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7일 (월) 게리 윈즈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합당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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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아버지의 보좌와 예수님의 높임 받으심 (계4-5장)
* 아버지의 하늘나라 성전 : 하나님의 아름다움
계시록 4장 전반부에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계시를 보여주고 있다. 계시록 4장에 보면 천사가 요한을 이리로 올라오라고 해서 아버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사도 요한이 마지막 때 되어질 일들에 대한 계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마지막 때에 대한 계시는 예수님의 탁월한 아름다움 가운데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정보들은 굉장히 스트레스나 어려운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요한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계시해 주신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라는 큰 그림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심판은 서로 분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34:5-7)
모세가 시내 산에 돌판을 받으러 올라가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 모세가 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요한이 경험했던 동일한 것을 나타낸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알리신다. “내가 여기있다.” 라고 나타내신다. 첫 번째 그 분의 이름을 자비롭고 긍휼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마음 가운데 있는 굉장한 부드러움을 나타내신다.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악을 범하는 자에게 참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심판이 분명 거기에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메신저들에게 그 분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고함, 강함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시고자 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부터 심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절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놀라운 임재가 또한 요한계시록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긍휼과 자비를 만나게 된다. 그런 긍휼과 사랑 가운데서 마지막 때 심판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분의 속성과 상충되지 않는다. 그것은 심각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의 터 위에 심판은 있다. 이제 계시록 4장의 처음 부분을 살펴 보겠다.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이 짧은 구절에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개인의 성품에 대해서 알려준다. 하늘에는 보좌가 있고, 권세의 자리가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보좌를 차지하는 때가 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어떤 의견이 아니다. 하늘의 보좌에 있는 그 분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다. 거기에는 권세가 있다. 절대 진리가 없다라는 가르침이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위에 견고히 서야 한다. 하늘에는 권세의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곳에 앉아 있는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 하기 원하신다. 그 분은 말씀하시고 진리를 선포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이해 되어질 수 있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 분은 모든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명백히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선포할 수 있다. 하늘에는 보좌가 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그리고 그 보좌 주변에는 에메랄드 빛의 무지개가 있다. 인간을 향한 절대적인 긍휼을 상징하는 언약이다. 우리가 노아 사건에서 그 무지개를 처음 발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언약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언약의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그 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 자신이 긍휼과 은총으로 덧입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할 때 조차도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한 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열정의 정황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쉽게 화내거나 분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근거에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았지만, 그도 동일한 하나님의 성품을 흘러 냈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를 때에 물이 없음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불평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했을 때 물이 나왔다. 그런데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향해서 명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서 백성들을 먹이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모세는 불순종한다. 모세가 백성들을 향해서 화를 낸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를 두려워한다. 그 분노로 말미암아 두 번째도 반석을 내리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생수가 터지게 한다. 그런데 모세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왜 그럴까? 백성들은 죄를 졌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불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긍휼의 그림을 보여주신다.
고린도 바울 서신을 보면 예수님이 바로 그 반석이셨다고 표현한다. 그 생수가 터진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첫 번째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상징의 표현이다. 막대기로 반석을 쳤을 때 물이 나온 것처럼, 다시금 그것을 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것을 명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가 두 번째 반석을 쳤을 때 하나님의 온전한 긍휼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긍휼이 가득한 분이 아니라 진노가 가득한 하나님으로 표현한다. 주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모세가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 이 이유로 모세에게 심판이 임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동일한 이유로 우리가 중보자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생생하게 연결되어져야만 한다. 우리가 정확한 권세를 가지고 심판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긍휼과 함께 행해야 한다. 분노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서도 그 백성이 회개할 것을 기대하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심판을 보내실 때는 항상 긍휼의 상황 가운데 베푸신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4)
