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왔습니다...
입학점수 가지고 말, 말 하는데 법대 수준은 입학수준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읽어보십시오. 전 단순무식한 훌리건이 아닙니다.
다분히 한법의 비하에 대해서 격분하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균관법대 VS 한양법대...
'당연히 성대 법대 아닌가? 배치표 점수에서 그렇게 차이 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고, 고득점자들이 성법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분명 잘못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른 정보를 드리고 싶습니다. 단순한 배치표 자료는 무의미합
니다.
배치표는 또 한 번의 실수를 범했고, 그것은 분명 오보이며, 2003 입시에서 알 수 있듯
이 컷트라인은 한법이 7점 정도 높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입니다.
"점수 이상의 가치, 점수 높으니까 당연히 성법 가야지"
수험생의 머릿속에 있는 오판입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를 보면, 3년간 한법이 단연 우위에 있었습니다.
2002년 한양 67명, 성균관 45명
2003년 한양 56명, 성균관 35명입니다.
판,검사 배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3년까지 한양이 법원 72명, 검찰 86명 / 성균관이 법원 60명, 검찰 81명입니다.
2년전 한양이 67명, 성대가 45명 합격했을 때 연수생을 배출하는 올해의 경우
이가 더 벌어지리라 확신합니다.
전에 선배가 성법>한법 논리에 대한 반박글을 썼는데, 이를 각색하고 또 제 생각을
곁들어 한법의 성법에 비한 우수성을 주장해 보겠습니다.
성대법대 훌리건의 근거없는 상대적 우월성주장이니, 이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성대법대와의 비교는 솔직히 내키지 않습니다. 비교란 경쟁의식이 있을때 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전는 지금까지 성대법대를 의식해 본 적은 없습니다.
기타 한양법대의 분위기 또한 같습니다.
이건 성대법대를 깔보아서가 아니라 우리법대의 분위기가 원래 리버럴하고 우리 스스로 만족
하기 때문입니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을 상정해서 상쇄시키는 집단 최면의 효과가 떠오른다.
아마 우리 법대생들에게 다시 법대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해도 다시 우리 법대를 선택할 사람
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적어도 성대법대를 두고 선택한다면 100% 확신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대학으로 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사법시험을 공부하기에 우리학교만큼 좋은
여건을 가진 곳이 없으며 학교측의 전폭적 후원 또한 든든하다. 우리대학의 고시반 규모와 노하우
및 지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한양의 자랑, 고시반 장학금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장학금 내용
① 입학금 및 등록금 전액 면제
② 기숙사비 면제
③ 도서 구입비 매월 20만원 지급
④ 식비보조 장학금 매월 지급
준수사항
* 고시반 입반원서 접수 이후에 법과대학 교학과를 경유하여 학장의 면접을 받아야 함
--> 고시보겠다는 뜻만 밝혀주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제가 수혜자입니다.
* 매학기 성적이 평점 평균이 85점(B+)이상 유지되어야 함
--> 어렵지 않습니다. 고시반 커리큐럼 따라가면,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최소한 1년을 앞서나가
니까요. 놀지 않으면 됩니다. 한 번 뒤쳐지면, 계속 뒤쳐진다는 점 명심.
* 3학년까지 사법시험 1차 시험 합격자에 한하여 4년간 계속 지급함
(단 고시반 시행 각종 평가 및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한 경우 4년간 계속 지급될 수 있음)
--> 고시반 커리큐럼 따라오면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 고시반 장학생이 아닌 사람도, 재학중 1차에 합격하면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음.
* 그밖에 한양21세기 장학생도 성균관대 삼성장학금과 동일한 혜택을 받음.
위에서 보았듯이,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한양법대가 최적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 과정에도 변호사 출신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실무과목이 포함된 몇 안 되는 법대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법은 최선의 선택입니다.
아웃풋을 말하고 교육시스템을 말하는데 이런것도 어찌보면 뛰어난 시스템의 하나입니다. 그렇
다고 우리법대가 고시외의 것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핸디캡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우리법대 교수진은 현재 27명(명예교수 포함 35명)으로 국내 법대중에 서울대에 이어 가장 많습니다. 물론 교수진의
질적인 명성면에서 서울법대나 고대법대보다는 뒤지는감이 있지만 기타 어느곳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특히 성대법대를 두고 말한다면야... 현재 성대법대에 명성있는 교수는 법대생이라면 모두 알테지만
형법의 서울대출신 임웅교수, 최근에 옮긴 지원림교수 두 분 뿐입니다. 고상룡교수는 이미 민법에서
원로교수로 소수설로 밀려났고 형법의 정성근교수의 명성도 이미 퇴색한지 오래죠.
나머지 분들은 현재 그다지 주목받는 분이 없다. 그 정도로 법대의 명성운운하는건 넌센스입니다.
우리법대의 헌법학계의 5대거목이신 양건교수님, 상법의 이철송 교수님, 형법의 오영근 교수님 등
명성면에서 성대법대는 우리법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변호사 출신 교수님은 4명이나 있어 실무
교육에 대한 인프라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어지간한 대학의 중앙도서관을 능가하는 법대 단과대 도서관과 서울지법을 본따서 만든 최
신식의 모의법정 및 법대 자체의 최신식 학술정보자료관까지 구비해주고 있습니다. 1,2 법학관도
모자라, 최근에는 4000평의 제3법학관까지 건설 계획중에 있고서울시의 허가를 통과하여 정부의
교통계획만 통과할 경우 3월부터 착공에 들어갑니다. (일부 다른건물이다 라고 주장하는 훌리들이
있는데, 한양법대 제1법학관 로비에서 한양법대 신문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한 단과대에서
3개의 건물을 사용하는 유일한 과가 될 것입니다. 제3법학관과 경영관이 신축 제1순위입니다.
이처럼 한양법대의 교육 인프라는 그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법조계의 인맥입니다. 객관적인 평가 자료이며, 객관적인 수치입니다. 훌리건이라 생각하면,
각종 고시 사이트 뒤져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근거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죽어버리겠습니다.
◆법조계◆
▶ 판사, 검사
1-서울대
2-고려대
3-연세대
4-한양대
5-성균관대
...기타
※로마켓-
▶1회~42회까지사시 총 합격자-
순위
대학(배출분포)
1 서울대 (4499)
2 고려대(1250)
3 연세대(540)
4 한양대(434)
5 성균관대(401)
6 경북대(220)
7 경희대 부산대(176)
▶43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98명
2 고려대 156명
3 연세대 80명
4 한양대 67명
5 성균관대 44명
...기타
▶44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33명 (순수법대 177명)
2. 고려대 176명 (순수법대 156명)
3. 연세대 118명 (순수법대 77명)
4. 한양대 56명 (순수법대 46명)
..
..
7. 성균관대 34명 (순수법대 29명)
43, 44회까지 합하면,
한양 67+56을 더하면 557 이고, 성균관대 45+34 = 79 = 480 입니다. 총 77명 차이입니다.
* 한양의 557명은 순수 한양대 학부 출신이며, 대학원까지 포함하여 합격자수를
늘렸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유언비어입니다. 한양대 사법시험반에서 배출한 합격
자는 657명이지만, 순수한 학부 출신 한양대학교 합격자는 557명입니다.
※고시계
▶81~95년(사법시험 300명 선발시절 - 상위 석차 합격자)
* 81~85년 + 86~90년 + 91~95년
1 서울대 821+661+780 = 2262
2 고려대 205+251+225 = 681
3 연세대 62+110+86 = 258
4 한양대 59+103+89 = 251
5 성균관대 68+80+63 = 209
...기타
* 이를 보면, 한법이 최근에 뜬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균관대의 경우 50년대말부
터 사시합격자를 배출했고, 한양대는 70년대중반부터 합격자를 배출했습니다. 70년대 중반이후
합격자를 비교하면 더욱 현저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근소한 차이긴하지만 한법이 성법을 순수학부기준 총합격자뿐아니라 판검사숫자도 앞섭니다.
전통적으로 한법은 법원쪽에 진출이 성법보다 많았구여. 검찰에서도 성법이 얼마전까지 한명차로
앞서다 최근 사시합격이 감소하면서 뒤집혔지요.
여자법조인의 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한법 여성들이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성대와는
차이가 납니다. 단순히 오세오닷컴에서 대학별 단순 여자 합격자 검색 결과(2003포함)만 해도
한양 32명, 성대 20명입니다. 누락된 여성 법조인(성별 표기가 안 됨)을 포함하면 약 2배 차이가
날 것입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한법은 여학생이 전통적으로 강합니다. 다니면서도 느끼고, 한법의 전설이라는 추미애
의원(80년대), 전국 2대 로펌 광장에서 활동중이신 정은영 변호사(90년대), 그리고 지금 연수원에
계시는 강은주 선배님(00년대)은 모두 여성의 힘으로 해 냈습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한법의
스타였죠 (낭설-_-) 작년 00년 사시 여 합격자 6명중 3분이 판,검사에 임용되었고, 한 분은 4대
로펌인 세종의 변호사로 뽑혀 가셨고, 한 분은 여자 최연소로 합격하는 바람에 1년 늦게 연수원
에 입소했고, 1분은 개원하셨습니다.
여학생들은 주저없이 한법으로 오십시오. 고시반에서 한법 여학우 언니들이 공부하는 보면, 감동
받을지도 모릅니다.
◆한양법대와 성균법대의 각 지역별 현직 검판사 명단◆
자료설명
아래 자료는 모두 각 대학 순수 학부출신으로만 집계한결과임.
