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플루트 Chat

플릇 악파와 계파

작성자ⓕⓛ동희™|작성시간10.02.06|조회수273 목록 댓글 1

<플루티스트, 그 악파와 계보>
프랑스와 독일악파, 양대산맥에서 시작된 세기의 거장들

글·김기순 /이화여대 교수, 플루티스트

오늘날 세계 플루티스트들의 전통은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가.
플루트의 역사는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의 형태로 발전되기까지 다양한 악기의 변천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서양음악사의 한 줄기를 형성하며 여러 악파가 탄생하게 되었다.

관악기 계보의 양대 산맥은 무엇보다도 프랑스 악파와 독일 악파이다. 프랑스는 궁정악사와 군악대의 양성을 위해 궁정 내에 음악교육 기관을 두고 있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이러한 전통이 파리 음악원을 중심으로 계승되어 왔다. 독일악파를 창시한 뷔파르댕도 프랑스 마르세이유 출신 플루티스트였다. 독일은 프랑스에 비해 여러 군소 제후의 궁정을 통해 음악이 전수되었으므로 파리의 경우처럼 한곳에서 꾸준히 연주법이 계승되지는 못했다.

장 피에르 랑팔에 의하면, 프랑스 악파는 독일악파에 비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무거운 스타카토와 비브라토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악파 특유의 비브라토는 매우 가볍고 화려한 음색을 빚어낸다.

독일악파는 프랑스 악파에 비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비브라토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식 연주법은 혀로 치아를 더 강하게 누르면서 연주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매우 두터운 소리가 난다. 프랑스 연주자들은 혀로 이빨의 뒷부분을 약간 굵어 줄 뿐이어서 소리는 더욱 가볍게 들린다.

이것은 독일어와 불어에 있어서의 발음의 차이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어는 딱딱하고 [k, g, x]등의 연구개음이 많은데 비해 불어의 발음은 섬세하고 구강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근육을 많이 사용한다. 플루트 연주에 있어서 안면 근육의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악파·독일악파·영국악파 등 악파에 따라 연주법과 음색이 다른 것은 언어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해외 유학·레코드·해외 공연 덕분에 프랑스 사람에게 배웠는지, 아니면 독일 사람에게 배웠는지 금방 알아채기는 힘든 실정이다.



프랑스 악파

| 르빌 필베르(Rebille Philbert, 1667-1717):프랑스의 플루티스트

| 자크 호테트레 (Jacques Hottetrre, 1674-176)) :프랑스의 플루트 제작자로 세계 최초의 플루트 저서인 '플루트의 원리 '(1707)를 저술했다.

| 조셉 보댕 (Joseph Bodin de Boismonier, 1689-1755) :플루트 교본을 저술하고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한 작곡가.

| 자크 크리스토프 노도(Jacques-Christophe Naudot, 1690-1762) :프랑스의 작곡가, 플루티스트로 루카스와 함께 17)9년 당시 최고의 플루티스트였다.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최초의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하여 출판했다.

| 미셀 블라베 (Michel Blavet, 1700-1768) :장 밥티스트 블라베(Jean Baptiste Blavet)의 아들로 피에르-에바르(Pierre-Evard TaillaH)의 스승이다. 작곡가이기도 하다.

| 펠릭스 롤트(Felix Rault, 1736-1800) :프랑스의 플루티스트로 미셀 블라베에게 사사했다. 프랑스 악파의 플루트 연주기법을 발전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 장 조르주 분더리히 (Jean-Georges Wunderlich, 1755-1819) :독일 태생의 프랑스 플루티스트로 파리에서 펠릭스 롤트에게 사사했으며 18세기말 최고의 플루티스트였다. 1795년 파리 음악원 창설과 함께 플루트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제자로는 베르비기에(Berbiguier)·카뮈(Camus)·툴로우(Tulou) 등이 있다. 그의 플루트 교본은 19세기를 통해 유럽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 앙트완 트랑킬 베르비기에 (Antoine Tranquille Berbiguier, 1782-1838) :1805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왼손잡이 플루트 연주자로 1830년 혁명으로 망명했다. 플루트 교본을 저술했으며 완벽한 테크닉 , 달콤한 톤, 당시로는 매우 큰 음량이 특징이다.

| 루이 드로에 (Louis Drouet, 1792-187)) :프랑스의 플루티스트로 7살 때 파리음악원에서 플루트를 연주했으며 음악원에서 플루트 대신 작곡을 공부했다. 1808년 네덜란드왕실 독주자, 루이 18세 왕실 수석 플루트 주자를 역임했다. 영국에서 찰스 니콜슨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1818년 이후 영국에서 플루트 사업을 벌여 코리우스 워드 제품을 판매했으나 찰스 니콜슨의 악기에 눌려 실패했다. 나폴리·네덜란드·영국·파리·뉴욕·프랑크푸르트에서 연주여행을 하기도 했다.