정말 놀라운 구절이다. 하늘의 보좌에 인간을 위한 보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동시에 그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깨어진 인간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셨다는 것이다. 이 24 장로에 대한 공통적인 견해가 있는데 구약의 족장들과 12사도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연약하고 깨어진 자들이 그 24 보좌에 앉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바로 앞에 권세의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우리 심령을 깊이 터치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가지신 분이 바로 우리 인간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어마하게 큰 독재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그릇을 주님의 자리에 높이 올리시는 분이시다. 의로 옷 입으시고 그들에게 권세로 덧입히신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높이시는 분이시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뢰 소리가 나고 그 분의 권세와 능력에 대한 증거를 풀어내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침투해 들어오실 때마다 번개와 우뢰 소리가 있다. 하늘로부터 음성이 발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표현 중에 하나이다.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다고 말한다. 이 불은 하나님의 열정과 순전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분 앞에 놀라운 유리바다가 있다. 그 곳이 바로 모든 성도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하늘의 유리바다와 이 땅이 하나가 되어서 우리가 설 때가 있을 것이다. 하늘을 다스리는 리더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함께 모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써 온전히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높이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거룩하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평생 꿈 꿔왔던 그것을 결국 보게 되고, 사랑 가운데 표현하는 노래인 것이다. 그 분께서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시지만 우리가 그 면류관을 그 분께 던지면서 경배하는 것이다. 찬양과 감사와 존귀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하나님의 놀라우심에 대해서 끊임없는 선포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감사와 찬양의 노래가 전해진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모든 것들을 선포하는 것이다. 모든 권세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 분을 높여 드리는 것이다. 거룩하다 라는 말은 그 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다. 거룩하다라는 그 말의 의미는 모든 것과 다르게 구별된다는 뜻이다. 그 분의 아름다움은 웅장하고 찬란하다. 낮이고 밤이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노래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경험에 동참자가 될 것이다.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영원히 동참할 것이다. 그 분의 끊임없는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다.
제가 오후에 말씀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제가 머물고 있는 숙소 창가에 난초가 3개 정도 있었다. 65000가지의 색깔의 아름다움이 난에 있다는 것을 아는가? 한 꽃에 65000가지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꽃 하나가 그렇게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그 분의 무한하신 창조성을 나타낸다. 그 분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신다. 그 분은 창조를 사랑하신다.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신 분, 주님의 찬란함은 영원하고 무한하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찬양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다른 아름다운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는 순간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종교적으로 강요당한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자가 즉흥적으로 감동하는 표현인 것이다. 우리가 계시록의 메신저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 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에 뛰어나신 분이다. 그 분의 거룩함과 심판은 이 아름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아름다움을 요한이 보게 된다.
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아버지)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5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내가 또 보니 보좌 …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7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계
여기에 드라마가 있다.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에 모든 권세를 취하셨다. 이 모든 권세를 이 땅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 주신다. 시편에 보면 하늘은 여호와의 것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손에 두루마리가 있다. 적어도 그 두루마리는 두 가지를 상징한다. 더 많은 뜻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두 가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땅에 대한 권리증서이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
처음에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사람을 두었을 때 그 권리를 아담에게 준다. 땅을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모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러나 원수가 와서 유혹한다. 아담과 하와가 원수의 유혹을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그들의 권한을 원수에게 넘겨준다. 그래서 적어도 6000년 동안에 모든 땅의 권세를 원수 마귀가 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궁극적인 권리를 쥐고 계신다. 합당한 자가 있느냐? 이 말의 의미는 한 사람이 마땅히 자격을 가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을 가진 한 사람. 이것을 받기에 합당한 자격을 가진 사람. 그런데 역사의 드라마 가운데는 아무도 그런 사람을 발견하지 못 했다. 그것을 떼기에 합당한 자를 발견하지 못함으로 인한 눈물이 요한에게 있었다. 그래서 사람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상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 권세를 주기 원하노라. 내가 너희와 함께 동참하기 원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그것을 남에게 주었노라.”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것은 중보자들의 마음 가운데 아주 좋은 통찰력을 준다. 마지막 때에 의를 선포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슬픔과 아픔으로 만짐을 받아야 한다. 상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의 상황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다. 그 분의 백성들과 깊이 나누기를 원하신다.
