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8일 (화) 게리 윈즈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심판의 봉인과 하나님의 보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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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심판의 봉인과 하나님의 보호하심 (계6-7장)
여러분이 큰 소리로 계시록을 읽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란다. 여러분이 그렇게 읽을 때에 계시록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한 번에 이 책을 다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더 공부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간단한 계략을 보여줌으로 여러분이 다음 시간을 어떻게 준비할 지 알려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놀라운 약속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엄청난 지혜가 풀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적인 원리는 배고픈 자가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 초청이 우리에게 열려져 있다. 우리가 기도의 영으로 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묵상하면, 계시의 영이 급격히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수 년 동안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더 친숙하게 다가가십시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시는 그런 시점에 우리가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두루마리는 바로 땅을 위한 권리증서이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단순한 실제이다.
예수님께서 한 인간으로 이 땅을 영원히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전체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예수님의 통치로 전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악한 세대와 다가오는 세대의 놀라운 전환기에 있다. 이 전환기가 이 땅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불로 놀랍게 정결케 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구를 재 창조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이 예수님의 통치 아래 살게 될 것이다. 그런 전환은 우리가 눈 한 번 깜박거리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굉장히 실제적이고 강도가 강해지는 전환점이 있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은 바로 이 전환기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소개 가운데 적그리스도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그 적그리스도가 그냥 영이라고 한다. 사도 요한의 편지에 보면 적그리스도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영적인 잠재력을 실제화 시키는 구체적인 적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예수님을 모방하는 자나 대적하는 자로 표현된다. 마치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었지만 온전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처럼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모든 성품을 품은 인간이다. 역사상 가장 마귀에게 잡혀있는 사람이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아주 잔인한 지도자인 동시에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탁월한 지도자 중 하나가 적그리스도이다. 전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권세를 적그리스도가 받는다. (계6장) 적그리스도가 나와서 권세를 취한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불법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24장, 막13장) 여기에서 예수님은 불법의 가증한 자라고 표현하신다. 계시록 6장에서는 이런 사건이 하나로 모인다. 예수님께서 이제 막 하늘에서 두루마리를 받으려고 하시고, 동시에 적그리스도는 이 땅 가운데 자신의 권력을 취하려고 한다. 그가 처음 나타날 때는 평화의 사람으로 등장한다. 온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그는 평강의 사람이라고 가장해서 나타난다. 온 세상에 있는 문제 해결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형통함을 가져오고, 각 나라마다 평화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평화이다. 그리고 또 거짓 종교를 만든다. 전 세계 종교는 하나가 되어서 평강 가운데 참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든 종교가 연합할 때 유일하게 그것을 거절하는 단체는 예수를 주라고 모시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도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나타난 표면 밑에는 적그리스도의 잔혹함이 숨겨 있다. 예수님께서 인을 떼실 때에 첫 번째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역사의 두루마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아주 악한 자이지만 결국은 예수님의 뜻 안에 있는 종에 불과하다. 기꺼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원수 조차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우리 믿는 자로써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굉장히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이 땅에 일어나는 법은 없다. 우리가 비록 굉장히 당혹스럽고 그 강도가 진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백성이 될 것이다. 역사를 풀어내는 분이 누구인지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계6장에 심판의 인을 예수님께서 처음 떼신다. 일곱 인은 문자 그대로이고, 미래적이고, 점진적이며, 순서대로 있다. 그 말의 의미는 차례대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탁월함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렇게 알려 주시는 이유는 우리 중보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단계 계획의 동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기도의 영 가운데 하나되는 것이 강화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건들이 하나하나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알고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이 자연적인 방식으로 순서대로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5:8)
보좌 앞에 24장로들과 4생물이 있는데, 그 대접 안에 향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때가 충만했다는 것이다. 그 대접의 향이 가득하다는 것은 기도의 운동이 아주 성숙한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향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대접이 다 차는 그 시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기도운동이 성숙하고 하나로 연합되는 때가 바로 충만한 때이다. 지금도 그런 중보의 영역에서 굉장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대접이 차는 그 때에 이 대접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중보 기도자들이 하나될 때 그 대접을 쏟아내게 된다.