아래 자료에 보면 알겠지만 우리대학출신의 1호 합격선배님은 71학번으로 75년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신 손용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직제상 차관급)다. 그 해에 이 분 혼자 합격하셨습니다.
타 대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는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는 반대로 신진세력층이 두텁
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알다시피 법조계는 기수가 중시됩니다. 특히 검찰쪽은 검사동일체
원칙상 철저하게 기수별 위계질서하에 움직입니다. 동일 기수에서 승진을 하지 못하게되면 후배
들을 위해 옷을 벗는게 관행화되어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예전 한창 주가를 날리던 야인시대를 보면 쌍칼이 구마적에게 패하고 경성을 떠나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쌍칼이 안떠나고 뭉기적거리면 김두한이 껄끄러울것아닌가? 물론 쌍칼 자신도
처신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 별볼일 없는 인물은 떠날 필요 없습니다.
안 떠나도 누구하나 눈치주는 사람없습니다.
심재륜씨가 법원판결을 통해 복직했을때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후배 기수에서 이미 밀고 올라와서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데 다시 복직하게되면 후배들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는 곧 심재륜씨가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아래 성대 자료를 보면 일부 연령을 보면 이미 옷을 벗었어야 함에도 아직도 엉기적거리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어디에서도 별말이 없는걸로봐서 성대의 위상이 짐작이 가는 바입니다.
변호사쪽은 워낙 숫자가 방대하고 자료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일부만을 추려보면
성균 출신의 경우 국내 대형 법무법인소속의 변호사가 매우 드물다는것이다. 특히 한양법대의 경우
국내 최고의 로펌인 김&장소속 변호사가
정종철 鄭鍾哲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전 서울지법판사) 1969.9.12
정여순 鄭如舜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1964.10.6
두명 임에 비해 성균출신은 전무합니다.
김&장은 거의 대부분이 서울법대출신이며 기타법대는 전무하고 5대법대 가운데서도 연대법대 3명,
고대법대 1명으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연수원 성적 거의 최상위권 실력이거나 경력이 보통 화려하지
않으면 입소가 어렵습니다.
기타 태평양이나 광장 세종 율촌 동부제일 천지인 신세기 한맥 빛고을등 이름있는 로펌의 경우에도
성균법대는 한양법대보다 매우 적습니다. 한양법대출신의 경우 삼성 SDI나 삼성전자 현대증권 하나
은행(법무팀)등 다양한 방면의 진출이 성균법대보다 두드러집니다.
법조인 자료입니다.
===한양법대===
총 : 법원 72명 검찰 86명
서울
법원
71 손용근 孫容根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1952.9.15
75 강현 姜玹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1955.4.28
75 손윤하 孫潤河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4.12.5
76 최동식 崔東軾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7.6.17
77 황한식 黃漢式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8.12.27
78 안기환 安起煥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부장판사 1957.11.21
79 김주현 金柱賢 사법연수원 교수 1961.5.31
80 심갑보 沈甲輔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0.11.9
81 손주환 孫周煥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1.6.2
82 신일수 申一秀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4.5.23
82 박희승 朴熙承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3.9.28
85 박정길 朴禎吉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6.3.01
85 이동철 李東哲 서울가정법원 판사 1966.8.4
87 이은희 李銀姬 서울가정법원 판사 1969.12.12
88 성익경 成益慶 서울지방법원 판사 1970.5.25
88 정영식 丁寧植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9.6.4
88 최한순 崔漢洵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69.11.04
89 이송호 李松昊 서울지방법원 예비판사 1970.7.20
89 황순현 黃順鉉 서울고등법원 예비판사 1969.2.24
89 박주현 朴柱炫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9.5.13
90 정우영 丁又榮 서울고등법원 예비판사 1971.9.26
90 양대권 梁大權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1972.5.3
93 강경숙 姜敬淑 서울지방법원 예비판사 1974.05.20
검찰
72 정동기 鄭東基 서울고등검찰청 공판부장검사 1953.8.17
73 서태경 徐泰慶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4.12.22
74 이동기 李東기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1956.5.17
77 김호영 金鎬榮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9.2.21
77 양종모 梁宗模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3부장 1959.2.17
78 이홍훈 李鴻勳 사법연수원 교수 1959.12.24
78 이부영 李富榮 사법연수원 교수 1958.10.1
79 최성칠 崔聖七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59.1.18
80 박헌경 朴憲璟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60.5.16
80 황병돈 黃丙敦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1961.11.10
81 최운식 崔運植 법무부 검찰국 검사 1961.8.16
81 최경규 崔瓊奎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3.2.20
81 김종국 金鍾局 대검찰청 연구관 1962.7.15
82 이임성 李林成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 1962.10.16
83 김기문 金基文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 1964.2.17
83 이중제 李重霽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4.5.4
83 정찬수 鄭燦琇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4.5.02
84 박용호 朴鎔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5.5.20
84 김종휘 金鍾徽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6.3.5
84 정중택 鄭重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5.4.1
85 박혁 朴赫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7.4.15
85 강경원 姜敬遠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7.8.5
86 강해운 姜蟹暈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66.8.12
89 황금천 黃金千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70.9.2
91 김봉현 金鳳鉉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73.9.25
91 전병주 田炳珠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73.1.30
인천
법원
82 김광수 金光秀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4.7.5
84 곽용섭 郭龍燮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5.5.31
86 김종건 金鍾建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7.11.28
88 박준범 朴俊範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8.4.25
검찰
78 최찬영 崔燦永 인천지방검찰청 형사제2부장검사 1958.10.17
78 송해은 宋海은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장검사 1959.3.27
86 배종혁 裵鍾赫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7.11.11
88 한석리 韓奭履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9.1.25
88 박성진 朴成鎭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3.9.27
수원
법원
79 김건수 金建洙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8.16
87 김도현 金都現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7.8.9
검찰
79 정인균 鄭仁均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검사 1959.6.30
81 최재정 崔載禎 수원지방검찰청 공판송무부 부장검사 1963.12.01
84 김영종 金映鐘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6.9.5
84 김형준 金炯俊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5.12.5
87 나병훈 羅炳勳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9.20
90 고경순 高敬順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1972.2.18
91 강지성 姜知聲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71.10.17
대전
법원
77 윤병구 尹炳九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1959.4.10
80 정원태 鄭源台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9.18
81 노태악 盧泰嶽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1962.11.20
82 유길종 劉吉鍾 대전고등법원 판사 1964.3.20
82 정갑생 鄭甲生 대전고등법원 판사 1964.8.20
검찰
83 한상진 韓相鎭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65.2.25
84 박승환 박승환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검사 1966.2.13
86 김일룡 金日龍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검사 1967.1.25
88 고은석 高殷錫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1968.7.24
88 도진호 都鎭浩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69.5.7
88 강대권 姜大權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70.2.15
89 신교임 申交任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1969.5.03
90 이문한 李文漢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71.6.7
90 차승우 車承祐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 검사 1970.2.20
92 한상미 韓相美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73.8.20
청주
법원
87 김철환 金鐵煥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판사 1969.7.15
검찰
82 하만석 河萬碩 청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4.1.29
83 고광로 高光魯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4.1.30
83 권광현 權珖鉉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5.2.14
대구
법원
79 박정호 朴正鎬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8.24
82 김정도 金正道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3.10.8
82 이영화 李永和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3.10.15
83 황영수 黃永樹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5.1.13
83 김선일 金善日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판사 1965.6.6
86 곽병수 郭柄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판사 1967.10.11
87 이창림 李昌林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8.12.31
검찰
76 성윤환 成允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1956.8.29
79 박재권 朴在權 대구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61.4.5
80 손순혁 孫淳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1960.9.15
81 김태철 金泰喆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62.1.16
부산
법원
73 길기봉 吉基鳳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1953.6.10
82 이영갑 李永甲 부산고등법원 판사 1963.10.15
84 권영문 權寧文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4.7.22
87 오덕식 吳德植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8.10.12
88 이헌숙 李憲淑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9.7.17
88 문상배 文相培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69.8.13
검찰
78 박청수 朴淸洙 부산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1958.10.13
82 박길용 朴吉龍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부부장검사 1956.12.13
창원
법원
81 허홍만 許洪萬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4.1.22
86 남해숙 南海淑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9.5.20
87 김용한 金容漢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판사 1969.7.05
94 신혜영 申惠英 창원지방법원 예비판사 1975.8.13
검찰
80 김동만 金東滿 창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1961.10.7
82 하충헌 河忠憲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3.4.4
86 김종호 金鍾澔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6.4.14
86 최영운 崔永云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 검사 1967.2.10
87 이종구 李鍾具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9.1.30
95 예상균 芮相均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76.02.04
울산
법원
83 김영진 金榮鎭 울산지방법원 판사 1965.3.23
광주
법원
75 김용출 金龍出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59.2.8
80 박보영 朴保泳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61.3.13
82 손창환 孫昌煥 광주고등법원 판사 1963.7.15
85 한재철 韓在喆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판사 1966.9.12
86 손진홍 孫振鴻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7.3.3
88 김성수 金性洙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8.8.26
88 윤기수 尹起秀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9.3.22
89 박종학 朴鍾學 광주지방법원 판사 1970.1.10
90 양환승 梁煥承 광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72.2.20
검찰
79 오해균 吳海均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부장검사 1959.11.2
80 양보승 梁普承 광주고등검찰청 검사 1960.9.30
81 이경수 李慶洙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3.2.21
81 이승영 李承永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부장검사 1963.2.20
81 전호천 田浩千 광주고등검찰청 검사 1962.2.3
82 송삼현 宋三鉉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2.4.16
