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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八福)강해

팔복(八福)강해(19) - 청결한 마음을 복으로 받은 자(1)

작성자mytherace|작성시간26.06.21|조회수38 목록 댓글 0

팔복(八福)연속강해(19) 마태복음 5:1~12

 

청결한 마음을 복으로 받은 자(1)

 

 

팔복의 여섯 번째 복인 마음의 청결과 깨끗함.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3절의 마음의 가난. 가난한 마음의 복에 관한 내용만큼이나 오해하기 쉬운 구절로써, 가장 큰 오해와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마음의 청결. 깨끗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하는 생각이다. 반복해서 매번 강조했듯이, 팔복에 언급된 모든 복의 목록은 너희 힘으로 이것을 쟁취하고 습득하라.” 하는 식의 교훈이 아니다. 오히려 이 교훈은 거듭난 믿음의 사람에게 임하는 하늘의 복이자 은혜임을 기억하라. 청결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 마음은 저절로 얻거나 연습으로 따내는 게 아니다. 또한, 이 교훈 중에 하나님을 본다.” 하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과연,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까? 종종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봤다.” 하며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기꾼들이 그런 말을 떠들어대면 정신 나간 소리하네.” 하고 무시할 수 있지만,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고 금식기도를 밥 먹듯 할 뿐만 아니라, 설교만 했다하면 눈물콧물을 쏙 빼놓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쫙 깔고 그런 말을 내뱉으면, 적잖은 신자들은 정말 그럴 수도 있나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 일쑤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제자이자 바울만큼 신령한 사역자였던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나신 분으로 소개하기 위한 내용으로써, 계속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본질을 바람이나 호흡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인 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4:24) 하나님은 영(;spirit)이시니 (고후 3:17) 주는 영(the Spirit)이시니

물론, 환상과 음성을 통해 당신의 뜻을 친히 계시하시고, 신비한 방식으로 당신의 영광을 직접 드러내신 적도 있지만, 그 모습을 온전히 나타나신 경우는 성경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을 직접 만났다며 떠벌리는 사람은 가짜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이 구절도 사기인가? 따라서 우리는 청결한 마음, 마음의 깨끗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본다.” 하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 번에 걸친 설교를 통해 살피고 은혜를 나누자.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마음의 청결

팔복에 기록한 모든 복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한다. 바꿔 말해, 여기 기록한 모든 복은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닐뿐더러,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얻어낼 수도 없는 것들이다. 이 복들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먼저, 그리고 거저 베푸시는 선물로 봐야 마땅하다. , 떼를 쓴다고 얻을 수 없을뿐더러, 천금을 지불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믿음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늘의 선물이 여덟 가지 복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거듭난 믿음의 사람에게 청결한 마음을 복으로 베푸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무슨 이유로 청결한 마음을 얻어야 하는가? 이쯤에서 성경이 죄인청결한 마음의 상관관계 및 그 의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념하라. 죄인은 죄로 더러워진 자신의 부패한 마음을 스스로 정화할 능력이 없고, 심지어 깨끗한 마음에 대한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항상 악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망가지고 더러워졌으며 다툼과 혼란이 그치지 않는다(6:5).” 하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마음과 생각이 부패한 탓에, 거기서 나오는 말과 행위도 부패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복과 은혜를 세상에 펼치고 나누는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을 등진 죄인은 도리어 세상을 부패시키는 원흉으로 전락해버렸다. 오죽하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게 사람의 마음이라며 탄식했겠는가?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물론, 어떤 이들은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또한, 수양과 수련을 통해 얼마든지 마음의 평안과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 하며 큰소리치고, 지금도 그 이상주의를 신봉하여 추종하는 사람들도 적잖은데, 성경은 그런 생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비웃는다.

