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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비움/ 류해욱신부

작성자글라라(풀밭)|작성시간10.08.04|조회수32 목록 댓글 1

 

 

비움


-류해욱 신부


  오늘 아침 한 피정자와 산책을 하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비움’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마 어제 제가 피정 강의에서 주무시기 전에 마음을 모으는 방법이며 기도 준비로 다음의 구절을 챤트처럼 천천히 읊조리다보면 마음이 모아지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의미를 헤아리셨나봅니다.

 

  “오소서! 성령님, 제 마음을 비우시고 당신으로 채우소서! 제가 새로워지리이다.”

 

  저는 다만 피정동반자이지, 참 지도자는 성령이시니 성령님께 의탁 드리도록 청하는 마음으로 피정 시작하라고 드린 짧은 기도문입니다.

 

  그 피정자와 비움의 의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방에 돌아와서 저도 잠시 비움의 의미를 생각하던 중에 강우일 주교님과의 대화가 떠올랐고, 그분의 4대강 반대나 제주 강정지역에 해군기지 반대에 대한 소신을 나누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치인들은 늘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 ‘욕심’으로 채우는 행태를 보이니까 정말 ‘비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강 주교님이 지난 성탄 사목서한에서 말씀하신 것을 제가 요점 정리하여 나누겠습니다. 강 주교님은 먼저 교황님이 작년에 발표하신 회칙「진리안의 사랑」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언급하셨습니다. 

 

  “한 인간 전체와 모든 인간을 포함하지 않는 발전을 참된 발전이 아닙니다.”(18항)

 

  발전이나 개발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강 주교님은 제주도의 현안인 강정지역의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최근 지역 사회의 민의에 가장 예민하고 겸손해야 할 제주도의회에서 민의를 무시하고 해군기지를 유치하기 위한 ‘절대보존지역 변경동의안’을 변칙 통과시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주 지역주민이 도지사 소환이라는 놀라운 결과까지 일구어냈던 민의를 저버리는 의회에 대한 당연한 비판입니다. 강 주교님은 이런 행위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해군기지 유치가 제주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제주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정지역에 해군기지를 만드는 일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이유는 단지 하나, 혹시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지요. 그런데 강 주교님은 무엇이 경제에 도움이 되고, 무엇인 발전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안목을 정확이 지적하십니다.

 

  “눈앞에 던져진 불과 1조 원의 미끼에 현혹되어 미래에 수백조 원을 들여도 회복할 수 없는 제주만의 세계자연유산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새만금 간척과 똑같은 논리이지요. 새만금 방조제 준공으로 난리법석을 쳤지만 불과 수 조의  경제 이익을 위해 수십 조도 넘는 갯벌이 지닌 가치를 시멘트로 덮어버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저는 그런 행태 앞에 참으로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 논리가 아니라 세계의 생태 과학자들의 지적이기도 합니다. ) 자연을 개발하면서 파괴하면 당장은 그럴듯 해 보이지만 결국은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간은 댓가를 치르게 마련입니다.

 

  강 주교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녹색성장을 부르짖는 정부가 어떻게 예로부터 제주에서 물과 땅이 제일 수려하여  ‘일강정’이라고 불리던 곳에,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들 서식지에 콘크리트를 산더미처럼 부어서 생태계의 보고를 쓸어버리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훼손된 자연생태계를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소수 사람의 얼마 안 되는 이익 때문에 제주 전체가 갖는 엄청난 자연적, 정신적 가치를 모두 허물어버리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오만이요, 탐욕입니다.”

 

  강 주교님은 우리 죄악의 뿌리는 오만과 탐욕에 있다고 하며 인간의 원죄인 아담까지 거슬러 가서 되돌아보도록 촉구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얼마든지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는데도 굳이 하느님께서 금하신 과일이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워 그것을 따먹고야 마는 죄의 여정을 출발하였습니다.”

 

  인간은 어쩌면 처음부터 ‘비움’보다는 ‘채움’을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채움의 욕구, 짓고 부수고 그런 놀이에 마약처럼 빠져드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 주교님은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욕심과 오만을 성찰해보도록 초대합니다.

 

  “벽돌과 역청을 발명하여 도시를 건설할 재능을 얻은 인간들은 성읍을 세우는데 멈추지 않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우고 자기 이름을 온 땅에 날리려는 탐욕과 오만의 질주를 계속 하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 욕심과 오만에서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비움’은 오직 구원을 통해 가능합니다. 오늘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피정자가 한탄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런 피정 때에 자신을 비웠다고 생각하지만 돌아가서 며칠 살다보면 전혀 비우지 않고 살고 있음을 다시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온전히 비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은 우리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은총을 가능하니 다만 은총을 청할 뿐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강 주교님은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이 탐욕과 오만으로부터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달리 표현하면, 진정으로 비울 수 있게 하기 위해 당신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필리피서를 인용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피 2, 6-8)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끊임없이 오만과 탐욕에 시달려 온 인류를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아니 인류가 아니라 바로 우리, 더 나아가 바로 나 자신이 비움을 이루지 못하고 채움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구원하기 위해  당신이 먼저 비움과 낮춤을 보여주신 구원의 신비라는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비움과 낮춤을 보여주시면서 우리를 비움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 은총을 간절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류해욱 신부-홍천 영혼의 샘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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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퀴노 | 작성시간 10.09.13 비움은 우리 자신이 비우느게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끄심으로 만이 할수 있군요. 잠들기 전 묵상으로 오늘 하루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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