87 노진영 盧珍英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9.2.28
88 박종근 朴鍾根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검사 1968.7.06
89 김승태 金承泰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 1972.1.09
89 김종필 金鍾必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71.3.15
전주
법원
81 엄운용 嚴雲龍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1962.9.8
87 연운희 延雲熙 전주지방법원 판사 1969.11.19
89 강상덕 姜相德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판사 1969.9.25
89 김선희 金宣希 전주지방법원 판사 1970.9.20
89 김제욱 金濟郁 전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71.4.22
검찰
75 신병수 申炳秀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지청장 1956.4.3
86 안범진 安範鎭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 검사 1967.4.1
88 홍기채 洪起采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9.6.14
88 이봉창 李奉昶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8.3.02
88 김완규 金完圭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70.8.16
90 문영권 文暎權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72.5.4
제주
법원
83 이제식 李제植 제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65.9.11
검찰
75 김우경 金佑卿 제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1956.10.2
78 허세진 許世珍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1959.12.9
81 강동원 康東元 제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2.10.13
93 최민호 崔珉鎬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1972.11.13
<2002 신규판사>
광주 - 박정기 (1)
대전 - 최진숙 (1)
수원 - 오명희 (1)
제주 - 김기홍 (1)
<2002 신규검사>
서울 - 김선문, 노경화 (2)
대구 - 김재근 (1)
====성균관대====
총 : 법원 60 검찰 81명
서울
법원
임종윤 林種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1952.2.13
김건일 金建鎰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6.7.6
홍성칠 洪性七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58.1.6
강영호 姜永虎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1957.10.11
황현주 黃玄周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1957.12.5
고영구 高榮九 서울고등법원 판사 1958.4.13
이민영 李珉榮 서울지방법원 판사 1959.5.16
임치용 林治龍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부장판사 1960.6.19
이영진 李榮眞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61.7.25
강두례 姜斗澧 서울고등법원 예비판사 1968.8.15
신동훈 申東勳 서울지방법원 판사 1971.1.26
김형석 金亨錫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1972.12.31
임일혁 任一爀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예비판사 1973.11.25
김희중 金熙中 서울지방법원 판사 1973.06.11
검찰
김종길 金鐘吉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48.6.28
서영제 徐永濟 대검찰청 마약부장검사 1950.1.1
이복태 李福泰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0.8.23
박영관 朴榮琯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장 검사 1952.10.15
노상균 魯相均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 검사 1954.12.13
김태희 金泰熙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형사1부장검사 1954.12.13
정병욱 丁炳旭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5.12.22
송민호 宋珉虎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6.7.6
박기준 朴基俊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6부장검사 1958.10.22
이삼 李三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8.2.17
김상봉 金尙鳳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8.6.15
주철현 朱哲鉉 대검찰청 공안2과장검사 1959.3.12
최진안 崔珍安 서울지방검찰청 고양지청 차장검사 1956.6.25
홍만표 洪滿杓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59.6.9
김필규 金弼圭 대검찰청 검사 1959.7.10
문찬석 文燦晳 법무부 법무심의검사 1961.11.22
민만기 閔萬基 법무부 검사 1960.11.22
양병종 梁炳鍾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60.8.29
오광수 吳광洙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60.11.1
김광암 金光巖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부부장검사 1962.2.3
원범연 元範淵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2.10.16
양근복 梁根福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4.9.2
김형길 金炯吉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1965.7.6
성지경 成之慶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65.03.14
오자성 吳自誠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1966.1.21
조성규 曺聖奎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67.04.07
김홍창 金鴻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8.8.13
양요안 梁要安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68.1.7
문봉길 文鳳吉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71.2.24
이창수 李昌洙 서울지방검찰청 서울지검 검사 1971.8.4
김영일 金英逸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72.1.13
신은선 申銀善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72.07.06
인천
법원
임성철 林成哲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4.3.3
김상배 金相培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판사 1966.11.29
오태환 吳太煥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6.11.09
이보현 李甫鉉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7.11.18
이혁우 李赫雨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부장판사 1967.7.24
이현우 李賢雨 인천지방법원 판사 1970.4.18
신헌석 申軒錫 인천지방법원 판사 1970.10.7
검찰
윤형윤 尹炯允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58.12.16
이광재 李光載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54.11.21
한동영 韓東榮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1.4.29
김성은 金聖恩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6.5.25
정태영 鄭太榮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 1970.07.23
수원
법원
김봉겸 金奉謙 수원지방법원 광명시법원 판사 1949.4.23
김광섭 金光燮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6.1.23
박정헌 朴正憲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1959.1.12
오준근 吳俊根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안성시법원 판사 1965.8.27
최용호 崔龍浩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4.7.3
박진환 朴鎭煥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사 1966.12.15
원익선 元益善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사 1967.2.10
조미연 趙美衍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7.1.20
장용범 張容範 수원지방법원 판사 1971.11.27
검찰
김규섭 金圭燮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1945.12.1
윤석만 尹錫萬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57.8.15
곽상도 郭尙道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59.12.23
서홍기 徐洪紀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5.8.12
하종철 河宗鐵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1961.1.28
김재하 金載夏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9.9.5
이기옥 李基沃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8.2
대전
법원
최정기 崔廷基 대전고등법원 판사 1963.10.19
이기영 李起榮 대전지방법원 판사 1965.4.15
소병석 蘇秉錫 대전지방법원 판사 1972.11.23
검찰
김재호 金載淏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 검사 1969.02.12
청주
법원
이강원 李康源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8.18
서재국 徐在國 청주지방법원 판사 1972.7.2
검찰
김규헌 金圭憲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장 1954.9.17
김영익 金英翼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6.8.22
윤갑근 尹甲根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4.6.9
대구
법원
강석동 姜錫東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2.2.19
이윤직 李允稙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3.9.20
조창학 趙昌鶴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판사 1963.8.3
권성우 權成雨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8.1.26
염우영 廉隅榮 대구지방법원 판사 1970.01.05
성경희 成京姬 대구지방법원 예비판사 1975.2.17
검찰
김옥철 金鈺哲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1949.11.20
정대표 鄭大杓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56.6.27
윤정석 尹晶石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 검사 1958.1.12
박해운 朴海雲 대구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0.1.14
홍종호 洪鍾鎬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64.8.14
김종형 金鍾亨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66.1.13
부산
법원
황종국 黃宗國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1952.1.2
현용선 玄容先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8.12.24
정성완 鄭晟完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8.10.07
박희근 朴熙槿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71.12.29
신교식 申校植 부산지방법원 예비판사 1976.1.03
검찰
정홍원 鄭烘原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1944.10.9
박홍수 朴洪洙 부산고등검찰청 검사 1958.1.28
최해종 崔海鐘 부산고등검찰청 검사 1959.2.15
박문호 朴文鎬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부장검사 1959.6.19
김대룡 金大龍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70.5.22
박재휘 朴宰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70.05.26
창원
법원
장영달 張榮達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4.12.16
조우연 趙佑衍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8.10.20
오성우 吳星禹 창원지방법원 진해시법원 판사 1968.12.30
박태안 朴泰安 창원지방법원 판사 1970.5.16
검찰
김효중 金孝仲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6.2.7
임재동 林在東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 검사 1966.10.5
남상관 南相寬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1.17
김영현 金永鉉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 1967.08.26
박윤권 朴倫權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09.28
김도완 金度完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9.09.17
노만석 盧萬錫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 검사 1970.11.19
울산
법원
노진영 魯鎭榮 울산지방법원 판사 1965.07.22
이용운 李龍雲 울산지방법원 판사 1969.3.21
광주
법원
김승정 金承貞 광주지방법원 판사 1970.12.20
양영희 梁榮熙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9.7.18
검찰
이선봉 李善鳳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6.3.30
이기선 李起先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 1968.12.30
최성필 崔盛弼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8.09.25
전주
법원
남준희 南遵熙 전주지방법원 판사 1966.1.6
검찰
노명선 盧明善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59.10.4
한석훈 韓晳薰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57.3.8
박종일 朴鍾一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0.6.5
이영우 李永雨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1.3.15
정재봉 丁在封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3.6.22
춘천
법원
전우진 全遇鎭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판사 1962.10.21
이종우 李鐘雨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정성군태백시평창군법원 판사 1968.1.6
검찰
김수민 金秀敏 춘천지방검찰청 검사 1953.12.14
김지용 金志容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검사 1968.05.23
제주
법원
양경승 梁慶承 제주지방법원 판사 1958.12.27
검찰
김인원 金仁垣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1962.12.10
<2002 예비판사>
서울 - 임형태 (1)
광주 - 서삼희 (1)
대구 - 엄철 (1)
<2002 신규검사>
서울 - 김훈영 (1)
대구 - 이의수 (1)
광주 - 김현정 (1)
이건 좀 말이 과격하지만^^;;; 밑에 정원 이야기도 있고 해서 삭제하려다가
그냥 씁니다..
마지막으로, 성대 법대생이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 2개를 비판한다.
-우리법대가 타대출신을 받아서 우리대학 사시합격자를 늘렸다는 문제-
그것이 크게 비난받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
예전 법대 초창기시절에 아직 기반이 닦이지 않았던 법대를 단기간에 키우기위해
서울대를 졸업했음에도 사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사시도전의 의지는 있으나 가사 형편상 여건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대학원(산업대학원)에 동록시켜서 학비를 대주면서 고시반에서 사시를 보도록 배려했다.
