억압의 시간이 다시금 이 지구에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타날 아주 사악한 지도자가 스스로 경배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그것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이것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다시금 일어날 것이다. 그 날에 준비된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일들이 놀라움으로 주어질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도전이 나에게는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 고백할 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가 너에게 절하지 않겠다.” 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교회가 스스로 준비되고 예비된 교회이다. 오직 왕의 명령만을 듣고 순종하는 교회이다.
제가 믿기로 성령님께서 중보의 자리로 여러분을 특권을 주시기 위해 부르시고 계신다고 믿는다. 베드로가 자신의 실패를 애통하고 고뇌했던 것과 같은 그 자리.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스스로 나아가는 그 자리로 여러분을 초청하신다. 그래서 그 어려움의 날들이 다가올 때 그 때는 이겨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빛난 세마포의 옷을 입도록 허락된 신부가 스스로 예비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시며 이 지구를 취하시기 위해서 오신다. 다시 말하면 군사적으로 이 나라에 통치권을 취하시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개입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실제적인 면들을 생각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들을 깨달을 때, 우리가 거기에 압도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교체되는 것을 바로 전에 경험했다. 선거 결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정부가 교체되는 것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평화적인 가운데서도 이 정부가 교체되는 것들을 위해서 수 많은 준비작업들이 있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대기를 뚫고 들어오실 때에는, 이 땅에 모든 주권자들을 대면하실 것이다. 모든 나라들에 있는 주권자들을 모두 대면하실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열방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권을 드리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면은 아주 갈등이 심한 대면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강하신 철장으로 열방을 파쇄하실 것이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정의롭지 못한 모든 주권자들을 정의로운 자들로 교체하실 것이다. 그 범위와 강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그 모든 전환의 때에 취할 역할은 바로 기도이다. 우리가 중보자로써 이 전환의 시기 가운데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전환이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세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것은 아름다운 기도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쓰여진 모든 기도문 중에서도 가장 극진적이며 개혁적인 기도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데 우리에게 아주 핵심적인 특권을 주셨다. 지금 세상의 많은 정부 지도자들이 한 질서 체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실제 것에 대한 모조품이다. 그들이 구상하는 한 체계가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그것으로 인해서 전 세계 가운데 평화가 임하고 번영이 임할 것으로 우리가 기대할 찌라도, 그들이 그러한 좋은 환상적인 것을 제한할 그 때, 하나님의 교회는 일어나서 그것이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 실제로 공의로운 분은 따로 있다. 그 분께서는 그 분의 권세를 이 땅 가운데 취하기 위해 오실 것이다.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그것을 중보하며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예수님께서 오시도록 우리가 그 길을 예비하게 된다. 그 분은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사회 각 면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다. 우리가 그의 군대로써 노래를 부를 때가 올 것이다. 그 분의 행함이 놀랍고 뛰어나다. 주님의 길들은 의롭고 공의로우시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왕이시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이 나타나 있다. (계15장)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실제적 중요한 면은 대접이 풀어질 때 우리가 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 시간 때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어둠의 세계를 정복해 가면서 행군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음성으로 인해 아주 심하고 가혹한 심판들이 내려진다. 이런 가혹한 심판이 이 땅에 행해지고 있을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주 예수님의 행하시는 바가 놀랍고 뛰어나십니다. 주님은 성도의 왕이십니다.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드러났습니다.” 그 시간 때에 주님의 길들에 대한 진실된 이해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 분의 심판하시는 바가 옳고 그르냐에 대한 혼란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억압의 시간이 어떠한 시간인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의 형제 자매들이 북한에서 그런 억압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다가올 이 시대는 전 세계가 그러한 억압 가운데 있게 될 시간이다. 우리는 그 때 정의로우신 심판자가 나라들을 취하기 위해 오시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 분의 가혹한 심판이 그 분의 사랑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 이것에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분은 아주 열정적인 심장을 가지신 신랑이다. 그런데 과거 수 세기 동안 그 분의 신부가 적의 체제로부터 유혹당하고 핍박을 당했다. 이제 신랑이 그의 사랑하는 신부의 적과 대적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그 적이 신부에게 행했던 일들을 예수님께서는 아주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그 분의 자녀들이 적에 의해 억압 받았다. 그 아버지의 열정적인 자녀들을 향한 사랑으로 어려움 가운데 자녀들을 구하시기 위해 오신다.
