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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나눔

[스크랩] 마지막 때의 예언 사역 - 게리 윈즈

작성자바실레이아[루하]|작성시간11.02.05|조회수23 목록 댓글 0

2009 4 28 (화)                 게리 윈즈                   4기 기도사역자훈련학교

 

 

주제 : 마지막 때의 예언 사역

#오후 7

 

 

[7] 마지막 때의 예언 사역 (10-11)

 

이 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놀라운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이번 강의는 중요하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 가운데 풀어질 때에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예언사역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때는 바로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예언이 온전히 성취되는 때이다. 마지막 때에 내가 하나님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예언사역 가운데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도전이 되고 우리를 흥미롭게 할 것이다. 이 초청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 전에 나팔 심판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계시록 10장에 나팔 심판이 끝나면서 또 다른 삽입구인 해설 단락이 나온다. 우리가 연대적으로 인 심판과 나팔 심판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 삽입구인 해설 단락이 나온다. 지금까지 사도요한이 마지막 때에 되어지는 그림들을 비디오처럼 본다. 그가 본 권세와 위엄들이 사도 요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와 동일한 계시를 다니엘이 받았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충격 받았을지 한 번 상상해 보라. 종말에 대한 예언을 받았을 때에 다니엘은 굉장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어려운 것들을 경험해 왔다. 원수의 진영 가운데 있었고, 친구도 풀무 불 가운데 있었다. 다니엘 홀로 사자 우리에 있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과정들을 경험한다. 그런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대한 계시를 보여줬을 때 그는 아프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때에 심판이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 떨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극단적인 결단을 하게 될 것이다. 원수가 이 때 주요 쓰는 전략은 두려움이다. 사람이 두려워하게 되면 그 마음 가운데 잘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마귀는 안다. 그래서 주님은 예언사역을 일으키신다. 그래서 이 예언사역에 친숙하는 것은 중요하다. 뜨겁게 주님을 구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터 위에 서게 하시옵소서.” 그 분의 아름다움과 힘을 묵상하라. 그래서 아름다우신 예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묵상해야 한다. 깨어있는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이 재난의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 때 천사가 와서 이런 상황 가운데 어떻게 교회가 지탱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모든 환란은 나머지 후 3년 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중간에 해설 단락들도 후 3년 반에 대한 설명이다. 인과 나팔 심판은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 대해서 어떻게 심판하는지를 나타내 준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반응이 나와있다. 그런 하나님에 대한 원수의 반항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핍박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더 강화시킨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극심하게 대하실까? 이 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전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세워져야 한다. 아가서 8장에 보면 그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했다. 사랑으로 불타는 것이다. 많은 물이 그 사랑의 불을 꺼치지 못한다. 물조차도 사랑의 불을 멈출 수 없다. 홍수와 같은 핍박이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못한다. 그래서 아가서와 요한계시록이 서로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과의 사랑을 중요한 기초로 세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이 때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0-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전례없는 기름부으심을 푸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예언사역 가운데 엄청난 권능이 부어진다. 이것은 전 세계 각 지역마다 편만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예언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경작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기도의 제목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훈련하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그 분과 보내야 한다. 우리가 단지 그 분께 들을 때에 그 분의 마음을 가지고 그 분께 올리고 선포해 나갈 때 우리 입술에 권세가 주어지는 것이다.

 