그 이유는 그들을 통해 무슨 인맥덕을 보고자한것이 아니었고 공부방법등을 배우고
법대부흥과 사법시험반의 기반을 닦으려는 의도였다.
그런 사람들은 조사자료의 이해관계상 대학원과 학부가 중복될 경우 출신집계는
학부우선인 국내 관행상 전부 서울대(졸)로 계산이되어 나온다.
아래 우리대학의 지역별 검판사 출신에서 보듯 모든 자료는 순수 우리대학 학부출신의
집계자료이다. 현재 서울대출신으로 우리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합격한 사람들
가운데 현직 검판사로는 강대석(姜大錫) 전주지검 검사(서울법대 71년 졸, 한양대 산업대학원 77년 졸, 사법시험 79년합격)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 분은 그 어디에도 한양대출신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나머지 그렇게 해서 합격하신 분들이 얼마 되지도 않을 뿐더러 외부 집계에 한양대출신보다는 학부졸업 대학인 서울대로 나오게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국내 관행상 학부기준이 우선인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형식적 구분일뿐 졸업자 자신이 내심상 어디에 더욱 애착과 고마움을 느끼는가가 실질적인 모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현재는 그런 제도는 진작에 없어졌으며 최근의 모든 합격자들은 모두 우리대학 학부출신이다.
순수 학부출신으로도 역사가 월등히 길고 졸업생도 많았던 성대법대보다 총 합격자에서 50여명이상 많다.
타대학 이중학적일경우 사시합격생 한명에 목숨걸고있는 대학이 수두룩한 마당에 다른 대학에서 가만있겠는가?
특히 올해는 두 배의 격차가 벌어지자 이제 편입생을 받아서 합격시켰다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험담을하고다닌다. 인간이하의 사고방식을 지닌 인간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논란이되자 LEC법률신문에서 직접 조사하여 대학별 편입을 통한 중복합격자 현황까지 발표하는 해프닝이있었다.
그런데 거기보면 우리대학 총 합격자(사시 67명, 군법 3명)중 우리대학과 복수대학으로 합격된 사람이 연대출신 한 명이다. 그럼 연대에서 우리대학으로 편입했다는소린가?
합격자들의 학번을 보면 편입생은 숫자로 구분이 되는데 고시반에 직접 학번까지 공개했었다.
편입생 두 명이 합격했는데 모두 일반 편입으로 입학한뒤 우리법대에서 공부하여 합격했다.
이것도 트집거린가? 우리 대학이 편입생을 받기 시작한게 96학번부터니까 이제 나올때도
되지 않았나? 성대는 그 이전부터 편입생 왕창씩 받았다.
-성대법대의 고무줄 정원 변명에 대해-
성대 법대 정원은 80년대에 130명이었고 90년대 넘어오면서부터 주간 150명에 야간이 80명으로 총 230명이었다. 이것은 직접 당시 입시모집인원을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해보면안다. 야금야금 야간을 주간으로 전환시키고 교수회의를 통해 타단과대에서 빼오면서 주간 정원이 서서히 늘어나기시작했고 96년도 주간 180명에 야간 60명수준이되었다.
우리법대의 경우 82년도까지 40명정원이었고 83년도부터 교육정책에 일률적으로 졸업정원제(졸업생의 30%신입생 더 선발-다른대학도 모두 마찬가지였음)를 실시하면서 정원이 200명으로 늘고 법대 단과대 독립이된다. 98년도부터 60명을 늘려서 260명의 현재 법대 정원체제가 만들어진것이다.
따라서 정원 200명의 효과가 나타나는것은 사실상 당시의 극히 적은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감안하면 80년대 중후반부터다. 그리고 실제로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한법의 합격자는 양적으로 비약적 성장을 거두어 성법을 두 배 이상으로 따돌렸다. 이것은 그동안의 자료를 통해 증명된것이다. 대단한것은 그 40명정원으로 70년대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10여명의 합격자를 꾸준하게 냈다는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1천명 가까이 뽑는 시절이 아니었고 선발인원이 200~300여명에 불과해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리고 성대법대는 그정도 인원이면 쪽수부족을 탓할 처지가 아님을 알아야한다. 특히 야간을 빼고 계산하는데 성대 야간법대를 왜 빼는가? 단지 점수가 조금 낮다고 빼는 이유라면 성대법대 야간보다 더 낮은
점수로 합격자를 내왔던 지방의 영남대같은 대학은 합격률이 100%가 넘는가?
점수가 낮다는게 뺄 이유는 안된다. 특히 성대법대는 야간이라해도 법대만큼은 점수가 상당해서 서울의 몇 개 대학들은 입학할 수준이었다. 마치 지금의 시립대 세무(야간)처럼 말이다.
야간이 사정상 대학에 못간 직장인들의 학업기회보다는 주간못가서 간판따러가는곳으로 변질된것은
오래전일이다. 그래서 경제사정 좋아진 80년대넘어오면서부터 야간을 모두 없앴는데 주요 대학중 성대만
작년까지 야간천국이었다. 더욱이 야간간 사람들이 동일캠퍼스내에서 주간생하고 똑같이 주간수업듣고 고시반도 성적좋으면 서울캠 고시반에서 같은 환경의 혜택받으며 같은 분위기속에서 공부하는데 단지 수능성적 낮다고 빼버리는게 말이 되는가?
수능성적이 좀 낮은것일뿐 그들이 바보는 아니다. 실제 성대는 야간에서 차석이 나오는등 합격자가 꽤 나왔다. 그런 사람들 전부 주간법대로 학적까지 바꿔주면서 그들을 합격률계산의 숫자에서는 빼버린다는게 말이나 될법한 소린가?
지금의 성대인맥가운데 특히 공직계통은 예전 당시 가정 형편상 못배운 공무원들이 성대야간들어가서 학위따고 지금 공무원 직급올라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도 상당수다.
그들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면서 그들이 이뤄낸 실적은 이용해먹나?
성대법대의 명성이 법대가 대단히 뛰어나서 얻은것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그 당시에는 쓸만한 법대자체가 워낙 없었고 성대혼자 후기여서 서울대탈락자 받아갔기에
손 안대고 코풀은격에 불과하다. 그 이후 각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법대 키우고 우리법대
와 연대법대가 성장하고 서울대후기 공급끊기고 하면서 성대법대는 이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있는것이다. 최근들어 법조계의 성대맥은 갈수록 쪼그라들고있다. 그렇다고 성대법대가 그동안 쌓은 인맥이 대단한것도 아니고.
우리법대가 후발주자로서 엄청난 투자와 각고의 노력끝에 단기간에 지금의 명성을 이룩한것에 비하면 성대법대는 수험생을 상대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이지경까지 온것이다.
성대법대는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절치부심해야한다. 그런식으로 타대의 성장을 배아파하고
끌어내린다고 당신네 법대가 튀어 오르는게 아니다.
이미 법조계 평판도에서 한법은 성법을 능가했고, 50년대 말부터 합격자를
배출한 성법보다 70년대 중반 최초(75년 손용근 부장판사님) 합격자를 낸 한법이
합격자수가 많다는 것은 너네 대학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1. 합격자수 조작이라는 헛소리에 대해 반론한다.
각종 고시계에 집계된 한양출신 법조인은 총 557명이다. 557명이 많다.
현재 고시계에서 집계하고 있는 합격자수는 순수한 학부 출신이다. 분명히 밝힌다.
개같은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고, 너네 대학 합격자수나 똑바로 알아라.
사법시험반에서 문제가 있는 게시를 했다.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임은 인정한다.
사법시험반에서 밝힌 총 합격자수는 657명이다. 한양대 사법시험반을 거친 총 합
격자수이며, (당시 타대 대학원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게재한 듯. 건의
를 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삭제하도록 해야겠다) 한양 출신인 557명과는 구
분되는 숫자이다. 우리가 합격자 순위를 따지는 것은 순수 한양 출신인 557명이며,
성대보다는 약 70명 이상 많다. 한양대 최초합격자는 75년의 법대 손용근 판사님
을 비롯한 5명이시다. 확인 똑바로 해라. 100명은 타대 학부 출신으로 고시계에서
는 기록되었다. 합격자수 조작의 유언비어는 퍼뜨리지 말길 바란다.
▶1회~42회까지사시 총 합격자-
순위
대학(배출분포)
1 서울대 (4499)
2 고려대(1250)
3 연세대(540)
4 한양대(434)
5 성균관대(401)
6 경북대(220)
7 경희대 부산대(176)
▶43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98명
2 고려대 156명
3 연세대 80명
4 한양대 67명
5 성균관대 44명
...기타
▶44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33명 (순수법대 177명)
2. 고려대 176명 (순수법대 156명)
3. 연세대 118명 (순수법대 77명)
4. 한양대 56명 (순수법대 46명)
..
..
7. 성균관대 34명 (순수법대 29명)
43, 44회까지 합하면,
한양 67+56을 더하면 557 이고, 성균관대 45+34 = 79 = 480 입니다. 총 77명 차이입니다.
입학점수 가지고 말, 말 하는데 법대 수준은 입학수준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읽어보십시오. 전 단순무식한 훌리건이 아닙니다.
다분히 한법의 비하에 대해서 격분하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균관법대 VS 한양법대...
'당연히 성대 법대 아닌가? 배치표 점수에서 그렇게 차이 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고, 고득점자들이 성법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분명 잘못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른 정보를 드리고 싶습니다. 단순한 배치표 자료는 무의미합
니다.
