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19-34 요절/ 마태복음 6:33 | 2020.5.3 |
마태복음 9강 |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현대인은 돈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천국백성이 된 우리 신자들에게도 돈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리고 복음역사를 섬기는데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돈이 있을 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또한 돈이 없을 때 생기는 염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활동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염려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물질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세우고 진정으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배우고 큰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9-24절은 물질이 있을 경우에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25-34절은 물질이 없을 경우 생기는 염려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재물을 땅에 쌓아 두려고 합니까? 그것이 미래에 안정된 삶,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옷이나 동전을 보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옷을 쌓아 두면 좀 벌레가 갉아먹습니다. 동전을 쌓아 두면 동록이 해합니다. 금과 같은 보석들을 땅에 묻어두면 도둑이 훔쳐갑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보물로 여기고 돈을 버는데 자신의 인생을 투자합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금고에 쌓아 둡니다. 하지만 대부분 쓰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아무리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어도 시간이란 좀 벌레가 갉아먹어서 아름다움이 다 사라집니다. 특히 죽음은 이 땅에서 이룬 성공과 업적과 재산을 다 빼앗아갑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늘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보몰은 영원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면 보물을 땅에 쌓는 것과 하늘에 쌓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은 재물을 자기 배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땅에서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쌓아놓은 보물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 갈 이유가 없고 천국 소망도 없습니다. 반면에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들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사용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런 삶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것은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늘이 자석에 이끌리듯 마음은 보물에 붙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보물이 부족해서 보물을 가져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보물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늘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그곳에 그 사람의 보물이 있습니다. 재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재물이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름다운 신체가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출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세상의 성공과 출세가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자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자식이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양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양들이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구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예수님께 관심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 자체가 그 사람의 보물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관심은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예수님을 얻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보물로 생각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일생동안 얻고자 투쟁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면 이 땅에 쌓아놓은 보물은 남지 않고 다 사라집니다.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에서 한 여인이 이혼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뭐가 이렇게 쉬워? 서류 한 장 쓰면 끝날 거. 뭐 그렇게 아등바등 날 괴롭혔는지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별 거 아닌거야? 어떻게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끝나는 거 보니까 그냥 빈 손이야. 부부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자기를 위해서 산 인생은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삶, 구제를 통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 것만이 하늘에 쌓는 보물이 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이익이 많이 남는 최고의 투자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이 땅에 보물을 쌓는데 투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데 투자하고 있습니까?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살펴보면 내가 땅에 보물을 쌓고 있는지, 하늘에 보물을 쌓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홍갈렙 목자님에게 보물은 기도입니다. 기도에 늘 마음이 가 있고, 기도하는 시간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김베드로 목자님에게 보물은 말씀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늘 말씀이 있고 말씀연구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자식이 보물입니다. 그 분의 마음은 자나깨나 자식에게 가 있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 보물은 주님의 양이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늘 양을 향해 있고 양이 잘 자라고 양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자식보다 양에게 더 많은 시간과 사랑을 주다보니 자식이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 한 분을 최고의 보화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님 안에 모든 지혜와 사랑과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남은 생애를 예수님을 위해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삶을 살 것을 새롭게 결단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맡기신 동역자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눈과 몸의 관계를 통해서 영적 분별력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십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눈이 좋으면 온 몸이 밝아지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집니다. 또한 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정결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눈이 정결해야 온 몸이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성한 눈은 질투, 시기, 탐욕과 같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야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탐욕으로 인해서 눈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인양 생각하고 이 땅에 보물을 쌓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잘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재물은 아람어로 맘몬입니다. 또한 맘몬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입니다. 다시 말해 맘몬은 재물의 신이란 뜻입니다. 맘몬은 인간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재물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재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섬겼던 여인들도 대부분 부자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에게 집과 먹을 것을 공급해주었던 루디아도 부자였습니다. 반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물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갔지만 이 땅에서 부유한 삶을 살았던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바울의 선교 동역자였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재물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재물은 악한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돈은 언제나 하나님과 맞짱을 뜰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은 인간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고 인간을 지배하고자 합니다. 돈을 땅에 쌓아 두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고민하며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과 시간과 인생을 내 맘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인생의 청지기, 재물의 청지기, 시간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가진 것들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인생관이요 성경적인 물질관이요 성경적인 시간관입니다.
제자들은 물질이 있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과 복음역사를 섬기는 데 사용하고 싶은데 물질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데 내일은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지 염려가 밀려왔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까?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숨과 몸을 주셨습니다. 목숨과 몸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숨과 몸에 필요한 것들, 음식과 음료와 옷을 공급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음식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십니다. 새는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공급해주시기 때문에 굶어 죽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새보다 귀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천국백성으로서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또한 제자들이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염려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자랍니까? 키가 자라기는커녕 멈춰버리거나 더 작아질 것입니다. 염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염려 때문에 신경질환에 걸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해합니다. 염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하여 보라”는 것은 깊이 관찰하여보라는 것입니다. 옷감을 만드는데 ‘수고’와 ‘길쌈’의 두 단계 작업이 수행됩니다. 남자들이 들판에서 수고하고 여자들은 가정에서 길쌈을 합니다. 백합화는 들꽃입니다. 들판에서 사람들의 돌봄 없이 자랍니다. 우리 교회 입구에도 들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과 향기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입을 것을 공급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천국백성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끼시고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저의 아버지는, 고시 공부를 하지 않고 성경공부와 양치는 데 푹 빠져 있는 저를 보면서 “예수가 밥 먹여주냐”하시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예수님이 밥을 먹여 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등록금 낼 돈도 없고 교통비도 없어서 쩔쩔맬 수밖에 없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예수님만을 붙들고 그 이름의 권세를 믿고 살았을 때 예수님께서 등록금도 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신실하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염려합니까?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혹은 믿음이 작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형편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사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좋은 것으로 먹이시고 입히실 부모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모든 염려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가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하니 우리는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일을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라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이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제자들은 스스로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운명주의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금하시는 것은 일이 아니라 염려입니다.
이방인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은 돈이 있을 때는 돈을 쌓아 두고 돈이 없을 때는 염려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은 돈이 있을 때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고, 돈이 없을 때도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정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일해야 할 뿐 아니라 교회를 섬기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도 일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야 합니까? 3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강조점은 먼저입니다. ‘먼저’라는 말씀은 삶의 우선순위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땅에서 살면서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을 뜻하기도 하지만 산상수훈에서는 ‘윤리적인 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먼저 힘써야 하는 일은 나의 마음과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요, 우리의 공동체에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 더 나아가 세상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그런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도록 전도와 의로운 삶에 힘써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데 우리 자신을 드리게 되면 하늘 아버지께서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고 순종한 사람들을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더욱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엡3:20).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일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성경적인 물질관을 바르게 세우고 물질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야 겠습니다. 제자의 삶은 모든 영역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공동체에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과 이 나라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