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풍월당 풍류기/성남문학 50호

작성자원평재|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수필 풍월당 풍류기

김 유 조

오래 전문경영인으로 지내다가 이제는 소설가로 등단한 붕우가 풍월당을 방문하는 길에 나를 초대하였다. 함께한 또 한사람은 오래 법조계에 있다가 장관급 보직까지 마치고 지금은 우국에 가득한 시를 하루 한편씩 발표하는, 우리끼리는 그저 아무개 검사라고만 호칭하는 막역지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지하철 압구정-로데오 역에서 만나 밥부터 먹고 가기로 하였다. 멋을 부리느라고 굳이 소개를 받아서 간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작은 낭패가 바로크식 서곡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거창한 식당에는 홀 중간에 옷을 다 벗은 그리스 조각상까지 있었는데 식탁에는 QR카드가 보이고 주문은 그걸 찍어서 하라는 게 아닌가. 이 땅의 늙은이 셋이 낑낑거리다가 누가 외쳤다.

여기 75세 이상은 벨을 눌러 오더하라고 나오네.”

머쓱해진 우리는 종업원을 불러서 메뉴의 그림을 참고하여 밥 위주로 시켜먹었다. 풍월당을 찾는 전주곡이 이태리 음식이라면 좀 어울리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압구정 로데오라는 복합명사의 역 이름도 불협화음 같다. 우선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권신 한명회의 정자에서 따온 유래도 그렇지만 로데오는 또 무엇인가. LA 사는 사람이 거기 로데오 거리보다 더 로데오 같다던 말이 생각난다. 점잖지 않고 야단스럽다는 말이렷다.

강남은 사실 서울의 새마을이다. 예스런 마을에 새로 더부살이한 주제로는 역 이름도 새마을 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예전 내 고향마을에는 웃마()와 아랫마()가 있었다. 웃마 사람들은 아랫마 사람들을 좀 우습게 여기기도 했다. 수도 서울의 웃마(강북) 사람들이 아랫마의 새마을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좀 경시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 걸 막으려고 풍월당이 여기 아랫마에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웃마에는 오랜 궁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유명 출판사 예컨대 학고재나 열화당(파주로 옮겼지만), 을유나 범우사, 창비도 고색창연하다.

잡담 제하고 우리는 서둘러 인근의 풍월당으로 향했다. 풍월당 건물도 외견상으로는 아랫마의 상업성 짙은 건물들 중의 하나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건물의 4층과 5층을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보니 역시 명불허전, 복도에는 슈베르트가 세레나데 벽화를 앞세워 우리를 맞고 있고 서가를 가득 메운 고전음반과 하드카버의 음악서적 및 격조를 자랑하는 인문서적들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풍월당이 문화관련, 특히 음악 관계 서적의 출간과 음반의 수입, 제조 판매를 고품격으로 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기반이 이렇게 탄탄하게 쌓였고 주요 자료들의 수장고, 아카이빙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줄은 상상하지 못하였는데 현장은 지금 내가 리포트하고 있는 수준보다도 훨씬 대단하였다. 우리를 안내해준 매니저의 설명은 과하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풍월당의 현주소를 잘 알려주었다.

풍월당의 진면목은 도서의 출판과 음반의 유통에 그치지 않고 4-5층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펼치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5층은 강연과 공연이 열리는 아카데미 공간으로 클래식 해설 강좌, 음악회, 소규모 콘서트, 북토크 등이 운영되며 작은 공연장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좌석형 강의실과 무대·피아노 공간이 함께 있는 형태로 눈에 들어왔다. 목재서가, 낮은 조도, 클래식 포스터와 음반 진열 등은 그 자체 하나의 오브제 예술 작품 같았고 은둔적이었다. 과연 정신과 의사이자 클래식 평론가인 대표의 취향이 전반에 투영되었다는 평가가 과식이 아니었다.

, 살롱 문화!”