배치표는 또 한 번의 실수를 범했고, 그것은 분명 오보이며, 2003 입시에서 알 수 있듯
이 컷트라인은 한법이 7점 정도 높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입니다.
"점수 이상의 가치, 점수 높으니까 당연히 성법 가야지"
수험생의 머릿속에 있는 오판입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를 보면, 3년간 한법이 단연 우위에 있었습니다.
2002년 한양 67명, 성균관 45명
2003년 한양 56명, 성균관 35명입니다.
판,검사 배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3년까지 한양이 법원 72명, 검찰 86명 / 성균관이 법원 60명, 검찰 81명입니다.
2년전 한양이 67명, 성대가 45명 합격했을 때 연수생을 배출하는 올해의 경우
이가 더 벌어지리라 확신합니다.
전에 선배가 성법>한법 논리에 대한 반박글을 썼는데, 이를 각색하고 또 제 생각을
곁들어 한법의 성법에 비한 우수성을 주장해 보겠습니다.
성대법대 훌리건의 근거없는 상대적 우월성주장이니, 이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성대법대와의 비교는 솔직히 내키지 않습니다. 비교란 경쟁의식이 있을때 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전는 지금까지 성대법대를 의식해 본 적은 없습니다.
기타 한양법대의 분위기 또한 같습니다.
이건 성대법대를 깔보아서가 아니라 우리법대의 분위기가 원래 리버럴하고 우리 스스로 만족
하기 때문입니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을 상정해서 상쇄시키는 집단 최면의 효과가 떠오른다.
아마 우리 법대생들에게 다시 법대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해도 다시 우리 법대를 선택할 사람
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적어도 성대법대를 두고 선택한다면 100% 확신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대학으로 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사법시험을 공부하기에 우리학교만큼 좋은
여건을 가진 곳이 없으며 학교측의 전폭적 후원 또한 든든하다. 우리대학의 고시반 규모와 노하우
및 지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한양의 자랑, 고시반 장학금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장학금 내용
① 입학금 및 등록금 전액 면제
② 기숙사비 면제
③ 도서 구입비 매월 20만원 지급
④ 식비보조 장학금 매월 지급
준수사항
* 고시반 입반원서 접수 이후에 법과대학 교학과를 경유하여 학장의 면접을 받아야 함
--> 고시보겠다는 뜻만 밝혀주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제가 수혜자입니다.
* 매학기 성적이 평점 평균이 85점(B+)이상 유지되어야 함
--> 어렵지 않습니다. 고시반 커리큐럼 따라가면,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최소한 1년을 앞서나가
니까요. 놀지 않으면 됩니다. 한 번 뒤쳐지면, 계속 뒤쳐진다는 점 명심.
* 3학년까지 사법시험 1차 시험 합격자에 한하여 4년간 계속 지급함
(단 고시반 시행 각종 평가 및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한 경우 4년간 계속 지급될 수 있음)
--> 고시반 커리큐럼 따라오면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 고시반 장학생이 아닌 사람도, 재학중 1차에 합격하면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음.
* 그밖에 한양21세기 장학생도 성균관대 삼성장학금과 동일한 혜택을 받음.
위에서 보았듯이,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한양법대가 최적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 과정에도 변호사 출신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실무과목이 포함된 몇 안 되는 법대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법은 최선의 선택입니다.
아웃풋을 말하고 교육시스템을 말하는데 이런것도 어찌보면 뛰어난 시스템의 하나입니다. 그렇
다고 우리법대가 고시외의 것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핸디캡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우리법대 교수진은 현재 27명(명예교수 포함 35명)으로 국내 법대중에 서울대에 이어 가장 많습니다. 물론 교수진의
질적인 명성면에서 서울법대나 고대법대보다는 뒤지는감이 있지만 기타 어느곳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특히 성대법대를 두고 말한다면야... 현재 성대법대에 명성있는 교수는 법대생이라면 모두 알테지만
형법의 서울대출신 임웅교수, 최근에 옮긴 지원림교수 두 분 뿐입니다. 고상룡교수는 이미 민법에서
원로교수로 소수설로 밀려났고 형법의 정성근교수의 명성도 이미 퇴색한지 오래죠.
나머지 분들은 현재 그다지 주목받는 분이 없다. 그 정도로 법대의 명성운운하는건 넌센스입니다.
우리법대의 헌법학계의 5대거목이신 양건교수님, 상법의 이철송 교수님, 형법의 오영근 교수님 등
명성면에서 성대법대는 우리법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변호사 출신 교수님은 4명이나 있어 실무
교육에 대한 인프라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어지간한 대학의 중앙도서관을 능가하는 법대 단과대 도서관과 서울지법을 본따서 만든 최
신식의 모의법정 및 법대 자체의 최신식 학술정보자료관까지 구비해주고 있습니다. 1,2 법학관도
모자라, 최근에는 4000평의 제3법학관까지 건설 계획중에 있고서울시의 허가를 통과하여 정부의
교통계획만 통과할 경우 3월부터 착공에 들어갑니다. (일부 다른건물이다 라고 주장하는 훌리들이
있는데, 한양법대 제1법학관 로비에서 한양법대 신문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한 단과대에서
3개의 건물을 사용하는 유일한 과가 될 것입니다. 제3법학관과 경영관이 신축 제1순위입니다.
이처럼 한양법대의 교육 인프라는 그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법조계의 인맥입니다. 객관적인 평가 자료이며, 객관적인 수치입니다. 훌리건이라 생각하면,
각종 고시 사이트 뒤져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근거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죽어버리겠습니다.
◆법조계◆
▶ 판사, 검사
1-서울대
2-고려대
3-연세대
4-한양대
5-성균관대
...기타
※로마켓-
▶1회~42회까지사시 총 합격자-
순위
대학(배출분포)
1 서울대 (4499)
2 고려대(1250)
3 연세대(540)
4 한양대(434)
5 성균관대(401)
6 경북대(220)
7 경희대 부산대(176)
▶43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98명
2 고려대 156명
3 연세대 80명
4 한양대 67명
5 성균관대 44명
...기타
▶44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33명 (순수법대 177명)
2. 고려대 176명 (순수법대 156명)
3. 연세대 118명 (순수법대 77명)
4. 한양대 56명 (순수법대 46명)
..
..
7. 성균관대 34명 (순수법대 29명)
43, 44회까지 합하면,
한양 67+56을 더하면 557 이고, 성균관대 45+34 = 79 = 480 입니다. 총 77명 차이입니다.
* 한양의 557명은 순수 한양대 학부 출신이며, 대학원까지 포함하여 합격자수를
늘렸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유언비어입니다. 한양대 사법시험반에서 배출한 합격
자는 657명이지만, 순수한 학부 출신 한양대학교 합격자는 557명입니다.
※고시계
▶81~95년(사법시험 300명 선발시절 - 상위 석차 합격자)
* 81~85년 + 86~90년 + 91~95년
1 서울대 821+661+780 = 2262
2 고려대 205+251+225 = 681
3 연세대 62+110+86 = 258
4 한양대 59+103+89 = 251
5 성균관대 68+80+63 = 209
...기타
* 이를 보면, 한법이 최근에 뜬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균관대의 경우 50년대말부
터 사시합격자를 배출했고, 한양대는 70년대중반부터 합격자를 배출했습니다. 70년대 중반이후
합격자를 비교하면 더욱 현저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근소한 차이긴하지만 한법이 성법을 순수학부기준 총합격자뿐아니라 판검사숫자도 앞섭니다.
전통적으로 한법은 법원쪽에 진출이 성법보다 많았구여. 검찰에서도 성법이 얼마전까지 한명차로
앞서다 최근 사시합격이 감소하면서 뒤집혔지요.
여자법조인의 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한법 여성들이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성대와는
차이가 납니다. 단순히 오세오닷컴에서 대학별 단순 여자 합격자 검색 결과(2003포함)만 해도
한양 32명, 성대 20명입니다. 누락된 여성 법조인(성별 표기가 안 됨)을 포함하면 약 2배 차이가
날 것입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한법은 여학생이 전통적으로 강합니다. 다니면서도 느끼고, 한법의 전설이라는 추미애
의원(80년대), 전국 2대 로펌 광장에서 활동중이신 정은영 변호사(90년대), 그리고 지금 연수원에
계시는 강은주 선배님(00년대)은 모두 여성의 힘으로 해 냈습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한법의
스타였죠 (낭설-_-) 작년 00년 사시 여 합격자 6명중 3분이 판,검사에 임용되었고, 한 분은 4대
로펌인 세종의 변호사로 뽑혀 가셨고, 한 분은 여자 최연소로 합격하는 바람에 1년 늦게 연수원
에 입소했고, 1분은 개원하셨습니다.
여학생들은 주저없이 한법으로 오십시오. 고시반에서 한법 여학우 언니들이 공부하는 보면, 감동
받을지도 모릅니다.
◆한양법대와 성균법대의 각 지역별 현직 검판사 명단◆
자료설명
아래 자료는 모두 각 대학 순수 학부출신으로만 집계한결과임.
아래 자료에 보면 알겠지만 우리대학출신의 1호 합격선배님은 71학번으로 75년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신 손용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직제상 차관급)다. 그 해에 이 분 혼자 합격하셨습니다.
