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연중 33 주일
표징-
한국 교회에서는 연중 마지막 주일, 바로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 주일을 평신도의 주일로 정하여 평신도의 교회 안에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본당에서는 평신도가 강론을 하기도 하지요. 사실, 교회법에 강론, 영어로 homily는 부제 이상의 성직자가 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평신도가 강론할 때, 영어로는 Thelogical Reflection이라고 구분하는데,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는 대림 첫 주입니다. 대림 시기가 얼마 안 남았네요.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절에 교회는 깨어 기다릴 것을 촉구하는 독서, 복음을 들려주는데, 사실 대림 시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러 번 복음으로 ‘깨어 있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복음인 루가 21, 5- 19 도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에게 들려주는 성전에서의 마지막 가르침으로 요지는 ‘깨어 기도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여러 번 성전에 오셨는데 이 대목에서 성전에 오신 것은 아주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서 세상의 임금으로서 오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고, 성전 정화를 하시면서 내 집이라고 지칭하심으로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시며 아주 비장한 마음으로 ‘표징’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고난과 십자가를 예감하시며 이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아픈 마음과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씀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저 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경청하고, 그 말씀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들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들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어떤 대목에서 어떤 느낌이 떠오른다면 그 느낌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주님이 우리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어떤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표징일까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평범한 일 안에 어떤 표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지진이나 박해 이외에도 해와 달과 별들에 표징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이 말씀들도 반드시 거창한 우주적 변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피정 중에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하면서, 당시 불과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저 별들 사이를 걷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아버지가 이제 주님의 품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계시다는 표징으로 느껴졌습니다. 비록 제 눈에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수 없었지만, 저는 그분이 주시는 평화 안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라.”고 하십니다. 당시 말씀하실 때에 옆에 무화과나무와 많은 나무들이 있었겠지요. 예수님은 언제나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일상의 일에서 예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과나무와 다른 나무들을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저는 당시 진부에서 피정을 하면서 배추를 수확한 후에 들풀들이 놀랍게 빨리 자라서 온 밭을 뒤덮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마음에 밭에도 김을 매어주고, 가꾸지 않으면 쓸데없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징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표징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일하시고 머무시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대가 다 가지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는 말씀은 글자 그대로 알아듣기보다는 종말론적인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내일 그분이 권능의 홀을 펼치시고 오시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늘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이지요.
예수님은 늘 우리의 마음을 가볍고 편하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언뜻 말씀을 들으면, 무섭고, 그렇기 때문에 무겁게 들리기도 하지만 저는 제 기도에서 “그대들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에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른 대목에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게 편히 쉬게 해 주리라.”라고도 하셨지요.
우리가 삶 안에서 지는 짐은 실제로 걸머지고 가야 하는 보따리라기보다는 마음의 짐이지요. 늘 우리의 마음의 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짓눌리는 것을 얼마나 안타까워하시지는 모릅니다. 우리는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마음의 평화일 것입니다. 그 평화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루가 21장, 예수님의 말씀을 되도록 원문을 살리면서 ‘표징’이라는 제목의 시어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표징
표징이 나타나리라
해와 달과 별에 표징이 나타나리라
검푸른 바다의 포효소리와
노도처럼 밀려오는 거친 파도에
땅 위의 뭇 민족들이 겁먹으리라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세상에 어떤 일이 닥쳐오는지를
육감으로 느끼며 두려움에 떨리라
천체가 마구 흔들리며 요동하기 때문이리라
그대들은 보리라 그때
홀연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찬란한 영광의 빛에 싸여
권능의 홀을 손에 쥐시고 오시리라
이제 이 일이 일어나려 하나니
그대들이여
일어나 고개를 들어라
그대들의 구원의 날이 오고 있나니라
이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라
잎이 돋아나고 무성해지면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나니
이런 표징을 보며
그대들은 알게 되리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는 것을.
진실로 이르노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
하늘과 땅은 먼지로 사라지리라
그러나 내말은 영원히 남으리라
그대들이여 항상 경계할지니
그대들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하라
방탕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세상 걱정거리로
그대들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하라
마치 순식간에 짐승을 낚아채는 덫처럼
예고 없이 그 날이 그대들을 사로잡으리라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덮치리라
그러니 그대들은 깨어 기도하여라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
재난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그대들이여 깨어 기도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