F. 일곱 개의 인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에 의해서 풀어진다.
예수님께서 일곱 인을 떼신다는 것을 중보자들이 명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 가운데 예수님께서 심판을 푸신다는 것은 굉장히 혼동스럽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모든 것을 품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부드러우시고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에 대해서는 배재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점진적으로 하나님은 심판하는 분이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어 간다. 그래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이 함께 가면 교회는 그것을 배격한다. 우리는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사랑과 긍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침략자로부터 자기 자녀를 돌보는 것과 같다. 도둑질 하는 자로부터 신랑이 신부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눌림 가운데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주의적인 방종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곧 우리를 너무나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가 오게 될 것이다. 그런 압제하는 자가 가까이 다가올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구원자가 확실히 오게 될 것이다.
1내가 보매 어린양(예수님)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와서 보라) 하기로 (계
아름다우신 어린 양 예수님께서 심판을 풀어내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이상한 것이다. 마치 천사가 요한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말한다. “와서 보라.”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목하여 보고 그것을 살피라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깨닫도록 하라는 것이다.
H. 하나님의 심판은 교인들에게 대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다 전가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 심판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주께서 제거하신다.
# 심판의 원리 : 어느 누구의 자유의지도 범하지 않으면서 가장 깊은 수준의 사랑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최소한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
이 공부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점점 증가되고 강도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보다는 세 번째 사건이 더 강하고, 인보다 나팔 재앙이 강해진다. 또 대접 재앙이 나팔 재앙보다 강화된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할 것이다. 이 때에 엄청난 추수가 있게 될 것이다. 이런 환란의 때에 교회가 영광스럽게 일어나서 이것은 주님이 베푸시는 심판이라고 말하며 돌아오라고 말할 것이다. 원수의 진영 가운데 엄청난 압박이 있을 때 믿는 사람들에게는 풍성한 공급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 첫째 인 : 적그리스도의 정치적 침략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6:2)
백마 탄 자가 나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 자를 예수님과 혼동한다. 이것은 명백히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두루마리를 붙들고 계신다. 그리고 천사가 와서 보라고 명령한다. 예수님께서 그 인봉을 뗄 때에 바로 이 백마 탄 자가 등장한다. 이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그가 흰 말을 타고 간다는 것은 평화를 가장한다는 뜻이다. 다니엘서를 봐도 적그리스도가 쓰는 첫 번째 방법은 거짓된 평화이다. 사실 거짓 평화 뒤에는 위협과 잔혹함이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활에는 화살이 없다. 거짓과 협박만 있지 실제적인 전쟁은 없다.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권력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처음 쓰는 것은 과장인데, 그 뒤에는 공격적인 것이 숨어 있다.
그리고 전 세계를 감싸는 큰 종교가 있을 것인데, 이것을 음녀 바벨론이라고 한다. 이 기간 어느 시점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설 때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고 중동 지역에 평화 협정을 맺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는 자가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성전을 세우는 것이 하나의 표증이 된다. 그가 처음에는 아주 평화로운 사람으로 나타난다. 중동 지역에 모든 문제들의 해결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등장한다. 그래서 나라들이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가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시점에 자기가 만들었던 종교를 모두 제거할 것이다. 그리고서는 자기만 숭배하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보거든 도망가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의 평화로운 얼굴은 굉장히 파괴스러운 얼굴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 언제 일어나는지는 저는 모르지만, 처음에는 평화의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때 바로 전 세계는 안전하다라고 얘기할 것이다. 주목하라. 그가 가진 권세는 누군가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가진 권세 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큰 용기를 준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통제 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 가운데서 두 번째 인을 떼신다.
* 둘째 인: 전세계적인 피 흘림과 마지막 세계대전
3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계
적그리스도의 목표는 온 세계를 통치하는 것이다. 그가 전 세계를 다스리고 유일하게 숭배 받기 원한다. 그가 처음에는 평화의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두 번째 인이 떼지자마자 그는 굉장히 폭력적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전 세계에 전쟁을 일으킨다. 땅에 있는 평화를 빼앗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 심판에 대한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악한 자가 인간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원수에게 영감을 받은 이 악한 자는 온 세계를 파괴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단의 목표는 온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파멸하는 것이다. 사단은 인간을 증오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죽을 때까지 사단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단은 증오한다. 모든 인간을 증오한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만 증오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숭배하는 자도 증오한다. 그래서 악한 자가 풀어지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시도록 허락하신다. 큰 칼은 이런 전쟁 가운데 엄청난 살육이 있을 것을 상징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음녀 바벨론이 등장한다. 전쟁을 치른 다음에 실제로 음녀 바벨론이라 상징하는 종교로 모든 사람이 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 세계 대전이 될 것이다.