타 대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는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는 반대로 신진세력층이 두텁
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알다시피 법조계는 기수가 중시됩니다. 특히 검찰쪽은 검사동일체
원칙상 철저하게 기수별 위계질서하에 움직입니다. 동일 기수에서 승진을 하지 못하게되면 후배
들을 위해 옷을 벗는게 관행화되어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예전 한창 주가를 날리던 야인시대를 보면 쌍칼이 구마적에게 패하고 경성을 떠나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쌍칼이 안떠나고 뭉기적거리면 김두한이 껄끄러울것아닌가? 물론 쌍칼 자신도
처신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 별볼일 없는 인물은 떠날 필요 없습니다.
안 떠나도 누구하나 눈치주는 사람없습니다.
심재륜씨가 법원판결을 통해 복직했을때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후배 기수에서 이미 밀고 올라와서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데 다시 복직하게되면 후배들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는 곧 심재륜씨가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아래 성대 자료를 보면 일부 연령을 보면 이미 옷을 벗었어야 함에도 아직도 엉기적거리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어디에서도 별말이 없는걸로봐서 성대의 위상이 짐작이 가는 바입니다.
변호사쪽은 워낙 숫자가 방대하고 자료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일부만을 추려보면
성균 출신의 경우 국내 대형 법무법인소속의 변호사가 매우 드물다는것이다. 특히 한양법대의 경우
국내 최고의 로펌인 김&장소속 변호사가
정종철 鄭鍾哲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전 서울지법판사) 1969.9.12
정여순 鄭如舜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1964.10.6
두명 임에 비해 성균출신은 전무합니다.
김&장은 거의 대부분이 서울법대출신이며 기타법대는 전무하고 5대법대 가운데서도 연대법대 3명,
고대법대 1명으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연수원 성적 거의 최상위권 실력이거나 경력이 보통 화려하지
않으면 입소가 어렵습니다.
기타 태평양이나 광장 세종 율촌 동부제일 천지인 신세기 한맥 빛고을등 이름있는 로펌의 경우에도
성균법대는 한양법대보다 매우 적습니다. 한양법대출신의 경우 삼성 SDI나 삼성전자 현대증권 하나
은행(법무팀)등 다양한 방면의 진출이 성균법대보다 두드러집니다.
법조인 자료입니다.
===한양법대===
총 : 법원 72명 검찰 86명
서울
법원
71 손용근 孫容根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1952.9.15
75 강현 姜玹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1955.4.28
75 손윤하 孫潤河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4.12.5
76 최동식 崔東軾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7.6.17
77 황한식 黃漢式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8.12.27
78 안기환 安起煥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부장판사 1957.11.21
79 김주현 金柱賢 사법연수원 교수 1961.5.31
80 심갑보 沈甲輔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0.11.9
81 손주환 孫周煥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1.6.2
82 신일수 申一秀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4.5.23
82 박희승 朴熙承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3.9.28
85 박정길 朴禎吉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6.3.01
85 이동철 李東哲 서울가정법원 판사 1966.8.4
87 이은희 李銀姬 서울가정법원 판사 1969.12.12
88 성익경 成益慶 서울지방법원 판사 1970.5.25
88 정영식 丁寧植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9.6.4
88 최한순 崔漢洵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69.11.04
89 이송호 李松昊 서울지방법원 예비판사 1970.7.20
89 황순현 黃順鉉 서울고등법원 예비판사 1969.2.24
89 박주현 朴柱炫 서울지방법원 판사 1969.5.13
90 정우영 丁又榮 서울고등법원 예비판사 1971.9.26
90 양대권 梁大權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1972.5.3
93 강경숙 姜敬淑 서울지방법원 예비판사 1974.05.20
검찰
72 정동기 鄭東基 서울고등검찰청 공판부장검사 1953.8.17
73 서태경 徐泰慶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4.12.22
74 이동기 李東기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1956.5.17
77 김호영 金鎬榮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9.2.21
77 양종모 梁宗模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3부장 1959.2.17
78 이홍훈 李鴻勳 사법연수원 교수 1959.12.24
78 이부영 李富榮 사법연수원 교수 1958.10.1
79 최성칠 崔聖七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59.1.18
80 박헌경 朴憲璟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60.5.16
80 황병돈 黃丙敦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1961.11.10
81 최운식 崔運植 법무부 검찰국 검사 1961.8.16
81 최경규 崔瓊奎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3.2.20
81 김종국 金鍾局 대검찰청 연구관 1962.7.15
82 이임성 李林成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 1962.10.16
83 김기문 金基文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 1964.2.17
83 이중제 李重霽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4.5.4
83 정찬수 鄭燦琇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4.5.02
84 박용호 朴鎔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5.5.20
84 김종휘 金鍾徽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6.3.5
84 정중택 鄭重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5.4.1
85 박혁 朴赫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7.4.15
85 강경원 姜敬遠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7.8.5
86 강해운 姜蟹暈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66.8.12
89 황금천 黃金千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70.9.2
91 김봉현 金鳳鉉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73.9.25
91 전병주 田炳珠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73.1.30
인천
법원
82 김광수 金光秀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4.7.5
84 곽용섭 郭龍燮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5.5.31
86 김종건 金鍾建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7.11.28
88 박준범 朴俊範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8.4.25
검찰
78 최찬영 崔燦永 인천지방검찰청 형사제2부장검사 1958.10.17
78 송해은 宋海은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장검사 1959.3.27
86 배종혁 裵鍾赫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7.11.11
88 한석리 韓奭履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9.1.25
88 박성진 朴成鎭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3.9.27
수원
법원
79 김건수 金建洙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8.16
87 김도현 金都現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7.8.9
검찰
79 정인균 鄭仁均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검사 1959.6.30
81 최재정 崔載禎 수원지방검찰청 공판송무부 부장검사 1963.12.01
84 김영종 金映鐘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6.9.5
84 김형준 金炯俊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5.12.5
87 나병훈 羅炳勳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9.20
90 고경순 高敬順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1972.2.18
91 강지성 姜知聲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71.10.17
대전
법원
77 윤병구 尹炳九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1959.4.10
80 정원태 鄭源台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9.18
81 노태악 盧泰嶽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1962.11.20
82 유길종 劉吉鍾 대전고등법원 판사 1964.3.20
82 정갑생 鄭甲生 대전고등법원 판사 1964.8.20
검찰
83 한상진 韓相鎭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65.2.25
84 박승환 박승환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검사 1966.2.13
86 김일룡 金日龍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검사 1967.1.25
88 고은석 高殷錫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1968.7.24
88 도진호 都鎭浩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69.5.7
88 강대권 姜大權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70.2.15
89 신교임 申交任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1969.5.03
90 이문한 李文漢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71.6.7
90 차승우 車承祐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 검사 1970.2.20
92 한상미 韓相美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1973.8.20
청주
법원
87 김철환 金鐵煥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판사 1969.7.15
검찰
82 하만석 河萬碩 청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4.1.29
83 고광로 高光魯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4.1.30
83 권광현 權珖鉉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5.2.14
대구
법원
79 박정호 朴正鎬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8.24
82 김정도 金正道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3.10.8
82 이영화 李永和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3.10.15
83 황영수 黃永樹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5.1.13
83 김선일 金善日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판사 1965.6.6
86 곽병수 郭柄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판사 1967.10.11
87 이창림 李昌林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8.12.31
검찰
76 성윤환 成允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1956.8.29
79 박재권 朴在權 대구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61.4.5
80 손순혁 孫淳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1960.9.15
81 김태철 金泰喆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62.1.16
부산
법원
73 길기봉 吉基鳳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1953.6.10
82 이영갑 李永甲 부산고등법원 판사 1963.10.15
84 권영문 權寧文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4.7.22
87 오덕식 吳德植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8.10.12
88 이헌숙 李憲淑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9.7.17
88 문상배 文相培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69.8.13
검찰
78 박청수 朴淸洙 부산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1958.10.13
82 박길용 朴吉龍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부부장검사 1956.12.13
창원
법원
81 허홍만 許洪萬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4.1.22
86 남해숙 南海淑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9.5.20
87 김용한 金容漢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판사 1969.7.05
94 신혜영 申惠英 창원지방법원 예비판사 1975.8.13
검찰
80 김동만 金東滿 창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1961.10.7
82 하충헌 河忠憲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3.4.4
86 김종호 金鍾澔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6.4.14
86 최영운 崔永云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 검사 1967.2.10
87 이종구 李鍾具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9.1.30
95 예상균 芮相均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76.02.04
울산
법원
83 김영진 金榮鎭 울산지방법원 판사 1965.3.23
광주
법원
75 김용출 金龍出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59.2.8
80 박보영 朴保泳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61.3.13
82 손창환 孫昌煥 광주고등법원 판사 1963.7.15
85 한재철 韓在喆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판사 1966.9.12
86 손진홍 孫振鴻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7.3.3
88 김성수 金性洙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8.8.26
88 윤기수 尹起秀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9.3.22
89 박종학 朴鍾學 광주지방법원 판사 1970.1.10
90 양환승 梁煥承 광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72.2.20
검찰
79 오해균 吳海均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부장검사 1959.11.2
80 양보승 梁普承 광주고등검찰청 검사 1960.9.30
81 이경수 李慶洙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3.2.21
81 이승영 李承永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부장검사 1963.2.20
81 전호천 田浩千 광주고등검찰청 검사 1962.2.3
82 송삼현 宋三鉉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2.4.16
