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이신 주님by David Wilkerson | January 13, 2011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하나님은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비슷한 위기의 때에 선지가 예레미야에게
여호와 시드케이누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분이 주님이 되시는 이 의가 무엇이며 이 역할로서의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며 이해해야 할까요?
바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통해서 의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4:3).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롬4: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갈3:6).
이 각 구절들은 아브라함이 진정한 의에 이르기 위하여 했던 한 가지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그가 믿으매.마침내, 바울은 의에 대해 주님이 내리신 정의를 제공해줍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20-22).
더 이상 명확히 할 수 없도록 성경은 밝혀 주었습니다. 의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지킬 것이라고
온전히 설득당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주님이 거기 계시다by David Wilkerson | January 14, 2011 |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은 여호와 삼마의 이름으로 알려져야만 합니다.
“여호와 삼마 (주님이 거기에 계시다)”(겔 48:35).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이 이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이 내게 확실하다. 내가 그를 볼 때 마다 예수님의 임재를 느낀다.
그의 삶은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고 있다.”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주님의 다정한 임재를 아주 자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크리스천들은 기도모임, 성경공부, 전도사역 등 선한 종교적 활동들에 시간을 보내고 있고
이 활동들은 모두 칭찬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크리스천들은 기도의 은밀한 골방에서 주님을 섬기는데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거나
전혀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결코 위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 적용하든지 교회 공동체에 적용하든지 진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할 때 어떤 사람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거나 교회 예배 안에 임하는
어떤 영적 휘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단순하지만 능력있는 믿음의 여정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크리스천의 삶에서 드러나든지 또는 회중 전체에게서 드러나든지 사람들은 주목하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고 있다,” 또는, “이 회중은 그들이 전파하는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
여호와 삼마의 교회를 세우는 데는 한 의로운 목사 외에 훨씬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의롭고 하나님과 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낯선 사람이 예배 후에 나오면서, “예수님의 임재를 느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설교나
예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회중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주님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