예언 사역에서 이런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들을 자세를 취한다. “주님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받으면 기도 가운데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꿈과 환상을 받는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교통 신호 같은 것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해하게 되고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됨으로 다시 올려드린다. 우리가 주님께 계시로 말미암아 받은 말씀을 선포할 때 능력이 나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친밀감으로 말미암아 리듬을 타는 것이다. 그 분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권능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미성숙한 선지자가 하는 큰 실수는 너무 빨리 선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때때로 계시적인 정보들을 얻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적인 말씀을 받을 때 그것을 너무나 빨리 선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계시를 다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마음을 하나로 맞추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할수록 주님께서 더 높은 차원의 기름을 부으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동일한 권위의 자리까지 훈련시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의 비밀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만 예수님은 선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이해를 갖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역사 가운데 이 마지막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엄청난 속임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갈망을 채워주려는 거짓된 진리들이 있을 것이고, 부드럽게 다가올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타협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오늘 이미 그리스도의 몸에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섞여 있다. 하나의 표현은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에 너무 집중하는 것이다. 그 분의 심판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그 분을 환영하는 것에 너무나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분의 배타적인 성향인 공의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유일한 분이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그 말씀이 굉장히 배타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문을 통과해야 한다. 예수님이라는 문 말이다. (24) 예수님께서 미혹에는 굉장한 힘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보면 심지어 택한 자라도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런 종류의 미혹을 교회에 허락하실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유일하게 진리 가운데 설 수 있는 방법은 주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자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선포하기를 기꺼이 원한다. 정치적으로 타락한 것과 상관없이 진리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속을 위험이 없다. 오히려 진리 위에 서서 공적으로 선포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기도운동은 굉장히 중요하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눈과 귀 역할을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듣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듣고 본 그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그런 예언적인 사역의 더 깊은 곳으로 초청하신다. 이런 자들을 전 세계 곳곳에 일으키고 계신다. 전 세계에서 경험한 것들은 각 지역에서도 경험되어질 것이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환경 가운데 잘 적용되는 말씀일 것이다.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때에 교회가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이런 예언적인 사역들을 통해서 드러내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분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 (2:28-32) 예수님이 오기 전에 부으시겠다는 것이다. 금식하는 것은 삶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요엘의 예언에 대한 보증으로 오순절 날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보여주신다. 사도행전 2장에 요엘의 예언은 온전히 성취된 것이 아니다. 120명에게만 임했기 때문에 부분적인 성취이다. 한 지역에 단 기간 동안에 영향을 끼친 부분적인 성취이다.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게 영을 부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선두주자를 일으키고 계신다. 역사상 강렬한 이 때를 준비한 선두주자를 일으키고 계신다.

 

* 천사의 영광 : 선두주자 기름부음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10:1-3)

 

이 짧은 구절 가운데 우리에게 놀라운 통찰력을 주는 많은 내용들이 있다. 그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천사가 위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사자들에게 임할 영광의 예언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힘 쎈 천사가 요한에게 온다.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풀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관심과 흥미를 일으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 메시지는 우리의 세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큰 권능과 권세를 풀어주실 것이다. 힘 쎈 천사의 의미는 선두주자들이 성령의 큰 권능으로 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으실 것이다. 그 천사는 영광의 구름의 옷을 입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쉐카이나 영광이 이 때에 선두주자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또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다. 4장에 보면 무지개는 하나님의 긍휼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극심해 가는 심판 가운데서도 여전히 긍휼의 약속을 주신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향해서 더 강렬한 심판을 내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는 여전히 긍휼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회개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면 돌이키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돌이키기만 하면 가족으로 주님께서 환영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메시지를 증거할 때에 분노의 영으로 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다. 온 땅 가운데 심판을 하시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주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우리가 이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 우리 마음은 자비와 긍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때때로 예언적인 권위를 받은 사람이 분노로 사역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진정한 선지자는 그런 상황들에 대한 하나님의 상한 마음을 가진 자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피조물들에게 심판을 전할 때에 그것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고뇌를 느끼는 자이다.

 

그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난다. 이것은 바로 예언적인 선지자 안에 있는 속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에게 있다. 그 영광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우리 얼굴에 태양처럼 빛날 것이다. 그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는 것이다. 마치 스데반이 강렬한 반대 가운데서 그 얼굴 빛이 빛난 것과 같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이 말씀을 증거한다. 그 말씀에 놀라운 권세가 있다. 그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 마음에는 긍휼이 가득하다. 긍휼은 진리와 타협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노의 영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말씀을 전할 때에 그의 얼굴이 빛나는 해와 같았다. 그의 메시지를 거부할 수 없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

 

천사의 발이 불기둥과 같다. 불타는 발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의미한다. 악한 자를 밟고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기름부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까지 배워오지 못한 놀라운 권세 가운데 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이 권세를 받는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도 행하는 권세가 있다. 그들이 그 메시지를 들었을 때, 머리를 숙이고 회개하는 자가 있을 것이고, 분노 가운데 오히려 살인하고 죽이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

 

