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메시지

2020 부활절 특강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작성자정이삭|작성시간20.04.26|조회수30 목록 댓글 0

2020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씀/ 고린도전서 15:20-34 요절/ 고린도전서 15:31

2020.4.26

부활절 특강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리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그리고 코로나가 지배하는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한 학생이 진지하게 저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큰일을 겪으면 사람이 변하나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부모, 가족의 죽음이나 큰 사건을 겪으면 변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그럴 수 있나요?” 그 질문은 변화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의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변화되어 새로운 인생, 능력의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훈련하고 죽기까지 노력하며 수고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하여 내가 죽을 수 없고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새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죽음을 이기고 생명력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의 부활은 믿어도 육체의 부활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합니다. 또한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며,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은 모든 의심과 거짓을 몰아내는 역사적 사실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첫 열매가 되십니다. 첫 열매는 다음 열매에 대한 보증입니다. 코로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이며 크고 놀라운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고 우리에게도 부활의 권능이 미치게 되었습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죄를 지었고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되어 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의 대표가 되시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고 부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어떤 추악한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될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부활하게 됩니까? 23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합니다.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게 부활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개개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장차 우주적인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최후의 날에 심판장이 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때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십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원수 사망까지 멸하십니다. 사망은 우리의 삶을 철저히 짓밟아 왔습니다. 사망이 쏘는 허무와 절망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사망 앞에서 부도 명예도 권력도 쾌락도 지식도 모두 물거품이 됩니다. 사망이 쏘는 두려움은 청년들을 관 속에 드러눕게 만들고 사망의 노예로 삼습니다. 사망은 언제나 승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원수 사망은 완전히 사망하며 멸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만물을 발아래 복종시킨 후,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심으로 만유를 회복하십니다.

 

  세계의 역사와 미래는 반드시 종말이 있으며, 반드시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계시며,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며, 장차 영광의 주요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믿음의 삶이 어렵더라도 희망을 포기치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633절은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현실은 환난과 고통과 실패와 좌절의 연속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기죽지 말고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 다시 오실 주님을 믿고 악과 탸협하지 않고 순결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삶을 통해 부활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위험을 피해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며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그는 매를 수없이 맞았고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바다에서 조난을 세 번이나 당하고 강도와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가 이토록 위험을 무릅쓰는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활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이 있는 그에게 위험은 두려움이 아닌 기회였습니다. 그는 위험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요 생명을 살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의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기가 정말 위기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는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나 위기입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잘 극복할 때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되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옆에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번방과 같은 성범죄와 여러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음으로 이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는가 생각하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풍요로운 시대에 죄와 죽음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누가 이에 대한 답을 말해 주고 죄와 죽음문제로 고통하는 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 바로 우리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주역들입니다.

 