(13: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구스인에티오피아 사람, 흑인을 가리키는데, 흑인의 검은 피부와 표범의 반점은 타고나는 것으로써, 마음에 안 든다고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백 번 비누질하고 표백제를 풀어놓은 물에 잠수해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피부색은 바뀌지 않고 표범 가죽의 무늬도 없앨 수 없다. 이처럼 죄인의 부패한 마음도 타고난 것이기에, 제 힘으로 그것을 씻어낼 수 없고 부패한 본성을 거스르는 일도 매우 어렵다. , 죄로 얼룩진 마음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노력으로 깨끗하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청결한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그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죄인의 부패한 마음을 깨끗하게 바꾸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청결한 마음은 거듭난 새 사람의 마음

사람의 외모와 체형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성형수술 같은 경우는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자신의 몸무게에서 3~5kg 정도 감량을 시도하는 일조차 버거워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처럼 겉모습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심지어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악한 본성을 바꾸는 일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검은 피부를 희게 할 수 없고 표범의 반점을 없앨 수 없듯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죄인의 악한 습성도 고치기가 어렵다.”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분이 아닌가? 죄인의 타락한 본성과 부패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도 사람의 생각과 관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 불가능이 없으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가르치기에, 죄인의 타락한 마음과 그의 부패한 존재를 변화시키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시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은혜로 거저 베푸시는 믿음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하나님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게끔 그의 중심과 내면은 물론이고 생각과 의지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마치 예수께서 맹물로 성질이 전혀 다른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처럼,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부패한 죄인의 마음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바꾸시는데, 기독교 교리는 그것을 가리켜 중생(重生) 혹은, 거듭남으로 일컫고, 더불어 성경은 그것을 첫 창조와 맞먹거나 그보다 더욱 탁월한 사건으로 규정하여 재창조(Re-creation) 혹은, 새 창조(New Creation)’로도 부른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인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및 새 것을 만드신 사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마음을 새롭게 재창조하신 사건. 이것 역시 구원과 구원받음을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무엇보다 거듭남 즉, 중생에 관한 교리는 신학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은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하는 긍정문으로 바꿀 수 있고,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통치가 완연하게 펼쳐지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완연하게 나타나고, 그분의 얼굴을 영원히 마주하는 곳을 가리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 하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기에, 팔복의 여섯 번째 복인 청결한 마음거듭난 마음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하늘로 일컫는 그 세계에 이미 세워진 하나님 나라. 그리고 이 세상과 역사 속에 한 알의 밀알처럼 임했던 하나님 나라를 보는 시각은, 오로지 거듭난 새 사람에게 허락하신 청결한 마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상세하게 다루자. 이처럼 청결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듭난 새 사람에게 베푸시는 새 마음. 새롭게 변화된 마음임을 명심하라. 이게 끝이 아니다. 성경은 청결한 마음.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또 다른 방법과 함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둘째, 청결한 마음은 예수의 피로 죄를 씻은 마음

신구약 성경은 마음의 부패와 망가짐의 원인을 로 지적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의 명령에 따라 불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하고 용서받기 위해, 소와 양 같은 짐승을 제물로 삼아 피를 흘리고 고기를 태움으로써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인간의 죄와 허물을 그 짐승에게 떠넘겨서 죗값을 대신 치르도록 조치하는 것이, 제사제도의 기본원리이자 제물을 바치는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니까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받은 것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명령만이 아니다. “~하라. ~하지 마라.” 하는 율법의 명령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천막인 성막 건축방법에 관한 내용과 함께, 성막에서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시행하는 제사법이다. 다시 말해, 모세의 율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 셈인데, 그 중 하나가 종교적/사회적 규범을 실행하거나 규제하게끔 명령한 법령(法令)’이고, 다른 하나가 그 법령을 고의로 위반하거나 저도 모르게 저지른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법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의 규범과 제사법을 동시에 제시하신 까닭은, 죄인은 율법의 요구를 저 스스로 온전히 이룰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와 제물의 원리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을 어긴 두 사람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는데, 가죽옷은 짐승을 잡아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구약 시대를 살았던 경건한 믿음의 사람은, 짐승을 제물로 바쳐 제사할 때마다 두 가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먼저, 제사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죄를 저지르면, 이 짐승처럼 참혹하게 죽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심판의 엄중함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불어 그는 하나님께서 이 짐승으로 내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해 주심으로써, 내가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과 심판을 면제해주셨다.” 하고 고백하며,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에게 베푸신 용서와 은혜를 있는 힘껏 감사하고 찬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죄인의 마음은 수백만 마리의 짐승 제물로도 씻지 못할 만큼 더러울 뿐만 아니라, 짐승의 피와 그 고기 제물의 효력은 임시적이자 일시적이기에,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인의 더러운 마음을 온전히 깨끗하게 함과 동시에, 영원히 효력을 발휘하는 제물과 영원한 중재의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10:10~12)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예수께서 수많은 제사장이 매일 드렸던 제사와 제물 대신, 영원한 효력을 지닌 제물로써 죄인을 대신하여 당신의 몸을 바치심으로써, 죄인의 영원한 죗값을 완전히 치르셨고 그 부패한 죄인의 마음을 당신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셨다. 따라서 마음의 청결. 깨끗한 마음은 예수님의 희생과 그 핏값을 통해 얻는 하늘의 선물임을 명심하라.