87 노진영 盧珍英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9.2.28
88 박종근 朴鍾根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검사 1968.7.06
89 김승태 金承泰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 1972.1.09
89 김종필 金鍾必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71.3.15
전주
법원
81 엄운용 嚴雲龍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1962.9.8
87 연운희 延雲熙 전주지방법원 판사 1969.11.19
89 강상덕 姜相德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판사 1969.9.25
89 김선희 金宣希 전주지방법원 판사 1970.9.20
89 김제욱 金濟郁 전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71.4.22
검찰
75 신병수 申炳秀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지청장 1956.4.3
86 안범진 安範鎭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 검사 1967.4.1
88 홍기채 洪起采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9.6.14
88 이봉창 李奉昶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8.3.02
88 김완규 金完圭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70.8.16
90 문영권 文暎權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72.5.4
제주
법원
83 이제식 李제植 제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65.9.11
검찰
75 김우경 金佑卿 제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1956.10.2
78 허세진 許世珍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1959.12.9
81 강동원 康東元 제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2.10.13
93 최민호 崔珉鎬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1972.11.13
<2002 신규판사>
광주 - 박정기 (1)
대전 - 최진숙 (1)
수원 - 오명희 (1)
제주 - 김기홍 (1)
<2002 신규검사>
서울 - 김선문, 노경화 (2)
대구 - 김재근 (1)
====성균관대====
총 : 법원 60 검찰 81명
서울
법원
임종윤 林種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1952.2.13
김건일 金建鎰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56.7.6
홍성칠 洪性七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58.1.6
강영호 姜永虎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1957.10.11
황현주 黃玄周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1957.12.5
고영구 高榮九 서울고등법원 판사 1958.4.13
이민영 李珉榮 서울지방법원 판사 1959.5.16
임치용 林治龍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부장판사 1960.6.19
이영진 李榮眞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61.7.25
강두례 姜斗澧 서울고등법원 예비판사 1968.8.15
신동훈 申東勳 서울지방법원 판사 1971.1.26
김형석 金亨錫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1972.12.31
임일혁 任一爀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예비판사 1973.11.25
김희중 金熙中 서울지방법원 판사 1973.06.11
검찰
김종길 金鐘吉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48.6.28
서영제 徐永濟 대검찰청 마약부장검사 1950.1.1
이복태 李福泰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0.8.23
박영관 朴榮琯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장 검사 1952.10.15
노상균 魯相均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 검사 1954.12.13
김태희 金泰熙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형사1부장검사 1954.12.13
정병욱 丁炳旭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5.12.22
송민호 宋珉虎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6.7.6
박기준 朴基俊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6부장검사 1958.10.22
이삼 李三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8.2.17
김상봉 金尙鳳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58.6.15
주철현 朱哲鉉 대검찰청 공안2과장검사 1959.3.12
최진안 崔珍安 서울지방검찰청 고양지청 차장검사 1956.6.25
홍만표 洪滿杓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59.6.9
김필규 金弼圭 대검찰청 검사 1959.7.10
문찬석 文燦晳 법무부 법무심의검사 1961.11.22
민만기 閔萬基 법무부 검사 1960.11.22
양병종 梁炳鍾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60.8.29
오광수 吳광洙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60.11.1
김광암 金光巖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부부장검사 1962.2.3
원범연 元範淵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2.10.16
양근복 梁根福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4.9.2
김형길 金炯吉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1965.7.6
성지경 成之慶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65.03.14
오자성 吳自誠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1966.1.21
조성규 曺聖奎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67.04.07
김홍창 金鴻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8.8.13
양요안 梁要安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68.1.7
문봉길 文鳳吉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71.2.24
이창수 李昌洙 서울지방검찰청 서울지검 검사 1971.8.4
김영일 金英逸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72.1.13
신은선 申銀善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 1972.07.06
인천
법원
임성철 林成哲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4.3.3
김상배 金相培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판사 1966.11.29
오태환 吳太煥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6.11.09
이보현 李甫鉉 인천지방법원 판사 1967.11.18
이혁우 李赫雨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부장판사 1967.7.24
이현우 李賢雨 인천지방법원 판사 1970.4.18
신헌석 申軒錫 인천지방법원 판사 1970.10.7
검찰
윤형윤 尹炯允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58.12.16
이광재 李光載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54.11.21
한동영 韓東榮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1.4.29
김성은 金聖恩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1966.5.25
정태영 鄭太榮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 1970.07.23
수원
법원
김봉겸 金奉謙 수원지방법원 광명시법원 판사 1949.4.23
김광섭 金光燮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6.1.23
박정헌 朴正憲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1959.1.12
오준근 吳俊根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안성시법원 판사 1965.8.27
최용호 崔龍浩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4.7.3
박진환 朴鎭煥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사 1966.12.15
원익선 元益善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사 1967.2.10
조미연 趙美衍 수원지방법원 판사 1967.1.20
장용범 張容範 수원지방법원 판사 1971.11.27
검찰
김규섭 金圭燮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1945.12.1
윤석만 尹錫萬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57.8.15
곽상도 郭尙道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59.12.23
서홍기 徐洪紀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5.8.12
하종철 河宗鐵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1961.1.28
김재하 金載夏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9.9.5
이기옥 李基沃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8.2
대전
법원
최정기 崔廷基 대전고등법원 판사 1963.10.19
이기영 李起榮 대전지방법원 판사 1965.4.15
소병석 蘇秉錫 대전지방법원 판사 1972.11.23
검찰
김재호 金載淏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 검사 1969.02.12
청주
법원
이강원 李康源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60.8.18
서재국 徐在國 청주지방법원 판사 1972.7.2
검찰
김규헌 金圭憲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장 1954.9.17
김영익 金英翼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6.8.22
윤갑근 尹甲根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64.6.9
대구
법원
강석동 姜錫東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2.2.19
이윤직 李允稙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3.9.20
조창학 趙昌鶴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판사 1963.8.3
권성우 權成雨 대구지방법원 판사 1968.1.26
염우영 廉隅榮 대구지방법원 판사 1970.01.05
성경희 成京姬 대구지방법원 예비판사 1975.2.17
검찰
김옥철 金鈺哲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1949.11.20
정대표 鄭大杓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56.6.27
윤정석 尹晶石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 검사 1958.1.12
박해운 朴海雲 대구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0.1.14
홍종호 洪鍾鎬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64.8.14
김종형 金鍾亨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66.1.13
부산
법원
황종국 黃宗國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1952.1.2
현용선 玄容先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8.12.24
정성완 鄭晟完 부산지방법원 판사 1968.10.07
박희근 朴熙槿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71.12.29
신교식 申校植 부산지방법원 예비판사 1976.1.03
검찰
정홍원 鄭烘原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1944.10.9
박홍수 朴洪洙 부산고등검찰청 검사 1958.1.28
최해종 崔海鐘 부산고등검찰청 검사 1959.2.15
박문호 朴文鎬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부장검사 1959.6.19
김대룡 金大龍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70.5.22
박재휘 朴宰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70.05.26
창원
법원
장영달 張榮達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4.12.16
조우연 趙佑衍 창원지방법원 판사 1968.10.20
오성우 吳星禹 창원지방법원 진해시법원 판사 1968.12.30
박태안 朴泰安 창원지방법원 판사 1970.5.16
검찰
김효중 金孝仲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6.2.7
임재동 林在東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 검사 1966.10.5
남상관 南相寬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1.17
김영현 金永鉉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 1967.08.26
박윤권 朴倫權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7.09.28
김도완 金度完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1969.09.17
노만석 盧萬錫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 검사 1970.11.19
울산
법원
노진영 魯鎭榮 울산지방법원 판사 1965.07.22
이용운 李龍雲 울산지방법원 판사 1969.3.21
광주
법원
김승정 金承貞 광주지방법원 판사 1970.12.20
양영희 梁榮熙 광주지방법원 판사 1969.7.18
검찰
이선봉 李善鳳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6.3.30
이기선 李起先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 1968.12.30
최성필 崔盛弼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68.09.25
전주
법원
남준희 南遵熙 전주지방법원 판사 1966.1.6
검찰
노명선 盧明善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59.10.4
한석훈 韓晳薰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57.3.8
박종일 朴鍾一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0.6.5
이영우 李永雨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1.3.15
정재봉 丁在封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1963.6.22
춘천
법원
전우진 全遇鎭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판사 1962.10.21
이종우 李鐘雨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정성군태백시평창군법원 판사 1968.1.6
검찰
김수민 金秀敏 춘천지방검찰청 검사 1953.12.14
김지용 金志容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검사 1968.05.23
제주
법원
양경승 梁慶承 제주지방법원 판사 1958.12.27
검찰
김인원 金仁垣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1962.12.10
<2002 예비판사>
서울 - 임형태 (1)
광주 - 서삼희 (1)
대구 - 엄철 (1)
<2002 신규검사>
서울 - 김훈영 (1)
대구 - 이의수 (1)
광주 - 김현정 (1)
이건 좀 말이 과격하지만^^;;; 밑에 정원 이야기도 있고 해서 삭제하려다가
그냥 씁니다..
마지막으로, 성대 법대생이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 2개를 비판한다.
-우리법대가 타대출신을 받아서 우리대학 사시합격자를 늘렸다는 문제-
그것이 크게 비난받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
예전 법대 초창기시절에 아직 기반이 닦이지 않았던 법대를 단기간에 키우기위해
서울대를 졸업했음에도 사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사시도전의 의지는 있으나 가사 형편상 여건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대학원(산업대학원)에 동록시켜서 학비를 대주면서 고시반에서 사시를 보도록 배려했다.
그 이유는 그들을 통해 무슨 인맥덕을 보고자한것이 아니었고 공부방법등을 배우고
법대부흥과 사법시험반의 기반을 닦으려는 의도였다.