그 때 한 천사가 요한에게 온다. 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합당하신 한 사람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바로 유다의 사자를 사도 요한이 본다. 그리고 어린 양이 와서 그 두루마리를 취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두 가지 면을 보여준다. 유다의 사자는 그 분의 힘과 승리를 나타내고, 어린 양은 그 분의 부드러움과 상한 마음을 표현해 준다. 그리고 그 분의 고통을 통해서 두루마리를 떼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소개한다. 그 분은 깊은 고뇌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두루마리를 때기에 합당한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 그 분이 아버지로부터 두루마리를 취해 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이셨던 그 분이 또한 사람이 되셨고, 그 권세를 받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이 땅 위에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신 것이다. 이 모든 나머지 책들의 타이틀은 이 모든 땅을 통치하려는 한 분이 오신다는 것이다. 그 분은 영원한 인간의 왕이 되실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신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이것을 말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써 충성되게 일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것이다.
* 장대한 드라마 : 예수님께서 모든 나라들 위에 높임 받으시다 (계5)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오는 장래에 주님께서 이것을 푸실 것이다. 하나님의 최고의 전략이 이제 성취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권리를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것을 번복할 수 없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시115:16)
하나님은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고 스스로 제안하셨다. 이렇게 결정하는 것은 바로 기도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신 모든 것은 바로 기도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중보자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핵심적인 것들을 가져오는 자들이다. 예수님께서 붙들고 계신 권세를 우리가 취할 수 있도록 초대받았다.
원수가 예수님께 왔을 때 광야에서 만난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유혹한다. 예수님께서는 매 번마다 아니라고 대적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순종함으로 인해서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셨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는 정말 놀랍게 와 닿는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분은 받을 가치가 있으시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자격이 있으시다. 그 분이 모든 권세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취하셨다. 하늘에 있는 권세가 예수님 바로 뒤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시고, 그 두루마리를 그 분의 아들에게 넘기신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100%의 권리를 위임하노라. 하늘의 보좌에 있는 모든 권세가 아들에게 위임 되었노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 받으신다. 그래서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두루마리를 취하신다. 이것은 바로 땅에 대한 권리증서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장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땅으로 임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넘어서는 아주 놀라운 것이다.
제자들이 한 번 예수님께 구한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세요.”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길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임하실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갈망함은 온전히 채워질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임재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 이 땅은 전환기에 있는 것이다.
제가 여기 있을 때 이미 꿈에 대해서 간증했다. 몇 년 전에 아주 놀라운 꿈을 꿨다. 제가 집에 앉아있었는데 아침마다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커피를 들고 컴퓨터 안에서 성경을 연구한다. 아주 좋은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린다. 제가 나갔을 때 발견한 것은 저희 아버지가 서 계신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제 꿈에 아버지는 젊은이로 나타나셨다. 그 때 깨달은 것은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큰 3 사람이 아버지의 뒤에 서 있었다. 제가 그것을 보자마자 제 마음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했다.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내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충격 때문이다.
그래서 3 사람과 함께 저희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 세 사람이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아버지가 저희 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때 그 분이 내 안에 들어와서 움직이시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저를 보시더니 아주 놀라운 표정을 하셨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실 때 놀라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오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지만, 그 분의 임재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많은 끔찍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집이 완전히 새로워져야 되었다. 어떤 집이 새롭게 지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 그 분이 오신다라는 말씀은 무너뜨리는 과정에 대한 격려를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예수님께로 취하신다. 그것은 바로 권리 증서를 받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름 뿐인 권리 증서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의 의미는 실제로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땅에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분의 다시오심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굉장히 강한 과정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대 추수라고 한다. 그리고 원수는 그것을 패배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마귀는 이 땅 가운데 쫓겨나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는 마귀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굉장히 값 비싼 것이고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류의 왕이신 예수님께 이 땅에 대한 권리증서를 주신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고 인을 떼실 준비를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두루마리를 떼심으로 인해서 이 땅을 위한 준비를 풀어내신다. 그것은 회복의 과정이다. 이것이 단계 단계별로 준비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취하시고 그 분의 백성들과 협력하신다. 계시록 4장과 5장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정말 깊이 주님을 경배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 예수님은 합당하시다 : 우리는 그분의 리더십(인도하심)을 신뢰합니다. (계5장)
8(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려… 9그들이 새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하나님의 심판을 풀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리더십과 사랑을 증명하심)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
여기에 아주 놀라운 소식이 있다. 우리가 바로 그 전략의 한 일원이다.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깨어진 그릇을 통해서 주님께서 그 전략 가운데 우리를 중보자로 초청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바로 그 분 앞에 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중보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권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지금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피로 사셨다. 그리고 우리로 제자의 과정을 밟게 하신다. 예수님과 영원히 통치하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하시기에 합당하시다. 우리가 그 분을 신뢰할 수 있다.