제가 몇 년 전에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제 딸이 그 당시에 21살 정도 되었었다. 스토커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그 남자가 제 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기가 사랑한다는 것을 계속 확인 시키기 위해 귀찮게 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제 마음 가운데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저에게는 그것이 아주 어려운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저는 제 마음 가운데 평화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가 그 자가 무엇을 행하고자 하는 지를 알게 되었을 때, 제가 아버지로써 그 자를 멈추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했을 것이다. 저는 제 딸을 사랑한다. 그 자는 제 딸을 만질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불타오르는 열정은 이와 같은 분노가 온전한 때 이르는 것이다. 그 날이 되었을 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는 그 동기와 완전한 연합 가운데 이를 것이다. 그와 함께 열방들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또한 연합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 왕의 능력의 장엄함을 보게 될 것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가장 실제적인 소망은 실제적인 심판자를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것을 옳게 해 줄 것이다. 사악한 것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의 공의는 온전할 것이다. 그 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분과 온전한 합의에 이르는 상태가 아니다. 꼭 제자들이 자신들의 동기에 의해서 복수를 하고 싶었던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기 바로 전 시간 때가 되면 온전케 된 교회에는 권세가 주어질 것이다. 그 교회에는 하늘로부터 불이 적에게 떨어지도록 부를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게 된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완전한 연합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날이 이르면 온전한 심판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기적인 동기가 전혀 없는 그러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지금 이 시간에는 모든 자들을 용서하라. 그리고 모든 복수는 나에게 맡겨라. 너희가 하려는 그 복수는 지금 온전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능력이 많이 주어질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용서의 능력을 행하라. 복수는 나에게 맡겨라. 그렇지만 그 시간이 되면 너희가 나의 마음에 완전히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사랑으로 동기 받은 심판이 너희 가운데 주어질 때 그 때 너희에게 온전한 권세가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기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이 땅에 이르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공의를 세우기 위해서 얼만큼 일들을 행하실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아주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주님과의 사랑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제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방해하지 않으신다. 그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하나님은 막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사악함은 심판이 필요하다. 죄악은 심판 받아야 한다. 피는 피의 대가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그 분의 유일한 아들에게 부으신 적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의 잔을 완전히 드셨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하신 이유는 그 분께서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는 위대한 자비였기 때문에 그 분의 아들이 행하시는 것을 보시고 그 구원의 길을 모든 사람들에게 열으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의 일부분이다.
그 복음의 나머지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그 구속하시는 분은 또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너희가 용서하시는 예수님으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 죄악이 계속 심판을 요구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심판의 결과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심판이 너희 스스로에게 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풀어지게 될 진노가 바로 이 진노이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구름 같은 영광 가운데 오실 때에 모든 눈이 그 영광을 볼 것이다. 다니엘이 예언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단7:9-14,27)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과 그 분의 권세를 나누신다. 우리가 놀라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 모든 권세를 취하기에 합당한 한 사람이 있는데, 그 분께서 그 백성들을 불러서 그 분의 권세를 나누시는 것이다. 저희가 작년에 함께 보았던 아가서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가서에 나오는 여정 가운데 저희를 함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그 권세를 나누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그 권세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 대환란에 대한 성경적 관점
요한계시록에 아주 논쟁거리 중에 하나는 휴거가 임하는 그 시점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환란에 대한 것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환란이 신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하는 근거없는 두려움이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그 대환란을 통해야 된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보면 그것이 꼭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환란은 교회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 두루마리는 예수님의 손에 주어졌다. 그 분은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교회가 그 분의 목표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 분의 동역자이다. 이 대환란 가운데 있는 모든 문제들은 그 적에게 겨냥된 것이다. 기도의 영을 통해서 그 심판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특별히 이 시간 가운데 아직까지도 우리는 자비를 위한 기도에 집중하고 있다. 열방을 자비로 대해 달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영을 부으시고 예수님의 자비를 드러내 달라고 기도한다. 아직까지는 북한에 다섯 번째 인이 풀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주님 자신을 자비로움 가운데 계시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역사적으로 사건들이 지나면서 우리의 기도의 중심이 바뀌어야 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기도의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풀 때가 언젠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대환란 가운데 가장 주되게 일어나는 것들은 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들이다.