 

결국, 팔복의 여섯 번째 복인 청결한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는 하늘의 마음으로써, 믿음으로 거듭난 새 사람에게 베푸시는 새 마음이고, 더불어 예수님의 피로 죄와 허물을 씻음으로써 얻게 된 깨끗한 마음이다. , 새롭게 변화된 마음과 더러운 죄를 씻은 마음이 바로 청결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그 남편을 살인교사(殺人敎唆)’했던 다윗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기도한 시편에 지금까지 언급한 두 가지 내용이 다 들어있다. 시편 51편을 보라.

(51:2, 7)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이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간구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씻으시고 깨끗하게 해주십시오. 또한, 내 안에 정결하고 정직한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주십시오.” 그러니까 다윗은 그 당시에도 이미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죄인의 한계를 절감함과 동시에, 청결한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더러운 마음을 씻으시고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물론, 죄의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더러운 마음으로 불의를 저질러도 살 만하다.” 하고 생각했지만, 죄로 더러워진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고, 그 단절된 상태가 쌓이면 쌓일수록 구원의 감격과 은혜 안에 누렸던 즐거움은 썰물처럼 사라졌는데(51:12), 이제는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더러운 죄에 길들여진 더러운 마음은 더 큰 악을 저지르는 지경까지 다윗을 내몰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 안에 아직 살아있었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겨자씨 같은 믿음을 일깨웠던 까닭에, 혐오스럽고 더러운 이 마음을 씻어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십사 기도할 수 있었다. 혹시 탐욕에 사로잡힌 더러운 마음으로 서슴없이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는 불신자이거나, 신자일지라도 밧세바와 간음했던 다윗처럼 죄의 더러움에 마음이 잠식되어 구원의 즐거움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게 된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일하심을 알지 못할뿐더러, 그 신령한 은혜를 맛보고 체험하는 일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예수의 피로 이미 깨끗하게 씻으시고, 더불어 우리의 낡은 마음과 옛 마음을 폐기하여 새 마음을 창조하신 사실을 신뢰하라. 그리고 그 사실을 확신한다면 기꺼이 감사하고 얼마든지 찬양하자. 마음껏 감격하자.

 

설교를 마무리하자. 보잘것없는 우리 같은 죄인의 더러운 마음을 씻으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부정한 옛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바꾸시기 위해,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쏟아 부으셨던 수고와 열심 이상으로 새 창조의 일을 기꺼이 감행하신 하나님. 또한,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 그리고 작은 고을 베들레헴과 짐승의 구유보다 더 보잘것없고 더러운 우리 마음에, 기꺼이 함께하여 동행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성령 하나님. 그래서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죄인의 더러움을 씻으시고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며 찬양했다. 디도서 3장을 보라.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것보다 더 큰 은혜와 선물이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어떤 즐거움보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청결한 마음과 함께, 예수의 피로 씻은 깨끗한 마음을 그 어떤 것보다 갈망하고 사모했다. 왜냐하면, “정결하게 된 새 마음만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를 제대로 바라보고 누릴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은 은혜로 얻은 청결한 마음을 잘 간직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그 마음을 단련시킴으로써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늘을 소망하는 사람임을 일평생 증명해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세상과 짝하여 더러운 탐욕에 휘둘리는 속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깨끗하게 씻긴 새 마음을 받은 사람답게 세상 사람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심에 대해 관심조차 없고, 심지어 우리의 믿음을 허무맹랑한 신념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해야 마땅하다. “지금 당장 우리 눈과 귀에 아무 증거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세상과 우리를 위해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작정하신 일을 반드시 선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말씀과 기도와 은혜를 통해 그것을 조금이나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 이 복을 아직 소유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다윗처럼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라. 그리고 깨끗한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의를 채우고 긍휼의 샘물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https://youtu.be/oilQa1-RP_I?si=Y5c4nXHsvDxET1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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