우리가 교회 바깥에서 예언 사역은 굉장히 무시를 당하고 있다. 우리가 정해져 있는 범위 밖에서는 예언 사역의 범위가 아주 약하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선두주자들에게 놀라운 권세를 주실 것이다. 그 천사의 발이 한 쪽은 바다를, 한 쪽은 땅을 밟고 있다. 성경에서 누가 서 있다는 것은 소유권을 말한다. 선두주자들이 밟는 곳마다 그들의 유업을 세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사는 사자와 같이 포효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때에 담대함으로 전한다는 것이다. 이 천사의 특성에 대해서 여러분이 묵상하기를 권한다. 그 날에 여러분이 가져야 할 성품에 대해서 천사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마지막 때의 선두주자 메신저들 : 일곱 우레 선지자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10:2-4)

 

그 힘쎈 천사가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다. 책이 펼쳐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손에 있던 두루마리와는 다른 책이다. 그러나 제가 믿기로 이 책은 다니엘이 받은 책과 동일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지와 전략이 그 책에 담겨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예언적인 정보를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핵심은 그 책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그 책의 내용을 향해서 우리를 초청한다는 것이다. 그 책이 덮인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을 알기 원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허락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 천사가 말할 때에 일곱 우뢰가 준비하고 있다. 일곱 우뢰는 바로 예언적인 메시지를 준비하는 자들이다. 일곱 우뢰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 안에는 내용이 있다. 그 메시지를 주님께서 요한에게 알려 주신다. 그 때 그 내용을 요한이 기록하려고 하자 기록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올 때가 가까이 오게 되면 성령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이 메시지를 알고자 하는 갈망을 일으킬 것이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가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다. “여기에 그 비밀을 알고자 하는 백성이 있는가? 이 메시지를 알기 위해서 마땅히 금식하고 공부하는 자들이 있는가?”

 

다니엘이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12장에서 받는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12:4-10)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성도가 핍박 받는 것을 어느 정도 허락하신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을 통해서 정결케 될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여전히 악을 행한다. 이것은 굉장히 끔찍한 말이다. 악한 자 중에 아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선두주자 메신저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고자 하는 초청을 받으십시오. 역사 가운데 이 때를 위해서 예비된 것이 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워서 그것을 찾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것을 풀리라. 그것을 이해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핍박과 눌림이라는 상황 가운데 온다. 그런 눌림을 통해서 주님의 메신저들을 정결케 할 것이다. 왜 우리가 정결해야 하는가?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순수한 능력으로 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님에게 절대적인 권세를 주신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핍박의 때에 연단과 정결의 과정을 품으면 우리에게 임할 핍박과 눌림의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그 권세 가운데 이 메시지를 명확하게 증거할 것이다.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11:33-35)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아있다. 중보자 여러분! 이 정보를 취하라. 주님 앞에 그것을 놓고 금식하며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하라.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시고 받으라. 우리가 그러한 목적에 집중해야 될 때이다.

 

* 마지막 때의 일곱 우레 메신저들의 풀려남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10:5-7)

 

하나님의 영원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천사가 맹세한다.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상황이 바로 예수님의 손에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우리 눈 앞에 놓여 있다. 우리가 휴거를 받은 다음에 어떤 전환기가 있다. 다니엘서에 보면 휴거 받은 후에 30, 45일 전환기가 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동안에 사단은 이 땅에 여전히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일 나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 분의 원수들과 싸우면서 오실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가운데서 예언적인 사역과 그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중요하다. 선두주자들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 다시 한 목소리가 요한에게 말한다.

 

* 마지막 때의 메신저들이 필수적으로 준비할 사항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0:8-11)

 

계시록 4장에 보면 이리로 올라와서 보라라는 초청을 요한이 받는다. 그 말에 의미는 저와 여러분도 올라와서 보라는 초청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곳에 올라와서 보는 자들에게 그 계시가 열려진다. 반복적으로 천사가 말한다. “와서 보라. 너를 위한 정보를 와서 보라.” 그래서 음성이 말하기를 가서 그 책을 취하라고 한다. 이 초청은 이 때에도 열려져 있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써 여러분에게 전한다. “가서 책을 취하라. 그 책을 취해서 먹어라.”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고 구하라는 것이다. 그 정보는 여러분에게도 허락된 것이다. 이것은 공짜이지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가볍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집중하는 삶의 대가가 필요하다. 더 많은 일에 기도하고 더 많이 묵상하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먹으라는 것은 계시되는 말씀을 소화하라는 것이다. 이 사실 뒤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묵상하고 추구하고 갈망할 때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먹이신다. 소화시키게 하신다. 거듭거듭 취하라. 이 일에 여러분의 삶을 걸으라. 이것보다 더 높은 부르심은 없다. 아가서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큰 부르심은 없다. 여러분이 계시록과 아가서에 대한 목소리가 되기로 결단하면 여러분은 굉장히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이다.