* 셋째 인: 기근과 경제 위기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계6:5-6)
이런 결과로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이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에 있는 물적 자원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기근이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이 저울을 가지고 있다. 음식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를 재 보는 것이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 버는 일당이다. 한 되라는 것은 한 사람이 최소한 먹을 하루 분량이다. 한 사람이 최소한의 분량을 먹어야지만 일 할 수 있는 정도이다. 만약에 가족들이 있다면 더 싼 것을 사야 하는데, 그래서 사는 것이 보리이다. 동일한 돈으로 보리 석 되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엄청난 기근이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상황을 통해서 적그리스도는 경제 체제자체를 장악하려고 한다.
경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표시를 원하게 된다. 그래서 경제적인 위기 때문에 짐승의 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그런데 좋은 것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기를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고센의 원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유대인들은 고센 땅에 거하게 된다. 애굽에는 재앙이 떨어져도 고센 땅은 보호를 받았다. 그래서 그 보다 더 큰 놀라운 기적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가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을 마지막 때 행하시겠다고 하셨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원수의 진영 가운데 파멸이 있을 찌라도, 믿는 자들에게는 식량의 공급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기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있다. 그 곳에는 풍성한 공급이 있다. 그 곳에는 기적이 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동시에 자기 경제 시스템인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압력할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먹지도, 사지도 못한다. 이런 심판이 강화될수록 사람들의 선택도 명확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셋째 인을 통해서 기근과 경제 위기를 볼 수 있다.
* 넷째 인 : 지구상의 사람들의 ¼이 죽음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계6:8)
그들이 권세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들은 권세를 받았지만,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이 때에 우리는 예수님과 더 깊은 친밀함에 있어야 한다. 이 땅 가운데 테러가 더 많이 증가할 것이다. 이 넷째 인을 떼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지구상의 ¼이 죽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우리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2025년이 되면 지구상에 인구가 80억이 될 것이다. 그 중에 ¼이면 20억이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2차 세계 대전 때 죽은 사람보다 50배나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¼이 죽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 심판을 허락하신다.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풀어내는 면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사람들이 악함을 더 많이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인간이 선택한 그대로 그 결과를 먹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 선택한 그대로 주겠다는 것이다. 귀신을 선택한다면 그 귀신들이 왔을 때 결과를 여러분이 보게 될 것이다. 동시에 예언적인 교회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곳에 가지 마십시요. 은혜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이런 환란의 때에 복음이 강력하게 증거될 것이다.
죽음이라고 번역된 것은 실제로 전염병, 질병을 말한다. 엄청난 기근이 있을 것인데, 치명적인 질병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기근은 단순히 적군 진영에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그 짐승이 더 공격적으로 바뀐다. 원수가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온 세계를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다섯 번째 인은 네 번째 인보다도 더 강도가 쎄진다. 이 다섯 번째 인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더 큰 심판이 올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도운동이다. 하늘과 땅에 있는 기도운동이 하나님의 심판을 풀어낼 것이다.
