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혜산 박두진 문학관 관람기

작성자원평재|작성시간26.06.07|조회수1 목록 댓글 0

수필 혜산 박두진 문학관 관람기

 

문학기행단의 일원이 되어 안성에 있는 혜산 박두진 문학관으로 버스를 한참타고 이동을 하였다. 박두진 시인의 가계와는 인연이 따른다. 시인의 생전에 나는 그분을 상면한 적이 없었지만 친구의 소개로 맏자제와 교유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맏자제는 중견 기업인이었는데 문학예술과는 관련이 없었고 듣기로는 둘째가 예술가인데 해외에 이민을 나갔다고 하였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다.

아무튼 신촌 연세대학교 정문 건너편 높은 지대에 자리한 시인의 고택에는 그 맏이 분이 살며 지키고 있었는데 나와도 가까운 사이가 되고 보니 유명문인의 아들로서의 고충을 토로하였다. 예컨대 시인의 기일이나 명절이면 제자와 문우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데 그 접대가 예사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절이 달라져서 사람을 쓰며 손님접대를 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고 그분이 수집한 동서고금의 희귀본들을 정리하는 일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특히 시인이 수집한 2000여점의 수석을 관리하는 일도 개인으로서는 과한일이라고 하는데, 과연 넓은 안채를 가득채운 수석은 마루까지 넘쳐나고 있었다. 개인이 문학관을 지으려고 해도 건립은 감당하겠는데 지속적으로 사람을 쓰고 유지하는 일은 벅찰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만 하여도 거리에 시비하나 건립하는 일도 법령이 꽤 까다로웠던 것 같다.

이런저런 사연을 나누며 교유를 하다가 최근에는 연락이 없었는데 그간 고향인 안성시에 시립 문학관이 건립되어 문학단체를 맞이한다고 하니 내 가슴은 뛰고 궁금증도 더하였다.

아무튼 지나간 기억을 반추하며 먼 산등성이가 겹쳐질 때쯤, 나는 박두진문학관 에 닿았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의 숨결이 남아 있는 바로 그 공간이었다. 문학관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규모에 비해 내부는 깊었다. 육필원고와 시집 초판본, 생전 사진들 사이를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해야 솟아라를 외치던 한 시인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시는 자연을 노래했지만 단순한 목가가 아니었다. 생명과 신앙, 민족과 우주의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전시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조차 마치 그의 시어처럼 보였다.

더불어 이 문학관에서 내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앞에서 말한 인연 때문이랄까, ‘수석이었다. 시인은 말년에 수석에 깊이 몰두했다. 그 돌들은 장식품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산맥 같았고, 어떤 것은 파도 같았으며, 또 어떤 것은 오래된 수행자의 얼굴 같았다. 그는 강가와 산길을 다니며 돌을 주워왔고, 그 안에서 우주의 형상과 신의 흔적을 읽어내려 했다. 시인 박두진에게 수석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창조된 시였던 셈이다.

그의 수석론은 단순한 애석(愛石)의 차원을 넘는다. 돌 속에서 자연의 영성과 조형미를 발견했고, 시와 돌이 하나 되는 시석일여(詩石一如)’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해진다. 나는 유리장 안에 놓인 한 수석 앞에서 오래 멈추었다. 검푸른 돌 하나가 마치 풍랑 속의 섬처럼 서 있었다.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평생 붙들고자 했던 것은 언어 이전의 침묵이 아니었을까. 시는 말이지만, 결국 말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해 가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돌 앞에 앉았는지도 모른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문학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유족들은 지금도 문학관과 시인의 자료 보존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자녀분들의 구체적인 근황은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이름은 세상에 남았지만, 가족들은 조용히 그의 시간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문학관은 단순히 죽은 문인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시대를 견디며 자기 언어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박물관이다. 특히 박두진문학관은 자연과 신앙, 시와 돌이 한 공간 안에서 이러토록 묘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박두진문학관은 경기 안성시가 건립한 시립 공공문학관으로, 201811월 개관했다. 단순한 전시시설이라기보다 안성이 낳은 대표 시인인 박두진의 문학세계를 지역 문화자산으로 보존하고 시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라는 취지가 강조되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청록파의 한 축을 이루었고, 자연과 생명, 신앙과 민족정신을 노래한 대표 시인이었기에 안성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시비 건립과 문학길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해 왔다고 한다. 실제로 1998년에는 안성 시립 보개도서관 앞에 박두진 시비가 세워졌고, 이후 문학적 기념사업이 점차 확대되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문인을 활용한 문화관광·문학진흥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안성시 역시 박두진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한 문인을 추모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문화 인프라를 강화하려는 정책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안성맞춤랜드와 남사당 문화권, 금광호수 일대 관광자원과 연계하려는 구상도 작용하였다.

박두진 문학관은 단순 전시 기능에 머물지 않고, 현재도 안성시가 운영하는 공공 문학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민 대상 문학 프로그램, 체험 행사, 문학 산책, 지역 문인 지원 사업, 학교 연계 교육 등이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한국문학관협회 공모사업에도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

그러므로 박두진문학관은 기념관보다 살아 있는 지역 문학관을 지향한다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대도시의 거대한 국립문학관과 달리, 이곳은 지역성과 인간적 체온을 유지하려 애쓴다. 박두진문학길, 시비광장, 금광호수 주변 풍경까지 하나의 문학적 공간으로 연결해 놓은 것도 그런 이유인가 싶다. 시인의 시가 책 속이 아니라 실제 자연 속에서 읽히기를 바랐던 셈이다.

하루해가 뉘엿거릴 때쯤에야 문학행사는 끝이 났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인연이 긷든 문학행사를 마치며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여러해 전, 후손들이 염려하던 숙원이 그간 나라의 의식이 향상되면서 모두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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