그것에 부차적으로 하나님의 적으로부터 핍박 당하는 성도들의 핍박에 대한 부분들이 있다. 그것이 아주 심할 것이다. 그리고 순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간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 분에 대한 계시들을 주셨다. 그래서 그 시간 때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지낼 필요 없이 큰 기쁨 가운데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사도행전을 보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본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 아니면 성령님이 행하신 행전으로 불린다. 주된 내용은 성령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행하신 것들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책이다. 성령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 또한 어느 정도는 핍박과 순교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통한 성령님의 승리가 우리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그와 똑같은 시각으로 우리가 마지막 때 사도행전인 요한계시록을 본다. 성도들에게 핍박과 순교들이 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주된 주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주된 주제는 영광스런 예수님의 계시이다. 그리고 영광과 능력 가운데 성숙한 교회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적과 전략으로부터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우리는 두려움으로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당당히 서서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라고 선포할 것이다. 그 압박의 시간 가운데 교회는 영광으로 일어설 것이다. 이것이 실제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준비해야 한다.
저희는 지금 미국에서 전에는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인 압박과 여러 가지 다른 압박들이 있다. 그 시간 가운데 저희 가운데 주어진 유업은 하나님께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점점 더 신자가 되기에 어려워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을 발견한다. 주님의 순전함을 우리에게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리가 구하는 바들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드는 세상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믿음을 우리 삶 가운데 취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장애물들을 봐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아픈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고침 받지 못하면 병원에도 간다. 우리에게 공급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공급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냥 신용카드를 써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서서히 행하시는 바는 우리에게 부차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거하시는 것이다. 저주받은 체제로부터 우리가 떠나갈 수 있도록 그런 것들을 없애시는 것이다. 저희가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시각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믿음과 신뢰의 근육들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씩 우리의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하나님께서 지금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바는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 압박을 증가시키는 것이 실제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자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이다.
우리는 에스더를 생각할 수 있다. 에스더가 왕실에서 아주 행복한 상황이었다. 그 때 그녀는 왕이 그녀에게 주려는 권세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환경적인 압박이 없었다면 에스더는 결코 그런 권세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사악한 자가 부었던 압박이 그녀가 왕이 원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했다. 여러분이 에스더이다.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압박이 여러분들을 그런 자리를 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런 권세를 취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아주 평범한 과정이다.
* 요한계시록 : 마지막 때의 사도행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너희를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아주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다. 이것은 강력한 성으로써의 교회가 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모습이 아니라, 교회가 직접 그 적진에 침범해 들어가서 적의 심장부를 치는 모습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 가운데 나타나는 바가 있다. 그런 공격적인 자세가 실제로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의 계획에 의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대 환란의 시간 가운데 있는 갈등 가운데 우리가 묶고 푸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예언의 기름부음이 온전하게 교회에게 주어질 때, 출애굽 당시의 모세와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것들이 마지막 때에 교회의 예언적인 모습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당시에 있었던 지도자에게 대면할 수 있었던 것들을 마지막 때 교회들에게 주실 것이다. 바로라는 아주 사악한 통치자가 있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중보자가 있다. 그가 바로 모세라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사악한 통치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때 모세의 동의를 통해서 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들이 모세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와 똑같이 마지막 때의 교회가 기도의 영으로써 하나님의 계획들을 이루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략은 언제나 동일했다. 그 분의 백성들을 통해서 그 분의 계획들을 이 땅 가운데 이루시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예언적인 약속을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때가 될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전 세계에 풀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지금 이 때에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그 때가 됐을 때, 얼마나 심한 압박이 있을 것인가와 중보자들이 이것을 위해서 요한계시록과 친해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완벽한 기도 지침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해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된 부르짖음을 통해서 주님의 다시오심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일곱 번째 나팔이 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예수님께서 돌아오신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나팔 소리이고 교회의 휴거이다. 그렇지만 그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기 전에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 여섯 개의 인봉들과 여섯 개의 나팔이 있다. 그 시간 때에 이 지구 전체에 점점 쓰나미처럼 증가하는 전 세계의 기도를 상상해 보라. 이 사건들이 하나하나씩 나타나는 것을 볼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불법한 자가 하나님의 성전에 설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 때 중보자들 사이에서 정보 교류를 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 운동량이 점점 증가된다. 중보자들 사이에서 연합하는 영들이 풀어진다. 우리가 스스로 말하게 된다. 그 때 저희가 첫 번째 나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심판들이 임한다. 두 번째, 세 번째~ 7번째 나팔
우리가 여섯 번째 나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증가되는 연합하는 기도를 상상해 보라. 여섯 번째 나팔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바로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면, 성령과 신부가 ‘주님 오시옵소서.’라고 부르짖을 때 주님은 더 이상 참지 못하실 것이다. 이 땅 가운데 있을 기도운동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M.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이루실 그 분의 능력에 너무나 확신하시기 때문에 그 분의 모든 계획들을 사단에게까지 공개하신다.
