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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상식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사람은 몇 명일까?

작성자미스터빈|작성시간07.11.19|조회수338 목록 댓글 0
유교 중심의 조선사회에서는 천주교가 사교에 해당하였다. 왜냐하면 천주교는 충효의 사상에 반하고 군신의 도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또한 신부가 독신이어야 하는 것은 가족 제도를 파괴하는 것이고, 모든 신분이 예배보는 일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는 사회의 윤리를 문란하게 하는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순조 즉위 후 외척인 안동 김씨 세력은 1801년 이승훈, 이가환, 정약종 등 남인 학자와 신도 300여 명을 사형에 처하는 신유박해를 일으켰다.
그 후 프랑스 선교사를 맞이해 천주교 세력이 커지자 1839년 다시 탄압을 가하여 프랑스 신부 등 80여 명이 순교하는 기유박해가 일어났는데, 이 중에서 50여 명이 부녀자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폐쇄적인 사회에서 천주교가 이들의 피난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46년에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과 9명의 신도가 사형에 처해지는 병오박해가 일어났으며, 1866년 대원군에 의하여 프랑스 신부 9명을 포함한 8000여 명이 처형되는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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