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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 장경린

작성자정중화|작성시간18.05.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장경린



1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당신이 거신 전화번호는

703국으로 국번만 변경되었습니다.

 

2

당나라 군사들이 출정했다는

전갈이 왔다. 갑자기

아카시아 나무에서

돼지기름 냄새가 났다.

물론 천 년 전의 일이다.

물론 천 년 전

 

예 맞습니다. 예, 제가요?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자꾸 흘러내리는

나이를 추켜올리며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이따금

슬쩍 들러 보는 명동의 화교 소학교에서

몇 살이지? 하고 다가서는 나를 보고

볼우물을 펴며 달아나는 소녀들은

당나라 군사의 딸 같지는 않다. 불시착한

중공 비행기 같은 건 오히려 나다. 물론

천 년 전의 일이 아니다. 물론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닌데요, 예, 예

여태라뇨?

 

3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당신이 거신 전화번호는

 

기억나세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오 임금님

마포갈비집 숯불 주위에

삥 둘러앉아 배추벌레처럼

푸성귀와 웃음과 음담패설을

씹으며, 거뭇거뭇하게 익어 가는 갈비를

자, 드시죠

 

그러나 자살골을 차 넣듯이

출근부에 도장을 찍어 대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안 계신다니까요.

아 글쎄, 그 사람은

 

왕관을 새로 근엄하게 고쳐 쓰고

퇴근 버스를 타려 할 때

누가 내 어깨를

쳤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4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당신이

 

고장이 났나 보다. 오늘은

별들이 켜지지 않는다.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진통제처럼 내리는 빗줄기

약기운 촉촉히

온몸을 적신다. 무엇이든지

가볍게 껴안고 이슬처럼

구르고 싶다. 이슬처럼

 

하룻밤의 몽상에

미래를 모두 소모해 버린 아침

낡은 미래를 딛고 밀려오는

방탕과 피곤

낯익은 안개

비켜

비켜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베개가

내 강산을 감싸 주었다. 어느새 나는

내 안개의 끝에

맺혀 있었다.

 

  

- 시집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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