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말씀/ 마태복음 5:17-48 요절/ 마태복음 5:48 | 2020.4.19 |
마태복음 8강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경건생활을 어떻게 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경건생활을 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참된 경건의 기초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경건생활을 돌아보고 영성이 더욱 깊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건생활 즉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어떤 자세로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구제와 기도와 금식과 같은 의를 행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개를 명견으로 키우는 데 칭찬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자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의를 행하게 되면 신앙생활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을 의식하며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경건한 척 하게 됩니다. 외식을 하게 되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 행동보다 내면의 동기와 목적과 자세를 보십니다. 선한 행동을 해도 그 동기와 목적이 잘못되었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코람데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행할 때 하나님의 인정과 상을 받게 됩니다.
첫째, 구제는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당시 외식하는 자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어대면서 구제를 했습니다. 구제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구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나’ 뿐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오직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 서면 돈도 권력도 학식도 명예도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무상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인정과 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이런 사람들을 남겨두신 것은 가진 자들이 선행을 베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신15:11).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 속에서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천국 백성들입니다.
1세기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구제를 했습니다. 그들은 구제품을 나누어줄 때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오늘날 정치인들도 매스컴을 동원하여 구제를 하고 자기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상은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외식하는 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제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
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구제할 때에 남들을 의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도 의식하지 말고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이 끊기고 경제적인 고통 가운데 있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일이 줄고 수입이 줄어서 고통 가운데 있지만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물질의 오병이어를 드려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기도는 마음의 골방을 만들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경건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교제입니다. 기도 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사랑을 고백합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영적 충전을 받고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게 되고 무기력해 집니다. 우리의 신앙이 뜨겁고 역동적이 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우리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성령에 붙들린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외출 중에도 기도 시간이 되면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그들의 기도는 형식이 되었습니다. 진실한 기도가 사라지고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기서 ‘너‘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골방은 창고나 다락방처럼 밀폐된 공간입니다. 골방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방해를 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골방은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서 마음의 골방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차단된 기도실이라 할지라도 마음의 골방이 없다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골방이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골방이 있는 사람은 집이나 학교나 카페나 식당이나 차 안이나 거리나 야외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특권 중에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이지만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받아주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나를 잘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대낮부터 한 없이 울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교회 감독이 그 여인을 보고 물었습니다. “부인,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부인이 “제 아들이 이단에 빠졌습니다. 죄악의 수렁에 빠져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에 감독이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이여,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 한 마디 말에 여인은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여인이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감독의 말처럼 방탕한 생활을 하던 어거스틴은 회심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기도를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하는 삶을 살 때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자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나 욕망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건강하고 성공하고 부자 되고 자녀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수해준 ‘주님의 기도’야말로 올바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려 줍니다.
주기도문은 천국 백성 된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인간의 욕망을 성취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 높고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조차 부를 수 없어서 ‘아도나이(주님)’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티끌 같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완전하시고 영원하시며 그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고 우리의 인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예수님은 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첫 번째 기도제목은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름은 존재와 인격을 나타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대접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온 세상과 우리의 주인이시며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아담 때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며 자신의 욕심을 좇아서 살았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런 타락한 세상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먼저 제자들 마음속에 이런 소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이 선한 행실과 복음전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함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죄와 죽음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조차도 하나님의 뜻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반역과 불순종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 마음에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내 마음이 합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강렬해집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서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두 번째 기도제목은 제자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는 세 가지입니다. 양식을 위한 기도, 용서를 위한 기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항상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때마다 공급해 주십니다. 양식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문제, 건강문제, 결혼문제, 자녀문제 등 실제적인 문제가 있으면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광의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빌4:19).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제자들은 끊임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매일 죄사함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구하기 전에 선행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가장 큰 문제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상처를 준 것은 기억하지 않고 상처 받은 것만 기억합니다. 상처를 잊지 않고 반복해서 되새기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못하면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늘 마음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형제의 작은 허물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속담에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한은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야 합니다. 작은 은혜라도 받았던 것은 일생동안 되새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의 빚을 다른 사람에게 갚아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천국 백성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의 마음에는 죄성이 있습니다. 죄성 때문에 늘 유혹을 받습니다. 성공에 대한 유혹, 쾌락에 대한 유혹, 정욕에 대한 유혹, 교만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마귀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유혹을 극복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이런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고 어떤 유혹도 이기고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6-18절은 금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세상 욕심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금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의 경건함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금식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금식할 때에는 사람 앞에서 하기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경건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은밀성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며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의를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상을 받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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