| 프랑소아 드비엔느(Francfois Devienne, 1803-?) :프랑스의 플루트·바순 주자로 파리 오페라 극장 수석인 펠릭스 롤트에게 사사 했으며, 1797년 파리 음악원의 전신인 자유 음악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다. 1794년 플루트 기법과 연주실제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했다. 1795년 파리 음악원이 창설되었을 때, 플루트 교수로 임명되어 그의 제자중 5명이 1797년부터 1801년 사이에 음악원 대상을 수상함. 그중 하나인 조셉 길로우(Joseph Guillou)가 1816년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임명되었다.

| 폴 타파넬(Paul Taffanel, 1844-1908) :도뤼 (Dorus) ·레베(Reber)에게 플루트를 배웠으며 근대 프랑스 플루트 음악의 아버지, 창시자로 불리운다. 도뤼가 파리음악원 교수가 되면서 음악원에 입학했다. 도뤼는 독일식 뵘' 플루트를 프랑스에서 최초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인정한 사람이다. 타파넬은 그의 뒤를 이어 파리음악원 교수가 되었다. 제자로는 고베르(Gaubert) 등이 있으며 저서로 '플루트 교본'이 있다.

| 필립 고베르(Philippe Gaubert, 1879-1941) :폴 타파넬에게 플루트를 사사했으며 1894년 파리 음악원 대상을 수상했다. 타파넬의 뒤를 이어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임명되었다. 조르주 바레르(Georges Barrere,1876-1944):프랑스 플루티스트, 파리 음악원에서 타파넬에게 산사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뉴욕으로 건너가서 활동함으로써 프랑스 플루트 음악의 전통을 미국에 전해주었다. 그는 백금 플루트를 최초로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가스통 크뤼넬르(Gaston Crunelle) : 1945-1958 피에르 자메 5중주단 멤버 역임 .

| 막상스 라뤼 (Maxence Larrieu, 1934- ) :마르세이유 음악원에서 조셉 랑팔(JoHph Rampal), 파리 음악원에서 가스통 크뤼넬르(Gaston Crunelle)에게 사사했다. 1977년 주네브 음악원 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리용 음악원 교수로 있다.

| 장 클로드 베이얀(Jean-Claude Veilhan, 1940- ) :니스 태생으로 크뤼넬르에게 사사했다. 클라리넷, 플루트 주자.

| 미셀 드보(Michel Debost, 1934- ) :파리 태생으로 크뤼넬르에게 사사했으며 1960년 파리 관현악단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임명되었다. 현재 파리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 로제 부르댕(Roger Bourdin, 1923-1976) :마르셀 모이즈에게 사사했으며 파리 음악원을 졸업했다.

|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 1922-) :마르세이유 태생으로 마르세이유 음악원과 파리 음악원에서 각각 조셉 랑팔·마르셀 모이즈·가스통 크뤼넬르 교수에게 사사했다.

파리 오페라 관현악단 플루트 수석을 역임했으며 현재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프랑스 목관 5중주단을 창단했으며 파리 바로크 앙상블 등의 실내악 활동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플루트를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와 같은 독주악기로 인식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플루트 독주회라는 음악회 형식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프랑스 악파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그는 안드레아 그리미넬리 ·장 미셀 탕귀·알랭 마리옹· 막상스 라뤼 ·필립 고티에·줄리어스 베이커 ·필립 베르놀트·안드라스 아도양·로버트 스톨만·칼 크라버 필립 피에로· 시게노리 구도·파트릭 갈로아·제임스 골웨이 등 많은 플루티스트를 제자 혹은 후배로 배출했다. 그는 최근 지휘에도 관심을 보여 1981년부터 스코틀랜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정기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 안드라스 아도양(Andras Adorian, 1944- ) :헝가리 태생의 플루티스트로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여 랑팔, 니콜레에게 사사했으며, 랑팔과 함께 프란츠 도플러의 '두 대의 플루트를 위한 협주곡'을 레코딩했다.

| 알랭 마리옹(Alain Marion, 1938- ) :마르세이유 태생으로 장 피에르 랑팔에게 사사했다. 마르세이유음악원 1등상, 1961년 주네브 콩쿨에 입상했다. 프랑스 국립관현악단 플루트 수석을 역임했으며 현재 파리 음악원, 니스 하계음악학교 교수로 있다.