 

요한이 이 책을 먹었을 때 두 가지를 경험한다. 첫 번째는 입에서 달았다. 이 말은 계시적은 것을 얻는 것은 기쁨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은혜인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로 여러분의 마음을 만지신다. 주님의 다시오심에 대한 기대와 갈망함이 생긴다. 그 다음에 여러분의 위에 쓰게 된다. 그것을 적용하고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이 아주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 땅 가운데 엄청난 난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먹고 소화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말씀을 찾을 때 경험하는 기쁨이 있지만, 또한 쓰게 됨을 경험한다.

 

이 모든 것들을 갈망하는 것에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메시지를 기꺼이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추구할 때 예언적인 의무가 생긴다. 우리가 그것을 그냥 이해하고 침묵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의 가족들을 향해서 그것을 예언해야 한다. 일터에서 그것을 선포해야 한다. 많은 종교적인 언어를 빌어서 말할 필요가 없다. 떨면서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확증을 주는 영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선포하면 되는 것이다.

 

왕이 있다. 그 왕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분은 인간이시다. 다시 오신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라.” 우리가 이 메시지를 가지고 있을 때 담대함이 임할 것이다.  에스겔이 말씀을 먹는 것은 마지막 선두주자에 대한 모형이 된다. 이 말씀과 관련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3장에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3:1-4)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가 되면 그것은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음식 자체가 여러분이 되어서 에너지가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내 말씀을 먹음으로 그 말씀이 그들의 일원이 되는 자를 원하노라.” 일곱 우뢰가 바로 인격화 되는 것이다. 그 일곱 우뢰가 선포한다. 여러분이 바로 그 우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메시지가 여러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거니셨을 때 단지 진리를 전하는 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진리였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100% 일치한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에는 권능이 있다. 그래서 원수가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접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때에 그와 동일한 메신저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는 자를 찾으신다. 그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개인적인 성품과는 관련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 그러면 그 말씀이 여러분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개인적인 인격 스타일에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할 것이다. 여러분이 나처럼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여러분의 스타일로 말하는 것이다.

 

다니엘과 요한은 그들의 헌신 가운데 특별한 계시를 받는다. 이런 종류의 메신저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삶 전체가 걸린다. 본문에 보면 맛이 달다라고 나온다. 구원과 정의의 메시지이다. 맛이 쓰다는 것은 심판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곳곳마다 수 천의 선두주자를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세워서 이 말씀을 능력과 권세 가운데 전파하게 해야 한다. 예수 군대를 일으키는데 있어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에스더 중보기도자들. 이 땅 가운데 여러분이 곳곳에서 자리를 취하고 이 메시지를 권세를 가지고 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 두 증인(계시록 11)

이 예언 사역과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종류의 설교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굉장히 견고해 질 것이다. 제가 말하는 설교자라는 것은 단상에 서는 사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메시지에 영향을 끼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여러분이 조그만 친구들의 모임 가운데서도 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학교나 일터. 여러분이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많이 끼칠수록 더 많은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계시록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두 증인을 일으키신다. 이 두 증인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자이다. 우리가 이 두 증인을 이야기할 때 첫 번째 떠오르는 질문이 그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저는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적인 사람이다. 두 명의 특정한 사람이 굉장히 높은 차원의 기름부음 가운데 행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누굴까에 대한 궁금함이 우리에게 있다. 단순히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두 명의 개인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천사가 요한에게 두 증인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성전의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11:1-2)

 