권세는 절대적으로 타락한다. 위대한 사람은 거의 대부분 항상 나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든 자격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 있다. 스스로 타락하지 않는 유일한 단 한 사람이 있다. 그 분이 그런 권세를 받으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분은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지는 장면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은총을 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칼을 뽑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검을 치우라고 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를 부르면 12군단 되는 천사를 보내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인간의 역사는 바로 그 순간에 균형을 맞춘다.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보여주신다. “내가 내 아버지를 부를 수 있다. 그러면 그 분이 내 말을 들으실 것이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셔서 이 모든 과정에서 건지실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다스릴 수 있었지만 거기서 희생자로 있으시지 않으셨다. 빌리도가 예수님에게 “나에게 권세가 있다.”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깨어진 상황 가운데서 “너는 그럴 권리가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하늘로부터 권세를 받지 않으면 빌라도는 권세를 행사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그런데 그 분이 권세를 행사하실 때 죽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분 앞에 가치있는 존재이다.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분은 자격을 얻으신다. 그럼으로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큰 기쁨이 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유일하게 자격을 갖춘 한 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신 능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이사야 42장을 오늘 읽었다. 전쟁 가운데 서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하늘에 권세가 그 분 뒤에 있다. 그것은 전쟁이다. 그러나 그 전쟁이 배경이 아니다. 적그리스도가 사단과 함께 서 있다. 사단은 실패하는 자이고 유일한 권세는 거짓말이다. 그리고 생명이 죽음을 이길 것이다. 진리가 거짓을 이길 것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원수의 권능을 이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전환기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생명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분이 가치있다는 것을 증명하신다. 그래서 인간이 되셔서 행하신다. 사랑 가운데 친밀함 가운데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죽으셨다. 그래서 인간으로써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에 의지하여 사셨다. 하나님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다. 하나님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지만, 그는 인간으로써 성령 충만한 삶을 사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하셨다. 예수님의 놀라운 인내와 순종을 나타낸다. 이 마지막 때에 성도들도 이런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 거기에 인내와 오래참음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책을 읽다 보면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라는 부분을 읽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수년 간에 걸친 예수님의 인내를 나타낸다.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저는 예수님께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늘 길을 거니시면서 앞서 간 성도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시는 줄 알았다. 그리고 가끔씩 땅을 쳐다보면서 잘 하고 있는가 살펴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중보하신다. 예수님께서 그 과정 가운데 완전히 동참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땅을 지탱해 나가시는 것이다. 그 백성에 대한 리더쉽을 주신다. 하나님의 온전한 때까지 온전히 인내하신다. 세기 동안. 10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침임해 들어오시는 그 신호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침묵하는 때가 있고, 이제는 주님께서 외치신다고 말씀하신다. 수 천 년간 기다리면서 예수님의 열정은 더 커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지켜 보시고 대신 싸우신다.
예수님 안에는 그런 갈망함과 부르짖음이 자라고 있다. 우리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을 경배할 때마다, 중보할 때마다 그 분의 마음 안에 있는 열정은 더 자라게 된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말한다.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열정이 더 높이 올라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자리에 올 것을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의 영 가운데 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겸손한 가운데 그 과정을 기다리고 계신다.
E.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일곱 가지 분야에서 전례없는 수준으로 예수님께 리더십을 주셨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5:11-12)
아버지와 이 땅이 함께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께 권세를 주는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권세를 주시고 그리스도의 몸이 중보함으로 그 권세를 예수님께 드린다. 이것은 전체 부분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그의 백성이 동의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7-39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복 되도다 라고 말하기 까지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하신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환영할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중보자의 자리에 두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앞에 서서 우리는 중보하게 된다. 그래서 한 목소리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권세를 돌려드립니다. 주님께서 그 땅 가운데 영향력을 행사하시옵소서.” 우리가 하늘과 마음을 하나로 합친다. 하나님께 그것을 구한다. 여기에 내가 갈망하듯이 나를 갈망하는 백성이 있다. 그 분의 사랑으로 바라보는 자. 왕이신 하나님을 리더자로 모시기 원하는 백성을 주님은 원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 자리로 이끄신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중보하는 것이다. 그 이스라엘을 위해서 함께 고통하며 중보하는 자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런 중보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바꾸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는 그 날 까지. 그 때 주님께서 그 곳의 왕 중에 왕으로써 환영 받으실 것이다.