| 포몬 토틀리에(Pomone Tortelier, 1979- ) :여류 플루티스트로 첼리스트 폴 토틀리에와 어머니 마르탱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얀 파스칼 토틀리에의 여동생이다. 1981년 파리 음악원을 수석 졸업했으며 랑팔의 제자이다.

| 크리스티앙 라데(Christian Larde, 1930- ) :1948년 파리 음악원 대상을 수상했으며, 1981년부터 파리 에콜 노르말 플루트 교수, 파리 음악원의 실내악 교수로 있다.

| 필립 피에로(Philippe Pierlot) :파리 음악원 출신으로 랑팔과 함께 파리 바로크 앙상블 멤버로 활약했던 오보이스트 피에르 피에로의 아들이며 현재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의 수석 플루티스트이다. 랑팔의 제자이다.



스위스 악파

| 마르셀 모이즈 (Marcel Moyse) : 1889년에 출생한 프랑스 사람이지만, 스위스 악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스위스 명플루티스트들을 가르쳤다. 파리 음악원에서 폴 타파넬, 아돌프 엔느뱅, 필립 고베르에게 사사했으며, 1932-1949년 파리 음악원교수와, 오페라 코믹 오케스트라 플루티스트를 역임했다.

| 오렐 니콜레(Aurele Nicolet, 1926- ) :스위스 태생으로 앙드레 조네, 마르셀 모이즈에게 사사했다. 1948년 주네브 콩쿨 1등상을 수상했으며 푸르트뱅글러,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티스트를 6년 동안 역임한 후 현재 독주활동을 하고있다.

| 페터 루카스 그라프(Peter-Lukas Graf, 1929- ) :스위스 태생으로 앙드레 조네에게 배운 다음, 파리 음악원에서 마르셀 모이즈, , 로제 코르테에게 사사했다.



독일 악파

| 피에르-가브리엘 뷔파르댕 (Pierre-Gabriel Buffardin, 1690-1768) :프랑스의 플루티스트로 독일에서 활동했다. 마르세이유 출신으로 콘쓰탄티노플 주재 프랑스 대사의 저택에서 잠시 머물다가 1717년 드레스덴으로 건너가 아우구스투스 2세의 궁정악사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3세 재위 당시 그의 연봉은 500탈러에서 1000탈러로 올랐고 1749년에는 연금수혜자가 되었다. 크반츠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속도가 빠른 작품에서 매우 눈부신 기교를 발휘했다고 한다. 제자로는 바흐의 동생 요한 야콥 바흐·크반츠(4개월 동안)와 F. 괴첼 (J. Gttzel) ·플로리오(p.G.Florio)가 있다.

| 요한 요아힘 크반츠 (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 :독일의 플루티스트·작곡가·이론가·플루트 제작자. 프랑스의 뷔파르댕에게 잠시 플루트를 배웠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에게 플루트를 가르쳤다. 그의 저서 '플루트 연주법에 대하여'(1752, 베를린)는 불어와 독일어로 동시에 출판되었다. 그는 플루티스트의 요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플루티스트의 정신상태는 생동감 넘치고 정열적이어야 하며, 부드러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마음도 겸비해야 한다. 너무 과도한 멜랑콜리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한 감정의 배분이 필요하다. 플루티스트는 완벽한 건강을 소유해야 하며 강하고 탁트인 호흡, 적당한 길이의 치아, 얇고 부드럽고 섬세한 입술, 매끄럽고 기교적인 혀, 적당한 두께와 발달된 근육의 손가락, 호흡에 지장이 없는 비강이 요구된다."

크반츠의 제자로는 노이프(A. Neuff) ·린드너 (J. F. Lindner)가 있다. 크반츠는 프리드리히 2세의 작품으로 알려진 플루트 음악의 대부분을 수정, 편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크반츠는 마을행사에서 악사로 일하다가 프로이센의 빌헬름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악단의 수석 플루티스트가 되었다.