대환란의 때에 하나님께서 세계적인 종교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을 일으키신다.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 시점이 되면 자기를 위한 성전을 짓는다. 그리고 그 곳에 가는 모든 사람 모두가 악한 것은 아니다.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유대인이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동참할 것이다. 대환란의 때에 3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기억하라. 구속 받고 예수님께 삶을 드린 사람이 있고, 배교자로써 적그리스도에게 삶을 드린 사람, 가운데 아직 결정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거역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거절하고 적그리스도도 거절하는 중간 지대의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 곳 가운데 진정한 중보자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희생은 굉장히 거룩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불경건하게 예물을 드릴 것이다. 그 때 성령께서 요한에게 측량하라는 것이다. 분별의 영을 가지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이것은 중요하다. 분별은 비난하는 영이 아니다. 우리가 두려움과 분노 가운데 있으면 분별할 수 없다. (1:9) 분별을 할 때 우리 안에 사랑이 넘치게 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이 때에 진짜 일어나는 실상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비난하는 영과 의심하는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구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혼란 가운데서도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 가운데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친밀함을 통해서 분별하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대환란의 때에 예수님과의 친밀함은 아주 중요하다.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천년왕국의 성전과는 다르다. 천년왕국의 성전은 예수님과 함께 교통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불일치의 시점이다. 그 당시에 종교들은 다른 것과 타협하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그런 상황 가운데 서서 예수님만이 유일하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권세와 권능을 가지고 설 텐데,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교회가 일어나서 저 사람은 진짜가 아니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 예루살렘이 3년 반 동안 짓밟힐 것이다.(11: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11:2)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분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멸망의 과정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이 후에 멸망이 있게 되는 것이다.

 

* 두 증인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3-6,10)

 

정말 중요한 것은 이들이 후 3년 반 내내 예언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러내는 그 때에 이미 예언사역이 풍성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엘리야와 아하시야 사이에 갈등이 있다. 거기에 기름부음 받은 예언 사역이 있다. 동시에 거짓된 종교가 있다. 그래서 이 예언사역은 원수의 진영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이 대환란의 때에 예언적인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또 다른 싸인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두 선지자를 통해서 그 분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성한 보호아래 있다. 그리고 성령님과 온전한 하나됨이 있다. 그래서 원수를 파괴하도록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두 증인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예언 사역의 절정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때때로 이 말씀을 읽을 때, 두 사람만 멋지게 드러나고 나머지는 무엇을 하는가 궁금해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이 두 사람에게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부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권세가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칼 끝과 같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세의 분량을 보라. 완전히 보호 받고 입에서 불이 나온다. 하늘을 닫는 권세와 재앙을 내리는 권세가 있다. 아무 때든지 그들이 원하는 때에 행사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말에 의미는 그들이 성령님과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되었고, 잘못된 영으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 영은 바로 부드럽고 온유한 것들과 말씀이 하나되는 것이다. 힘 쎈 천사가 가지고 있던 동일한 기름부음으로 행하는 자이다. 절대적인 능력과 권세 가운데, 동시에 하나님의 긍휼과 온전히 하나됨으로 행하는 자이다. 그 때문에 그들이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죽음을 허락하시는 그 시점까지 보호받는다. 그 두 증인은 살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한 때까지는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 두 증인은 모세가 가졌던 동일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초자연적인 공급이고, 말씀을 통해서 불을 뿜어내고, 원수의 나라에 고통과 고뇌를 주는 존재들이다.

 

이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때에 천사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이러한 종류의 권세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역사상 전례없는 예언적인 기름부음이다. 그 초청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믿음으로 나아가라. 그 이야기의 아주 놀라운 끝이 있다. 7절이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7-10)

 

그들의 사역이 마치게 되면 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들은 온전히 예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 그들의 사역이 전 세계를 다 마치지만 그들의 끝은 예루살렘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들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을 비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동일한 가치를 두신다. 그 두 증인은 예수님의 고난과 동참하는 자가 된다. 그들은 장사되지 못하고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게 된다. 백성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을 기뻐한다(9). 마지막 후 3년 반 때에 세상이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들을 향한 구속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너무 화가 났기 때문에 악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 두 증인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전한 메시지가 결국은 침묵하게 되었다고 기뻐하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11-13) 이 사역에 아주 드라마틱한 결론을 보고 있다. 전 세계 앞에서 공적으로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동시에 공적으로 죽음 가운데 부활한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하늘로 승천한다. 그리고 땅에는 지진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거의 일곱 번째 나팔이 불어질 때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이것을 볼 때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문지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때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 날인 예수님이 오시는 날이다.

 

제가 이 말씀으로 격려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놀라운 기름부음을 준비하고 계신다. 이 말씀을 먹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을 초청하신다. 이 때에 그 분의 음성이 되는 자들을 일으키기 원하신다. 여러분이 그것을 추구할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순교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교에는 엄청난 영광의 결론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약속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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