* 다섯째 인 : 심판을 푸는 기도
9(예수님께서)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향의 제단)아래 있어… 10큰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요한이 본 것은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 이런 환란 가운데 순교를 당한 사람들을 본다. 악한 자로 말미암아 순교를 당한 자들의 부르짖음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믿는 사람들을 보호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핍박으로 말미암아 순교를 당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략에 있어서 순교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가 순교에 대한 아주 정확한 균형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가운데 아주 놀라운 전략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원수를 자극해서 성도들을 죽이게 한다. 그로 말미암아 두 가지 결과가 있다. 성도들에게는 더 큰 영광이 임하고, 원수들에게는 공의와 심판이 풀어지는 것이다. 이 문제에 다른 면을 보면, 순교자들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순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순교자에게는 영광이 임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도는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순교자들은 환란의 때에 죽었던 사람임이 명확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중보한다.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 땅에 있는 신부들의 부르짖음이다. (눅18장) 신부들의 부르짖음이다. 이 땅에 공의가 있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조금만 기다려라.” 자녀들을 죽였던 사람들에 대한 그들에 분노가 예수님의 마음에 더 쌓여만 간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더 많이 부으실 것이고, 원수들은 더 많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숫자가 차면 순교자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풀어내는 것이다. 이 본문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중대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순교를 당하는 성도가 심판을 당했다는 관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순교는 성도들에게 아주 영광스럽다. 왜냐하면 상황을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순교를 갈망하지는 마십시요. 하나님이 정하셨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동시에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의 삶을 드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주실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순교자들의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심판이 풀어진다. 이 때까지 악한 자가 인간에게 역사한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강화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에게 복수하기 일보 직전이다. 우리가 악한 자들의 행동을 보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가 더 강화된다. 우리가 중보로 말미암아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아프지만, 동시에 마지막이 어떻게 될 지를 알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7-8)
악한 자에게 고통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다. 이것은 즉각적인 풀어줌이다. 또한 동시에 오래 참아야 하는 요소가 있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내가 늦어진다 할찌라도 너희가 끝까지 믿음을 보이겠느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느냐? 나를 신뢰하라. 내가 너의 원한을 갚아 줄 것이다. 마음을 잃지 말라. 내가 올 때에 기도함으로 충성된 믿음을 지키는 신부를 볼 수 있겠느냐?” 이것의 답은 이것이다. “예, 주님 볼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12절부터 풀어진다. 그 부르짖음은 그들의 피에 대해 예수님께서 땅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보복하시는 것이다. 그 시점에도 여전히 그들을 핍박한 자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 여섯째 인 : 우주적인 혼란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6:12-17)
땅과 산이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큰 지진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흔드신다는 것이다. 거기에 아주 놀라운 천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태양이 어두워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것들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또한 동시에 이 땅에 일어나는 재가 일어남으로 인해서 태양을 가릴 수도 있다. 이 땅에서 막 흔드는 진동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재를 만들기 때문이다.
15절에 보면 창조물들도 흔들리게 된다. 중보자들이 우리의 원한을 갚아 달라고 부르짖는다. 하나님께서 온 창조물을 흔드심으로 말미암아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 사회에 있는 모든 조직의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 숨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재난 뒤에 누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것이 정말 놀라운 것이다. 그들이 이 모든 배후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인간의 악함에 대한 놀라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오히려 회개하지 않고 악함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산들이 움직이는 변화들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들이 파괴되면 사람들이 숨을 데가 없어진다.
그리고 또한 사람들이 죽음을 구하지만 죽음이 떠난다. 분노로 가득 찬 어린 양으로부터 숨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장에서 하신다. (눅21:11) 하늘의 별들과 천채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올 때에 누가 서리요.
* 첫째 해설 단락 : 누가 서리요?
바로 이 시점에 계시록 전체 첫 번째 삽입구인 해설 단락이 나온다. 사도 요한이 이 모든 것을 보고 잠깐 멈추는 시간이 온다. 기근과 파멸이 이 땅에 오는 것을 본다. 4/1의 인구가 죽고, 우주의 모든 전체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거룩한 두려움에 완전히 사도요한은 압도되었을 것이다.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이것을 견뎌내겠는가?” 이 놀라운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에 대해서 천사가 설명하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이 일어난다. ‘왜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혹독한가?’ ‘이 때에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삽입구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답하신다.
계시록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대인 144,000명의 믿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이다. 오직 144,000명만 인을 맞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본문은 갑자기 144,000명이 인을 맞는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지고 계신다. 신성한 인치심을 받는 자가 있음을 사도요한은 보는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7:1-3)
이 인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나타낸다. 에베소서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인쳤다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실 것이다. 요엘서에 보면 그 백성들이 금식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계시를 풀어준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신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는 보호하심이 있다. 그들에게는 축복과 보호가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7:9-10, 13-17)
복음을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드린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온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그들이 다 함께 서서 낙담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통해서 모든 가능성을 말한다. 원수에게는 엄청난 파멸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보호하심이 있다. 기적적인 공급과 출애굽기의 기적과 사도행전의 기적이 합쳐진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순교를 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순교자들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서 엄청난 상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밤낮으로 주님의 임재 앞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충성됨을 존귀히 여기신다. 그들이 받았던 고통의 기억들을 치유하신다.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그 날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분의 심판의 때에 감춰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