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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진행 중일 때 교황은 언제 작업이 끝나느냐고 물었다. 미켈란젤로는 '완성되는 날에 끝난다.'고 대답해 교황이 무슨 대답이 그러냐고 화를 내자, 미켈란젤로는 즉시 집으로 뛰어가 로마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고 한다. 아차 싶은 율리시스 2세는 급히 사자를 보내 사과하고 돈도 챙겨주어 미켈란젤로는 못이기는 척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또 이런 일이 반복되곤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스티나의 일이 끝나자 율리우스 2세도 선종했다.
이 천장화와 더불어 시스티나 성당에는 벽화 <최후의 심판>이 있다. 1533년 피렌체에서 메디치 묘의 작업을 하고 있던 미켈란젤로에게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의뢰를 해온 것이다. 클레멘스 7세가 세상을 떠나자, 1535년 파울루스 3세가 다시 이 작업에 대한 명령을 내려 <천지창조>에 이은 <최후의 심판> 작업이 시작되었고, 역시 엄청난 노력으로 1541년에 완성되었다. 이제 60대의 미켈란젤로는 심신이 파김치가 되었다.
시인 미켈란젤로의 마음
하루라도 당신을 만나지 못하면 어디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당신을 만날 때 당신은 마치 굶주린 자의 맛있는 음식과도 같습니다 당신이 웃음 지을 때, 길에서 인사를 할 때 나는 용광로처럼 불타오릅니다. 당신이 말을 걸어주면 나는 얼굴을 붉히지만 모든 괴로움은 일시에 가라앉지요.
미켈란젤로가 지은 시이다. 사랑에 빠진 사내의 절절한 심경이 잘 보이는 시이다. 이외에도 힘들 때, 즐거울 때, 그는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구애를 한 대상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생을 슬픔과 친구하면서 살아간 이 고독한 사람의 연약한 마음이 잘 보인다. 물론 그의 조각이나 그림에는 비장한 사상만이 들어있다. 미켈란젤로는 시작업과 서간문을 통하여 예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쓰고 또 썼다. 1486년부터 1563년까지 500여 편의 편지를 써서 조각이나 그림으로는 담아내지 못했던 마음까지도 담았다. 특히 1546년 이후에는 시집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미켈란젤로의 만년의 시들은 종교적인 경건함과 성스러운 믿음의 마음이 잘 드러났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