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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듣는것'과 '알아듣는 것'/류해욱 신부

작성자글라라(풀밭)|작성시간10.02.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듣는 것’과 ‘알아듣는 것’

  (연중 제1주간, 수요일 ,1월 13일, 1사무엘 3,1-10.19-20)


  오늘 독서, 사무엘기 상권에 보면,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이 대목으로 묵상하면서 사무엘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도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인지 못 알아듣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성서 본문에서는 사무엘이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서 본문은 또한 소년 사무엘이 이미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주님을 섬기고 있었는데 주님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에 제 묵상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아침 미사에서 강론으로 나누어 주신 모 신부님의 묵상은 제게 빛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듣는 것’과 ‘알아듣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듣지만 그것이 주님의 말씀인지는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들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 ‘듣는 것’은 별로 소용없고 ‘알아들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듣는 것’에서 ‘알아듣는 것’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하시면서 묵상을 하셨더군요. 먼저 ‘듣고’ 그 다음에 ‘알아듣게 되는 것’이지요. 소년 사무엘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열려 있는 마음, 들으려는 자세,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에 부족하고, 우리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때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도움도 필요합니다. 소년 사무엘이 엘리의 도움으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됩니다. 엘리도 처음에는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인지를 모르다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인지를 깨닫고 사무엘에게 알려 줍니다. 사무엘은 삶의 연륜, 경험을 통한 이해, 깨달음, 지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이 나누어주신 묵상의 포인트는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이 두 요소, 소년 사무엘적인 요소와 사제 엘리적인 요소가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소년 사무엘적인 요소는 우리가 수도 삶을 살면서 처음에 가졌던 초심, 순순한 열정이라고 합니다. 사제 엘리적인 요소는 수도 삶을 살면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깊이,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이끄심을 아는 지혜, 성숙한 영성 등입니다. 사제 엘리적인 요소를 우리가 지니기 위해서 늘 정진하는 지난(至難)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소년 사무엘적인 요소, 즉 초심을 잃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늘 들으려는 자세를 지니는 것도 이에 못지않은 수행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신부님께서 저희 예수회원들에게 나눈 강론이라서 ‘수도 삶’을 살면서 그렇다고 하셨지만, 저는 수도 삶을 사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신앙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두 가지 요소, 소년 사무엘적인 요소와 사제 엘리적인 요소를 우리 안에 함께 간직하고 성숙시켜 가기 위해 늘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고 성령께 의탁 드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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