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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근현대사 자료

[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37) '15세의 홍의장군' 안중근

작성자미스터빈|작성시간09.10.22|조회수94 목록 댓글 0

 [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37) '15세의 홍의장군' 안중근

 

'하늘에서 내린 홍의장군.'

1894년 동학 농민군은 안중근을 이렇게 불렀다. 당시 15세의 안중근은 붉은 옷을 입고 동학 토벌군 선봉장으로 활약하며 동학군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무반의 후예인 아버지 안태훈과 어머니 배천조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안인수가 미곡상을 하여 집안을 일으킨 뒤 황해도에서 손꼽히는 대부호 집안이었다. 안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 따르면, 부친 안태훈은 박영효에 의해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던 개명 지식인이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안태훈은 신천군 청계동에서 동학군 토벌 의병을 조직했다. 동학군 대장은 김구(金九·당시 19세)였는데, 안태훈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밀사를 보내 "군이 어리지만 대담한 인품을 지닌 것을 사랑하여 토벌하지 않을 것"이라며,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성사시켰다. 김구가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는 자신의 집에 피신시켰다. 안태훈에 대해 김구는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안진사는 눈빛이 찌를 듯 빛나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있었다. 안진사를 악평하던 자들도 얼굴만 마주하면 부지불식간에 경외하는 태도를 가지게되었다고 한다. 나의 관찰로도 그는 퍽 소탈하여 교만한 빛 하나 없이 위아래 모두 더불어 함께 하길 좋아하였다.'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김구와 안중근도 이때 운명적으로 만난다. '백범일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맏아들 중근은 당년 열여섯에 상투를 틀었고, 자색 명주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서 돔방총(총열이 짧은 총)을 메고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영특한 기운이 넘치고 군사들 중에서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혔다. 늘 넷째 삼촌 태건과 동행했는데 그들이 잡아오는 노루와 고라니로는 군사들을 먹였다.'

아들을 천주교에 입교시킨 안태훈은 1905년 병사한다. 젊은 시절 음주가무를 즐겼던 안중근은 이때 "독립의 날까지 술을 끊겠다"고 맹세하고 끝까지 이를 지켰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조선의 위기를 절감한 안중근은 1906년 재산을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의 재정을 도우며 교장을 맡는다. '교육으로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1907년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을 목격하고 그의 생각은 바뀐다. 애국계몽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다.

연해주에서 안 의사는 무장투쟁에 나섰다. 이범윤이 이끄는 의병부대의 참모중장이 되어 300여명의 의병과 함께 함경북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군 포로에 대해서는 국제법과 자신의 신념에 따라, "다시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풀어주고 무기까지 돌려주었다. 이 조치에 많은 의병들이 이탈하여 다음 전투에서는 참패하고 만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안중근은 11명의 동지와 단지(斷指)를 결행하고 다음 투쟁을 준비한다. 그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은 여러 운동을 두루 경험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다.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한국사

조선일보 200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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