"나의 부친은 마을의 대장장이셨다. 내가 9살 때 당신은 대장장이 조합에서 나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분이 병석에 누워 숨을 거두실 때에도 나에게 이 직업을 계속하라고 당부하셨다. 나에게는 형님 두 분이 계셨다. 한 분은 양복장이셨고, 다른 한 분은 메르스부르크의 궁정악사였다. 부친께서 돌아가시자마자 형님들은 모두날 데려가서 자기 직업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나는 자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

내가 음악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여덟살 때부터 나는 마을의 악사로 일하던 형님과 함께 베이스 비올을 메고 농부 축제에 데려가 달가고 졸라댔다. 음악은 수준 이하로 엉망이었지만 그 음악이 나를 사로잡아 오로지 음악가가 되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1708년 8월 형님 유스투스 크반츠 밑에서 도제수업을 하러 메르스부르크로 떠났다. 내가 배워야 할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다. 나는 바이올린이 재미있었으며 곧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에 오보에와 트럼펫을 배웠다. 훌륭한 음악가라면 코넷이나 독일식 베이스 비올, 비올라 다 감바 등 굉장히 많은 악기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깨닫고 있던 나는 이들 악기를 배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많은 다른 악기들을 손댔기 때문에 하나쯤은 실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을 갖고 덤비면 특히 교회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들에게는 필수적인, 악기의 속성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메르스부르크의 궁정교회는 당시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궁정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나 마을잔치 때도 연주해야했다. 1713년 12월 드디어 나의 도제 수업 기간이 끝났다. 나는 시험곡으로 코렐리의 독주곡 몇 개를 연주했다. 나의 스승은 일년 동안의 도제 수업 중 4분의 3을 면제시켜 주었는데, 장인의 급료 절반을 주는 대신 1년 동안 그 밑에서 일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1718년 3월 폴란드 궁정 교회가 세워졌는데 여기에 12명의 악사가 배정되었다. 11명은 이미 결정되었고 오보에 주자 한 명이 공석이라 내가 응모했는데 바론 폰 세이페리츠 궁정악장 앞에서 오디션을 거쳐 취직하게 되었다. 연봉은 폴란드에서의 숙박 제공과 함께 150탈러였다.

나는 틈틈이 플루트를 열심히 배워 이 악기도 함께 연주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보에 계열에서 내 이름이 잊혀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직업 덕분에 나는 작곡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플루트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별로 없었다. …나는 1741년 12월 드레스덴에서 베를린으로 가서 프로이센 국왕의 궁정악사가 되었다."

| 피에트로 그라시 플로리오 (Pietro Grassi Florio, 1740-1795) :이탈리아 태생의 플루티스트로 1756년 드레스덴 궁정악사를 역임했으며 뷔파르댕에게 플루트를 배웠다. 말년에는 런던에서 활동했다. 프리드리히 대제:프로이센의 왕으로, 1728년부터 크반츠로부터 플루트를 배웠으며 플루트의 레퍼토리를 확대, 발전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빨이 빠짐에 따라 플루트 음악에 대한 후원을 그만두었다.

| 요한 밥티스트 벤들링 (Johann Baptiste Wendling, 1723-1797) : 작곡가·플루티스트.덴마크와 노르웨이 왕 크리스티안 4세에게 플루트를 가르쳤다. 런던 ·비인 ·파리 ·프라하 등지로 연주여행을 다녔으며 모차르트와 함께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최고치 플루티스트인 그의 소개로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과 플루트 4중주 네 곡이 위촉 작곡되었다.

| 요한 게오르크 트롬리츠(Johann Georg Tromlitz, 1725-1805) :독일의 플루티스트로 최초로 보조키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 중의 하나다.

| 테오발도 몬차니 (Teobaldo Monzani, 1762-1839) :이탈리아의 플루티스트로 런던에 악보 출판업을 개시했다. 저서로 '독일식 플루트 교본'(1801)이 있다.

|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덜론(Fredrich Ludwig Dulon, 1769-1826) :독일의 플루티스트로 선천성 시각장애자이며 암보력이 뛰어나 9살때 플루트 연주의 기초를 마간터했다. 노이프(Neuff)·키른베르거(Kimberger)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p.E.Bach)의 도움을 받았고 리보크(Ribock)·칼 벤다(Karl Benda) 등의 후원을 받았다. 1784년 트롬리츠와 함께 듀오를 연주했고 러시아 궁정악사로 근무하다가 독일로 돌아와 방대한 양의 플루트 음악을 작곡했다.

| 안톤 베르나르트 퓌르스테나우(Anton Bernard Fuerstenau, 1792-1852) :부친인 카스파르 퓌르스테나우(Capar Fuerstenau, 1772-1817)에게 사사했으며 아버지와 함께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뮌헨 ·비인 ·코펜하겐 ·프라하 등지로 연주여행을 다녔다. 그는 베버가 지휘하는 익단에서 최초의 플루티스트가 되었다. 기민함과 풍부한 표현력이 특징이다.

