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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가 주요 교량을 점거하고 나치의 통신망을 두절시키는 동안 미군 제82공수사단과 제101공수사단이 생메르에글리즈 시 근처에 상륙하면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연합군 공격부대는 일제히 노르망디 해안의 다섯 곳에 상륙했다. 네 곳에서는 일찌감치 상륙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지만, 오마하 해변 쪽에서는 보고가 늦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날이 밝은 후에야 보고가 들어왔는데, 오마하 해변에서도 상륙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낙천적인 아이젠하워였지만 이번 작전에 임하는 마음만큼은 적잖이 긴장했던 터였다. 상륙 당일 수송기 2,316대, 항공기 총 13,000대와 함선 6,000척을 동원하여 7개 사단이 상륙했고, 7월 2일까지 100만여 명의 병력과 57만 톤 가량의 물자, 17만 량의 차량이 상륙하였다. 당연히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상륙 초기 3주간 동안 연합군은 8,975명이 사망하고 51,796명이 부상했다. 그 대신 약 41,000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 상륙작전에 힘입어 연합군은 치열한 전투를 거듭한 끝에 독일군을 제압할 수 있었으며, 히틀러가 자살한 후 1945년 5월 7일 독일 육군참모총장 알프레드 요들 원수의 항복을 받아냈다. 5년 8개월의 전쟁 뒤에 유럽의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는 세계적인 명장이 되었다. 전쟁에서 얻은 명성은 1952년 3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