  얼마 전 한 학생과 만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는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고 성격도 좋고 인물도 좋고 다 좋아 보이는 학생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는 그를 내가 어떻게 무엇으로 도울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밀려왔습니다. 그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코로나와 n번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죽음문제와 죄문제가 나왔습니다. 이때다 싶어 분명하고 확신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고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죄는 모든 인류에게 이미 퍼졌습니다. 죄로 인한 치사율은 100%입니다. 인간의 어떤 의지와 노력으로도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너무나 절망적입니다. 죄의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은 오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치료제입니다. 이 치료제로 나음 받아 새생명을 얻은 자가 바로 저입니다. 그리고 이 치료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치료제를 전하여 생명을 살리라는 특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어떤 사람도 도울 수 있겠다는 믿음과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믿음의 선배들이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로 나아가 콧대 높은 대학생들을 믿어 순종케 할 수 있었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복음임을, 복음만이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음을 새롭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귀한 복음의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감사제목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타락하여 악해지고 죽음은 점점 가까워질 것입니다. 예기치 않게 닥치는 위기는 위험스럽기도 하지만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불안과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힘써 전함으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보통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자랑하고 타이틀과 미모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부활의 믿음으로 살아가니 힘들어 죽겠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이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죽을 각오로 살았을 때 부활의 능력을 체험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고 부활의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힘써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매 맞아 죽을 것 같았고 바다에 빠져 죽을 것 같았고 굶어 죽을 것 같았고 인생이 망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했을 때 이상하게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험을 하나씩 헤쳐 나갈 때마다 그의 속사람은 더욱더 강건해졌습니다. 그의 내면은 더욱더 연단을 받아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더욱더 힘이 있었고 복음역사는 더욱더 흥왕하게 일어났습니다. 건강도 좋아지고 스피릿도 더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구나! 죽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구나. 십자가는 짐이 아니요 부활의 능력에 이르는 지름길이구나.” 그래서 그는 빌립보서 310,11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죽으면 산다는 놀라운 십자가 복음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사람은 죽고자 하기보다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바울도 죽어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고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죽고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죽고자 하면 두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는 죽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함께 할 때 우리는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어야 할 것은 뿌리 깊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죄의 시작이었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이 죽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될 때입니다. 그때 나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부활합니다. 바울은 날마다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다시 부활함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만났고 기쁨이 충만하였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했을 때 예수님을 만났고 구원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날마다 죽을 수 있을까요? 교회에 세 구루의 연상홍나무가 있습니다. 한 나무는 실외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겨울에는 죽은 것 같은 나무요 다른 두 나무는 실내에서 겨울을 나서 4개절 잎이 무성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봄에 꽃이 피어 지금 여기 단상위에 있는 나무는 실내에 있던 나무가 아닌 실외에서 죽은 것 같은 나무입니다. 실외에 있던 나무는 날마다 마땅히 받아야할 뜨거운 햇빛과 비바람과 추위를 맞았고 겨울에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실내에 있는 나무는 마땅히 받아야할 비바람과 추위를 격지 않았고 죽지 않았습니다. 죽은 나무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였지만 죽지 않은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이였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죽기 위해서 특별한 곳에 가거나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주님이 맡겨주신 십자가와 사명을 날마다 감당하며 살아갈 때 죽게 되고 부활의 만개한 꽃을 보게 됩니다. 허누가 목자님은 물질과 학업의 십자가를 감당하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부활하였습니다. 볼 때마다 복음을 말하여 요회원들이 그만 좀 말하라고 한다고 합니다. 영국의 김폴린 선교사님은 선교사의 삶을 사며 자녀를 양육하며 매일 죽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교회를 섬길 때 우리는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졌습니다. 교회를 통해 내가 구원을 받았고 내 자녀들과 캠퍼스 양들이 생명을 얻고 부활을 경험하여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여 섬길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이 어려움을 견디며 섬길 때 부활을 경험하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캠퍼스 목자로 부르시고 한 영혼을 먹이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한 영혼을 먹이는 삶이야말로 날마다 죽는 삶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죽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고 전할 수 없고 기도할 수 없고 인내할 수 없고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목자의 삶이야말로 날마다 죽고 부활을 체험하는 가장 축복된 삶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힘써 감당함으로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하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면 됩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고 우리 또한 부활할 것을 믿기에 우리는 깨어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악한동무들은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사는 신자들을 비웃습니다. 이런 악한 동무들의 말을 자꾸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게 되어 그리스도를 본받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라는 말은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악한 동무들의 말에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함으로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자신이 언제 죽었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제가 죽었을 때는 어릴 적 산에 버섯을 따러 갔다가 길을 잃어버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었을 때입니다. 죽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길을 찾게 해 주셨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학교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다 내려놓고 밤에 대강당에서 기도했을 때 십자가 예수님을 만나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고 대학원 방향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때 사람 앞에 잘 보이고자 하다가 큰 어려움에 처해 교만을 회개하고 살려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주님은 모든 일을 처리해 주심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여름수양회 때 십자가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아무리 리허설을 해도 말씀이 심령에 다가오지 않아 모든 힘을 다 빼고 주님께 기도했을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었습니다. 교만을 회개하고 죽었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였고 그때가 가장 기뻤고 부활의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즈음 코로나를 핑계로 몸을 사리고 적당히 하기를 잘 했습니다. 적당히 하다 보니 마음이 높아져 안일함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때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죽고 부활의 삶을 살라 하십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씀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교회와 양들을 죽기까지 섬김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며 생명을 살리고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합니다. 부활의 삶은 죽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교회를 사랑하고 한 영혼을 섬김으로 날마다 죽고 부활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2020 부활절 메시지- 나는 날마다 죽노라 -.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