주님께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또한 권능을 받으신 분이시다. 이 말은 모든 열방 가운데 정치적인 통치력을 가지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열방들을 리더하실 것이다. 모든 국가의 정부, 도시의 정부, 한 나라와 도시에 있는 모든 통치 구조 가운데 의와 거룩함으로 통치가 임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리더십 아래 있는 남, 여 종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부 영역에 의와 거룩함이 이루어지도록 지금 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그 도시의 거룩함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차지하실 것이다. 우리가 중보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이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얻으실 것이다.
예수님은 또한 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부는 예수님께 속해 있다. 그것은 지금 속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과 금이 다 하나님 것이라고 하셨다. 문자 그대로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그 날이 온다. 예수님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시고, 보상받으실 만한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또한 지혜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지적인 영역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정부들을 하나님의 의의 정부로 바꾸실 것이다. 자기를 섬기는 악한 자들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통치하는 세계로 바뀔 것이다.
(사11장) 하나님의 일곱 영이 임하였으니. 지혜와 계시의 영,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움. 여기에 하나님의 일곱 영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그 분은 바로 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환경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의와 진리 가운데 심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상황 가운데 아버지의 마음으로 행하실 것이다. 우리가 그 날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창조물들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시다. 모든 힘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사 42장에 보면 그 분은 낙담하지 않으신다. 온 세계 가운데 공의가 세워질 때까지. 이 과정 가운데 예수님은 절대로 피곤해서 지치지 않으실 것이다. 서울에 있는 모든 길거리 모퉁이 마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로 세워질 것이다. 이 거리를 거니는 모든 사람마다 공의 가운데 행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권능과 힘을 가지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리더쉽에 대해서 조바심을 갖지 않으신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중책을 맡게 되었을 때 받는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통치하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탁월한 지혜와 은혜가 있으신 분이다.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다. 이것은 영적인 힘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기뻐할 것이다. 밤낮으로 우리의 궁극적인 영광이신 그 분을 찬양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그 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 분을 끊임없이 자랑할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은 영웅들을 노래하고 높이듯이, 그 분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영웅들보다 뛰어나신 영웅이시다. 예수님은 그러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모든 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럼으로 우리가 두려움 없이 우리의 마음을 다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존귀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모든 나라로부터 존경 받게 될 것이다. 전통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것에 합당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그 분은 모든 축복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이것은 사회적 영역의 축복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을 회복하시는 모든 과정 가운데 그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권능 가운데 행할 것이다. 이 말씀에 여러분의 마음이 부딪치기를 원한다. 그 분의 자리로 나아갈 때에 그 분의 영광과 힘을 우리가 볼 때에, 두려움이나 어떤 아낌도 없이 그 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다 드리게 될 것이다. 기쁨으로 그 분을 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용당할 것이라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섬길 때에 경험했던 것처럼 그 분을 높일 것이다. 그 분은 충성되고 진실한 분이시다. 지금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두려움 가운데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다. 그 분은 합당하신 분이시다.
* 모든 열방이 천년왕국 때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의 갈망이다.
17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 광활한…(사 33:17)
2그 날에 여호와의 싹(가지)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사
그 날이 실제가 되어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임한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가 그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가치가 있는 노래이다. 우리가 그 분을 바라볼 때 그 분은 합당하신 분이시다.
* 천년왕국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열방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시다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 올려 드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온 땅에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 겸손으로 드리실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예수님께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버지께 드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겸손을 받으신 하나님 자신이 모든 만물에게 충만함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써 하나님의 충만함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오직 한 가지이다. 그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한 분 예수님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셨다. 예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