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패현 출신의 유방은 어머니가 교룡과 교합하여 태어났다느니, 망탕산에서 흰 뱀(오행설에서 진나라를 상징한다)을 베어 죽였다느니 하는 말이 있지만 나중에 덧붙여진 전설로 보이고, 실체는 전혀 보잘것없는 출신의 백수건달이었다. 그러나 술 마시고 싸움질하는 나날 속에서도 왕도와 패도를 논하는 등 남다른 데가 있어서,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진시황이 일찍 죽지 않고 진나라의 지배체제가 안정되었다면 그의 이름은 역사 속에 영원히 묻혔으리라. 진승이 봉기했을 때 그는 이미 마흔이 가까웠으며, 고향 패현의 장관을 죽이고 봉기하여 패공(沛公)이라 불렸다. 그는 수천 명의 병력을 모은 뒤 항우에게 찾아가 합류했다.
항우는 교만하고 포악한 기질을 숨기지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이 받들면서도 두려워했다. 초회왕도 그랬던지, 유방을 은근히 중용하며 항우를 견제했다. 그리하여 “누구든 먼저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하는 자에게 그 땅을 준다”는 선언에 따라 먼저 함양을 차지한 쪽은 유방이었다. 반면 항우는 거록에서 진나라 최후의 저항을 분쇄하느라 늦었는데, 뒤늦게 도착해 보니 유방은 “살인죄는 사형, 상해죄와 절도죄는 징역이다”는 ‘약법삼장’을 내세워 통치를 행하고 있었다. 항우는 초회왕의 선언을 무시하고 그 땅을 차지하고는 진나라에서 내세운 3세 황제 자영을 죽이고, 궁궐을 불태우며, 황릉을 파헤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유방은 부드러움으로, 항우는 매서움으로 민심을 장악하려 한 셈이다. 이로써 진나라가 망하자 항우는 스스로 초패왕(楚覇王)이라 칭하고 여러 동료들에게 제후를 봉했는데, 유방은 서쪽 변방지대인 촉 땅을 주며 한왕(漢王)이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이 받들었던 의제(초회왕)를 죽이고 사실상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유방은 촉 땅에 들어가며 중원과의 통로인 잔도를 불살라 결코 항우의 중원을 넘보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그 해가 가기 전에(기원전 206년) 예전에 사용했던 잔도를 보수하고서 중원 침공을 개시했다. 여러 문학작품을 낳았고, 장기판에도 흔적을 남긴 ‘초-한 대전’의 시작이었다.
백수건달, 황제가 되다
 항우는 유방의 기습에 당황했으나 곧 반격에 나서, 한동안 연전연승했다. 형양에서는 포위 끝에 유방을 사로잡을 뻔 했으나, 유방이 가짜를 남겨 두고 간신히 달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유방은 나중에 스스로 평한 대로 장량, 소하, 한신을 적절히 기용해 전투에서의 부진을 만회했을 뿐 아니라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영포, 팽월 등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항우는 진작 유방을 없애자는 범증의 계책을 듣지 않았을뿐더러 한나라의 간계에 속아 그를 내쫓아 버렸다. 이런 실책이 거듭되던 끝에 기원전 202년, 해하 싸움에서 항우는 유방에게 결정적으로 패하고 자살해 버렸다. 천하는 비로소 한고조 유방에게 돌아간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지만,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서민 출신이 황제나 왕이 되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를 도와 대업을 이룬 공신들도 별 볼일 없는 출신이 많았다. 주발은 나팔수, 관영은 옷감장수였으며 하후영은 마부였다. 번쾌는 백정 중에서도 가장 천한 개백정이었고, 한신은 백수였다. 소하나 조참 역시 지방의 최하급 관리에 불과했다. 최근 임꺽정 일당을 “조선시대의 비정규직”으로 조명한 경우가 있는데, “유방과 그의 떨거지들”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비정규직, 백수 집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출신이 비천했기에, 이들은 종종 무례한 행동도 했다. 한나라의 통일 후 한동안은 궁중 연회를 하면 저마다 취해서 옥좌 밑에 드러누워 자거나, 궁전 기둥을 칼로 치거나, 오줌을 갈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방 스스로도 한때는 글줄 깨나 읽은 지식인을 공연히 미워해서 그들을 모욕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역시 오만했던 항우와는 달리 진짜 인재는 깍듯이 모실 줄 알았다는 점이 달랐다.
서민 출신이기에 서민의 어려움을 알았음인지,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가 통일제국을 겨우 2대 만에 붕괴시킨 것을 보았음인지, 한고조는 통일 후 기원전 195년에 숨지기까지 7년 동안 관대하고 온화한 정치로 백성의 고달픈 심신을 어루만지는 데 애썼다. 또한 제일 먼저 타도 진나라의 대열에 섰던 서민 출신의 ‘혁명가’ 진승의 사당을 세우고 대대로 제사를 끊지 말라고 지시했다.
잔혹한 체제안정책, 그러나 ‘외적(外賊)’과 ‘외척(外戚)’에서 아쉬움을 남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