우리가 탄성을 발하였다. 특히 한때 헤밍웨이의 파리 시절에 심취하였던 내게는 깊은 영감을 주었다. 헤밍웨이는 작가수업을 하던 파리특파원 기자시절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여사의 살롱과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운영하는 셰익스피어 서점Shakespeare and Company’에 자주 드나들었다. 스타인 여사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20세기 모더니즘의 문학 대모였다. 특히 헤밍웨이를 비롯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작가들을 정신적으로 후원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 중심이 바로 파리 좌안의 살롱과 서점 문화였다. 특히 스타인의 집에는 매주 토요일 밤이면 예술가와 작가들이 모여드는 전설적 살롱이 열렸다.

이 살롱의 특징은 가히 현대미술과 현대문학의 실험실로서 귀족 사교장이 아니라 전위예술 공동체로 그림과 문학이 함께 토론되던 공간이었고 카페보다 더 사적인 지적 네트워크로 벽에는 당시무명이던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등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스타인은 이들의 작품을 초기에 수집해서 훗날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또 스타인이 “You are all a lost generation”이라고 말한 것이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서문으로 이어지며 잃어버린 세대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한편 헤밍웨이는 훗날 회고록 움직이는 축제일(A Moveable Feast)에서 스타인의 살롱을 상세히 묘사했다.

한편 살롱과 연결된 또 하나의 문화 중심지는 바로 셰익스피어 서점으로 미국인 서점주인 실비아 비치가 운영했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작가들의 우체국이자 도서 대여소, 원고 교환소, 문학 살롱 역할을 했다. 출입 인물은 주로 제임스 조이스, 이즈라 파운드, 핏제랄드, 그리고 바로 헤밍웨이였는데 특히 실비아 비치는 금서였던 율리시스를 출판해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스타인의 살롱이 모더니즘 정신의 거실이었다면, 셰익스피어 서점은 모더니즘의 항구같은 장소였다. 오늘날도 파리 문화 문학기행의 핵심 코스는 여전히 룩셈부르크 공원 근처의 스타인 살롱 터와 센 강변의 셰익스피어 서점을 중심 삼아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찾은 풍월당 공간은 취향 공동체 + 예술 담론 + 문화 살롱이라는 점에서 위 두 가지 스타일의 공간을 모두 합쳐 놓은 곳이라고나 할까. 클래식 강좌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음악 감상법, 작곡가 해설, 오페라·교향곡 강의 같은 인문예술 강좌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또한 공연·쇼케이스를 개최하여 음악가 초청 공연, 음반 발매 쇼케이스, 작은 음악회, 영화 시사회 등도 운영하여서 클래식 애호가들의 살롱 역할을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 우리가 갔던 날은 4층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음악 감상 공간을 확충하고 셀프 서비스로 차와 간식도 차려 들게 하며 일부 프라이빗 공간에서는 담론을 나눌 수도 있는 복합 시설 공사를 하고 있어서 마치 변천사에 즐거운 증인 같은 느낌도 갖게 하였다. 사실 우리의 청춘시절, 고향 D시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하이마아트가 있었고 서울에도 전원디 쉐네’, ‘심포니아등이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대가 바뀌며 그 공간은 흔적을 감춘 줄로만 알았는데 새마을 터에서 마실놀이공간으로 지속, 확장되고 있다고 할 것이었다.

헤어질 때 사색의 깊이가 느껴지는 매니저가 하드카버의 시집을 한권 건네었다. 얼른 보아도 내공이 보이는 시집은 두해 전에 나왔지만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 별나라로 갔다고 한다. 풍월당은 삶과 죽음과 존재론에 관한 이 깊은 사색의 시집을 내고 더 이상 시집은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발간 목록에 시집 01’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고 숫자는 작고한 시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 같은 것이라고도 하였다. 처음 안단테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로 시작된 안내는 아다지오로 음정이 바뀌었다. 다시 압구정 로데오역으로 나온, 등 굽은 노객들의 그림자는 황혼에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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