그런 사람들은 조사자료의 이해관계상 대학원과 학부가 중복될 경우 출신집계는
학부우선인 국내 관행상 전부 서울대(졸)로 계산이되어 나온다.
아래 우리대학의 지역별 검판사 출신에서 보듯 모든 자료는 순수 우리대학 학부출신의
집계자료이다. 현재 서울대출신으로 우리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합격한 사람들
가운데 현직 검판사로는 강대석(姜大錫) 전주지검 검사(서울법대 71년 졸, 한양대 산업대학원 77년 졸, 사법시험 79년합격)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 분은 그 어디에도 한양대출신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나머지 그렇게 해서 합격하신 분들이 얼마 되지도 않을 뿐더러 외부 집계에 한양대출신보다는 학부졸업 대학인 서울대로 나오게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국내 관행상 학부기준이 우선인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형식적 구분일뿐 졸업자 자신이 내심상 어디에 더욱 애착과 고마움을 느끼는가가 실질적인 모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현재는 그런 제도는 진작에 없어졌으며 최근의 모든 합격자들은 모두 우리대학 학부출신이다.
순수 학부출신으로도 역사가 월등히 길고 졸업생도 많았던 성대법대보다 총 합격자에서 50여명이상 많다.
타대학 이중학적일경우 사시합격생 한명에 목숨걸고있는 대학이 수두룩한 마당에 다른 대학에서 가만있겠는가?
특히 올해는 두 배의 격차가 벌어지자 이제 편입생을 받아서 합격시켰다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험담을하고다닌다. 인간이하의 사고방식을 지닌 인간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논란이되자 LEC법률신문에서 직접 조사하여 대학별 편입을 통한 중복합격자 현황까지 발표하는 해프닝이있었다.
그런데 거기보면 우리대학 총 합격자(사시 67명, 군법 3명)중 우리대학과 복수대학으로 합격된 사람이 연대출신 한 명이다. 그럼 연대에서 우리대학으로 편입했다는소린가?
합격자들의 학번을 보면 편입생은 숫자로 구분이 되는데 고시반에 직접 학번까지 공개했었다.
편입생 두 명이 합격했는데 모두 일반 편입으로 입학한뒤 우리법대에서 공부하여 합격했다.
이것도 트집거린가? 우리 대학이 편입생을 받기 시작한게 96학번부터니까 이제 나올때도
되지 않았나? 성대는 그 이전부터 편입생 왕창씩 받았다.
-성대법대의 고무줄 정원 변명에 대해-
성대 법대 정원은 80년대에 130명이었고 90년대 넘어오면서부터 주간 150명에 야간이 80명으로 총 230명이었다. 이것은 직접 당시 입시모집인원을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해보면안다. 야금야금 야간을 주간으로 전환시키고 교수회의를 통해 타단과대에서 빼오면서 주간 정원이 서서히 늘어나기시작했고 96년도 주간 180명에 야간 60명수준이되었다.
우리법대의 경우 82년도까지 40명정원이었고 83년도부터 교육정책에 일률적으로 졸업정원제(졸업생의 30%신입생 더 선발-다른대학도 모두 마찬가지였음)를 실시하면서 정원이 200명으로 늘고 법대 단과대 독립이된다. 98년도부터 60명을 늘려서 260명의 현재 법대 정원체제가 만들어진것이다.
따라서 정원 200명의 효과가 나타나는것은 사실상 당시의 극히 적은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감안하면 80년대 중후반부터다. 그리고 실제로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한법의 합격자는 양적으로 비약적 성장을 거두어 성법을 두 배 이상으로 따돌렸다. 이것은 그동안의 자료를 통해 증명된것이다. 대단한것은 그 40명정원으로 70년대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10여명의 합격자를 꾸준하게 냈다는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1천명 가까이 뽑는 시절이 아니었고 선발인원이 200~300여명에 불과해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리고 성대법대는 그정도 인원이면 쪽수부족을 탓할 처지가 아님을 알아야한다. 특히 야간을 빼고 계산하는데 성대 야간법대를 왜 빼는가? 단지 점수가 조금 낮다고 빼는 이유라면 성대법대 야간보다 더 낮은
점수로 합격자를 내왔던 지방의 영남대같은 대학은 합격률이 100%가 넘는가?
점수가 낮다는게 뺄 이유는 안된다. 특히 성대법대는 야간이라해도 법대만큼은 점수가 상당해서 서울의 몇 개 대학들은 입학할 수준이었다. 마치 지금의 시립대 세무(야간)처럼 말이다.
야간이 사정상 대학에 못간 직장인들의 학업기회보다는 주간못가서 간판따러가는곳으로 변질된것은
오래전일이다. 그래서 경제사정 좋아진 80년대넘어오면서부터 야간을 모두 없앴는데 주요 대학중 성대만
작년까지 야간천국이었다. 더욱이 야간간 사람들이 동일캠퍼스내에서 주간생하고 똑같이 주간수업듣고 고시반도 성적좋으면 서울캠 고시반에서 같은 환경의 혜택받으며 같은 분위기속에서 공부하는데 단지 수능성적 낮다고 빼버리는게 말이 되는가?
수능성적이 좀 낮은것일뿐 그들이 바보는 아니다. 실제 성대는 야간에서 차석이 나오는등 합격자가 꽤 나왔다. 그런 사람들 전부 주간법대로 학적까지 바꿔주면서 그들을 합격률계산의 숫자에서는 빼버린다는게 말이나 될법한 소린가?
지금의 성대인맥가운데 특히 공직계통은 예전 당시 가정 형편상 못배운 공무원들이 성대야간들어가서 학위따고 지금 공무원 직급올라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도 상당수다.
그들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면서 그들이 이뤄낸 실적은 이용해먹나?
성대법대의 명성이 법대가 대단히 뛰어나서 얻은것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그 당시에는 쓸만한 법대자체가 워낙 없었고 성대혼자 후기여서 서울대탈락자 받아갔기에
손 안대고 코풀은격에 불과하다. 그 이후 각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법대 키우고 우리법대
와 연대법대가 성장하고 서울대후기 공급끊기고 하면서 성대법대는 이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있는것이다. 최근들어 법조계의 성대맥은 갈수록 쪼그라들고있다. 그렇다고 성대법대가 그동안 쌓은 인맥이 대단한것도 아니고.
우리법대가 후발주자로서 엄청난 투자와 각고의 노력끝에 단기간에 지금의 명성을 이룩한것에 비하면 성대법대는 수험생을 상대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이지경까지 온것이다.
성대법대는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절치부심해야한다. 그런식으로 타대의 성장을 배아파하고
끌어내린다고 당신네 법대가 튀어 오르는게 아니다.
이미 법조계 평판도에서 한법은 성법을 능가했고, 50년대 말부터 합격자를
배출한 성법보다 70년대 중반 최초(75년 손용근 부장판사님) 합격자를 낸 한법이
합격자수가 많다는 것은 너네 대학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1. 합격자수 조작이라는 헛소리에 대해 반론한다.
각종 고시계에 집계된 한양출신 법조인은 총 557명이다. 557명이 많다.
현재 고시계에서 집계하고 있는 합격자수는 순수한 학부 출신이다. 분명히 밝힌다.
개같은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고, 너네 대학 합격자수나 똑바로 알아라.
사법시험반에서 문제가 있는 게시를 했다.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임은 인정한다.
사법시험반에서 밝힌 총 합격자수는 657명이다. 한양대 사법시험반을 거친 총 합
격자수이며, (당시 타대 대학원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게재한 듯. 건의
를 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삭제하도록 해야겠다) 한양 출신인 557명과는 구
분되는 숫자이다. 우리가 합격자 순위를 따지는 것은 순수 한양 출신인 557명이며,
성대보다는 약 70명 이상 많다. 한양대 최초합격자는 75년의 법대 손용근 판사님
을 비롯한 5명이시다. 확인 똑바로 해라. 100명은 타대 학부 출신으로 고시계에서
는 기록되었다. 합격자수 조작의 유언비어는 퍼뜨리지 말길 바란다.
▶1회~42회까지사시 총 합격자-
순위
대학(배출분포)
1 서울대 (4499)
2 고려대(1250)
3 연세대(540)
4 한양대(434)
5 성균관대(401)
6 경북대(220)
7 경희대 부산대(176)
▶43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98명
2 고려대 156명
3 연세대 80명
4 한양대 67명
5 성균관대 44명
...기타
▶44회 사법시험합격자-
1. 서울대 333명 (순수법대 177명)
2. 고려대 176명 (순수법대 156명)
3. 연세대 118명 (순수법대 77명)
4. 한양대 56명 (순수법대 46명)
..
..
7. 성균관대 34명 (순수법대 29명)
43, 44회까지 합하면,
한양 67+56을 더하면 557 이고, 성균관대 45+34 = 79 = 480 입니다. 총 77명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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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成均人 작성시간 03.11.13 어처구니 없다...그냥 훌리글은 씹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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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zzzzzdff 작성시간 03.11.13 그치...올해 성대가 1차 10년만에 이겼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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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네랄 작성시간 03.11.14 정확한데요...짝짝.. 글고 성대가 1차만이라도 이긴게 10년이 아니죠. 훨씬 더 됐죠. 근데 또 2차에선 뒤집어질꺼에요. 글고 수능은 원서빨~~아 위에 적힌 정원 대비 읽어는 본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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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헤헤헬 작성시간 03.11.15 일단 성법이 점수 높은건 인정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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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헤헤헬 작성시간 03.11.15 싸움은 거기서 부터 시작되는구나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