| 테오발트 뵘(Theobald Boehm, 1794-1881) :독일의 플루티스트, 금속세공가로 요한 네포무크 카펠러(Johann Nepomuk Capeuer)에게 플루트를 배웠다 파리 ·런던 등지에서 연주여행을 했으며 런던에서는 니콜슨의 절대적인 음량에 압도되어 자신의 악기를 개조하기에 이르렀고 1832년부터 뮌헨 공장에서 뵘 플루트를 생산했다. 제자로는 칼 베너 (Carl Wehner)가 있다.

| 모리츠 퓌르스테나우 (Moritz Fuerstenau,1824-1889) :부친 안톤 베르나르트 퓌르스테나우에게 플루트를 배웠고, 1842년 드레스덴 궁정악단 플루티스트를 역임했으며, 뮌헨으로 가서 뵘 플루트를 마스터했다. 1852년 드레스덴 궁정악단 수석 플루티스트와 1856년 드레스덴 음악원 플루트 교수를 각각 역임했다.

| 구스타프 세코(Gustav Scheck,1901- ) : 독일의 플루티스트로 리하르트 뢸러 (Richard Roehler)에게 사사했다. '플루트와 그 음악'(마인츠, 1975)을 출간했다.

| 한스 마틴 린데(Hans-ManinLinde, 1930- ) :구스타프 세크에게 플루트를 사사한 독일 태생의 스위스 플루티스트·리코더 연주자.

| 칼하인츠 죌러(Karl-Heinz Zoeller, 1928- )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를 졸업한 후 베를린 필과 함부르크 필 플루트 수석을 역임으며 현재 함부르크 음대 교수로 있다.



영미 악파

| 찰스 니콜슨(Charles Nicholson, 1795-1837) :영국의 플루티스트로 화려한 기술, 귀족적 풍모의 아다지오 연주로 당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힘차고 거센 그의 톤은 언제나 좋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영국에서만큼은 플루트 연주의 모델로 여겨졌다. 1822년 런던 왕립음악원의 설립과 함께 플루트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플루트 교본'(1826)이 있다.

| 가레트 모리스(Gareth Morris, 1920- ) :영국의 플루티스트 버트 머치 (Robert Murchie)에게 사사. 1945년 왕립음악원 플루트 교수. 목제 플루트를 고집했으며 영국악파의 후손을 자처했다. 조프리 길버트(Geoffrey Gilbert, 1914∼):영국의 플루티스트. 르네 르 루아(bene le cloy)에게 사사하여 금속제 플루트를 사사했으며 프랑스식 연주법을 배웠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후진양성중, 제자로는 월리엄 베네트·제임스 골웨이 등이 있다.

|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1939- )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조프리 길버트에게 사사했으며 파리 음악원에서 가스통 크뤼넬르, 장 피에르 랑팔·마르셀 모이즈에게 개인적으로 사사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주자를 역임했다. 줄리어스 베이커 (Julius Baker)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플루트 수석을 역임했다. 월리엄 헤인즈 사에서 악기제조공으로 일하다가 독립하여 개업한 버논 파웰이 제작한 백금 플루트를 연주하다가 사뮤엘 바런에게 팔았다. 바런도 조금 연주하다가 무거워 그만두었다.

| 사뮤엘 바런 (Samuel Baron) :미국의 플루티스트로 줄리어드 음대에서 조르주 바레르(Georges Bauere)와 아더 로라(Anhur Lora)에게 사사했다. 뉴욕 목관 5중주단 창단 멤버이며 '목관을 위한 실내악'을 출간했다.

| 월리엄 킨케이드(William Kincaid, 1895-1967) :미국 플루티스트로 조르주 바레르에게 사사했으며 커티스 음대 교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플루트 수석을 역임했으며 보스턴의 파웰이 제작한 플래티넘 플루트를 연주한다.

| 엘라인 세퍼 (Elaine Shaffer, 1925-1972) :커티스 음악원에 윌리엄 킨케이드에게 사사한 여류 플루티스트로 휴스턴 심포니 플루트 수석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악파를 들 수 있겠으나 가젤로니, 그리미를 제외하면 이탈리아 플루티스트의 활약상은 매우 미미한 편이다.

| 세베로니 가젤로니(Severoni Gazzelloni, 1919- ) :지암바티스타 크레아티 (Giambattista Creati)에게 사사했으며 이탈리아 왕립 교향악단 수석 플루티스트를 역임했다. 놀라운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아름답고 꽉찬 톤이 일품이다. 바로크 음악, 특히 바흐 소나타와 비발디의 협주곡 작품 10번 등과 현대음악 연주에 일가견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금적 | 작성시간 11.02.12 이건 언제 쓰여진 글인가요 ㅎㅎㅎㅎ 하늘나라 가신 분들이 아직 많이 살아계신걸로 나오네요;;ㅎㅎ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