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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상식

왕의 묘호는 어떻게 붙일까?

작성자미스터빈|작성시간07.11.12|조회수194 목록 댓글 0
묘호(廟號)는 사망한 군주를 종묘에 모실 때, 시호와 함께 붙여 주는 이름이다. 우리 나라의 묘호는 삼국시대부터 이미 사용되었다. 보통 이 묘호는 중국에서 황제가 죽은 후 그 업적과 관련하여 붙인 이름이다. 묘호로는 '조'(祖)와 '종'(宗)이 사용되었다. 조는 '창업지주'(創業之主)에게, 종은 '수성지군'(守成之君)에게 붙여졌다. 그런데 보통 '조'는 왕조를 세우거나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왕에게, '종'은 문화적 업적을 남겼거나 백성을 잘 통치한 왕에게 사용되었다. '태조'는 왕조를 창업했기 때문에, 성종은 많은 문물 제도를 완성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조선 중기 선조(宣祖)는 처음에는 '선종'이라고 했다가 임진왜란을 극복했다는 업적을 기준으로 다시 '선조'로 묘호가 바뀌었다.
이에 반해 '군'(君)은 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왕에게 붙여진 묘호이다. 연산군·광해군이 대표적인데, 연산군은 조선 시대 폭군(暴君)의 대명사이고,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였기 때문에 당시 성리학자들은 광해군을 패륜을 행한 왕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왕의 묘호로 조와 종이 사용되지 못했다. 고려 후기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을 때 원은 고려에게 묘호로 조와 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황제의 나라(원)에서 조와 종을 쓰고 있기 때문에 고려는 제후의 지위에 해당하는 묘호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충렬왕·충선왕·충숙왕 등의 묘호를 사용하였다. 보통 왕에게는 '충'(忠)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왕은 충성을 받는 주체이지 충성하는 대상은 아니다. '충'자는 충무공처럼 신하에게 사용한다. 그런데 원은 고려왕이 대대로 원에 충성하라는 의미로 '충'자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등은 '충'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원의 힘에 쇠약해지면서 고려왕들은 이제 명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

출처 : 김정남의 역사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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