적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사단은 이것을 알면서도 그 자신의 교만함으로 너무나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이 협조하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 사단의 전략들이 더 이상 소용없게 된다. 첫 번째 전략은 이 계시록을 그냥 우화적인 시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미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아주 비극적인 결과이다.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그냥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단의 계략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잘못 이해하게 만듬으로써, 우리가 환란 전에 들림 받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환란이 오기 전에 도망가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가르치신 내용들을 보게 되면 우리가 대환란 가운데 이 땅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원천적인 것들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사단의 계략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을 하나님의 사람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이와 같이 벌하실 수 있는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이 주님의 위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이고 묵상할 때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기도운동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냥 사람에게 주어진 지능 자체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계시를 우리에게 임하게 하는 것은 기도의 영을 통해서이다. 그냥 지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충분치 않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너무나 소중히 생각하시며, 이것을 하나님의 친밀함 가운데에서만 풀어주실 것이다.
* 마지막 때에 기본적인 쟁점 : 예수님은 누구신가
실제로는 이것이 이미 논쟁의 대상이다. 우리에게 기도의 권능이 주어지느냐는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와 관련 있다.
13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라...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8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3-19)
이 구절들을 볼 때 저에게 아주 감명 깊게 오는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이 보고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어떤 승인을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사역이나 교회를 지도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것을 묻는 이유는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승인에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한 가지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하신 명령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하신 것은 그 분이 얼마나 인기가 있느냐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알기 원하셨던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누구냐라고 말씀하신 것과 동의하고 있는지를 알기 원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누구라 하시는가?’ 사람들의 의견은 실제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 분은 신랑이시자 왕이시자 심판자이시다. 그 모든 역할에 온전한 모습으로 주님은 오신다. 성경 말씀이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 우리는 선두주자로써 완벽한 동의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우리가 그러한 의도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그 분은 자상하시고 부드러우신 연인이시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시다. 우리의 오해는 한 가지 면을 다른 면보다 더 부각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드러운 인자함에 집중하다 보면, 심판하러 오시기 위한 정의로우신 분에 대한 온전한 상을 우리가 받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하늘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성품과 우리가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렇게 빠지는 것은 너무나 슬프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자만을 추구하며 원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인자로우신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공의를 주장하신다.
우리는 그러한 부드러운 모습과 공의로우신 모습의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제가 믿기로 저희가 그런 갈등 상황에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의 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기도의 능력이 우리가 그러한 균형 있는 곳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단락의 마지막 부분은 1장에 있는 예수님의 계시에 대한 것들로 나와 있다.
*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묘사
주님의 이름은 강한 망대이다. 정의로운 자들이 그 망대로 가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망대는 안전한 장소를 의미한다.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로 가서 구원을 받았다. (ARK) A는 Agreement. 동의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동의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계시하신 많은 면들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이 왕 중에 왕임을 우리가 동의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누구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일치시킨다. 그리고 두 번째 철자 R은 reflect. 묵상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왕 중의 왕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왕 되신 것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찾으면서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철자 K는 Keep. 그것을 간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처했을 때 예수님이 왕 되신다라는 것을 믿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시간이 주어졌을 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묵상하십시요.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동의하십시요. 그것을 묵상하십시요. 그리고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삶을 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